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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법사의 운명을 손에 넣어버렸다 (26)화 (26/292)
  • 26화 

    게다가 마력이 담긴 물건들이 일 층부터 삼 층까지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 마법사가 아닌 내게도 바깥과는 공기의 무게부터 다르게 느껴지는 걸 보니 라크시스는 어지간히 힘들 터였다.

    “이게 있잖아요?”

    내가 씨익 웃으며 가방에서 자그마한 기계를 꺼냈다. 요르문의 마류 탐지기였다.

    이걸로 인어의 눈물인지 뭔지 하는 보석이 마류 이상 현상의 원인인 걸 찾아냈다지?

    “또 언제 챙겨오셨습니까?”

    “전 마법사가 아니니까요. 요르문한테 달라고 했죠.”

    가져가려고 하니까 요르문이 성능을 시험해 본다며 내게 들이대긴 했지만.

    요르문의 연구실에서 가재찜처럼 익어버릴 뻔했을 때 봤었던 마정석의 흰 빛이 이 마류 탐지기에도 떠올랐지.

    ‘괘씸한 녀석.’

    라크시스가 손뼉을 맞부딪히며 환기했다.

    “좋습니다. 그럼 이제 오토마톤을 찾으러 가볼까요?”

    어디서 가져온 건지 글레이셜 홀의 전시 안내도를 들고 있다. 온실과 궁의 경계에 있는 사방형의 거대한 건물. 중앙 로비의 이백 년 넘은 느티나무 아래에서 라크시스와 함께 안내도를 펼쳤다.

    안내도가 너무 작은걸. 조그마한 책자를 같이 들여다보려니 불편하다. 라크시스에게 안내도 하나만 더 가져다 달랬다가 곧바로 퇴짜를 맞았다.

    자기가 무슨 룸서비스인 줄 아냐며. 결국 시아와 라크시스는 넓은 홀을 두고 바짝 붙어서 안내도를 열심히 살폈다. 어깨가 자연스럽게 맞닿아 버린 것도 알아채지 못한 채였다.

    “어디 보자.”

    A1, A2, B7, G15……. 한참을 손가락으로 훑어가다가 시아는 마침내 발견했다.

    “여기 있네요. 오토마톤관.”

    * * *

    “기괴한데요.”

    오토마톤이 이런 거였어? 드레스 차림의 바이올린을 든 여인, 그 옆에서 마찬가지로 화려하게 차려입고 플루트를 입에 문 남자. 실제 사람 크기에 묘하게 얼굴까지 사실적인 기계 인형들은 한데 모아놓고 나니 여간 무서운 게 아니었다. 그게 한둘이 아니라서 더 문제였고.

    게다가 하얗게 분칠해 둔 피부 밑으로 나사 자국까지 언뜻 보인다. 눈이라도 마주칠까 무섭군. 한밤중에 고장 난 오르골 소리까지 곁들이면 공포 체험용으로 딱이다.

    너무 사실적으로 만들어놔서 무서운 걸지도. 밝을 때 와서 다행이었다.

    “귀족들의 취향이죠. 사람과 최대한 가까워 보일수록 인기가 많습니다.”

    라크시스가 냉소적으로 대꾸했다. 그다지 집에 두고 싶은 인상은 아닌데. 밤에 물이라도 마시러 가다가 마주치면 심약한 노인은 까무러칠 것이 분명하다.

    “라크시스도 이런 거 갖고 있어요?”

    “아뇨. 기괴하잖아요.”

    꿈에 나올까 봐 무섭군요.

    라크시스도 그녀와 비슷한 기분인지 상당히 질색하는 눈으로 오토마톤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걸 왜 집에 두고 싶어 할까요.”

    “그러면 그쪽 시대에선 귀족들이 뭘 수집합니까?”

    그러게. 적어도 오토마톤은 아닌데.

    “음. 돈이요?”

    그 말에 라크시스의 한쪽 눈썹이 삐딱하게 올라갔다.

    “품위가 떨어지는군요.”

    “정확히 말하면 무역회사나 제철 회사, 스포츠 구단 같은 걸 가지고 있죠. 아님 부동산이나.”

    시아가 말한 돈의 실체를 들은 라크시스는 더는 되묻지 않았다. 어디 가나 상류사회는 비슷하군. 아르카나의 로튼데일 상점가를 모조리 소유한 그로서는 할 말이 없는 대답이었다.

    딱히 대화를 이어나갈 생각이 없었는지 시아는 어느새 테마에 맞게 진열해 둔 수백의 오토마톤들을 가까이서 구경하고 있었다.

    오페라관, 카페테리아관, 마도학자관, 여객 열차관, 호화 유람선관. 배경까지 그럴싸하게 만들어 어떤 건 쟁반을 들고 있고 어떤 건 조종간을 잡고 있도록 해놨다. 시아는 옷마다 달린 명찰과 설명을 유심히 살피며 어느새 반쯤은 관람객이 되어있었다.

    “그래도 밝은 데서 잘 보면 또 안 무서운 것 같기도 하고.”

    기괴하다면서 또 열심히 본다. 처음 봤을 때도 그랬지. 아르카나 도심지도 그렇고 우편국에서도 그렇고. 의욕만큼이나 호기심이 많은 편인가. 라크시스는 속에서 슬그머니 고개를 드는 장난기를 방출했다.

    “와악!”

    시아는 질겁하며 튀어 올랐다. 멈춰있던 종업원 오토마톤의 손가락이 자신의 등을 톡 건드렸기 때문이었다.

    “아, 진짜!”

    뒤돌아보니 동력이 들어와 파랗게 빛나는 오토마톤의 시선 뒤에서 라크시스가 장갑 낀 손을 말아쥐고 웃고 있었다.

    “반응 좋다니까요. 놀라기도 잘 놀라고.”

    “그래서 놀리는 거예요?”

    심장 떨어질 뻔했다니까, 이 남자가!

    “당신 친구들도 당신 놀리는 거 좋아하죠?”

    아니라고 소리치고 싶은데 정곡을 찔려서 할 말이 없었다.

    마리도 카트린도 날 놀리는 걸 그렇게나 좋아했는데. 약이 바짝 올라 뭐라고 하면 자기들끼리 재밌다고 낄낄거리면서 뒤늦게 안아주곤 했지. 나 없으면 무슨 재미로 사냐며.

    라크시스도 딱 그쪽이었다.

    “역시 사람 보는 눈은 다 똑같다니까.”

    “말 돌리지 말아요!”

    발끈한 시아의 모습에 라크시스는 저절로 웃음이 났다. 수술할 때와는 다른 의미로 빛나는 눈이 잔뜩 심통 나 세모꼴이 되어있다. 얼굴이 새빨개졌잖아. 키도 큰 여자가 조그마한 고양이처럼 삐져버린 게.

    “미안해요. 하지만 어쩌겠어요. 당신 반응이…….”

    반응이?

    순간 머리에 떠오른 단어가 당황스럽다. 그녀의 반응이 어떻게 느껴진다고? 생각대로 말을 뱉었다간 돌이킬 수 없이 어색해질 것이 분명하다.

    라크시스는 곧장 입을 가렸다. 이 또한 무의식적으로 한 행동이었다. 백지에 잘못 떨어진 잉크 자국 같은 감상 위로 재빨리 다른 생각을 덧칠해 버렸다.

    “…아닙니다. 장난쳐서 미안해요, 시아.”

    그사이 화가 가라앉았는지 시아는 팔짱을 낀 삐딱한 자세로 서있었다. 라크시스 본인이 자주 하는 자세로 말이다.

    “정말 미안하면 같이 미스터 비렌체의 오토마톤을 찾아줄래요?”

    저거 나 따라 한 거 맞지? 하지만 이번엔 놀릴 수가 없었다. 또다시 그렇게 장난을 치다간 시아가 정말로 화를 낼 것 같았으니까.

    “…알겠습니다.”

    애써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힌 두 사람은 진지하게 오토마톤들을 살폈다. 메이슨 비렌체가 말해준 정보는 무용수 오토마톤이 오토마톤관에 전시되어 있다는 것이 전부였기에 두 사람은 극장과 무대를 모티브로 한 대여섯 개의 전시대를 꼼꼼히 둘러보았다.

    “이건 세인트 밀레이나 돔이네요.”

    “나름 잘 만들었군요.”

    수도 모르간의 랜드마크 중 하나로 불리는 대극장 세인트 밀레이나 돔이었다. 밀레이나 돔의 상징과도 같은 둥근 크리스탈 천장을 본떠 만든 구조물 밑으로 메이슨 비렌체의 이름을 달고 있는 무용수 오토마톤이 웅장한 대형을 이루고 있었다.

    ‘이걸 전부 만든 거야?’

    무용수 오토마톤이 하나인 줄 알았더니. 단막극 하나는 거뜬히 해내고도 남을 수였다. 이 중 하나에 광룡의 봉인이 있다는 말인데.

    “여럿이라는 소리는 못 들었는데.”

    “그래도 이젠 이것들만 확인하면 되니까요.”

    라크시스는 여전히 꺼리는 눈빛으로 무용수 오토마톤을 하나씩 만져보기 시작했다. 이쪽도 반대편에서부터 마류 탐지기를 꺼내 들고 마력을 확인해 나갔다. 동력원 자체를 감지해서 바늘이 찔끔찔끔 움직이는 것을 빼면 아직까진 별 반응이 없다.

    글레이셜 홀 개장 당일이 되고 동력이 공급되면 이 오토마톤들이 모두 춤을 추기 시작하겠지. 살짝 무서운 외형과는 별개로 궁금해지긴 했다.

    박람회는 내일부터니까 광룡의 봉인을 찾고 나면 남는 시간엔 글레이셜 홀이나 둘러볼까. 그런 생각을 하던 참이었다.

    “또 그런다, 또!”

    오토마톤의 딱딱한 손가락이 또 등을 콕콕 찔렀다.

    홱 뒤돌아 라크시스를 바라봤는데.

    “이번엔 저 아닙니다만.”

    뭐?

    라크시스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무고하다는 걸 증명하기라도 하는 듯 두 손을 어깨높이로 펼쳐 들면서 말이다.

    그럼 여기 서있는 건 뭔데.

    하얀 빛무리에 둘러싸인 무용수 오토마톤 하나가 손가락을 든 채 그녀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텅 빈 눈에서 빛나는 창백한 안광이 기이하다. 나사로 고정된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오싹하다. 소름이 등줄기를 쫙 관통했다.

    고장 난 것처럼 관절을 끼긱 꺾으며 오토마톤이 천천히 발을 놀린다. 입력된 춤을 추기 시작한 인형의 몸짓이 믿을 수 없이 섬세하다.

    동시에 손에 쥐고 있던 요르문의 마류 탐지기에서 맹렬한 진동이 느껴졌다. 터질 듯이 흔들리는 계기판 바늘, 마정석에 꽉 들어찬 하얀 빛.

    “이거…….”

    “마류 이상 현상이 시작됐군요.”

    대형을 이루고 있던 오토마톤들이 좌우로 조금씩 벌어진다. 메이슨의 오토마톤뿐 아니라 오토마톤관 전체의 기계들이 녹슨 부품에서 나는 소리를 내며 천천히 입력된 동작을 시작했다.

    기이한 장관이다. 죽어있던 세계에 신이 숨결을 불어 넣은 것만 같았다. 모르간을 본떠 만든 또 하나의 모르간. 하지만 그곳에서 움직이는 것들은 표정 없이 사람을 흉내 내는 인형들뿐이다. 사람을 닮았으나 사람이 아닌 것들이 돌아다니는 가운데 유일하게 숨을 쉬고 있는 존재는 오직 시아와 라크시스 둘뿐.

    글레이셜 홀이 잠에서 깨어나고 있었다.

    저 멀리 군무를 추고 있는 무용수의 중심에서 장식이 화려한 주역이 왈츠를 춘다. 등에 달린 태엽이 마치 요정의 날개처럼 돌아갔다.

    마법사가 아닌 그녀의 눈에도 선명하게 보였다.

    이곳의 모든 오토마톤을 움직이고 있는 새하얀 마력이 바로 저기서 흘러나오고 있다는 것을.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라크. 우리 찾은 것 같아요.”

    그리고 라크시스도 시아와 같은 것을 보고 있었다.

    “광룡의 봉인이군요.”

    * * *

    젠장. 이게 뭐야.

    봉인을 찾기만 하면 금방 손에 넣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시아와 라크시스는 주말의 아르카나 인파보다 더한 수의 오토마톤 틈바구니에서 꼼짝도 못 하고 있었다.

    광룡의 봉인이 박힌 오토마톤에 가까이 가지 못하게 하려는 듯 다른 오토마톤들이 두 사람의 주위에 잔뜩 몰려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정도면 오토마톤이 아니라 영화에 나오던 생각하는 로봇 아니야?’

    “라크. 여기서는 순간이동 못하나요?”

    “그러고 싶지만 마류가 엉망으로 흘러서 좌표 고정이 잘 안 되는군요.”

    “고대 마법사는 만능 아니었어요?”

    “광룡의 봉인은 무려 광룡의 마력을 억누르고 있죠. 그 정도 마력을 억누르는 마법은 감히 저도 어쩔 수 없는 거라.”

    결국 못한다는 소리잖아. 라크시스는 간만에 진심으로 곤란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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