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화. 아리엘
세린이 저주에 걸렸었던 그 과거.
아리엘은 페르돈 후작가를 무너트리고 이 사건에 마탑의 마법사들이 배후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에는 이 후의 행동범주의 모든 것들을 신속하게 정했다.
첫 번째는 아이를 데리고 황성에서... 그리고 마법사들의 눈에서 벗어나는 것.
두 번째는 아이의 저주를 푸는 것.
세 번째는 살아남는 것.
저절로 마음이 굳어졌고 제 품의 세린을 꼭 껴안았다.
에드윅과 남아있는 아이들에게 못할 짓을 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세린과 계속 황성에 남아 있다가는 자신들을 화형 시키라는 백성들의 압박이 남은 가족들에게 위협이 될 수 있었다.
심지어는 마법사들의 눈이 자신을 향하고 있으니 페르돈때처럼 제 아이들로 협박을 하여 자신을 위협을 시킬 수 있었다.
마법사들의 시선에서 황성에 남은 아이들을 떼어내려면 자신이 황성 밖으로 나가야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자신이었으니까.
아이가 무사하다면, 그리고 자신도 무사하게 된다면 반드시 돌아와 그에게 아들들에게 사과를 할 것이다.
‘미안해요. 하지만 내 머리가 나빠서 도저히 이 방법 말고는 생각이 나지 않았어요.’
품에 안고 있는 작은 아이의 호흡이 뜨거웠다.
그 작은 몸을 좀먹고 있는 저주가 아이를 지옥으로 끌고 가고 있었다.
한시라도 빠르게 저주를 없애야 한다는 불안감에 마음은 급해졌다.
‘살려야 해.’
곧 숨이 넘어갈듯 세린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아리엘은 입술에 피가 나도록 깨물며 눈을 질끈 감았고 이내 망설임 없는 손길로 세린의 가슴에 두 손을 올렸다.
‘넌 살아야 해...!!’
하늘색의 빛들이 딸의 심장에 붙은 어둠을 천천히 제게로 가져왔다.
굳게 다문 잇새로 피가 한줄기 흘렀으나 신경은 온통 딸의 창백한 낯으로 향했다.
‘제발....!’
그녀의 고통스런 비명에 대답이라도 하듯 저주가 완전히 그녀에게로 옮겨졌다.
아리엘은 심장 쪽에서 느껴지는 통증을 무시하고 다급히 마력을 사용했다.
아이의 썩어버린 몸을 되돌리기 위한 시간의 마법이었다.
“우욱...!!”
후두둑
지나치게 많은 마력의 사용으로 울컥 피를 토했지만 그녀의 마법은 멈추지 않았다.
‘조금만 더.....!’
그래, 아주 조금만 더.
푸른빛들이 한 번 일렁인 후 세린의 얼굴은 제 온기를 되찾았고 손과 발, 그리고 작은 몸이 더욱 작아졌다.
영락없는 아기의 모습으로 잠이 든 딸을 꼭 껴안으며 아리엘은 다시 쓰러지려는 몸을 힘겹게 지탱했다.
‘마력을 사용해서 분명 위치가 들통 났을 거야.’
이곳에서 벗어나야 해.
아리엘은 제 입가를 닦아낸 후 부들부들 떨리는 발을 옮겨 어둠속으로 몸을 숨겼다.
‘텔레포트는 위험해. 내 마력을 타고 날 쫓아올 수 있으니까...’
그렇다면 몸을 계속 움직여 숲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가야 했다.
서둘러 제 몸에 풍기는 마력도 감추며 아리엘은 걷고 또 걸었다.
그녀의 몸이 지쳐 무너질 때까지 말이다.
정신을 차린 아리엘은 따스한 햇살 아래에 세린을 껴안고 쓰러져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런 제 모습을 깨닫자 서둘러 몸을 일으켰고 심장 쪽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고통에 이를 악 물었다.
일그러진 눈가로 시야를 내리자 곤히 잠든 아이가 눈에 담겼고 천천히 아리엘의 눈이 풀려갔다.
“무사했구나....”
아이의 무사에 아리엘은 천천히 심호흡을 하고 생각에 잠겼다.
아이의 저주가 풀린 모습으로 황성에 돌아간다면?
마녀라 불리는 황후와 저주받은 아이가 오해라고 다시 멀쩡한 모습으로 돌아온다면?
그걸 과연 백성들이 믿어줄까.
‘마법사들이 이를 알게 된다면....’
저절로 생각나는 무서운 상상에 아리엘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황성에 돌아가면 위험해... 그렇다면 숨어야 하는 건데...’
아이를 데리고 숨을 수 있는 곳이 과연 어디 있을까.
인적이 드물고 많은 이들이 아이를 데리고 사라진 황후가 그 곳에 있다고 눈치 챌 수 없는 곳.
마법사들이 찾기 어렵고 모를만한 곳.
“.....”
창녀촌.
아이의 존재를 숨기고 창녀촌에 들어온 아리엘은 제 마력을 감췄다.
아무도 자신을 찾을 수 없도록 마력을 감추고 숨겼다.
‘들켜서는 안 돼.’
적어도 세린이 스스로 지킬 수 있을 때까지 만이라도...
에드윅에게도 마법사들에게도 들키면 모든 게 수포였다.
아이들을 지켜야했고 세린을 지켜야 했다.
아리엘이 주변에 있을 마법사들의 마력을 경계하며 조심스런 하루하루를 보내기 시작했다.
위험천만한 순간들을 최대한 마력 없이 해결하려하니 보다 힘들었다.
손님을 받을 적에도 사내들이 자신에게 다가오기 전에 주변에 마법사들이 있는지부터 확인했다.
그리곤 소량의 마력만을 사용해 그들을 재우기 반복했다.
살아남아야 했다.
자신이 어떻게 되든 살아서 세린을 안전하게 지켜내야 했다.
그런 제 고민이 굳건해진 이유는 밝은 모습으로 자라나는 세린 때문이었다.
“엄마.”
‘미안해.’
“엄마~”
‘내가 미안해.’ 부족한 엄마라서 이것밖에 할 수 없었어.
제 몸이 썩어가는 모습을 무심히 바라보며 아리엘은 눈물을 삼켰다.
이제 곧 자신은 저주에 삼켜져 죽을 것이었고 세린은 겨우 7살밖에 되지 않았다.
아리엘은 방 한구석에 이불 한 자락과 비상금을 올려놓고 항시 세린에게 이야기했다.
“엄마가 죽으면 저걸 가지고 떠나.”
“엄마...? 왜 그런 말을 해....”
“대답해줘. 넌 바로 떠나야 해.”
그렇지 않으면 마법사들이 널 찾아낼지도 몰라.
마법사들이라면 내가 죽는 순간 흩어지는 내 마력들을 눈치 채고 이쪽으로 달려올 테니까.
그리고... 그 사람도 달려올 테니까.
아리엘은 제 손에 담긴 종이 중 하나를 세린에게 쥐여 주었다.
“이 종이가 길을 안내할거야. 네가 안전하게 갈 수 있도록.”
“.... 엄마?”
“이 종이가 가라는 대로 따라가.”
마력에 반응하는 하얀 종이의 목적지는 황성이었다.
‘이제 된 거야.’
세린은 이제 안전하니까.
저주 따위 없어졌으니까.
그러니까 너라면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도 괜찮아.
천천히 손에 힘이 없어져가는 아리엘은 제 손을 붙들고 눈물도 흘리지 못하는 제 딸을 슬프게 응시했다.
미안해.
정말 엄마가 미안해.
네 곁에 내가 더 있어야 했는데...
아리엘의 연두색 눈동자가 아주 먼 곳을 응시하기 시작했다.
다가오고 있다.
아니, 달려오고 있었다.
죽음의 향기와 함께 제 몸을 빠져나가는 마력들을 느끼고 그가 제게로 달려오고 있었다.
차오르는 안도와 함께 마법사들의 마력도 느껴졌다.
“세린.”
“...... 응.”
‘그들에게 들켜선 안 돼.’
“엄마가 죽으면 바로 떠나.”
‘아빠에게로 가.’
“......”
“대답해 세린.”
‘그를 만나야 네가 안전해.’
“..... 응.”
고통이 담긴 딸의 대답이 가슴을 후볐다.
“사랑해 내 딸.”
“.... 나도 사랑해.”
마지막까지 딸의 안전을 책임지지 못한 한심한 제 자신을 탓하며 아리엘의 생명이 무너져갔다.
죽음이 다가온 몸과 아직 온전히 남아있는 정신은 주변의 소리를 머릿속으로 전달했다.
딸이 제게서 멀어지는 슬픈 발걸음 소리.
차가운 바람과 함께 굳게 닫혀버린 문.
정적.
그리고....
파밧
싸늘해져가는 아리엘에게 다가오는 마탑의 마법사들.
“이 여자야?”
“맞는데.... 이미 죽었어. 시체라도 가져가야 하는 거 아냐?”
“마를린에게 물어보자.”
“진짜 이딴 곳에 숨어있을 줄 누가 알았겠어?”
“그보다 딸도 같이 있다고 하지 않았어?”
“바보야. 저주에 걸렸다는데 당연히 죽었겠지.”
그래, 시체든 뭐든 너네 마음대로 해.
하지만 세린은 아직 살아있어.
그 아이를 건들지 마.
“일단 갔다 오자고.”
“그래.”
마법사들의 소음이 멀어졌다.
세린은 무사할까.
잘 가고 있는 것일까.
자신이 지켜줘야 하는데...
아리엘의 마음 속 외침이 들린 것인지 누군가 거칠게 문을 열었다.
쿠당탕!
아리엘은 점점 흐려져 가는 의식 속에서 너무도 사랑했던... 사무치게 그리웠던 한 남자의 목소리를 들었다.
“아리엘....”
당신이 왔군요. 나 여기 있어요.
“..... 아리엘. 정신 차려보시오.”
미안해요.
“아리엘....”
허공에 공허하게 흩어지는 그 애틋한 목소리가 무너져갔다.
아리엘은 천천히 잃어가는 제 의식 속에서 손에 쥐고 있는 종이 조각을 생각해냈다.
부디 이 종이를 그가 발견해서 세린을 찾아주길 간절히 바랬다.
남은 종이의 주인은 바로 그였으니까.
세린을 찾아줘요.
그 아이가 당신에게로 가고 있어요.
이제 당신이 그 아이를 지켜주세요.
스륵.
황제의 손이 아리엘의 손에 닿았다.
그가 정확히 아리엘의 손에 있던 종이를 집었고 이내 다급히 몸을 일으켰다.
“세린.”
그래요, 우리 딸 세린.
그 아이를 빨리 찾아줘요.
“황성으로 옮겨라. 손끝도 상해서는 안 될 것이다.”
“네, 폐하.”
그의 다급한 발소리가 멀어지고 있었다.
‘된 거야.’
아리엘의 의식이 완전히 흐려졌다.
‘이제 된 거야...’
세린이 안전해지길.
사랑하는 그도 빠르게 자신을 잊길.
아리엘은 사라져가는 기억 속에서 너무도 그리운 이름을 불렀다.
테오, 로레인, 트레일
내 소중한 아이들.
‘정말 방법은 이것뿐이었을까.’
너희들에게 끝까지 이기적이어야만 했을까.
이게 최선이었을까.
죽기 전에는 너희를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어.
너희의 얼굴을 바라보고 사랑한다고 말해줄 수 있을 줄 알았어.
하지만 욕심이었구나.
다시는 보지 못하겠지.
미안해.
보고 싶어.
그 공허한 외침을 끝으로 아리엘의 생명은 무너졌다.
참으로 덧없고 쓸쓸한 죽음이었다고 스스로도 그리 생각했다.
하지만 후회는 없었다.
이 선택의 결과는 제 아이들의 안전이었으니까.
소중한 자식들이 안전하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하지만.
‘아리엘.’
자신을 부르는 그 애틋한 목소리가 그녀의 발목을 붙잡았다.
‘사랑하고 있소.’
‘그대의 인생을 갖고 싶어.’
‘이 자리도 그대가 내 옆에 없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
내가 끝까지 당신에게 몹쓸 짓을 하고 있구나.
그때 당신의 옆에 서는 것을 수락하지 않았다면 당신도 이런 고통 없이 행복했을 텐데.
왜 나 같은 것을 위해 그리 필사적이었나.
내가 뭐라고.
‘사랑하고 있소.’
나도 그래요.
‘후회하지 않소.’
나는 후회해요.
‘지켜 주리다.’
내가 지켜주지 못했어요.
우리 아이들을 부탁해요.
끝까지 내뱉지 못할 그녀의 말들은 허공으로 흩어졌다.
그렇게 그녀에게 암흑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