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1화 (71/114)
  • ❖ ❖ ❖

    사람들은 소중한 이를 위해 가장 값진 것을 쉽게 포기해 버리고는 한다.

    의장은 가족을 지키기 위해 에드문드와 싸워 볼 의지를 내버린 듯 보였다.

    뤼드빅 렉스는 비비안느 영애의 안위를 위해 제 머릿속에 있는 자료를 유출하지 않았다.

    이길 수도 있는 싸움이었으나 그들은 그 작은 가능성을 믿지 않고 최악의 경우를 가정한 것이다.

    의장은 싸움에서 이기더라도 가족이 암흑가의 복수를 당할까 봐 평생을 숨죽이며 살아야 할 경우, 언론에 제 이름이 오르내리며 정치 생명이 끝날 경우를 내다봤으리라. 그런 불명예를 당하느니 조용히 사라지겠다는 결심을 했을 테고.

    뤼드빅은 비비안느 영애가 암흑가와 연관되었다는 혐의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상황을 장담 받지 못하게 되자, 깔끔히 그녀가 더 안전할 수 있는 쪽을 택했다.

    그 모든 과정을 곁에서 지켜본 윌슨 경사는 조사실에서 무표정하게 시계를 바라보았다.

    바깥에서 노크 소리가 들리고 경장이 문을 열어 비비안느를 들였다.

    이틀 사이에 비비안느 메르고빌 영애는 매우 수척해져 있었다. 하지만 처음 봤을 때처럼 눈빛만큼은 예리했고, 총기가 흐르고 있었다.

    그녀의 뒤를 메르고빌가의 변호사가 뒤따랐다.

    비비안느가 자리에 앉자 윌슨 경사가 입을 떼었다.

    “…콜먼 거리에서 랭스턴 리무진이 폭발했을 때 마지막으로 뵈었었는데, 이렇게 다시 뵙게 되는군요. 비비안느 영애.”

    “네. 그렇네요.”

    대답하는 비비안느의 얼굴은 완벽히 무표정했다.

    윌슨 경사는 말했다.

    “그때 말하지 않았습니까. 레이디께서는 정말 위험한 사람과 얽히게 된 거라고.”

    콜트 백작을 지칭하는 것이리라.

    윌슨 경사의 조언을 빙자한 훈수가 꽤 사적이라고 생각했는지 메르고빌가 변호사가 비비안느 쪽을 흘긋 바라보았지만, 그녀는 차분히 입을 열었다.

    “그러셨죠.”

    “…….”

    “새겨들어 둘 걸 그랬네요.”

    “하지만 그 사건이 역설적으로 비비안느 영애를 구했습니다.”

    “…….”

    “영애가 탄 리무진이 폭발한 걸 근거로 영애는 암흑가와 무관하다 주장하시면 될 테니까요. 그간 약혼자에게 협박을 당하고 있었다고. 오늘 출석 요구를 드린 것도 형식적인 절차일 뿐이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윌슨 경사는 사무적인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살렌너 호텔이나 마권업소, 카지노도 렉스 재단하에 등기되어 있고, 그걸 실질적으로 경영한 것도 렉스가라는 증거가 명백하니 영애가 계약서 몇 개에 대신 서명했다 해서 큰 문제는 없을 거라는 걸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

    “가셔도 좋습니다.”

    윌슨 경사는 그 말을 들은 비비안느의 표정이 어떨지 궁금했다.

    후련해할까.

    기뻐할까.

    렉스가와의 질긴 연에서 해방되었으니 자유롭다는 낯을 할까.

    답은 전부 아니었다.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제 약혼자의 접견 신청을 하고 싶은데요.”

    “어제부로 뤼드빅 렉스에 대한 구속 영장이 발부되어 유치장이 아니라 구치소에 가셔야 할 겁니다. 그곳에서 한 발언은 모두 녹음될 테니 불리한 진술을 하게 되었을 때 법정에서 증거로 쓰일 수 있다는 사실만 알고 계십시오.”

    “네. 참고할게요.”

    그녀는 대답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면 판결이 난 뒤에 면회를 신청하는 게 좋겠군요.”

    차가운 목소리는 매정하게 느껴졌다.

    괜히 끼어들어 백작의 일을 망칠 생각까지는 없어 보였다.

    ‘그러면 이렇게 정리되는 건가.’

    경시청 측이 뤼드빅을 암흑가 보스랍시고 잡아 바쳤으니, 수상이 경시청의 부패를 감독하고 힘을 나눠 가질 부차적인 기관의 필요성을 주장해 나갈 정당성이 사라질 것이다.

    이 일로 여당에 대한 지지율이 높아질 테니 수상도 물론 그들 덕을 본다.

    그렇게 정리될 것 같은 일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