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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중생계 (206)화 (206/449)

제206화

인사방(人事房)의 여섯 노 마마는 장서열의 모든 게 불만이었다. 외모도 불만이었고 몸매도 불만이었다. 아무리 못나 보이게 만들려고 해도 어떻게든 황제를 매혹시킬 만한 자태였다. 무슨 짓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한 달간의 엄격한 수업에도 불구하고 장서열의 매력을 반감시키는 효과는 크지 않았다. 침대 위 모범생은 여전히 매력적이었다.

가장 나이가 많은 노 마마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

“마마, 그냥 무조건 아프다고 소리치십시오. 황제께서 흥분하지 못하도록 말입니다.”

“맞습니다.”

다른 마마가 얼른 반색하며 맞장구를 쳤다. 마침내 해결 방법을 찾았다.

“그래도 안 되면 그냥 상황을 어색하게 만드십시오. 폐하께서는 관계를 맺는 게 처음이라 별로 이상하다고 생각지 못하실 겁니다.”

말을 마친 마마가 절실한 눈으로 장서열을 바라보았다. 별 수 없는 일이었다. 소의는 무슨 짓을 하든 선녀처럼 예뻤다. 내일 저녁이 바로 합방이므로 그녀들은 어떻게든 방책을 내놓지 않을 수 없었다. 이건 다 황제 폐하와 대주국을 위한 일이었다.

“마마, 노비들도 마마의 억울한 심정을 잘 알고 있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마마께서 폐하께 미움을 받을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마마…….”

주변에 있던 모든 하인을 밖으로 내보낸 여섯 명의 마마가 모두 바닥에 꿇어앉았다.

“부디 폐하를 위해 이번만 참아 주십시오. 노비들에게는 남자를 유혹하는 비법이 담긴 서책이 있습니다. 이번 일이 끝나고 일 년이 지나면 반드시 그 책을 마마께 넘겨드리겠습니다. 그러면 마마께서는 폐하의 총애를 독점할 수 있을 겁니다.”

“도와주십시오, 마마.”

바닥에 꿇어앉은 여섯 명의 마마들은 충성심이 남다른 이들이었다. 그녀들은 심사숙고 끝에 이 방법을 택했다.

장서열은 황궁에서 인품이 좋지 않고 악랄하다고 정평이 나 있었다. 그러나 한 달 동안 그녀를 지켜본 마마들은 장서열이 소문과 다르게 꽤 영민하고 순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들은 장서열을 한번 설득해 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침대에 누워 열심히 가르침을 받고 있던 장서열은 그 말에 순간 마마들을 존경하던 마음을 싹 거뒀다.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

그건 장서열을 희생해 자신들의 목적만 달성하면 된다는 뜻이었다.

그녀는 갑자기 흥미를 잃었다. 모처럼 고분고분 협조했건만 상대는 고마워하기는커녕 오히려 자신을 곤경에 빠뜨리려 하고 있었다.

그녀는 황제의 후궁인 소의(昭仪)이지 인사방에서 일하는 궁녀가 아니었다. 만일 이번 일로 정말로 자신이 구염락에게 미움을 받게 된다면, 올 가을 새로운 후궁들이 들어왔을 때 자신은 내명부에서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이들이 건네주겠다는 비법 또한 당연히 받을 수 없었다.

장서열은 기분이 불쾌해졌다. 언제나 높은 신분으로 호강하는 게 익숙했던 장서열에게 소인배들의 농간은 불쾌함 그 자체였다.

장서열이 침대에서 내려왔다. 즉시 방으로 들어온 완정과 농교가 매우 공손한 태도로 그녀에게 겉옷을 입혀 주었다. 이제껏 유순하게 굴던 모습을 단박에 지운 그녀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마마들을 쏘아보았다.

“자네들의 뜻은 잘 알겠네. 내 비록 규방에서 자랐으나 함부로 행동하는 사람은 아니야. 마마들은 이제부터 올 필요 없다. 손님을 배웅하거라!”

여섯 마마들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다시 입을 열려 했지만 순간 날아든 날카로운 눈길에 즉시 입을 다물었다. 마마들이 고개 떨어뜨리자 농교가 앞으로 나왔다.

“마마님들, 가시지요.”

그렇잖아도 농교는 매일 거들먹거리며 주인을 가르치던 그들이 진작부터 눈에 거슬리던 참이었다. 마마들 때문에 그녀의 주인은 한 달간 그 좋아하는 극도 끊고 죽도록 고생했다. 그런데 결국 주인의 기분을 상하게 만들다니!

쫓겨난 여섯 마마들이 조로전 문 밖을 나왔다. 두 명의 마마가 서로 불안한 시선을 교환했다.

‘혹 눈앞의 이익에 급급해 일을 그르친 게 아닐까? 설마 들키진 않았겠지?’

그들은 부디 태후마마께서 그들의 고생을 알아주기만 바랐다.

* * *

조로전 작은 연못가로 개구리가 울었다. 바람이 주렴을 스쳐 지나갔다. 창문에 비친 가녀린 그림자는 여름 저녁에 청량함을 더했다.

조금 전 구염락은 밀실에서 장수들을 처형했다. 그는 헛소리만 늘어놓는 상소를 집어던지면서 오만방자한 성격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마음속에는 솟구치던 피바람 대신 점차 다른 종류의 떨림이 채워졌다.

오늘은 합방일이었다. 조로전의 측전은 촛불이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었다. 바람에 붉은 비단 자락이 나부꼈다. 창문에 비친 장서열의 그림자는 조용하고 아름다웠다. 구염락은 당장이라도 그녀의 품으로 달려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그는 망설이고 있었다. 이틀 전까지만 해도 그는 장서열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호언장담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땅 속으로 숨고만 싶었다. 그는 자신이 남자답지 않은 행동으로 그녀에게 미움을 살까 봐 두려웠다.

그는 아무래도 이 년쯤 후 자신이 충분히 장서열을 압도할 수 있을 때 다시 합방일을 잡아야 하는 게 아닌가 고민했다.

갑자기 뒤를 돌아본 구염락이 소리자를 향해 물었다.

“짐이 아직 처리하지 않은 상소가 남아 있느냐?”

소리자는 살짝 경악했다. 이는 혜령(慧令)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는 장서열이 소리자를 견제하기 위해 심어둔 사람이었다. 필요할 때 반드시 주인을 위해 나서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었다.

“폐하, 이미 다 처리하신 줄로 알고 있습니다.”

혜령은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고 있었다. 폐하께서는 오늘만을 기다리시지 않았던가. 심지어 폐하는 바쁜 와중에도 틈틈이 소의마마를 위해 신방을 최대한 고급스럽게 꾸미도록 지시했었다.

‘어째서 이러실까?’

하는 얘기만 보면 꼭 합방을 취소하고 싶은 사람 같았다.

소리자는 얼른 혜령을 쏘아보았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말을 할수록 실수만 저지를 뿐이었다. 혜령은 소리자를 못 본 척했다.

구염락은 깊이 숨을 들이마시며 속으로 아둔한 혜령을 질책했다. 창문에 비친 그림자를 바라보며 구염락은 왠지 모르게 자신이 작아지는 것을 느꼈다.

구염락은 아직 그때의 서풍엽보다 어렸다. 구염락은 정말 자신이 서풍엽과 비교가 될 수 있는지 의심스러웠다. 이 감정은 열등감에 가까웠다.

구염락은 모든 면에서 장서열에게 최고의 남자가 되고 싶었다. 특히 이건 남자의 자존심이 걸린 일이었다. 구염락은 더욱 많은 학습을 거친 뒤 마침내 서풍엽을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을 때 다시 전투에 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결정을 내린 구염락이 창문에 비친 그림자를 다시 한번 지그시 바라보았다. 장서열에게는 자신의 나약한 모습을 들키지 않도록 최대한 그럴 듯한 핑계를 대기로 결심했다.

구염락이 막 몸을 돌리려 할 때였다. 장서열이 창문을 열었다. 달빛에 비친 눈처럼 희고 고운 피부가 나타났다. 그를 발견한 장서열이 의아한 듯 웃어 보인 후 곧 그를 향해 손짓했다.

“왜 들어오지 않고 뜰에 서 있어요?”

구염락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그는 나쁜 일을 하다가 들킨 사람처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달아올랐다. 고개를 낮게 숙인 그가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내전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서열 누님… 누님.”

구염락은 무척이나 기뻐했다. 소리자와 혜령, 금서, 금수는 구염락의 뒤를 따르며 부끄러움은 왜 그들의 몫인가 한탄했다.

이럴 때일수록 폐하는 소의마마에게 조정 대신들을 대하던 것처럼 강한 모습을 보여 줘야 했다. 비록 연기일지라도 조금도 신경 쓰고 있지 않은 척, 경험이 풍부한 척해야 마땅하지 않은가.

그러나 이렇게 온순한 남편처럼 구는 건 폐하의 온몸에 흐르는 박력과 패기를 망가뜨리는 짓이었다. 이걸 대체 어느 여인이 좋아하겠는가.

금서는 구염락 때문에 마음이 초조했다. 그녀는 황제가 앞으로 소의와의 관계에서 주도권을 잡지 못하고 푸대접을 받지는 않을지, 또 그 덕분에 앞으로 후궁이 될 여인들만 이득을 보게 되는 건 아닌지 걱정했다.

금서는 발을 동동 구르며 미리 태의에게 합방에 좋은 향료를 얻어 농교에게 건네지 못한 걸 후회했다.

장서열 역시 긴장되는 건 마찬가지였다. 혼례복과 방을 가득 채운 붉은 초도 그러했지만 특히 자신의 ‘과거’가 가장 걱정이 됐다. 그녀는 혹시라도 구염락이 관계 도중 그 일을 떠올리고 갑자기 자신의 목을 조르지는 않을까 두려웠다.

붉은 옷을 걸친 구염락은 마치 지상에 내려온 선인(仙人) 같았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는 그녀보다 더한 긴장감이 역력했다. 그의 떨리는 시선을 마주하자 장서열은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지는 걸 느꼈다.

심지어 약간의 악취미를 발휘한 그녀가 아름다운 자태로 구염락을 향해 다가갔다.

“폐하, 신첩이 목욕을 도와드리겠습니다.”

구염락이 고개를 들었다. 그는 겸손하게 사양하려 했지만 어찌된 일인지 말이 나오질 않았다. 그저 멍하니 장서열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평소보다 더욱 단장에 신경 쓴 덕분에 장서열은 마치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듯 아름다웠다. 촉촉한 눈망울과 옥처럼 매끈한 몸매가 유혹해 오자 구염락의 사고는 일순간 정지했다. 그의 머릿속으로 온갖 부도덕한 장면들이 지나가기 시작했다.

구염락의 눈빛이 타올랐다. 무거워진 그의 호흡에 장서열은 순간 더 짓궂게 행동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구염락의 눈 속에 떠오른 열망을 본 그녀가 한 발 물러선 채 무척 점잖게 행동했다.

“폐하, 정방(净房, 소세실)으로 가시지요.”

문득 정신을 차린 구염락이 도망치듯 자리를 떠났다. 비정상적인 심장 박동이 이어졌다. 그는 난생 처음으로 숨이 막힐 듯 강렬한 소유욕에 사로잡혔다. 당장이라도 그녀를 거칠게 품에 안고 싶었다.

소리자와 혜령은 통제 불가능한 구염락의 변화에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누구도 감히 시중을 들기 위해 앞으로 나설 수 없었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드디어 구염락이 정방(净房)에서 나왔다. 머리카락에서 떨어진 물이 어두운 무늬가 수놓아진 얇은 평상복의 어깨를 적셨다. 소년의 외모는 더욱 영명하고 깨끗해져 있었다.

이미 겉에 걸친 붉은 장삼을 벗은 장서열은 거울 앞에서 머리를 정리하고 있었다. 정방에서 나온 구염락의 모습이 거울에 흐릿하게 비쳤다.

농교에게서 빗을 건네받은 장서열이 먼저 침묵을 깼다.

“난 정리가 필요하니 잠시 책이라도 좀 읽고 있을래요?”

날은 이제 막 저물고 있었다. 저녁 식사도 방금 끝낸 터라 침소에 들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장서열은 조급해하지 않고 천천히 머리 장식을 떼어냈다.

구염락은 고개를 저으며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거울에 비친 그가 흐릿했던 덕분에 장서열은 ‘책’이라고 말했을 때 그가 얼마나 어색한 동작을 취했는지 발견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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