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마법사의 운명을 손에 넣어버렸다 (67)화 (67/292)
  • 67화 

    * * *

    슈테른베슈테크 성의 지하 감옥은 오늘도 만석이었다.

    우악스러운 손길이 루드윅을 축축한 돌바닥에 던졌다. 첨벙이는 소리와 동시에 쥐가 놀라 달아나자 라크시스의 표정이 단박에 구겨졌다.

    “알아서 들어갈 테니 이 코트는 좀 놓지 그래.”

    “헛수작 부리지 마. 제국 놈들은 이럴 때도 재수 없게 군다니까.”

    겉보기와 달리 힘이 좋은 편인지 은발 제국 놈은 아까의 덩치만큼 쉽게 내던질 수가 없었다. 숨겨둔 무기라도 있나? 가진 것들은 아까 다 빼앗아 두었는데. 알렉스는 은발 제국 놈을 두고 낑낑거리는 부하들에게 내버려 두라며 눈짓했다.

    마지막으로 여자까지 같은 감옥에 밀어 넣고 난 후, 알렉스는 그들의 손목을 묶은 밧줄에 차례로 주문을 외기 시작했다. 마법사를 결박하는 마법이었다. 요르문, 라크시스, 시아의 순으로 걸음을 옮기던 알렉스는 루드윅의 앞에선 바람이 빠지는 것처럼 피식 웃었다.

    “왜 우, 웃는데!”

    “아냐. 넌 그냥 곁다리였구나 싶어서.”

    곁다리라니. 뜻 모를 소리였지만 기분이 상한 루드윅이 욕지거리를 중얼거렸다. 알렉스는 큰 소리로 웃으며 감옥 밖으로 빠져나가 창살을 닫았다.

    “제국엔 마법사가 넘쳐나나 보지? 모가지가 날아갈 걸 알면서도 이렇게 자꾸 마법사를 보내오니 말이야.”

    “무슨 소리인지.”

    “무슨 소리냐니. 내일 아침에 네놈들의 목이 뎅겅 잘려나간다는 소리지.”

    감히 현자의 별을 훔쳐 가려 한 도둑놈의 모가지 말이야. 알렉스는 허리춤에 걸린 둥근 쇠고리에서 수많은 열쇠 중 하나를 꺼내 네 사람이 갇힌 감옥의 자물쇠에 밀어 넣었다.

    열쇠의 끝이 자물쇠의 가장 깊은 곳에 닿아 맞물려 돌아가는 순간, 창살을 타고 노란 빛이 좌악 퍼져나갔다. 빛은 곧 사그라들었지만, 그들이 갇힌 감옥 전체에는 계속해서 웅웅대는 위험한 소리가 남아있었다.

    라크시스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알렉스를 바라보았다.

    “…마법이군.”

    “그래. 네놈들 같은 마법사를 가둘 때 쓰는 마법이지. 벽이든 뭐든 어지간하면 안 건드리는 게 좋을 거야. 여기서 밤새 타 죽는 것보단 내일 아침에 깔끔하게 목이 떨어지는 게 낫지 않겠어?”

    알렉스는 창살 너머로 보이는 꼿꼿한 실루엣에 눈을 가느다랗게 떴다. 아까부터 신경 쓰이던 은발 제국 놈이었다. 결박하면서 탐지했을 땐 셋 중 마력이 제일 느껴지지 않았던 사람이었지만, 고수는 고수를 알아본다고. 백작 다음으로 뛰어난 마법사인 알렉스는 은발의 마법사가 마력을 숨기고 있음을 곧장 알아챘다.

    “폰데 경! 주군이 빨리 올라오라고 하십니다!”

    지하 감옥으로 쿵쿵 뛰어 내려온 병사 하나가 우렁차게 외쳤다. 알렉스가 두 귀를 막으면서 빼액 대꾸했다.

    “야, 인마. 돌벽에 소리 울리는 거 알면서 그렇게 고래고래 소리치면 내 귀가 남아나겠냐?”

    “하지만 곧 파티가 시작되는걸요? 주군께서 폰데 경이 일 분 늦을 때마다 연좌제로 연무장 뛰기를 한 바퀴씩 추가 하겠다고…….”

    “어이쿠, 그건 싫은데.”

    허물없어 보이는 주종 관계였다. 엄밀히 말하면 주는 백작이고 종은 이들 모두이겠지만. 알렉스라 불린 적갈색 머리 남자가 생일이 어쩌니 선물은 어떡하냐느니 하는 말들을 지껄였다. 가장 바깥에 앉아있던 시아는 이들의 대화를 고스란히 듣고 있었다.

    알렉스는 부하들의 종용으로 감옥을 뜨는 듯 보였다. 그러나 그는 몇 발자국 가지 않아 되돌아왔다. 알렉스의 시선이 네 사람이 갇힌 감옥 안으로 향했다.

    정확히는 라크시스가 앉아있는 가장 깊은 곳, 반짝이는 은발 아래 어둠 속에서도 새파랗게 빛나는 그의 눈동자를 똑바로 꿰뚫어 보고 있었다.

    알렉스가 빙긋 웃었다.

    “우리의 주군은 아주 무서운 분이시거든. 행여 탈출하는데 성공하거든 뒤도 돌아보지 말고 도망쳐. 현자의 별을 기웃거리다간 그 자리에서 사지가 찢길 테니 말이야.”

    그럼 행운을 빌지. 그 말을 남기고 알렉스와 부하들이 와르르 감옥을 빠져나갔다. 순식간에 감옥은 텅 비어 고요해졌다. 텅 비어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지간히 규모가 큰지 천장에서 물이 똑똑 떨어지는 소리마저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네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읽어낼 수 없는 표정이 횃불에 비쳐 주홍빛으로 일렁이고 있었다.

    돌벽에 걸린 횃불에서 불티가 포르르 날았다. 반짝이는 잿가루가 창살 안으로 나지막이 내려앉았다.

    가장 먼저 정적을 깬 건 시아였다.

    “루드윅.”

    “…네.”

    “아스타 슈테른베슈테크 백작이 살아있었던 게 언제죠?”

    평이하고도 고저 없는 물음이었다. 그러나 감옥에 갇힌 모두는 짐작하고 있었다. 루드윅의 대답과 그 대답에서 유추할 수 있는 결론을.

    “3300년대 말일 겁니다. 씨즐턴이 제국에 복속된 게 3385년이니까요.”

    이 모든 게 네 사람을 두고 벌어진 연극이 아니라면 결론은 하나였다.

    시간 여행.

    3518년 슈테른베슈테크 고성의 삼 층 복도 끝 방에서 무려 백삼십여 년을 거슬러 온 것이었다.

    3587년에서 온 시아에겐 무려 이백 년 전인 셈이었다. 루드윅은 이 모든 상황이 믿기지가 않는지 묶인 손으로 얼굴을 재차 벅벅 문질러댔다.

    “이러니 다들 괴담을 목격하고 다음 날 시체로 발견됐지…….”

    괴담을 좋아한다는 그도 이런 식의 상황을 기대한 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귀신을 보고 심장마비로 죽었으면 죽었지 백삼십 년 전의 지하 감옥에서 목이 잘려 죽고 싶진 않았다고. 루드윅이 앓는 소리를 내며 초조하게 다리를 떨었다.

    “이거 들어올 땐 마음대로였는데, 하아…….”

    시아는 그런 루드윅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난데없는 시간 여행을 겪은 사람이라면 저런 반응이 정상이겠지. 앞으로 무슨 일을 겪게 될 지 한 치 앞도 모를 테니까.

    나도 일기장이 없었더라면 아르카나 중앙역에 떨어졌을 때 저러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로드 젤마니. 고성 삼 층 끝방에 숨어든 사람 중 열에 아홉이 죽은 채 발견됐다는 건 두 가지 의미를 갖고 있죠.”

    “…네?”

    “원래 시간으로 돌아갈 수 있는 조건이 두 가지라는 거예요. 죽거나 혹은 일정 시간이 지나거나.”

    열에 아홉이 죽은 채 발견됐다는 말은 나머지 열에 하나가 살아있는 채로 발견됐다는 말과도 같다. 슈테른베슈테크 고성의 삼 층 복도 끝 방에서 시간 여행을 경험했다면 아마도 지금 우리와 똑같은 상황을 겪었을 테지.

    백작의 방에 숨어든 침입자로 오해받아 목이 뎅겅 잘리는 결말. 그 결말을 피해 살아남은 사람은 원래 시대로 무사히 돌아갔을 것이다. 반미치광이가 되어 정상적인 삶을 유지할 수 없을지언정 목숨은 부지했다는 말이다.

    “아마 후자일 가능성이 높아요. 목 떨어진 시체든 살아남은 사람이든 다음 날 3518년 고성에서 발견된 건 똑같으니까요. 시간 여행이 끝날 때까지 잘 버티기만 하면 원래 시대로 돌아갈 수 있다는 거죠.”

    “케이틀린, 당신은 어떻게 그렇게…….”

    침착할 수가 있죠? 이 상황에서? 케이틀린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차분히 설명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그녀의 말을 듣던 루드윅은 안도함과 동시에 그녀에게서 기묘한 이질감을 느끼고 말았다. 케이틀린의 의도가 그를 위로해 주려는 것이었다면 반은 성공했고, 반은 실패한 셈이다.

    요르문 켈튼과 라크시스 옌조차 태연한 척 앉아있어도 차마 감추지 못한 당황스러움이 조금씩 눈에 보이는데. 루드윅은 그녀에게 되묻는 대신 밧줄에 묶인 양손으로 마른세수를 벅벅 해대며 신음을 흘렸다.

    “하……. 그래요. 그것참 다행이군요.”

    “확실한 건 아니에요. 제 추측일 뿐인걸요.”

    “아닙니다. 당신의 주장은 논리적이고 합당해요. 당신 말이 맞다고 합시다, 케이틀린. 그런데 문제가 있어요.”

    “뭔데요?”

    루드윅의 눈가가 아까보다 거뭇해졌다. 순식간에 몇 년은 늙어버린 얼굴로 그가 우울하게 물어왔다.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 수 있죠? 당장 내일 아침에 저들이 여길 찾아올 텐데. 탈옥이라도 해야 할 판인데, 여기에 걸린 마법이 마법사를 가두는 마법이라면서요.”

    그때였다.

    “어……?”

    철컹 하는 소리에 뒤이어 창살에 걸려있던 자물쇠가 끊어져 돌바닥을 나뒹굴었다. 날카로운 파열음과 함께 바닥에 산산조각이 난 자물쇠를 루드윅이 멍하니 바라보았다.

    어느새 밧줄을 풀어낸 라크시스가 케이틀린의 손목을 풀어주고 있었다. 요르문은 알아서 팔을 풀어낸 상태였다. 이내 라크시스가 묶여있었던 팔목을 문지르며 천천히 다가왔다.

    쭈그려 앉은 루드윅의 앞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올려다본 곳엔 은발의 마법사가 오만하고도 여유로운 얼굴로 서있었다.

    루드윅의 손목에서 무언가가 갉아 먹히는 소리가 났다. 삭아 없어지듯 이내 툭 끊어진 밧줄이 땅으로 떨어졌다. 루드윅이 당황해서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나가는 건 언제든 할 수 있습니다만.”

    라크시스는 루드윅을 향해 말했다.

    “무슨 문제라도?”

    * * *

    무력화된 창살을 빠져나오는 건 금방이었다. 그러나 창살 밖에서 네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건 미로처럼 얽힌 끝 모를 복도와 수없이 많은 감옥들이었다.

    “본성보다 지하 감옥이 더 넓겠는데요.”

    “그만큼 감옥에 가둘 사람이 많다는 뜻이겠지요. 슈테른베슈테크 백작은 적이 많은 사람인 모양입니다.”

    감옥은 증축이라도 했는지 일정 구간 이후부터는 돌의 색이 달랐다. 놀랍게도 창살마다 사람들이 그득히 갇혀있었다.

    지하를 비추는 조명이라곤 돌벽을 따라 일정한 간격으로 걸려있는 횃불이 전부였다. 가스등과 마력등에 익숙한 시아로서는 일렁이는 뜨거운 불길이 영 익숙하지가 않았다.

    횃불에서 포르르 불티가 떨어져 날았다. 앗, 뜨거. 원래 여기서 이렇게 재 가루가 날리는 거 맞아?

    그녀가 한참을 나비처럼 날아다니는 불티들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마디가 느껴지는 기다란 손가락이 그녀의 손가락을 파고들었다. 낯선 접촉에 놀란 것도 잠시, 맨 바깥에서 걷고 있던 시아는 어느새 무리의 가운데로 들어와 있었다.

    그녀가 원래 있었던 맨 바깥, 그러니까 횃불이 걸린 돌벽 쪽에선 라크시스가 말없이 걷고 있었다. 얽혀있던 손가락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빠져나갔다. 뜨거워하던 건 또 어떻게 안 거람. 고맙다는 인사라도 하려던 참이었다.

    “이, 이봐! 너희들 아까 끌려온 사람들 아닌가?”

    창살 속 어둠에서 불쑥 인영이 튀어나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