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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딸로 태어났습니다-138화 (137/218)

138화. 술 맛 나는 밤

“늦으시네...”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리사의 행방에 이엔의 눈이 걱정스럽게 휘어졌다.

이정도로 늦으실 분이 아닌 것을 알기에 그 걱정은 깊어져만 갔다.

그러던 그때 이엔의 앞으로 한 녹색의 머리를 가진 여인이 다가왔다.

“저기...”

“....?”

“그쪽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요... 혹시 괜찮다면 축제를 같이 즐기고 싶은데...”

“네?”

이엔의 금빛 눈동자에 당황이 담겼다.

그러다 이내 조금 확고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만... 제겐 정인이 있습니다.”

“아... 하지만... 아까부터 혼자 계시던 걸 봤는데요.”

“지금 그분을 기다리는 중입니다.”

“그렇지만...”

“야! 안 비켜?”

여인의 조금 애달픈 말이 선명한 외침에 끊겼다.

녹색머리의 여인이 눈이 살짝 일그러지며 뒤를 돌았고 이엔의 얼굴이 환하게 변했다.

리사는 로브를 깊게 눌러쓰며 이엔의 옆에 서서 제 허리를 잡고 삐딱하게 섰다.

“너 뭔데 남의 애인한테 껄떡대?”

“뭐라고요...? ... 정인이라는 것이 이런 사람이었나요?”

“것? 정인이라는 거엇?”

여인의 삐딱한 물음에 리사의 이마에 힘줄이 돋아났다.

이엔은 부드럽게 리사의 한 손을 잡아주며 단호하게 말했다.

“말씀을 가려서 해주세요. 함부로 그런 말을 해도 되는 분이 아닙니다.”

“네?? 하...”

여인이 제 팔을 감싸며 헛웃음을 내뱉고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진짜 별 웃기지도 않은 걸 애인이라고...”

“야 너 뒤지고 싶어?”

“꺅! 뭐 저런 여자가 다 있어?”

욱하며 한 발 앞서 달려드려는 리사의 기세에 여인이 식겁하며 뒤를 돌아 달려갔다.

분이 풀리지 않아 씩씩거리는 리사의 손을 꽉 잡아주며 이엔이 말했다.

“진정하세요. 민간인입니다.”

“야씨!! 민간인이면 다야?! 저게 지금 감히 나한테 뭐라고??!! 난 제국 기사라고!!! 모욕적이야!!!”

“리사님께서는 지금 신분과 정체를 숨기고 계시는 것이니 그렇게 말한 것이 아닐까요.”

“아, 나 신분 숨겼지.”

이엔의 말에 쉽게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인 리사는 이내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까먹을 뻔 했네.”

이미 까먹었으면서...

이엔은 난처하게 웃음을 지었다가 이내 생각이 난 듯이 물었다.

“그보다 생각보다 늦으셔서 걱정했습니다. 아이스크림도... 없네요? 무슨 일 있으셨나요?”

“아....”

리사의 푸른 눈이 데구르르 굴러갔다.

“그냥... 수도에 안정을 찾아 줬다고 해야 할까...”

“네?”

“아니. 일단 이거 받아.”

이엔의 되물음을 다급히 넘기며 리사는 이엔의 손에 무언가를 쥐어주었다.

이엔은 제 손에 닿는 차가운 무언가를 바라보았고 그것이 곧 작은 빨대가 꽂힌 맥주라는 술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술을 더 드셔도 괜찮겠습니까?”

“이 정도는 괜찮아. 멀쩡해.”

“어디 불편하시다면 바로 말씀해주세요.”

“응.”

리사는 이엔의 걱정에 피식 웃음 지으며 이내 그의 손을 맞잡았다.

이제는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손의 온기지만 여전히 이엔을 쑥스럽게 만들기엔 충분했다.

아름답게 펼쳐진 꽃들 사이로 수많은 연인들이 걸어 다녔다.

그 중에 리사와 이엔도 맥주를 홀짝이며 걸어 다녔고 말이다.

밝은 달빛을 받은 장미를 바라보던 리사가 이내 입을 열었다.

“갑자기 나와 달라고 내가 고집을 부렸는데... 따라 나와 줘서 고맙다.”

“외려 제가 인사하고 싶네요.”

“?”

리사의 푸른 눈이 이엔을 담았다.

이엔의 수려한 얼굴에 오른 홍조 사이로 부드러운 미소가 화사하게 담겼다.

“너무 즐거웠어요.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 어떻게 설명해야 할 지 모르겠지만...”

“.....”

“리사님과 함께라서 더 즐거웠던 것 같아요.”

“.....!”

리사의 입술이 살짝 벌려졌다.

제 스스로의 감정을 솔직하게 내비치는 이엔의 모습에 말을 잃은 리사는 멍하니 그를 바라보다가 이내 다급히 맥주를 한 입에 털었다.

벌컥 벌컥

“리사님?”

“크아.....!”

빈 잔을 머리에 털며 리사가 올곧게 다시 이엔을 바라보았다.

이엔의 두 눈에 놀란 감정이 섞였고 리사의 두 눈에는 결심이라는 것이 담겼다.

굳게 닫혀있던 입술을 열리며 리사가 말을 꺼냈다.

“난 멍청하고 생각이 짧아. 그리고 그걸 나 스스로도 잘 알고 있어.”

“... 네?”

“앞뒤 생각 없이 몸부터 나가고 말부터 내뱉어. 그만큼 두서없는 애가 바로 나야.”

“.....”

“그런데 요즘엔 자주 몸이나 말이 나가기 전에 그 자리에서 멈추고 한 번 더 생각이란 것을 하게 돼. 웃기지?”

로브에 감춰진 리사의 푸른 눈이 천천히 이엔의 얼굴을 담아갔다.

“그런 내가 스스로를 자제하고 생각을 해보는 상황에선 항상 네가 있었어.”

“....!!”

이엔의 수려한 눈동자가 커다랗게 뜨였다.

리사는 그런 그의 표정변화를 바라보면서도 멈추지 않았다.

“넌 날 잠깐이라도 멈추게 만들어. 내가 생각을 한 번씩 다시 하게 만들고, 내뱉는 말도 다시 되짚어보게 만들어.”

“리사님.”

“네가 나한테 해준 말들도 계속 기억에 남아.”

리사의 입술에 작은 미소가 담겼다.

“내가 예전에 말했었지. 사랑이나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을 잘 모른다고.”

“..... 리사님.”

“그런데 이제 그거 잘 알 것 같아.”

“!!!!”

“너 때문에 변하고 있는 내 모습이 마음에 들어. 네가 날 좋아한다고 해주는 것도 좋아. 그런데 너에게 껄떡거리는 모든 여자들은 짜증나.”

“.......”

“그래, 맞아.”

팟!

자정을 넘은 3시에 맞춰 그들을 비추던 전등에 불이 꺼졌다.

그러나 어두운 배경 안에서도 밝게 빛나는 푸른 눈동자는 이엔의 시야에 강하게 비춰졌다.

리사는 여전히 이엔을 올곧게 바라보며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내뱉었다.

“좋아해.”

“.....!!!!”

“널 좋아하고 있어. 지금 내가.”

“아....”

이엔은 달싹이는 입술로 말을 더 내뱉지 못하다가 이내 한 손으로 제 눈을 감쌌다.

“가... 갑자기 그런 고백은....”

“뭐래? 난 내 진심을 전했을 뿐이야.”

“이게 꿈은... 아니지요...”

“꿈이면 내가 억울하지. 나 이래보여도 이 말 내뱉기 힘들었다고?”

“.... 정말.... 그, 그게 제가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말할게 뭐 있어?”

“..... 네?”

이엔의 눈동자가 흔들린 것과 동시에 리사의 손이 부드럽게 이엔의 옷깃을 잡았다.

“?!”

이엔의 당황으로 물들여진 금빛 눈동자가 어둠속에서도 빛났고 리사는 근사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등불이 켜지려면 3분이 남았어.”

“....?”

“그러니 대답은 이걸로 퉁 치자고.”

“!!!!”

리사의 억센 손이 그의 옷깃을 잡아당겼고 이내 부드러운 입술이 마주 닿았다.

억센 기세에 그녀의 로브가 벗겨졌고 달빛을 받은 은발이 그녀의 허리 아래도 부드럽게 찰랑였다.

무척이나 따스하면서도 부드러운 두 연인의 입맞춤에는 술맛이 났다.

술에 취한 듯, 분위기에 취한 듯, 그리고 그녀에게 취한 듯 이엔은 천천히 두 눈을 감았다.

마주 닿은 입술이 달콤하게 느껴졌다.

모든 것이 처음이었던 두 사람의 서투른 연애는 보다 확고해졌다 갈대마냥 흔들리던 마음이 자리를 잡았고 뿌리마저 깊이 자리했기 때문이었다.

영원히 켜지지 않을 것 같은 등불에 불이 들어오고 이내 리사와 이엔의 입술이 떨어졌다.

이엔의 얼굴은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고 리사는 조금 홍조가 오른 얼굴로 피식 웃음 지었다.

“생각보다 더 부끄럽네.”

“그... 저, 저도...!”

“더 안 잡아먹을 거니까 정신 차리지?”

“힉!!!”

이엔의 얼굴에 당황이 담기며 제 입술을 가렸다.

그 모습에 리사가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리며 허리에 손을 올렸고 이내 맑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자! 결정해. 더 놀까, 이제 돌아갈까?”

“..... 그게.”

이엔의 금빛눈동자가 약하게 흔들리다가 이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더 같이 있고 싶습니다...”

“좋아. 그럼 아까 못 먹었던 아이스크림부터 먹자고.”

“네!”

“잡아.”

리사의 손이 자연스럽게 이엔에게로 뻗어졌다.

이엔은 망설임 없이 그 손을 꼭 잡으며 환하게 미소 지었다.

“네!”

깊어져가는 수도의 밤 속에서 연인들의 관계도 깊어져갔다.

*

시간은 빠르게 흐르고 흘렀다.

대공저의 아름다운 하늘 아래에서 청량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고모!! 고모오!!”

앙증맞은 귀여운 목소리를 내뱉으며 누군가를 찾는 한 아이는 하얀 은발에 연두색 눈동자를 하고 있었다.

작은 몸에 딱 맞는 푸른색의 옷은 아직 어린 아이의 화사한 미모를 더욱 빛나게 만들었다.

아이가 “고모!” 라고 한 번 더 외치자마자 그의 앞으로 누군가 격렬하게 달려와 두 팔을 활짝 벌리며 그 자리에 멈췄다.

“고모 여깄지!!”

“우와! 고모오오! 보고 싶었어여!”

바로 은발을 휘날리는 리사 도베로만 이었다.

연두색 눈동자를 반짝이는 귀여운 아이는 혀가 짧은 소리로 꺄르르 웃음을 터트리며 통통한 볼에 귀여운 미소를 지었다.

이 귀여운 아이의 이름은 에드 스페라도.

세린과 제이의 둘째 아들이었다.

두 팔을 벌리며 리사의 품에 안긴 에드는 그녀의 안정적인 품에서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고모! 에드는 고모랑 레기랑 앤젤라랑 놀고 싶었는데 어, 막, 아빠가 안 된다고 막 그랬어여!”

“뭐??!! 감히 우리 에드의 소원을 거절해??!! 이 고모가 아빠를 당장에 혼내줄게!!!”

“웅... 그런데에 엄마도 안 된다고 오늘 오디 가야 한다고 그랬어여.”

“엄마의 말은 틀린 것이 하나도 없으니 아빠를 혼내는 것은 보류해야 겠구나 에드.”

리사의 발 빠른 태세변화에 에드가 고개를 기울이며 눈을 크게 떴다.

리사는 그 심장이 멎을 정도로 귀여운 아이의 모습에 입술을 파르르 떨다가 이내 에드를 꽉 껴안았다.

“사랑해!!!!! 고모의 심장을 가져가!!!”

“웅?? 히히히!”

조금 있으면 4살이 될 3살의 에드는 제 고모의 심쿵사 과정이 마냥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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