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누드-31화 (31/47)

31.

거대한 화폭 위로 그의 얼굴이 뚜렷하게 떠오른다.

한때 거대하다고 생각했던 100호 캔버스는 이제 전혀 크지 않다.

처음 아저씨를 그릴 때는 작은 연습장에도 아저씨의 전신을 충분히 그려 넣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모자란다. 아저씨의 얼굴 하나만으로도 온 세상을 채울 수 있을 것 같다.

사아아아, 사그락, 사악. 탓탓탓.

그의 얼굴을 스케치하는 일은, 반투명 종이를 사진 위에 대고 그리는 것만큼이나 수월했다. 우연은 밑칠이 되어 있는 캔버스에 대담하게 선을 치기 시작했다.

나는 왜 지금 굳이 이 그림을 그리는 걸까? 아저씨는 만나 보지도 못할 텐데?

빚을 갚으려고?

우연은 웃었다. 도망치는 주제에 빚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그냥, 이 그림까지 아저씨에게 남겨 놓아야 할 것 같았다. 아저씨가 나에게만 허락했던 마지막 모습, 아저씨가 나의 마음에 박아 놓은 마지막 발자국, 그 최후의 모습까지 영원히 박제해 두고 싶었다.

우연은 자신의 그림이 기록 사진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그의 영혼을 캔버스에 짓뭉개 발라 가며 뽑아 낸 기록 사진.

아저씨는 그것을 볼 권리가 있고, 봐야 할 의무가 있다.

그사이 팔이 조금 굳은 듯한 느낌이 있었지만, 잠시 머뭇대던 손길은 어느 순간 확 속도가 붙었다. 이렇게 광적으로 솟아나는 선명한 이미지와 폭발적인 집중력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생각해 보면 아저씨와 헤어진 후로는 이런 감정이나 열망이 느껴진 적이 없었다.

사각, 사각, 슷슷슷.

고개를 위로 들어 올리고 있는 아저씨의 얼굴이 서서히 윤곽을 드러낸다. 우연의 의식은 시공을 훌쩍 넘어 그와 함께 있던 공간을 이리저리 배회했다. 생명의 다리 위에서 길게 펄럭이던 코트 자락, 참 춥던 날, 맵던 바람이었다. 아저씨는 얼굴이 푸르게 변하면서도 코트와 장갑을 한사코 양보했다. 아저씨가 나의 후원자가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 믿을 수 없는 행운에 나는 넋이 나갔고, 후견인 핑계로 아저씨와 만날 때, 통화할 때, 나는 행복해서 숨이 막혔다.

아저씨와 함께 있을 수만 있다면, 나는 조현병 환자여도 좋고, 조울증 환자여도 좋았다. 세컨드 소리를 들어도 좋고, 거머리, 기생충 소리를 들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사람이 아니고 동물이나 벌레나 나뭇잎이나 발밑에서 굴러다니는 쓰레기가 되어도 상관없었다. 함께 있을 수만 있다면 그의 서재 카펫에 붙은 먼지벌레로 평생 살다 죽어도 좋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처음부터 아저씨가 좋았다. 생명의 다리 위에서 만났을 때부터 운명처럼 아저씨를 사랑했다. 아저씨도 그랬다. 운명처럼, 그의 삶이 완전히 부서지고 망가질 만큼 나를 사랑했다.

어떻게 사람은 자신이 아닌 누군가를 이 지경까지 좋아할 수 있을까? 이게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감정이 맞을까?

깨달음은 너무 늦었고, 아저씨는 너무 높고 멀리 있었다. 모든 것이 까마득히 멀었다. 그래도 나와 아저씨는 기어이 사랑했고, 같은 침대에서 잠들었고, 함께 아침을 맞았다.

기억이 마지막으로 닿은 곳은 새벽빛이 희미하게 들어오는 어두운 성당이었다. 색색의 스테인드글라스, 흰 미사보를 쓴 여자들, 온통 검은 양복을 입고 있던, 엄숙하고 경건한 남자들, 소매와 단이 긴 가운을 입고 있는 신부님들, 제단 위에서 유난히 반짝이던 은색 종, 이마에 새겨지는 검은 십자가, 그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묵직하고 단조로운 목소리.

‘사람아,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감을 생각하라.’

‘사람아,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감을…….’

‘사람아, 너는 먼지이니…….’

맞다. 잠시 누렸던 육신의 기쁨은 먼지처럼 사라지고 이제 고통만 남았다. 먼지로 이루어진, 먼지가 만들어 낸 강렬한 기쁨에 예정된 암울한 미래는 생각보다 금방 들이닥쳤다.

그것에 저항해야 했다. 받아들이면 안 된다. 반드시 기억해야 했다. 나를 위해서 자신을 이루고 있는 것들을 모조리 무너뜨려 준 아저씨를 기억해야 했다. 그 모습을 남겨 두어야 했다. 모든 것을 내주고, 모든 것을 포기한 아저씨를, 너무 위대하고 아름다워 허망하기까지 한 감정이 꽃망울을 팍 터뜨렸던 그 순간을, 반드시 남겨 두어야만 했다.

먼 미래의 나는 혹은 아저씨는, 아니, 그보다 훨씬 먼 훗날의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모든 것이 먼지가 되기 전, 우리의 삶에는 이렇게 눈부신 순간이 존재했고, 나는 그 순간을 캔버스에 박제해 불멸의 생명을 주었노라고.

아저씨가 믿는 하느님을, 우연은 끝내 이해할 수 없었다. 그분은 우리에게 사랑을 주었고, 그 순간을 영원히 박제할 재능도 주었으며, 그것을 먼지처럼 사라지게 만들 운명까지 함께 주었다. 이쯤 되면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이상한 것을 넘어 우스워진다.

우연은 넓은 백붓에 검은 아크릴 물감을 듬뿍 묻혔다. 눈앞의 하얀 캔버스에는 이미 아저씨의 얼굴이 꽉 차 있었다. 이제 남은 일은, 정해진 구획에 정해진 번호대로 색칠하는 것뿐이다. 우연에게 그림이란, 정해진 칸에, 정해진 숫자대로, 정해진 색을 채우면 완성되는 정밀한 컬러북과 비슷했다.

* * *

그림이 완성된 것은 닷새째 되는 날, 출국을 하루 앞둔 저녁이었다.

붓을 내려놓은 우연은 대여섯 걸음 물러서서 완성된 그림을 바라보았다. 이번 그림은 지금까지 나온 작품 중 가장 무겁고, 목이 졸리는 것처럼 강렬했다.

아저씨는 이 그림을 어떻게 생각하실까.

우연은 그림을 커튼 뒤에 감추고 방문을 잠갔다. 두려웠다. 다른 그림을 그렸을 때는, 아저씨의 생생한 반응을 직접 보고 싶었지만, 적어도 이 그림만큼은 아저씨의 반응을 보고 싶지 않았다.

저녁도 먹지 않고 2층 침실로 올라와 전화기를 켜니, 이미 미현에게 문자가 들어와 있었다.

[내일 낮 12시, 잠시 편의점에 다녀온다 하고 집 앞 편의점으로 나올 것.]

[구청에 들러 여권 찾고 바로 인천으로 출발하니 짐 챙겨 둘 것.]

챙길 짐 따위는 애초부터 없었다. 아저씨에게 받은 것은 모조리 돌려드리고 가야 마땅할 것이다. 금 장신구부터 낡은 와이셔츠까지. 우연이 가져갈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저씨와의 반짝이는 기억들뿐이었다.

그래. 자고로 팬질 덕질 사생질에는 애정의 분량만큼 무수한 기념품과 굿즈가 남는 법이다. 우연은 아저씨를 지독하게 사랑했고, 그래서 무수한 기억이 남았다.

……고작 기억만.

눈꼬리로 가늘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옆으로 몸을 돌려 아저씨의 베개의 얼굴을 묻었다. 베개에서는 아저씨 냄새 대신 향긋한 섬유 유연제의 냄새만 났다. 깔끔한 송 할머니가 새삼 미웠다. 아저씨 냄새 좀 며칠 정도만 남겨 주면 어때서. 우연은 섬유 유연제의 냄새가 서러워서, 베개에 고개를 묻은 채 한참 흐느꼈다.

벌써 아저씨가 보고 싶은데, 이렇게 미치게 보고 싶은데, 난 어떡하지.

내일 어느 나라로 가게 될지, 우연은 여전히 알지 못했다. 묻지도 않았다. 어딜 가나 백치 신세가 될 것은 똑같으니까. 엄마는 학생 때 조기 유학이라도 다녀왔다지만, 우연은 영어로 인사 한마디 할 줄도 몰랐다.

자신의 앞에 펼쳐진 색깔은, 어느 추운 겨울날 아침, 한강에서 보았던 풍경과 비슷했다. 짙고 어둑한 남색, 인디고, 그리고 블랙. 나는 이제 겨우 스물두 살인데, 인생에서 남은 일이라곤 더 차고 더 어둡고 더 깊은 곳으로 점점 가라앉다가, 꿀럭꿀럭 발버둥 치며 죽는 일뿐이었다.

……아저씨, 나 이제 어떡해요.

이원은 예정보다 이틀 이르게 귀국했다.

* * *

불을 켜지 않은 채 가만히 걸음을 옮겼다. 새벽 3시. 조용히 2층으로 올라온 이원은 조심스럽게 침실 문을 열었다.

아…….

우연은 자신의 침대에서 곤하게 자고 있었다. 이원은 방문을 잡은 채 길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우연이 얌전히 기다리고 있으리라 믿긴 했지만, 불안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유리처럼 연약하고 극도로 섬세하며 영감으로 가득 찬 눈부신 영혼은 이미 여러 곳에서 균열하고 있었다. 조금만 충격을 가하면 와장창 깨질 것 같고, 사금파리마저 모래처럼 흩어져 날아갈 것 같았다.

침대 곁의 의자에 앉았다. 불을 켜지 않아 깜깜한 방, 정원의 가로등 불빛만 희미하게 흘러들어 와 우연의 옆모습을 비춘다. 그녀는 이원의 자리에서 이원의 베개에 고개를 묻고 자고 있었다.

우연아, 나 왔어.

나 없는 동안 힘들진 않았어? 괜찮아? 외롭진 않았어?

우연아. 보고 싶었는데 잠만 잘 거니? 난 네가 숨 막히게 보고 싶었는데?

살그머니 허리를 굽혀 동그란 이마에 입술을 댔다. 가볍게 대고 떼려 했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이원은 천천히 입술을 내려 우연의 입술을 파고들었다.

“…….”

우연이 눈을 뜬다. 새까만 눈동자가 눈앞에서 깜박거린다. 몽롱하던 눈에 초점이 맞춰지며, 눈이 한껏 커진다. 이원은 혀를 욕심껏 안으로 밀어 넣었다. 목마르고 배고팠다. 이 몸을 힘껏 품고 내 몸으로 한껏 채우고 싶었다.

“……아저씨.”

맞닿은 입술 속에서 우연이 중얼거렸다. 혀가 꿈틀대는 것이 간지러웠다. 입천장의 가는 무늬가, 혀의 미뢰들이 느껴지는 것 같다.

“아저씨, 아아, 다행이다.”

이원은 무엇이 다행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묻기도 전에 우연은 다시 말했다.

“아저씨, 보고 싶었어요. 다행이야, 보고 싶었어. 보고 싶었어, 아저씨.”

갑작스레 흘러내린 짠물이 입술 사이로 스며든다. 이원은 우연이 왜 우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자다가 일어난 우연의 눈가에는, 부연 눈물 자국이 겹겹이 남아 있었다. 이원은 자신의 베개가 축축하게 젖어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왜, 왜 우니 우연아. 무슨 일 있었어?”

“아저씨가 보고 싶었어요. 너무, 너무나 보고 싶어서…….”

제기랄! 이원은 우연을 꼭 끌어안은 채 등을 다독거렸다. 저도 모르게 목이 메었다. 그래, 그래, 그래. 많이 불안했구나. 이렇게나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었구나.

“아저씨 못 볼 줄 알았어. 다시는 못 볼 줄 알았어…….”

“못 보기는 왜. 금방 온다고 했잖아. 그동안 많이 불안했니?”

이원은 잠긴 목소리로 우연을 달랬다. 우연은 대답하는 대신 이원의 목에 매달려 흐느껴 울었다. 나, 나 하느님한테 졸랐어, 그냥, 막 졸랐어. 아, 아저씨 보고 싶다고, 너무너무 보고 싶다고……. 아, 다행이야. 고맙습니다, 눈물에 함빡 적셔진 그녀의 목소리가 이원의 귀에 가늘게 파고들었다.

“아저씨, 사랑해, 아저씨, 아저씨, 사랑해…….”

이원은 눈을 질끈 감고 품 안의 작은 몸뚱이를 으스러지도록 끌어안았다. 그저 며칠 만에 얼굴을 본 것뿐인데, 눈물이 흘러나올 것만 같다. 이원이 눈과 뺨과 입술에 차례로 입을 맞추자 우연이 젖은 눈을 천천히 들어 올린다. 눈물에 젖은 긴 속눈썹이 애처로워 미칠 것 같았다.

잠시 후, 간절한, 아니, 어쩌면 절박한 듯 느껴지는 속삭임이 흘러들어 왔다.

“아저씨, 지금 나 좀 ……꼭 안아 주시면 안 돼요?”

이원은 잠시 대답을 망설였다. 지금 이 말은 그동안 불안에 시달렸으니 안심할 수 있도록 따뜻하게 안아 달라는 말일까, 아니면 섹스를 하자는 말일까. 우연은 손등으로 눈물을 닦아 내더니, 그를 똑바로 응시하며 덧붙였다.

“……아저씨하고 섹스하고 싶어요. 정신이 나갈 만큼.”

* * *

우연이 가는 팔을 올려 이원의 목에 휘감는다. 이원은 입술을 목으로 끌어 내렸다. 얇은 티셔츠를 위로 말아 올리자 속옷 한 장 없이 하얗고 작은 가슴이 바로 튀어나온다.

보자마자 열이 끓어올랐다. 이원은 허리를 숙여 그것을 입에 물고 한 손으로 다른 가슴을 움켜잡았다. 만지고 싶었다. 미칠 정도로, 이렇게 다시 보고, 만지고, 샅샅이 핥고, 힘껏 빨고 싶었다. 이 아이도 나를 그렇게 간절히, 정신이 나갈 정도로 원했다는 것을 알게 되니,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이원은 젖꼭지를 힘껏 빨아들이면서, 슈트와 옷가지를 급하게 벗어 던졌다. 칼라 바, 넥타이핀, 커프스가 한꺼번에 바닥에 나뒹구는 소리가 났다. 속옷을 벗자마자, 눌려 있던 음경이 다리 사이에서 튕기듯 치솟아 우연의 허벅지를 건드렸다. 허겁지겁 성기를 비벼 댔다. 귀두 끝은 터져 나갈 것 같고, 몸은 열기에 녹아 버릴 것 같다.

작은 손이 다리 사이를 더듬어 이원의 상태를 확인한다. 이미 모아이 석상처럼 치솟은 해면체 덩어리는 우연의 손에 들어가자 발광이라도 하듯 크게 몸부림쳤다.

“하윽!”

이원은 허리를 비틀며 비명을 질렀다. 흐앗, 흐윽! 우연의 작은 손이 극도로 예민한 머리 부분을 힘껏 움켜쥐고 지배하려 할 때, 이원은 가장 고통스러우면서도 끔찍하게 달고 황홀했다. 저 손에 그대로 쥐어뜯겨 죽어도 좋겠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불쑥 치밀었다.

이원은 몸을 돌려 우연의 다리를 벌렸다. 너무 어두워서 은밀한 속살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애가 타서 입속이 바작대고 말랐다. 다리를 더 거칠게, 힘껏 벌리고 그 사이에 얼굴을 바짝 들이댔다. 도톰하고 둥그스름한 두 개의 외음부가 만져진다. 어둠에 눈이 익은 상태지만 여전히 어렴풋했다. 이원은 손가락으로 그 아담한 골짜기를 양쪽으로 한껏 까발렸다.

안에서 수줍게 솟아오르는 작은 봉오리가 보였다. 아니다, 수줍지 않다. 그것은 오만하고 암팡지게 그 작은 고개를 바짝 들고 있었다. 머리가 핑그르르 돌았다.

……제기랄.

이원은 그것을 입술로 물고 혀로 핥아 올렸다. 아으, 아저씨, 아저씨이이! 다급한 비명과 함께 가는 두 다리가 파들파들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아, 정말이지 미치게 그리웠다. 다시 보고 싶었고, 다시 맛보고 싶었다. 닷새 동안 거의 미치는 것 같았다.

우연이 헐떡이는 소리로 묻는다.

“아저씨, 아저씨도 나랑 미치게 섹스하고 싶었어?”

“응.”

성기 끝에서 벼락 치는 통증이 일었다. 아아, 이원은 참지 않고 그대로 비명을 내질렀다. 우연의 손은 생각보다 맵고 무자비했다. 이원은 입을 벌린 채 거칠게 숨만 몰아쉬었다. 우연의 나직한 목소리가 들린다.

“많이 하고 싶었어?”

“……그, 그래, 하고, 싶어서, 죽을 것 같았어.”

우연의 신음은 웃음소리인지 흐느낌인지 구별하기 어려웠다. 쥐어짜며 비트는 손길은 점점 광포해진다. 흐윽, 흡, 이원이 필사적으로 신음을 삼키는 동안, 우연이 다시 물었다.

“어떻게 참았어? 혼자 했어요?”

이원의 얼굴로 열이 치솟았다. 오래된 연인이나 부부 사이라면 이런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하게 될까. 여전히 잘 모르겠다.

“……혼자 했어.”

“호텔에서 내내?”

“……그래.”

“다행이네…….”

뭐가 다행일까?

생각은 이어지지 못했다. 아악! 갑자기 입에서 비명이 튀어나오며 몸이 크게 고꾸라진다. 우연의 손이 이젠 귀두를 완전히 까발리고 그 속살을 손톱으로 긁어 댄 것이다. 이원은 수술을 하지 않아, 그곳의 감각이 극도로 예민했다. 불에 달군 바늘이 그곳을 집중적으로 후벼 대는 것 같다.

이원은 전기 고문이라도 당하는 것처럼 몸을 비틀었다. 이젠 비명도 나오지 않았다. 그는 입에 물린 클리토리스를 왈칵 깨물었다. 아악! 흐윽, 아흑! 두 사람 모두 한참 동안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버텼다.

이성을 지탱하고 있던 선이 끊어졌던 건 그 순간이었던 것 같다. 우연이 손에 힘을 살짝 풀며 귀두를 문질렀고, 이원은 순식간에 부풀어 오른 클리토리스를 힘껏 빨기 시작했다. 비명은 신음과 점점 뒤섞이고, 호흡은 점점 빨라진다. 두 사람은 서로의 사타구니에 머리를 박고 몸부림을 쳤다.

아악, 아흐읏, 윽, 흐으읍.

비명 같은 신음은 점점 길고 질척하게 뒤섞였다. 두 개의 몸은 가장 추한 자세로 얽혀 한참 동안 버르적거렸다.

이제 전신의 감각은 모조리 퇴화하고 쾌감 하나만 증폭시켜서 받아들이는 것 같다. 극도로 예민한 귀두 부분을, 아예 사포로 밀어 대는 것 같다. 끔찍하게 고통스러운 쾌감에 신경이 갈려 나간다. 아아, 으윽, 신음이 도저히 눌리지 않는다. 이원은 매 순간의 자극마다 이를 악물고 짐승처럼 울부짖을 수밖에 없었다.

이 순간 이원은 이 작은 아이의 노예였다. 최면에라도 걸린 것처럼, 이 지독한 쾌감에 조금도 반항할 수 없었다.

이원은 헐떡대며 몸을 돌려 우연의 다리 사이에 성기를 단번에 쑤셔 박았다. 쩍. 좁은 속살이 깊이 갈라지며 자신의 성기를 끌어당기듯 감싸 안는다. 아아악! 우연이 비명을 지르더니 다리를 허우적대며 이원의 허리를 힘껏 끌어당긴다. 아찔하다.

쩍, 쩍, 퍽, 퍽퍽, 쩍.

이원은 격렬하게 허리를 꿈틀대며 그 좁은 입구를 헤치고 깊이, 더 깊이 파고들어 갔다. 우연의 부탁이 아니더라도, 황홀해서 정신이 나갈 것 같다. 그녀의 속살은 진흙으로 만들어진 수십 개의 손 같았다. 따뜻하고 축축한 진흙 손들이 물결치듯 꿈틀대며 이원의 음경을 만지고 훑고 긁고 자르르 떨며 쥐어짜듯 자극한다. 머리카락 하나하나, 손톱, 발톱 끝까지 극심한 쾌감에 미쳐 날뛴다.

그녀의 몸의 반응에서, 이원은 광적일 만큼 열렬한 애정과 깊고 무거운 감정을 느꼈다. 목이 비틀리는 것처럼 메인다. 그래. 사랑하는 감정과 사랑하는 행위는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것이 맞을 것이다. 아, 좋다, 너무 좋다, 지독하게, 사랑스럽다. 이원은 이 느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영혼이 갈려 나갈 듯 황홀하고, 미칠 정도로 사랑스러웠다.

이원은 땀에 젖은 우연의 젖가슴을 두 손으로 둥그렇게 모아 쥐고 힘껏 주물렀다. 이 살은 왜 이렇게 부드럽고 말랑말랑하며, 이 작은 알맹이는 왜 이렇게 사람을 미치게 할까. 네가 가진 모든 것은 지나치게 매혹적이다. 이원은 빳빳이 곤두선 젖꼭지를 비비고 빨고 깨물어 대며, 짐승처럼 허리를 흔들어 하반신을 쳐올린다. 쩍, 쩍쩍, 쩍, 속도가 빨라진다. 악, 하악, 아으으, 흐읏, 아, 아저씨! 가늘고 하얀 허리가 위로 탁탁 튕겨 오르더니 이내 허리를 비틀며 몸을 정신없이 떨기 시작했다.

“아, 아윽, 아저씨, 아, 나 어떡해……, 흐윽!”

먼저 절정에 도달한 것은 우연이었다. 우연은 눈을 뒤집고 격렬하게 몸부림쳤다. 얼굴로 열이 확확 몰리고, 손발이 버르적거린다.

“아저씨, 난, 몰라, 너무, 너무 좋아, 몸이 마, 막, 찢어질 거 같아.”

“우, 우연아, 괜찮아. 진정해, 괜찮아.”

“아저씨, 진정, 하지 마요. 나 너무 좋아, 계속해요. 거, 거기를, 그 속을, 불로 지지는 거 같아. 아, 그런데 좋아, 어떡해.”

절정에 다다른 우연은 저도 모르게 쇳소리를 지르며 아저씨에게 매달렸다. 자극이 너무 커졌는데, 아저씨가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는데, 여전히 밑을 찢어 버릴 것처럼 치밀고 들어온다. 쾌감이 너무 지독해서 죽을 것 같다. 불에 달군 거대한 인두가 클리토리스와 속살을 지져 대는 것 같은데, 그게 쾌감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눈물이 터져 줄줄 흘러내린다. 고개를 확확 돌렸다. 한 번의 절정이 지나가 민감해진 성감대에 계속 가해지는 자극은 황홀한 것을 넘어 끔찍했다.

하지만 아저씨는 멈추지 않는다. 지금의 아저씨는 우연이 알고 있는 점잖고 배려심 많은 그 사람이 아니다. 그는 미개하고 야만적이다. 짐승 같으며 무지막지하다. 아저씨가 그간 깊이깊이 숨겨 두었던 또 다른 한이원은 아마 가장 짐승에 가까운 인종일 것이다.

우연은 버텼다. 이 감각의 끝이 어디인지, 클리토리스와 연결된 아랫배, 아니 하반신 전체를 통째로 갈아 버리는 것 같은 느낌을 버티고 버틴다.

그래, 맞다. 아저씨에게 원했던 게 바로 이런 것이다. 정신이 나갈 정도의 섹스, 죽을 때까지 사라지지 않을 몸과 마음의 기억을 원했다. 그것은 두 사람이 서로에게 자신을 모조리 내어 주고, 나와 너의 구분조차 무의미할 정도로 완벽하게 하나가 되고, 가장 밑바닥의 치부까지 부끄러움 없이 고스란히 드러내는 순간을 의미했다.

……바로 지금 같은.

순간 우연의 눈이 커다랗게 떠진다. 두 번째, 새로운 감각이 치밀어 오른다. 첫 번째 오르가슴 위에서 새로운 꽃이 피어나는 것처럼, 더 강렬하고 새로운 쾌감이, 더 깊고 강력한 오르가슴이 몸의 여기저기서 폭발하기 시작한다.

아저씨가 빨고 어루만지고 쥐어뜯는 곳마다 넋이 나갈 듯한 쾌감이 폭발한다. 온몸이 클리토리스 점막 같다. 쩍, 퍽퍽, 퍽. 벼락같은 쾌감이 다시 하반신을 관통한다. 쾌감에 몸이 녹아 버린다. 쇳물에 몸이 녹아 버리듯, 이 미친 쾌감은 온몸을 절절 끓이다가 흐물흐물 녹여 버린다. 후우, 후, 후우우. 이제는 아저씨의 숨결이 닿기만 해도, 몸은 좋아서 미쳐 날뛰었다.

흐으, 흑, 흐으으.

우연은 울기 시작했다. 몸이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이제 아저씨의 몸을 밀어내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 자신의 하반신은, 자신의 팔다리는 의지를 가진 생물처럼 아저씨를 옭아매고, 다리 사이로 이어진 아저씨의 몸을 놓아주지 않으려고 발악을 한다. 아니, 그의 성기를 아예 자신의 살 속에서 녹여서 완전히 집어삼키기를 원하는 것 같다. 우연은 자신의 속살이 이렇게 멋대로 꿈틀거릴 수 있다는 것을 몰랐다. 흣, 흐으, 하아. 아저씨의 신음도 점점 거칠고 높아진다.

……아저씨, 나 그냥 지금 섹스하다가 죽었으면 좋겠어요.

……하느님, 나 좀 이대로 죽게 해 주세요.

하지만 우연은, 이 소원마저 이기적이라는 것을 알고, 짧은 기도를 멈췄다. 생각도 멈췄다. 머나먼 곳에서 몰려오던 극심한 쾌감의 해일이 코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콰르르, 쏴아아.

“하아아악!”

우연은 이원의 목을 끌어안은 채 비명을 질렀다. 이 미친 쾌감을 감당할 수 없어서, 입을 크게 벌리고 목이 찢어지도록 고함을 질러 댔다. 극한의 절정은 영원처럼 길게 이어졌다.

이원은 우연의 격렬한 꿈틀거림이 진정될 즈음 사정했다. 절정의 여운에 몸부림치던 우연의 몸이, 그 뜨거운 속살이 이원의 성기를 물고 격렬하게 파도쳤다. 순간 고환 안쪽에서 뭉쳐 있던 묵직한 덩어리가 터져 나갔다.

퍽, 퍽, 퍽, 픽, 픽.

사정은 발작과 비슷했다. 이원은 우연의 가장 깊은 곳까지 몸을 박아 넣은 후 허리를 잘게 쳐올렸다. 요도 끝에서 치솟은 체액은 그녀의 몸속으로 깊이깊이 스며들었다. 고통과 쾌감이 거대한 상승 작용을 일으켰다. 극도로 팽창한 몸의 감각은, 폭포처럼 쏟아지는 쾌락에 휩쓸려 다른 일체의 감각을 잊었다.

“후읍, 후으…… 읍.”

사정의 순간은 길었다. 이원은 우연의 위에 엎드린 채 허벅지를 떨며 정액을 쏟아 냈다. 음낭 안쪽 깊은 곳에서 생소한 근육이 크게 진동하는 것이 느껴진다. 이제 온몸의 근육과 피부는 격심한 쾌감 한 가지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아아, 아아, 하아아. 아아아.

두 사람의 비명이 교차하듯 한참 엇갈렸다. 속살이 뭉개질 듯 단단히 맞물린 틈으로 미끌거리는 점액이 이상한 소리를 내며 밀려 나왔다. 쩍, 쩍, 쩌억, 쯥. 그 불결한 소리마저 음탕하고 야하게 들렸다.

이원은 온몸의 피와 체액이 전부 정액으로 변했으면 좋겠다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했다. 한 번의 정사로 온몸이 말라붙어 죽어도, 이 사정의 순간이 몇 시간이고, 몇 날이고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정이 끝난 후에도, 우연의 몸은 이원을 놓아주지 않아, 이원은 그 안에서 오래오래 버텼다. 손에 쥐어진 희고 동그란 살덩어리 한가운데, 젖꼭지가 뾰족하게 솟는다. 이원은 허리를 숙여 그것을 입에 물고 자근자근 깨물고 빨고 핥았다.

“아저씨, 하, 아저씨, 좋아, 아저씨, 좋아요, 너무 좋아.”

격렬하게 터질 듯 내달리던 호흡이 천천히 가라앉는다. 하지만 몸에 남은 쾌감의 흔적은 길게 꼬리를 끌었다. 번질번질한 체액을 뒤집어쓴 검붉은 살덩어리가 우연의 몸 밖으로 주르르 끌려 나와 차가운 공기 중에 맥없이 늘어졌을 때도, 팔다리의 근육은 계속 경련했다.

이원은 우연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꼭 감은 눈이 파들파들 떨리고 있었지만, 입가에는 뭐라고 말할 수 없는 흡족한 미소가 배어 있었다.

그래. 네가 아까 원했던 게 이런 거였구나.

……이런 거였구나.

머릿속이 온통 희고, 희다.

두 번째 정사가 시작된 건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였다.

우연이 숨만 할딱이며 죽은 듯이 늘어져 있는 동안, 이원은 물수건을 들고 와 우연의 다리를 벌리고 자신이 질러 놓은 정액을 수습했다. 아랫배와 허벅지, 엉덩이까지, 계란을 대여섯 개쯤 깨서 흰자만 모아 문질러 놓은 것 같았다.

끈적끈적한 점액에 젖은 검은 수풀은 더 반짝반짝 선명해졌고, 작고 도톰한 두 개의 둔덕 사이에 숨은 클리토리스는 그 핵이 바짝 부어올라 아까보다 훨씬 붉고 싱싱하게 야해 보였다. 세상에 존재하는 그 무엇과도 닮지 않은 이 작은 살덩이는, 볼 때마다 이원을 미치게 만들었다.

그것을 입에 넣고 장난처럼 몇 번 애무하는 동안, 우연 대신 이원이 먼저 발기했다.

이원은 자신의 성욕이 정상적인 범주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매일매일 음란한 욕구가 멈추지 않으며, 일단 풀어놓으면 한두 번으로 끝난 적이 없다. 그의 욕구는 아귀처럼 만족이 없었고, 주인을 만난 지금은 거칠 것도 없었다. 게다가 이원은 불응기조차 몹시 짧았다.

“히익, 아저씨……, 잠깐.”

위에서 기운 없이 웅얼대는 소리가 들린다. 이원은 클리토리스를 입에 문 채 물었다.

“힘들어? 하지 말까?”

우연이 잠시 망설인다. 힘들기는 한 것 같았다. 힘들다고 하면 참을 수 있을지 의문스럽기도 했지만 차마 억지로 할 수는 없을 듯했다. 하지만 의외의 대답이 흘러나왔다.

“더 해 줘요. 밤새도록 해요. 하고 싶은 대로 다 해 봐요. 난 아저씨랑 섹스하다가 이대로 죽었으면 좋겠어.”

우연의 대답은, 항상 예상과 상식을 뛰어넘었다.

이원은 몸을 일으켜 우연의 다리 사이에 허리를 바짝 댔다. 다시 단단하게 발기한 그것을 검은 수풀에 문지르자 밭게 숨을 들이쉬는 소리가 난다.

“아저씨 벌써 이렇게 됐어요?”

어스름한 어둠 속에서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소스라치는 것이 예쁘다. 다리를 완전히 벌리고 성기를 밑에 대자, 외음부가 저절로 벌어지며 아까보다 통통 부어오른 클리토리스가 도도하게 머리를 내민다. 그 아래로 이어지는 은밀한 장소가 기대에 찬 듯 꼼틀꼼틀 움직인다. 케이크를 물고 오물대는 작고 붉은 입술을 보는 것 같다. 다시 머리가 핑, 돈다.

퍽!

이원은 숨을 크게 들이쉬고 허리를 힘껏 쳐올렸다. 통통하게 부푼 음핵과 연결된 아랫입술이 커다랗게 벌어지며 이원의 음경을 감싸 확 끌어당긴다. 우연의 손목만큼이나 두껍게 팽창한 그것은 우연의 아랫배가 꿈틀거릴 정도로 깊이 들어가 박힌다. 가는 허리가 팡, 튀어 오른다.

“아, 아저씨! 아읏! 아아!”

비명이 높아진다. 하지만 아파하는 것은 아니었다. 우연의 몸은 첫 번째 섹스로 충분히 열려 있었고 한껏 달구어져 있었다. 이원은 성기를 다시 박았다. 거대한 해머로 후려치듯, 단단히 박혀 다시는 빠져나오지 못할 정도로 힘껏, 깊이, 끝까지 박아 넣었다. 보면 볼수록 애가 타서 미칠 것 같고,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늪에 빠지는 것 같다.

우연이 팔과 머리를 격렬하게 흔들며 몸부림을 친다. 이 작은 몸이 부서져 나갈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우연은 도리어 그것을 강렬히 원했다. 그녀는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자극까지 원했고, 그러다가 죽을지 모른다 해도, 그 극한의 쾌감을 남김없이 맛보고 죽어 버리는 걸 택할 것 같았다. 그런 것마저 정말로 그녀다웠다.

“하으으! 아저, 아저씨! 하으으!”

우연은 이원이 미친 듯이 허릿짓을 하는 동안 두 번의 절정을 새로 겪었다.

이원은 우연의 오르가슴을 이제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의 성기를 집어삼킨 따뜻하고 말랑말랑한 속살이 노래하듯 리듬을 타며 꿈틀대기 시작한다. 그때부터 질 안쪽의 근육이 파도가 물결치는 것처럼 크게 일렁대고, 큰북처럼 쿵쿵쿵쿵 무겁게 두들기고, 틈틈이 탬버린처럼 자르르자르르 떨며 간질였다.

이원은 하초에 그런 자극이 밀려올 때마다 저도 모르게 짐승처럼 신음했다. 미끌미끌하게 젖은 점막이 극도로 예민해진 음경을 짓누르듯 감싸 안고 꼼틀꼼틀 조물조물하며 안으로 끌어당기면, 아무리 참으려고 해도, 정신이 그대로 나가 버린다. 촉촉하고 따뜻하면서도 자신을 너무 기뻐하는 듯한 그 감촉이 지나치게 황홀해서, 다시는 이런 느낌을 겪을 수 없을 거라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이원은 이를 악물고 사정을 최대한 미루면서 우연이 겪고 있는 그 황홀한 오르가슴의 감각을 오래오래 함께 누렸다. 사정을 몇 번이나 조정하고 버티는 동안, 우연에게는 다음번 오르가슴이 휩쓸고 지나갔다. 희고 가는 몸은 땀으로 흠뻑 젖었고, 절정에 치달을 때마다 붉은 꽃 같은 반점이 목과 가슴에 화사하게 피어올랐다. 그 꽃밭 위로, 이원의 몸에서 흘러내린 땀이 함빡 스며들었다.

우연에게 세 번째 오르가슴이 지나갈 때, 그 작고 하얀 얼굴은 만개한 철쭉처럼 붉었고, 그 속살은 이원의 몸을 한껏 물고 흐느끼듯 경련했다. 이원은 이제 이 끔찍한 쾌감을 도저히 버텨 낼 수 없었다.

“흐읍, 으으읏!”

그는 우연의 몸 위에 무너진 채, 오랫동안, 격렬하게 사정했다.

두 사람은 땀과 체액으로 온통 범벅이 된 채 힘껏 끌어안았다. 말이 나오지 않았다. 입술이 떨어지지도 않았고 머리도 텅 비어, 도무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알 수 없었다.

우연이 울고 있는 것이 보인다. 왜 우는지 알 수 없었지만, 묻지 않았다. 자신의 눈꼬리를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의 이유도 알 수 없어서, 우연에게도 물을 수 없었다.

나는 한때, 오만했다. 그래서 너 없이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내가 이 세상에서, 너 말고 대체 어떤 사람에게 이런 희락을 얻을 수 있으며, 너 말고 어떤 사람에게 나의 이런 모습을 보일 수 있겠어.

이 재앙 같은 감정은 인간의 의지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건 신에게서 강제적으로 주어진 게 틀림없다. 애초부터 이렇게 예정되어 있던 게 아니고서야, 이럴 수는 없을 것이다. 이 감정이 재앙이든 축복이든, 거절할 수 없는 운명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했다.

“우연아, 사랑해.”

이원은 목쉰 소리로 속삭였다.

흐, 흐흐, 우연은 고백을 듣고 웃었다. 웃는 모습은 우는 것처럼 보였고, 눈물은 여전히 그치지 않았다. 이원은 작은 어깨를 꼭 끌어안고 입을 맞추며 속삭였다.

“……우연아, 우리 결혼하자.”

<4권에서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