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화. 사랑하는 사람에게로
로레인과 앤젤라에게 태초의 마력을 휘두르는 로라의 모습을 육안으로 확인을 하자마자 아리엘의 눈에서 망설임이 사라졌다.
그저 그들을 지켜야 한다는 본능과도 같은 마음으로 발을 내딛었고 눈부시게 환한 빛을 온 몸으로 받아냈다.
강한 빛의 충돌로 시야가 완전히 흐려졌다가 천천히 평온을 되찾았지만 그 평온은 오래 가지 못했다.
상황은 간결했다.
태초의 마력의 소진으로 기절한 로라.
자신을 향해 빠르게 달려오며 울부짖는 앤젤라.
그래, 너무도 간결했다.
“언니!!!”
‘앤젤라...’ 자신을 애타게 부르는 앤젤라를 멍하니 바라보던 아리엘은 이내 제 두 손을 펼쳐 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작은 빛의 결정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는 제 손의 모습에 잠시 생각도 행동도 모두 멈추었다.
자신은 떠나고 있었다.
이 세계에서, 앤젤라에게서, 가족들에게서.
위험에 빠진 앤젤라와 로레인을 지키기 위한 선택의 결과는 이것이었다.
아리엘의 눈이 안정을 되찾았고 이내 잔잔해져갔다.
새삼스럽게 왜 그래.
늘 준비했던 일이잖아.
진정해, 아리엘.
아리엘은 스스로를 진정시키며 천천히 앤젤라를 눈에 담았다.
조금이라도 더 바라봐야 마음이 놓일 것 같았다.
앤젤라는 다급히 아리엘의 앞에 서서 눈물을 쏟아냈다.
“흐윽!! 언니...! 어, 어떻게... 이걸 멈춰야...!!”
두 발을 동동 구르며 사라져가는 아리엘의 손을 잡지도 못하던 앤젤라는 온 몸의 수분을 눈물로 흘려보내려는 듯 애타게 울었다.
아리엘의 눈이 곱게 휘어졌다.
그녀는 부드럽게 손을 움직여 앤젤라의 눈가를 닦아주며 말했다.
‘울지마.’
“흐어어엉!!! 안 돼요...! 안 돼, 이게 아니야..!!”
‘울지 말라니까... 말도 안 듣지.’
서글프게 우는 앤젤라의 뒤에서 앤젤라를 놀란 눈으로 바라보는 로레인이 눈에 띄었다.
그에게 자신이 보이지 않아 다행이었다.
이런 모습을 그에게까지 보일 수 없었다.
아리엘은 로레인을 잔잔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이내 앤젤라를 품에 안아주었다.
하얀 빛들이 제 손을 모두 집어 삼킬듯 눈부시게 빛났다.
‘괜찮아. 괜찮아 앤젤라.’
“언니!! 으으윽...!”
흔들리는 어깨와 애처로운 눈물 소리가 아리엘의 가슴에 스며들었다.
갑작스런 이별에 준비되지 못한 소녀의 눈물은 참으로 서글펐다.
자신의 일로 그녀가 상처받지 않기를 바란 것은 욕심이었을까.
어떻게 해야 이 작은 아이가 울지 않을 수 있을까.
아리엘의 눈이 고요하게 빛났다.
이 작은 아이에게서 이만큼 많은 정을 주면 안 되었었다.
열심히 건네 버린 애정이 지금 이 순간, 이 어린 소녀의 가슴에 못을 박아버린 것이니까.
다 자신의 탓이었다.
‘앤젤라, 울지마.’
“허어어엉!!! 언니! 끅!!”
‘미안해, 내가 정말 미안해.’
“언니이 가지 마요!!”
‘미안해.’
아리엘의 눈가에 마저 눈물이 고여갈 때, 앤젤라가 다급히 아리엘의 손을 붙잡았다.
놀란 눈동자로 앤젤라를 바라보자 앤젤라는 꽉 잡은 아리엘의 손에 집중했다.
사라져가는 아리엘의 손을 바라보던 앤젤라가 온 몸의 마력을 쏟아 부어버리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앤젤라??’
두 눈을 질끈 감고 뭉치고 뭉쳐 놓았던 마력을 모두 쏟아내자 하얀 빛들이 아리엘을 감쌌다.
아까의 마력은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환한 빛이었고 따스한 온기를 품은 빛이었다.
로레인이 질끈 감았던 눈을 뜨고 아리엘의 눈이 차츰 떨려질 때 쯤 그녀와 로레인의 시선이 명확하게 마주쳤다.
‘.......’
그의 눈이 빳빳해졌다.
“...... 어머니....?”
‘!!!!’ 자신을 부르는 로레인의 목소리에 아리엘의 눈이 커졌다.
로레인의 시선에서 자신이 보이는 것인가..?
어떻게?
아리엘은 멍하니 그런 로레인을 바라보다가 시선을 내려 앤젤라를 바라보았다.
많은 마력을 사용해버려 안색이 파리해진 앤젤라의 몸이 안쓰럽게 떨려왔다.
그러나 그녀의 어깨에 올린 제 손은 아까 전 까지만 해도 빛에 집어삼켜진 손이라고 볼 수 없을 만큼 손가락 마디까지 모두 선명하게 비춰졌다.
“앤젤라... 이게 무슨....”
“언니.....”
앤젤라는 창백해진 안색으로 눈물을 흘리며 아리엘의 옷소매를 꽉 붙잡았다.
“원래는 하루를 버틸 수 있었겠지만.... 인도되는 것을 막느라 더 오래 못 버틸 거예요.”
“그게 무슨...”
“새벽...”
“어...?”
“새벽쯤에는 다시 인도 될 거예요... 마력으로 시간만 늦춘 것뿐이에요...”
앤젤라는 천천히 아리엘의 가슴에 고개를 묻으며 말했다.
그녀의 눈에서 눈물은 여전히 멈추지 않았다.
“하루를 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열심히 마력을 모았던 건데....”
“앤젤라...”
여태껏 마력을 가다듬으며 모아놓은 마력은 자신에게 하루만이라도 땅에 발을 놓을 수 있게 해주기 위함이었나...
앤젤라를 바라보는 아리엘의 눈이 서글프게 휘었다.
넌 정말 끝까지...
“가요 언니....”
“....?”
앤젤라가 힘없이 아리엘의 가슴을 밀었다.
“앤젤라?”
“어서 가요...”
“어디를....”
“언니가 사랑하는 사람한테... 빨리 가요.”
“!!!!”
아리엘의 눈이 빳빳하게 굳었다.
“앤젤라....”
“언니가 정말 사랑했다고 하던 그 사람한테 얼른 가요...”
“.......”
“시간이 많이 없잖아요...”
아리엘의 눈이 서글프게 앤젤라를 담았다.
내 시간을 위해 너는 몇 년을 노력한 것일까.
고작 나라는 사람을 위해 넌 얼마나 노력한 것일까.
아리엘은 천천히 앤젤라의 볼에 손을 올렸다.
따뜻한 온도가 그녀의 손에서부터 느껴졌다.
아주아주 생생하게.
“앤젤라.”
“...... 언니.”
“넌 항상 내가 널 지켜주고 있다고 하지만... 실은 정반대였어.”
“...... 언니?”
“네가 날 지켜주고 있던 거야.”
아리엘은 부드럽게 앤젤라의 볼에 입을 맞췄다.
“넌 정말 사랑스런 아이야.”
“..... 언니.”
“내게도 넌 정말로 소중한 아이였어. 그걸 기억해줘.”
“......”
앤젤라의 눈에 또 다시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아리엘은 그 눈물을 닦아주며 몹시도 환하게 웃었다.
“너와 함께 한 모든 순간들이 내겐 행복이었어.”
“저도에요 언니...”
앤젤라를 꼭 품에 안은 아리엘은 이내 그녀의 건너편에서 자신을 슬프게 바라보는 로레인을 마주했다.
그녀의 눈에 담긴 웃음기에 눈물이 고였다.
마주 바라본 눈동자 속에서 수많은 감정들과 서로의 마음을 가득 담아 보냈다.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가 하고자 하는 말의 의미를 당연스럽게도 알 수 있었다.
행복해야 해, 정말 사랑해.
깊은 눈인사 끝에 아리엘은 천천히 앤젤라를 품에서 놓아주었다.
자신만을 위한 이 시간을, 앤젤라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어야 할 때였다.
아리엘은 부드럽게 앤젤라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말했다.
“행복해야 해, 앤젤라.”
“언니도요.... 아니...”
앤젤라의 연두색 눈동자가 눈물로 인해 흐려졌지만 이내 맑은 미소를 터트리며 말했다.
“할머니도요.”
“.......!”
아리엘의 눈이 커다랗게 변했다.
그러나 점점 곡선으로 휘어진 눈이 이내 사랑스런 미소를 품었다.
“알고 있었구나.”
“당연하죠... 엄마랑 나랑 닮았잖아요...”
“그렇구나.... 흠, 언니라 불렀을 때가 좋았는데 말이지.”
“하하하”
서로를 마주 바라보는 두 사람의 미소가 아름답게 빛났다.
그녀들을 향해 다가선 로레인이 부드럽게 앤젤라를 끌어 안아주자마자 앤젤라는 그의 가슴에 기대며 말했다.
“늦겠어요... 얼른 할아버지께 가세요...”
“....... 소중한 시간이야. 정말 고마워.”
“할머니....”
앤젤라를 보듬어준 로레인이 아리엘을 향해 다정히 웃으며 말했다.
“아버지라면 황성의 서재에 계실 겁니다.”
“고맙구나.”
“어머니.... 어서 가보세요. 가서....”
로레인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가서 하지 못하셨던 말씀들 많이 나누세요.”
“그래.... 네 말처럼 얼른 가야겠다.”
아리엘의 물기어린 눈이 곱게 휘었다.
“내가 너무 오래 기다리게 했어.”
아리엘의 푸른 머리카락이 바람에 나부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로 가는 길이 사랑스럽게만 느껴진 그녀의 발걸음이 산뜻하기 그지없었다.
아름다운 하늘, 부드러운 바람, 거친 땅의 감촉까지 모두 애틋했다.
자신은 지금 살아있고, 살아있는 이 몸으로 그 사람을 보러 가고 있었다.
자신을 많이 기다렸을 것이다.
너무도 외로움을 잘 타는 사람이라 항상 자신을 생각하고 살았을 것이 분명했다.
그는 겉으로 제 상처와 슬픔을 내색하지 않으려는 거짓말쟁이였고 누구보다 강한 척하는 겁쟁이였다.
거짓말도 잘하고 겁도 많은 남자지만 그 누구보다 사랑했던 소중한 이였다.
단 한 번이라도 좋으니 이 두 손으로 그를 꽉 껴안아 줄 수 있기를.
그의 지난 상처와 아픔까지 제가 감싸줄 수 있기를.
이리 와요. 아니, 내가 갈게요.
내가 있는 힘껏 안아줄 테니까 날 밀어내지 말아요.
아리엘의 푸른 머리카락이 이내 밝은 빛에 감싸여 사라졌다.
워프였다.
짙어져가는 노을의 빛이 에드윅의 분홍색 머리카락 위에 따뜻이 비춰졌다.
서재에 있는 부드러운 소파에서 책을 읽고 있는 그의 눈이 고요히 빛나고 있었다.
“.....”
책속에 집중하는 듯 보이는 붉은 눈동자가 미동도 하지 않았고 책의 페이지도 넘어가지 않았다.
다른 생각에 잠긴 듯 묵묵히 글씨만 바라보는 그의 표정이 쓸쓸하게 빛났다.
긴 속눈썹을 펼쳐 하늘을 바라본 그는 저물어갈 준비를 하는 태양을 눈에 담았다.
‘에드윅!’
‘에드윅...’
‘아하하하! 에드윅!’
“......”
귓속으로 사랑하는 이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착각이 일었다.
웃는 모습이 사랑스러운 그 사람이 오늘따라 유독 그립고 그리웠다.
“나도 나이를 먹었나보군...”
조금씩 자리를 잡아간 주름 사이로 그의 눈이 슬프게 휘었다.
시간을 얼마나 많이 흘려보냈는데 여전히 머릿속에 그녀가 왜 그리도 선명하게 남아있는지... 알 수 없었다.
너무 사랑했기 때문이었을까.
아니, 여전히 사랑하고 있기 때문일까.
에드윅의 눈이 공허를 담아갈 때 쯤 그의 위로 맑은 기운의 마력이 소용돌이 쳤다.
“!!!!”
에드윅의 얼굴이 창백해졌고 동시에 급히 자리에 일어났다.
그러나 마력이 더욱 빠르게 에드윅을 덮쳤다.
정확히는 마력의 소용돌이 속에서 나타난 한 인영이 말이다.
털썩!!
그의 품에 곱게 쓰러진 한 인영은 풍성한 푸른 머리카락을 흐트러트리며 그의 가슴에 고개를 묻었다.
너무도 그립게 느껴지는 향기가 그의 코끝을 자극했다.
에드윅의 붉은 눈동자가 천천히 시야를 내려 그 인영을 눈에 담았고 인영은 고개를 들며 어떠한 세상의 빛보다 환히 웃었다.
“에드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