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8화. 우애
로레인은 북쪽 지역을 조사하며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사고가 일어난 마을의 중심에서 움푹 파인 거대한 마력의 흔적에 그가 혀를 낮게 찼다.
그리곤 그 마력을 찾기 위해 땅에 한 손을 올렸다.
“.......”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던지라 그 흔적이 말끔히 사라졌음에 로레인이 미간이 좁아졌다.
천천히 몸을 일으킨 로레인이 왈칵 좁아지는 미간을 피며 이내 제 통신구를 꺼냈다.
테오에게 보고하기 위함이었다.
파앗!!
“흠?”
그러나 테오에게 통신을 걸기도 전에 반짝이는 구의 모습에 로레인의 눈에 의문이 스쳤다.
통신구에 보이는 좌표가 대공저라는 것을 인지하자 세린이나 혹은 제이에게로부터 온 통신인 것을 쉽게 유추할 수 있었다.
“세린.”
[제이 스페라도입니다.]
목소리는 단번에 차가워졌다.
“무슨 일이라도 있나?”
[수도에서 마법사들의 납치미수 사건이 생겼습니다.]
“!!!”
[조사하시던 그 사건과 동일합니다. 수도의 공터 중심에 마법이 발사되었고 그 공간이 움푹 파였다고 합니다.]
“피해는.”
[모두 무사합니다. 단지...]
“단지?”
로레인의 미간이 좁아졌다.
그가 의문을 품을 무렵 제이의 목소리가 스산하게 울려 퍼졌다.
[에드가 중상이었습니다.]
“!!!!”
[민간인들을 보호하려다 무리를 하였는지 내상을 입었습니다.]
로레인의 입매가 굳어졌으나 그의 놀람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방금 세린이 현장으로 갔습니다. 저도 곧 따라갈 예정이오나 전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나도 곧 가지.”
로레인은 통신을 끊은 후 빠르게 그 자리에서 워프했다.
제일 우선시한 목표는 대공저, 바로 에드의 옆이었다.
*
로레인은 공간을 이동시키자마자 보이는 에드의 모습에 가슴을 철렁였다.
방금 막 치료가 끝났던 건지 피가 잔뜩 묻은 옷을 입어 그 놀람은 배가 되었다.
레기는 갑자기 등장한 로레인의 모습에 에드의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주던 동작 그대로 몸을 멈췄다.
앤젤라도 놀라기는 매한가지였던지라 큰 눈을 더욱 크게 뜨며 그를 불렀다.
“삼촌...?”
“레기...! 에드 상태는?”
“어머니께서 방금 치료하시고 가셨습니다. 이상은 없는 것 같아요.”
“하...”
레기의 말에 로레인이 다급히 에드의 배 위로 손을 올렸다.
말끔하게 치료된 그의 몸 내부의 모습에 안도의 한숨을 여러 번 내뱉던 로레인이 이내 제 미간을 꾹 누르며 말했다.
“다행이구나...”
“.... 죄송합니다. 빨리 연락을 드렸어야 했는데...”
“너희들끼리 조사를 하다가 그런 거니.”
“네...”
“잘 했어. 수고 많았어.”
“!!”
“너희 덕분에 더 큰 피해가 없어질 것 같구나.”
로레인은 그 말을 끝으로 부드럽게 레기의 머리를 흐트러트린 후 워프했다.
레기는 사라진 로레인의 빈자리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이내 힘없이 의자에 앉았다.
“오빠?!”
“후....”
“오빠... 괜찮아?”
“응. 괜찮아.”
무언가 물이 밀려오듯 안도감이 차오른 탓에 생긴 일이었다.
레기는 두 눈을 꾹 감고 이내 에드의 얼굴을 다시 닦아내기 시작했다.
빨리 그가 눈을 떴으면 했다.
*
세린은 빈 공터에 도착하자마자 엉망진창이 된 주변을 훑고는 빠르게 그 중앙에 남아있는 한 사람의 마력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사건이 일어난 지 아직 오래 지나지 않아서 그 인간의 흔적을 찾기란 생각보다 쉬웠다.
그리고...
세린의 눈이 가늘어지며 이내 땅에 흘려진 적은 양의 핏물을 응시했다.
피가 존재한다면 그 사람을 제게로 강제소환을 시킬 수 있기도 했고 말이다.
세린의 손이 피를 향해 뻗어졌고 이내 동시에 로레인도 그녀의 곁으로 도착했다.
“세린.”
“오빠, 왔어요?”
“지금 그 피는...”
“에드의 피는 아닌 것 같아요.”
“내가 할 테니 넌 에드를 살펴보는 게 어떻겠니.”
“오빠...”
세린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나직이 말했다.
“한 번 도 에드가 이렇게 다친 적이 없었어요.”
“... 세린.”
“그 아이를 그렇게 다치게 만든 사람을... 내가 어떻게 지켜보기만 해요?”
“세린.”
“내 아이를 그렇게 만든 사람을 내가 어떻게 그냥 내버려둬요?”
“......”
“난 못해요. 지금 꾹 참고 있지만... 나 정말 화가 나요.”
세린의 연두색 눈동자에 차오른 그 분노와 깊은 상처가 로레인의 가슴을 무너트렸다.
“오빠는 잔당을 부탁해요. 그 사람은 내가 잡을게요.”
“..... 그래.”
로레인의 고개가 한 차례 끄덕여진 후 세린은 그와 함께 그 자리에서 그대로 사라졌다.
*
에드의 손을 잡아준 채 앤젤라는 깊이 잠이 들었다.
레기는 그런 에드의 침대 기둥에 등을 기대어 팔짱을 끼며 저물어진 어두운 밤하늘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하늘은 어두워지고 있으나 세린과 제이, 로레인은 돌아오지 않았다.
레기의 눈에 걱정이 스며들 무렵 거친 목소리를 내뱉으며 누군가 그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형...?”
“...!!! 에드!”
레기가 황급히 시선을 내려 에드를 바라보았다.
달빛을 받은 연두색 눈동자가 온기를 품고 떠져 있었음에 레기의 가슴이 안도로 쿵 떨어졌다.
에드는 놀란 얼굴이 명백한 레기를 향해 힘없이 웃어보였다.
“표정이 그게 뭐야?”
“너... 너 이 미련한!”
“뭐야... 내가 눈 뜨자마자 잔소리야?”
“누가 그딴 미련한 짓을 하라고 했지! 진짜 죽고 싶어서 눈이 돌아간 거냐!”
“혀엉...”
레기는 거친 숨을 토해내며 쌓아놓은 제 두려운 마음을 모두 쏟아 부었다.
에드는 그런 레기를 바라보다가 이내 나직이 말했다.
“미안해.”
“.....”
“내가 잘못했어.”
“에드.”
“형의 말이 맞아. 내가 무리한 짓을 한 거야.”
“에드!”
“하지만... 형이 위험한 것보다야 내가 위험한 게 나았어.”
레기의 눈이 딱딱하게 굳었다.
에드는 망설임 없이 그의 푸른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삼촌의 단추가 내게 있었어. 형은 그게 없었으니까... 그 마력에 맞았다가는 온 몸이 찢겨졌을 거야.”
“에드!”
“그딴 일을 내가 어떻게 지켜봐?”
“.....”
레기의 눈이 천천히 가늘어지자 에드는 이내 환히 웃음을 터트렸다.
“형도 똑같은 상황이었으면 나랑 똑같이 행동했을 거면서...”
“.......”
“앤젤라도 나 간호해주느라 피곤했나보네.”
에드의 시선이 천천히 제 손을 꼭 잡은 앤젤라를 향했다.
앤젤라는 울었던 건지 퉁퉁 부은 눈을 하고 에드의 손을 꾹 잡고 잠이 들어있었다.
분홍빛 머리카락이 그녀의 얼굴 위로 넘실거리자 에드는 힘이 들어가지 않는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를 정돈해주었다.
“들어가서 자지...”
“네 걱정에 밥도 안 먹고 간호하다가 지금 막 잠든 거다.”
“미련하기는....”
“네가 할 말은 아니지.”
“형은 쪼잔해.”
“..... 그런 말은 도대체 어디서 배워온 거지?”
‘난 널 그렇게 키운 적 없는데?’ 라는 기색의 눈으로 레기가 에드를 바라보자 에드는 키득키득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기사단들이 다 저런 말 많이 쓰던데?”
“나쁜 것은 금방 배우는구나. 넌 애도 아닌데 말이지.”
“형은 날 애로 보잖아? 동갑이면서.”
“네가 손이 많이 가는 녀석이잖아.”
“흥, 몇 초 일찍 태어난 게 대수람?”
“허....”
에드의 태평스런 말에 레기가 말을 잃었다.
그러다 결국 피식 웃음을 흘렸고 이내 다정히 말했다.
“또 한 번 그런 미련한 짓 했다가는 나를 먼저 거쳐야 할 거야.”
“그, 그건 좀 무서운데?”
“그 다음은 아버지를 거쳐야 할 것이고.”
“으에...”
“왜인지는 잘 알잖아.”
레기의 작은 미소가 깊어졌다.
“어머니와 앤젤라를 슬프게 만들면 우리 가족 반응이 어떠했는지.”
“으.... 잘 알지...”
그래, 너무도 잘 알아서 문제였다.
제 어머니의 일에 관해선 누구보다 냉정한 제 아버지가 저절로 떠올랐다.
어릴 적, 실수로 어머니가 아끼던 접시를 깨트린 날.
에드의 손에 들린 깨진 접시에 세린의 눈에 단번에 눈물이 고였다.
‘테, 테오 오빠가 선물해준 접시가아....’
어린 마음에 접시를 들고 어쩔 줄 몰라 했던 에드는 눈물을 흘리는 제 어머니의 모습에 얼굴을 딱딱하게 굳혔다.
그리고 그런 세린을 보며 함께 창백해진 제이가 이내 착 가라앉은 푸른 눈으로 에드를 응시했었다.
‘..... 에드.’
‘으엑!!’
그 나직한 부름에 얼마나 기겁을 했는지 그때 당시에는 이불보에 열 번을 넘게 지도를 그렸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물론 그랬다는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 생각이 끝나자 에드는 이내 제 머리를 털어버리며 앤젤라의 손을 꼭 잡고 두 눈을 감았다.
“갑자기 피곤해졌어...”
“갑자기?”
“옛날 아버지 생각을 했더니 아직도 오금이 저리는 것 같아...”
“바보 같기는...”
“바보라고 불려도 할 말은 없음.”
레기는 화사한 얼굴에 근사한 미소를 담으며 이내 에드의 어깨까지 이불을 올려주었다.
“좀 더 자도록 해. 아직 체력은 회복하려면 멀은 것 같으니까.”
“그럼 앤젤라 좀 옮겨줘. 요 녀석 이러고 자다가는 아침에 분명 목이 안돌아갈 것 같아.”
“그래.”
레기가 에드의 말에 수긍하며 앤젤라를 향해 몸을 움직였다.
에드는 그런 레기와 앤젤라를 바라보다가 이내 나직이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언제 우린 이렇게 커버린 걸까?”
“... 오늘따라 뜬금없는 말을 많이 하는구나.”
“하지만 정말 신기해졌어.”
“흠...”
“앤젤라는 특히 우리보다 한참 작고 여린 녀석이었잖아.”
“그렇지...”
레기의 눈이 새삼스럽게 앤젤라를 향했다.
어느 새, 다른 영애들과 비교해도 소용이 없을 정도로 크고 아름다워진 제 여동생이 정말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레기도 에드도 멍하니 잠이 들어버린 앤젤라를 바라보다가 이내 동시에 웃음을 흘렸다.
“귀여워.”
“같은 마음이다.”
“플로리아도 보고 싶어지네.”
“잠이나 자라. 내일이면 또 볼 수 있을 테니까.”
“잔소리는...”
레기의 한소리에 에드가 웃음을 흘리며 두 눈을 감았다.
레기는 그런 에드가 깊이 잠이 들기 전까지 그의 옆을 지키다가 이내 일정한 숨소리가 들리자마자 앤젤라를 안아들고 방 밖을 나섰다.
쌍둥이들의 우애는 하루하루가 다르게 깊어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