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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중생계 (205)화 (205/449)

제205화

황좌를 둘러싼 피비린내는 무려 한 달이나 지속되었다. 팽팽한 긴장 속에 놓여 있던 구염락은 마침내 즉위식을 치른 후에야 비로소 한숨을 돌렸다. 그는 문득 자신의 키가 자랐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구염락은 눈부신 황색 도포를 입고 있었다. 용포의 위엄과 다소 어울리지 않는 유쾌한 발걸음이 휘장 앞에 섰다. 사람을 매혹시키는 커다란 눈동자가 빛났다. 그가 칭찬을 바라는 눈빛으로 촛불 아래 수를 놓고 있는 여인을 향해 말했다.

“서열아, 나 키가 좀 큰 거 같지 않아?”

고개를 든 장서열이 가을날 강물처럼 운치 있는 눈으로 웃음을 머금었다. 그녀가 구염락을 바라보았다. 마치 사탕을 기대하는 아이 같은 얼굴이었다.

“그렇네요.”

구염락은 빠르게 자랐다. 연말까지만 해도 아직 앳된 구석이 남아 있던 얼굴은 점차 소년의 느낌을 벗고 있었다.

구염락은 온몸에 악의를 거둔 채 마치 옥을 깎아 만든 듯 잘생긴 얼굴로 서 있었다. 그는 순진무구한 어린아이처럼 온순하게 굴었다. 확실히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시선을 뗄 수 없게 만드는 구석이 있었다.

장서열은 구염락이 매력적이라는 걸 언제나 잘 알고 있었다. 강인한 모습이든 자상하고 귀여운 모습이든 그는 언제나 사람의 눈을 즐겁게 했다.

지금도 그러했다. 주렴 아래에 선 그는 주옥의 빛조차 바랠 정도로 조각 같이 멋졌다. 깎아 놓은 듯 반듯한 얼굴에는 야심이 어려 있었지만 구염락은 이를 숨길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장서열은 그의 사소한 몸짓 하나에서 그의 매서움과 부드러움을 모두 알아챌 수 있었다.

다시 고개를 숙인 그녀가 손에 든 실을 고르기 시작했다. 구염락은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의 키가 이제 서풍엽만큼 컸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이를 알아채지 못한 듯했다.

하지만 구염락은 즉시 기운을 차렸다. 장서열의 남은 나날은 모두 그의 것이었다. 그는 다시 기분이 좋아졌다.

특히 오늘 그는 매우 기뻤다. 풍윤제가 붕어했으니 이제 백국(白国)만 멸하고 나면 장서열은 영원히 그의 것이었다. 어떻게 그녀를 곁에 두었느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그녀가 그의 곁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느릿느릿 다가간 구염락이 지나치게 영리한 머리를 장서열의 어깨 위에 비볐다. 마치 주인이 키우는 고양이 같은 모양새였다.

“서열아, 왜 정전(正殿)으로 옮기지 않아?”

구염락은 이제 황제였다. 자신의 서열이는 이제 원하는 모든 것을 가질 수 있었다. 황후 자리는 두말할 것 없이 서열이의 것이었다. 그는 황좌를 보다 공고히 다진 후 반년쯤 뒤 장서열을 황후로 봉할 생각이었다. 지금은 시기가 좋지 않아 섣불리 나선다면 오히려 그녀에게 화를 불러올 수 있었다.

“좋아하지 않아서요.”

장서열은 구염락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진심으로 웃었다. 그녀는 구염락이 제위에 올랐을 때 이미 저군전을 나와 조로전 편전에서 지내고 있었다. 이곳은 그녀를 위해 자복궁과 똑같이 꾸민 상태였다.

큰 방 두 칸으로 이어진 방은 주렴과 병풍, 그리고 반쪽 벽으로 공간이 분리되어 있었다. 손님을 맞이하는 대청에는 꽃이 수놓아진 융단이 깔렸다. 날아가는 용과 춤추는 봉황이 새겨진 장식품은 구염락이 억지로 들여놓은 것이었다.

장서열은 천성적으로 지나치게 격식을 따지는 것을 무의미하게 여겼다. 때문에 전생에서도, 지금도 정전에서 살지 않았다.

구염락은 장서열이 싫다면 굳이 정전으로 올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그곳에는 잡동사니나 쌓아 놓으면 그만이었다.

그가 다시 장서열에게 머리를 비비며 짐짓 가련한 목소리로 부드럽게 말했다.

“누님… 그거 알아? 난 이제 다 컸어.”

원하던 지위와 신분을 얻은 후 머리 아픈 일이 사라진 구염락은 이제 다른 생각을 품고 있었다.

“네. 확실히 키가 컸어요.”

장서열이 미소 지었다. 이렇게 컸으니 앞으로는 지금처럼 몸을 웅크리며 파고드는 것도 힘들리라. 그를 토닥여 준 그녀는 별 생각 없이 다시 실을 고르는 데 집중했다. 그에게 염낭을 만들어 줄 생각이었다.

구염락은 서운한 듯 입을 꾹 다물었다. 수줍게 옷자락을 만지던 그가 눈을 반짝이며 입을 열었다.

“마마들이 말하길, 짐은 이제 다 컸으니 인사(人事, 남녀가 잠자리를 갖는 일)를 생각해야 한다더군. 넌 나보다 두 살이 많으니 네가 내게 인사(人事)를 알려 줘야 하지 않을까?”

고개를 든 구염락이 뜨거운 눈길로 장서열을 바라보았다.

“알려 줘… 인사(人事)가 뭐야?”

순간 장서열은 바늘을 엉뚱한 곳에 찌를 뻔했다. 그녀가 구염락의 의미심장한 웃음을 힐끗 노려보았다.

“단정치 못하군요.”

‘벌써부터 저런 말을 내뱉다니!’

장서열이 손에 쥐고 있던 실을 내던졌다. 상대하기 귀찮았다. 그런 장서열의 뒤를 따르며 구염락이 설득을 시도했다.

“그게 법도라잖아. 가르쳐 주지 않는다면 조 부인께 알리는 수밖에.”

뒤를 돌아 구염락을 본 장서열이 싱긋 웃으며 정방(净房, 소세실)으로 들어가 소리쳤다.

“마마에게 언제가 좋을지 물어 봐요! 길일을 정하는 김에 제게 주의해야 할 사항을 알려 줄 경력 있는 마마도 구해 주시고요.”

순간 눈을 번쩍 뜬 구염락은 이 감정이 행복이라는 걸 알았다. 갑자기 그를 짜증나게 했던 조정 노신들도 다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황위와 장서열을 모두 얻었으니 이제 무엇 하나 부족한 게 없었다.

“소리자! 가서 인사방(人事房, 제왕의 시침을 관리하는 기관)을 대기시켜라.”

구염락은 타오르는 눈길로 장서열을 안을 그날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처음에 장서열은 매우 간단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그녀에게는 그랬다.

물론 그녀는 경험이 풍부하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최소한 남녀 간의 애정을 논하며 얼굴을 붉힐 순진한 아가씨는 아니었다. 게다가 자신을 사랑하는 구염락을 생각하면 그리 어려울 것 같지 않았다.

따라서 다음날 인사방(人事房)에서 노 마마 여섯 명이 찾아왔을 때에도 그녀는 그다지 큰 감흥이 없었다. 단지 인사방에는 마마들이 많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일각이 지난 뒤, 장서열의 생각은 완전히 바뀌었다. 제왕에게 인사(人事)를 가르치는 건 매우 복잡한 과정이 뒤따르는 일이었다. 제왕과의 잠자리는 무엇보다도 ‘가르침’이 먼저였다.

첫날밤, 여인은 제왕에게 지나치게 큰 쾌락을 주지 않으면서도 그를 만족시켜야 했다. 그녀가 배워야 하는 건 바로 이러한 모순이었다.

황제는 성년이 되어야 비로소 자유롭게 여인을 안을 수 있었다. 따라서 제왕은 일정 기간까지 한 달에 한 번 관계를 갖는 규칙을 지켜야 했다.

구염락은 아직 성장 중이었기에 첫 경험을 통해 지나친 만족을 얻어서는 안 됐다. 따라서 황후 역시 잠자리에 연연하지 않는 현숙한 여인이어야 했다. 이는 말로 가르친다고 되는 일이 아니었기에 자연스럽게 분위기를 조성할 필요가 있었다.

첫 번째로 제왕을 가르치는 여인은 중임을 짊어지는 셈이었다. 만일 관계 중에 엉뚱한 수법을 쓴다면 사형이었다. 장서열은 수위를 조절하는 법을 익혀야 했으며, 그 과정은 상상 외로 매우 복잡했다.

여섯 명은 적은 편에 속했다. 만일 장서열이 이미 품계를 받은 몸이 아니었다면 그녀에게는 최소한 열여섯 명의 마마가 달라붙었을 것이다. 장서열은 제왕에게 인사(人事)를 가르치는 여인 노릇도 쉬운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기대에 찬 구염락의 눈빛을 떠올린 장서열이 싱긋 웃었다. 다소 악랄한 미소였다. 그녀는 구염락이 그가 품어온 환상이 실현될 수 없다는 걸 알게 된 이후에도 여전히 자신에게 인사(人事)를 알려 달라고 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그러나 구염락은 사실 그 말을 꺼내고 싶어서 꺼낸 게 아니었다. 그 말을 꺼내기까지 그에게는 매우 큰 용기가 필요했다. 그는 장서열에게 결코 바보 같은 모습을 보여 주고 싶지 않았다. 이는 학대를 당하는 것보다 더 괴로운 일이었다.

구염락은 장서열 앞에서 언제나 작아지곤 했다. 그것도 모자라 만약 침대에서까지 체면을 구긴다면… 상상만 해도 아찔했다. 그녀를 만족시키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걱정에 그는 상소문에 머리를 박고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서풍엽은 언젠가 자신을 찾아와 장서열을 위해 충성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구염락은 이 순간 서풍엽을 떠올리는 스스로가 한심했다. 두려울 게 뭐가 있는가. 그가 이 방면에서 서풍엽에게 밀릴 리 없었다.

두말하면 잔소리였다. 당연히, 그것도 놀랄 만큼 잘할 수 있었다. 그는 이제껏 다른 여자를 쳐다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서열 누님 한 명만 있으면 그것으로 족했다.

이런저런 것들을 생각하며 용상에 앉아 상소문을 검토하던 구염락은 홀로 겸연쩍은 듯 얼굴을 살짝 붉혔다가 이내 원래의 표정으로 돌아갔다.

그는 이미 몰래 기방(妓房) 고수를 데려와 여인의 환심을 사는 방법을 배운 터였다. 수많은 자료를 연구했다. 반드시 장서열에게 최고의 남자가 되고 싶었다.

시간은 쏜살같이 흘렀다. 사람들은 모두 바빴지만 특히 장서열은 더욱 바빴다. 여섯 명의 마마들은 황제가 아끼는 후궁을 감히 함부로 대하지는 못했지만 가르치는 일만큼은 조금도 소홀하지 않았다.

만약 그녀가 잠자리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해 황제를 미혹시킨다면 옥체의 안위는 물론 국가의 앞날조차 장담할 수 없었다. 그들은 이것이 국가 대사에 관한 일이라고 했다.

마마들은 매우 엄격했다. 그녀들은 눕는 자세부터 눈빛, 동작 하나하나까지 장서열을 매우 까다롭게 교육시켰다. 심지어 한 자세로 한 시진을 버텨야 하는 때도 있었다. 무슨 짓을 해도 아름다운 여인을 거들떠보지 못하게 하는 방법은 오로지 가르침뿐이었다.

장서열은 약 한 달간의 학습 끝에 드디어 이를 모두 익혔다. 그녀는 스스로에게 입맛이 떨어질 지경이었지만 이 무거운 짐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마마들과 마찬가지로 장서열 역시 구염락이 순조롭게 성장하길 바랐다. 비록 이 방법이 구염락의 자제력에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그녀는 학습에 소홀하지 않았다. 어쨌든 국가 대사를 그르칠 순 없는 일이었다.

덕분에 최근 가극을 들을 시간조차 없던 그녀는 심지어 품계가 3품 소의(昭仪, 후궁의 품계 중 하나)에 올랐을 때에도 황실 족보에 대충 휘갈기듯 이름을 올려 구염락의 눈총을 샀다. 그녀는 구염락에게 몇 번이나 따가운 눈총을 받은 뒤에야 비로소 제대로 일을 마무리 지었다.

장서열은 자신이 민감하게 구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최근 구염락이 자신을 보는 눈빛은 정말로 단정치 못했다.

하지만 그는 미색을 탐하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장서열은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정확히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는 이제 막 황위에 오른 터라 대부분의 시간을 바쁘게 정전에서 보냈고, 그녀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장서열은 속으로 웃음을 금할 수 없었다. 그녀가 열심히 점잖은 연습을 하는 동안 구염락은 점점 더 점잖아지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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