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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딸로 태어났습니다-185화 (184/218)

185화. 당신의 품에서

에드윅은 제 가슴에 흐트러지는 푸른 머리카락을 바라보다가 이내 자신을 보며 환하게 웃고 있는... 너무도 사랑스런 여인을 눈에 담았다.

그의 눈이 빳빳하게 굳었다.

“에드윅...!!”

이 제국에서, 이 세상에서 자신을 그리 부를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에드윅...!”

가슴이 벅차올랐는지 제 이름만 낭창하는 여인의 싱그러운 연두색 눈동자에 눈물이 고였다.

에드윅의 가슴이 쿵 떨어질 만큼 서글픈 눈물이었다.

에드윅은 입술을 달싹이다가 이내 아주 천천히 제 인생에서 금지시킨 단어를 내뱉었다.

“..... 아리엘....?”

금기를 부쉈다.

그러자 물이 밀려오듯 지독한 그리움에 휩싸였다.

그의 나직한 부름에 여인이 그 누구보다 환히 웃은 탓이었다.

눈부셨다.

가슴도 시려왔다.

꿈에서조차 허락받지 못했던 그리운 웃음이었다.

저 웃음을 보기 위해, 저 미소를 기억하기 위해 자신이 얼마나 과거를 되새기고 되짚어보고 기도했던가.

에드윅은 잔뜩 떨리는 한 손을 천천히 그녀의 볼에 가져갔다.

“...!!”

그리곤 입술을 꾹 깨물었다.

손바닥이 닿자마자 버릇인 것처럼 제 손바닥에 고개를 기울인 여인의 탓이었다.

“아리엘... 당신....”

“에드윅 미안해요.”

“...... 아리엘.”

“내가 너무 늦었나봐. 나 많이 기다렸어요?”

그녀의 볼에 닿은 에드윅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겹쳐 부드럽게 감싼 아리엘이 다정히 웃었다.

그녀의 볼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늦어서 미안해요...”

“........”

수많은 감정이 섞인 그 서글픈 눈물 한 방울이 에드윅의 옷을 적시자 그는 결국 두 팔을 뻗어 그녀를 제 품에 가뒀다.

와락!!

“....!!!”

돌아오지 못할 사람을 기다리고 기다리던 제 자신이 더는 한심하지 않았다.

그간의 괴로움은 이 시간을 위한 것이었다고 그리 생각하며 에드윅은 깊이 그녀의 향기를 마셨다.

제 가슴에 녹아내릴 만큼 깊이 마시고 또 마셨다.

잊지 않기 위해, 꿈이 아님을 직시하기 위해.

그녀의 어깨에 파묻은 제 고개를 들지 않았다.

아리엘은 자신을 놓칠까 무서워 꽉 안아준 손을 놓지 않는 에드윅을 행복하게 바라보았다.

그리곤 천천히 그의 등에 제 양 팔을 올려 그를 마주 안았다.

정말 그리웠던... 정말 사랑했던 이의 품은 여전히 단단했고 여전히 사랑스러웠다.

이 따뜻한 품에 안기고 싶어 얼마나 그의 곁을 서성였던가.

“아리엘....”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아리엘....”

“나도 정말 보고 싶었어요.”

아리엘은 제 어깨가 따뜻하게 적셔가는 것을 느끼며 부드럽게 눈을 감고 울며 웃었다.

늘 강한 척을 하던 이 커다란 사람이 제 품에서 울고 있었다.

한없이 작고 한없이 약한 가슴을 하고 자신을 부르며 울고 있었다.

“울지 말아요...”

“아리엘....”

“사랑해요 에드윅.”

“큭....”

“또 입술 깨물고 있죠? 그거 나쁜 버릇이라고 내가 말했잖아.”

아리엘이 천천히 그에게서 몸을 땐 후 그와 눈을 맞췄다.

그리곤 부드럽게 그의 상처가 난 입술을 쓸며 서글프게 웃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던데... 이 버릇 고쳐요.”

“..... 정말 당신인가.”

“그럼 내가 아리엘이지 누구겠어요.”

“......”

에드윅의 손이 부드럽게 아리엘의 볼을 쓸었다.

그녀의 존재를 다시 찾기라도 하듯 손길이 깃털마냥 부드럽기만 했다.

사무치게 그리웠던 사랑스런 이목구비를 쓸어보며 에드윅이 나직이 말했다.

“하나도 늙지 않았어... 당신은 여전히 아름답군.”

내 생전의 시간은 여기서 멈췄으니까요.

“난 이리 늙어버렸는데...”

그런 말 말아요.

아리엘의 손이 천천히 에드윅의 두 볼을 감쌌다.

“에드윅...”

“.... 아리엘.”

“여전히 근사해요 당신.”

“.......”

“여전히 멋지고 여전히 잘생겼네요.”

아리엘의 눈이 아름답게 휘었다.

“늙기는 개뿔, 당신 하나도 안 늙었어요.”

“.......”

그 애틋한 시선 속에서 에드윅은 부드럽게 아리엘의 허리를 감싸며 그녀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진정이 되지 않는 벅찬 가슴에 호흡마저 거칠어졌다.

아리엘은 그가 진정할 수 있도록 그의 등을 부드럽게 두드려주었고 동시에 따뜻한 그 품에서 안정을 찾아갔다.

너무도 그리웠던, 너무도 바라고 바랐던 시간이었다.

조금의 시간이 지나고 에드윅은 숙인 고개를 들며 그녀와 눈을 맞추고 물었다.

어떻게 된 것이냐고.

이게 무슨 상황인 것이냐고.

아리엘은 그런 그의 가슴에 고개를 묻으며 말했다.

자연스럽게 제 어깨와 허리를 껴안는 다정한 품에서 그간의 일들을 이야기했다.

아리엘의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그녀를 안고 있던 에드윅은 그녀의 이야기에 함께 울고 함께 웃었다.

그래, 참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를 울고, 웃게 만들 정도로 수많았던 사건들은 이제 하나의 추억이 되어 자리를 잡아갔다.

이제는 곧 그 추억마저 들여다 볼 수 없게 될 테지만 말이다.

에드윅은 부드럽게 아리엘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말했다.

“그동안... 고생 많았소.”

“..... 에드윅.”

“나한테 당신이 이 땅에 머물고 있단 걸 말하지 않은 것은 밉지만....”

“.....”

“나라도 그리 했을 테니까... 할 말이 없군.”

“에드윅...”

“그동안 고생했소.”

“......”

“애썼어.”

“...!!!”

아리엘은 시려지는 코끝과 차오르는 눈물을 참지도 못하고 그대로 흘려보냈다.

왈칵 쏟아지는 눈물을 에드윅이 함께 눈물이 고인 눈으로 울며 말했다.

“몇 번이고 말해줄 수 있소.”

“......”

“아이들을 위해서... 나를 위해서... 그동안 고생 많았어.”

“흑...”

“그리고 미안하오.”

에드윅의 눈에 눈물이 천천히 흘러내렸다.

“내가 당신의 인생을 이리 힘들게 만들 줄 알았다면... 청혼 따위 하지 않았을 테니까.”

“에드윅!!”

“내가 당신을 죽인 것이지. 내가 당신을 이렇게 만든 것이나 다름없소.”

“그런 말 하지 마요! 이건 내 선택이었지 당신 탓이 아니야!”

“..... 아리엘.”

“잘 들어요.”

아리엘의 싱그러운 눈동자가 물기를 머금고 에드윅의 붉은 눈동자를 마주했다.

선명하게 빛나는 새싹의 눈동자가 아름답게 빛났다.

“난 당신을 만나 너무 행복했어요.”

“......”

“당신을 너무 사랑해서 하루 하루가 행복에 겨웠어요.”

“.... 아리엘.”

“당신 덕분에 우리 아이들도 만날 수 있던 거예요.”

아리엘의 입가에 다정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내 행복은 당신이에요.”

“...!!!”

“당신은 날 행복하게 만들어줬어요. 그걸 알아줘요 제발.”

“아리엘...”

“사랑해요 에드윅.”

세상 그 어떤 시간도 이보다 행복할 순 없을 것이다.

아니, 그와 함께 한...‘우리’라고 불릴 수 있던 그 시간들은 모두 행복 그 이상이었다.

생각을 하면 할수록, 기억을 되짚으면 되짚을수록 행복한 시간들은 흘러넘쳤다.

그와 마음이 연결되었을 때.

결혼식을 올렸을 때.

테오와 세린, 트레일이 태어났을 때.

로레인을 맞이했을 때.

함께 하는 그 모든 순간들을 기억하던 아리엘은 이내 부드럽게 그의 가슴에 기대며 말했다.

“정말 사랑해요...”

“.... 나도 사랑하오.”

그녀의 눈물이 그의 가슴을 적셔갔다.

“시간이 이대로 멈췄으면 좋겠네요.”

앤젤라...

네 힘은 우리를 닿게 해줬어.

네가 간절히 원했던 것처럼 난 지금 사랑하는 사람의 품에서 마음껏 사랑을 하고 있어.

더는 여한이라는 것이 없을 만큼 행복해.

*

앤젤라는 로레인의 등에 업혀 기운 없이 눈을 감고 있었다.

“삼촌...”

“그래.”

“지금쯤 만났을 까요....?”

“.... 아마 만나셨을 거란다.”

“...... 그렇겠죠?”

앤젤라의 눈이 천천히 떠지며 이내 다시 흐르려는 눈물을 참았다.

너무도 서글펐다.

그녀가 행복하게 떠날 수 있음에 안도하면서도 떠나지 않았으면 하는 이중적인 제 마음에 소리 없이 눈물이 흘렀다.

“앤젤라 많이 슬프니?”

“흑... 삼촌....!”

“뚝 울지 마렴, 삼촌 마음이 아파지려고 그러네.”

“저는요...”

로레인의 등에 기대며 두 눈을 닦아낸 앤젤라가 나직이 말했다.

“언니가 너무너무 좋았어요...”

“그랬구나.”

“너무 사랑했어요.... 흑..”

“그래그래.”

“그러니까 언니가... 행복했으면 해서... 행복하게 떠났으면 해서.... 그래서 열심히 공부하고 훈련했어요.”

로레인의 입가가 슬프게 휘었다.

다가온 이별에 그도 앤젤라 만큼이나 슬펐으나 한 편으로는 안심했다.

두 분의 만남으로 인해 떠나는 아리엘의 가슴은 적어도 행복으로 가득 찰 테니까...

“앤젤라, 삼촌이 장담할게.”

“..... 흑”

“어머니는 행복하게 떠나실 거야.”

“흐어어어엉!”

“정말 행복하게 가실 거야.”

그거면 된 거야.

로레인의 볼을 타고 한 줄기의 눈물이 흘렀다.

*

짙은 노을은 저물어 버린 지 오래였다.

에드윅은 여전히 아리엘의 허리를 감싸 제 품에서 놓아주지 않고 있었고 아리엘 또한 에드윅의 가슴에 기대어 어두운 하늘을 바라보며 그에게 안겨있었다.

짙은 어둠을 뚫고 나오기 시작한 작은 빛들을 보니 곧이어 해가 뜰 것 같았다.

“...... 에드윅.”

“..... 아리엘.”

“날 만나서 행복했어요?”

아리엘의 눈이 천천히 에드윅을 담았다.

에드윅은 그런 아리엘의 볼을 부드럽게 쓸며 말했다.

“행복하다는 표현도 부족할 만큼.”

“날 얼마나 사랑했어요?”

“내 인생과 이 제국을 모두 당신에게 쥐여 줄 수 있을 만큼.”

“바보 같네요...”

“살아가는 데 똑똑할 필요가 있나. 난 그대만 좋다면 바보로 살아가도 좋다.”

“..... 정말.”

아리엘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아리엘의 손가락 끝이 천천히 하얀 빛이 되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산 너머로 뜨는 밝은 태양의 빛이 아리엘과 에드윅을 부드럽게 비췄다.

“느긋하게 와요, 서둘러 왔다간 다신 얼굴도 안 볼 거니까.”

“무서워서라도 천천히 가지.”

아리엘의 눈에서 한 줄기의 눈물이 흘렀고 동시에 그녀의 볼을 감싼 에드윅의 입술이 그녀의 입술과 마주 닿았다.

마지막이었다.

사랑하는 이 순간이 영원하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하나의 빛이 되어 흩어져가는 아리엘은 천천히 입술을 떼며 그를 향해 다정히 말했다.

“사랑해요.”

에드윅은 그런 아리엘을 부드럽게 끌어안으며 대답했다.

“나도 사랑해.”

그 짧은 대답에 담긴 짙은 사랑에 아리엘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담겼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 눈부신 빛이 되어 그의 품에서 아름답게 흩어졌다.

당신의 품에서 떠날 수 있음이 그리도 행복할 수 없었다.

‘사랑해요’

흔적도 없이 사라진 그녀의 빈자리를 바라보던 에드윅의 등이 애처롭게 떨려왔다.

해가 완벽히 뜬 후에도 그는 그 서글픈 등을 곧게 세울 수 없었다.

아리엘은 그렇게 행복한 모습으로 신의 품에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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