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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화 (4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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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화

    치료는 바로 시작됐다.

    나는 아미트 신녀를 따라 신성수 안으로 들어갔다.

    신녀들이 기도문을 외우는 소리가 들리자 나는 두 눈을 감고 내 몸에 집중했다.

    따뜻한 기운이 몸 안을 서서히 채우는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딱 거기까지였다.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누군가 어깨를 흔드는 감각에 깨나 보니 이미 한 시간이 지나 있었고, 치료는 다 마친 상태였다.

    “몸은 좀 어떠신가요? 어디 불편한 데는 없으신가요? 괜찮으신가요?”

    “네,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신녀님들.”

    조금은 멍한 상태로 신녀들의 부축을 받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촤르르, 신성수가 내 몸을 타고 흘러내렸다.

    “대신관님께서는 참관하셨나요?”

    “네, 치료 중에 잠깐 들어오셨다가 나가셨습니다.”

    내 물음에 신녀 아미트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다음 달에는 윌트슨 공작성으로 방문해 주시나요?”

    “네, 그렇습니다. 다음 달 치료는 윌트슨 공작성에서 진행됩니다.”

    “그럼 다음 달에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신녀들에게 공손히 인사하고는 치료실을 나섰다.

    한 달 뒤, 어쩌면 제크론과 베로니카가 만나게 될 것을 생각하니 두근두근, 심장이 작게 떨려 왔다.

    *   *   *

    윌트슨 공작 부인의 신성수 치료가 이뤄지는 사이, 공작성의 주치의 매튜는 지난번처럼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고 있지 않았다.

    오늘은 특별히 대신전의 약초 재배 온실을 견학했다.

    윌트슨 공작의 추천서와 함께 왕립 아카데미 의학부 학장의 추천서까지 제출해서 겨우 얻어 낸 30분짜리 속성 견학 허가였다.

    대신전의 약초 온실은 거대했다.

    이 온실에서는 다양한 약의 조제에 사용되는 약초 수십 가지를 재배하고 있었는데, 이곳에서 재배된 약초는 최고급이라 그만큼 약효가 좋았고, 그래서 비싼 값에 거래됐다.

    특히 아르젠토 찻잎처럼 재배가 까다롭고 그 사용처가 민감한 약초의 경우는 대부분 대신전의 온실에서 재배되고 있었다.

    견학을 담당하는 신녀의 뒤를 잠자코 따르던 매튜가 불쑥 입을 열었다.

    “온실에서 작업하는 인부들은 신관이나 신녀들이 아니군요?”

    “그렇습니다. 신관과 신녀들은 대신전의 업무만으로도 일손이 빠듯하지요. 약초를 재배하는 일은 일반인 인부들을 고용해서 맡기고 있습니다.”

    “흐음…. 그렇군요.”

    매튜의 미간에 잡힌 주름에서 의구심을 읽었던 것일까, 신녀가 부연 설명을 이어 갔다.

    “확실한 신원 정보를 바탕으로 인부들을 고용하고 있으며, 출퇴근 시 소지품 검사를 철저히 하면서 관리하고 있답니다.”

    “대략 몇 명 정도의 인부를 고용 중입니까?”

    “밤낮 2교대로 작업하고 있고, 100명 남짓의 인부들을 고용하고 있습니다.”

    “100명이라… 그렇군요.”

    매튜의 질문은 거기까지였다.

    너무 많은 질문을 했다가는 괜한 오해를 살 것 같았기에 참아야 했다.

    민감한 질문들은 어차피 물어도 제대로 된 대답을 받아 내기 어려웠기도 했고.

    “자, 어서 가시지요, 신녀님.”

    “네. 이쪽으로 오세요.”

    견학 가능 시간 30분 안에 많은 곳을 둘러보고 싶은 마음에 매튜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   *   *

    대신관 크레이그 셰넌은 윌트슨 공작 부인의 신성수 치료를 참관한 뒤 바로 도서관으로 향했다.

    ‘정확한 확인이 필요해.’

    온화한 이미지의 대신관은 무표정일 때는 섬뜩하리만치 무서운 인상이 됐는데, 지금이 딱 그런 상태였다.

    신전의 도서관은 위벨교와 관련된 서적들은 물론이고, 종교학, 신학, 철학, 그리고 식물학까지 다양한 주제의 서적들을 보관하고 있었다.

    대신관은 고대 위벨교의 탄생과 역사와 관련된 책들을 살펴봤다.

    ‘분명 이 책들 중 하나에서 봤단 말이지.’

    책장을 넘기는 그의 손길이 점점 빨라졌다.

    방금 전 신성수 치료실에서 봤던 장면은 무척이나 아름답고 기이했으며 분명 책 속의 그림에서 본 적 있는 장면이었다.

    신성의 빛 구슬들은 환자의 몸으로 흘러 들어간 후 그 빛을 잃는 것이 정상이었다.

    환자의 몸을 치유하는 데 신성을 사용했으니 빛을 잃는 이치였다.

    ‘…빛이 사라지지 않았어. 아니, 오히려 더 밝게 빛났지.’

    그런데 윌트슨 공작 부인의 몸속으로 흘러 들어간 빛 구슬들은 사라지지 않고 더 강한 빛을 발했다.

    속세를 벗어나 신관으로 살아온 세월이 자그마치 30년이 넘었으나, 오늘의 그 장면을 현실에서 목격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오로지 책에서만 봤을 뿐.

    빨리 찾아야 했다.

    그래서 명확히 확인해야 했다.

    책을 뒤적인 지 한 시간이 지났을 때 드디어 대신관의 손이 멈춰 섰다.

    그의 시선이 한 그림에 고정됐다.

    윌트슨 공작 부인의 몸에서 봤던 것과 같은 현상이 묘사된 그림이었다.

    대신관은 삽화 아래 길게 이어진 설명을 읽기 시작했다.

    …태초의 성녀는 신전에 소속된 신녀가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이 세계에 속한 사람도 아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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