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도 나랑 맞춰 볼래요?-9화 (9/110)
  • 02.

    “내게 많은 것을 알려준 사람이 올리비아잖아. 은밀한 일까지 모두.”

    “그렇죠.”

    “남녀 간의 성생활에 대해서도 알려줬지. 부부간에는 궁합이 중요하다는 사실도 말이야.”

    찻잔을 들고 있는 올리비아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리첼의 말에 잠시 동요가 일어난 듯 보였다.

    “네. 맞아요. 그래서 물어보고 싶은 건 무언가요? 빙빙 돌리지 말고 말해도 괜찮아요.”

    애써 미소를 지으며 올리비아가 물었다.

    “내 앞에 궁합이 잘 맞는 남자가 둘이나 나타났어.”

    “축하…드립니다? 둘이라니. 경사군요. 혹시 공작님께 목걸이를 받으셨나요?”

    역시나 그녀는 목걸이에 대해 알고 있었다. 덤덤한 말과 달리 올리비아의 눈동자는 놀란 듯 미묘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응.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야. 두 사람 중 누구에게 다가가야 하나. 아니면 두 사람 모두에게 다가가야 하나.”

    리첼의 말이 끝나자마자 탁자 위에 ‘탁’하고 세차게 찻잔을 내려놓는 소리가 들렸다.

    “당연히 둘 중 한 명만 골라야죠. 느낌 가는 사람을 선택하세요. 배우자는 평생 한 명이에요.”

    담담하게 말하던 올리비아가 잠시 멈칫하더니 갑자기 흥분한 듯 목소리를 높였다.

    “설마 도련님처럼 가벼운 만남을 원하는 건 아니겠죠? 제가 누누이 설명하지 않았습니까. 바람둥이는 되지 말고 바람둥이도 피하라고요.”

    조금은 격양된 목소리로 올리비아가 소리쳤다.

    리첼이 바람둥이에 대해 더욱 거부감이 든 건 루이스 때문도 있지만 올리비아 때문이기도 했다.

    예전 바람둥이에게 잘못 걸려 마음고생만 한 그녀가 리첼에게 단단히 세뇌해 왔다. 바람둥이는 무조건 피하라고 말이다.

    “그게… 한 사람은 바람둥이라고 소문난 남자야.”

    뜻밖의 말에 올리비아가 놀란 눈치였으나 내색하지 않으려는 듯 다시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결정되었군요. 다른 한 분을 선택하면 되겠지요. 그분도 설마 바람둥이는 아니겠죠?”

    “다른 한 사람은 신전에서 우연히 마주친 사제야. 비록 견습이긴 하지만.”

    “….”

    갑자기 방 안에 무거운 침묵이 이어졌다. 정답을 원하는 심정으로 올리비아를 바라보았지만 그녀는 자꾸만 리첼의 시선을 피하려 했다.

    “흠흠. 둘 다 포기하는 건 어떨지요.”

    짧은 적막을 깨는 올리비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왜? 부부생활엔 궁합이 중요하다고 했잖아.”

    둘 다 포기할 생각도 있었지만, 올리비아의 입에서 둘 다 포기하라는 말이 나오니 리첼은 괜히 울컥했다.

    “그건 사람마다 달라요. 맞지 않아도 잘 사는 부부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친구 같은 부부. 서로를 신뢰하는 부부. 얼마나 좋아요?”

    올리비아는 갑자기 예전에 자신이 했던 말을 바꿔버렸다.

    그녀가 생각해도 바람둥이와 견습 사제 둘 다 이상해 보였던 모양이다.

    “왜 그래야 해? 나도 알고 싶은데?”

    하지만 리첼은 올리비아의 애매한 답보단 명확한 선택을 원했다. 둘 중 누구 하나라도 선택해 주길 바랐다.

    “그렇다면 전 추천하진 않지만, 그 바람둥이 남성의 마음을 리첼 님께서 꽉 잡는 수밖에요. 하지만 공자님의 행실에 거부감을 느꼈던 리첼 님의 마음이 일단 그에게 향할지가 의문이군요.”

    리첼의 마음을 잘 아는 올리비아가 그녀의 마음을 대변하듯 은근히 펠릭스에 대해 탐탁지 않게 말했다.

    “사제님은 역시 안 되겠지? 그런데 사교계에서 많이 언급되는 남성 중 하나야. 올리비아도 들어본 적 있지? 스펜서 가문의 차남 카일 님이셔.”

    사제에 대한 정보도 알려야 할 것 같아서 흘리듯 그의 신상을 올리비아에게 밝혔다.

    “어머? 저도 들어본 적 있는 분이시네요. 많은 여성들의 애간장을 녹인다는 그분이죠?”

    리첼이 고개를 끄덕이자 갑자기 올리비아의 무덤덤한 눈빛이 살짝 반짝거리는 듯 보였다.

    갑자기 가까이 오라는 듯 손짓했고, 리첼이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자 주변에 있는 하녀의 눈치를 한번 보더니 올리비아가 그녀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그렇다면 다른 영애들과 싸워서 쟁취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는걸요? 저도 본 적 있는데 정말 멋지던데요? 혼자 두긴 아깝긴 하네요. 아직 견습이잖아요. 기회는 아직 있으니 몸으로 유혹해 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군요.”

    “뭐?”

    손바닥 뒤집듯 쉽게 말을 바꿨지만 별일 아니라는 듯 올리비아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가씨도 이제 어른이 다 되셨군요. 그런 상담도 하고 말이에요. 그런데 말이죠. 혼자서 끙끙대며 고민하기 전에 먼저 양쪽 다 친해져 보는 건 어떨까요? 사람은 직접 겪어봐야 안답니다. 궁합도 중요하지만 성격도 중요하니까요.”

    “성격이라….”

    방 밖으로 나가는 올리비아의 모습을 바라보며 리첼이 중얼거렸다.

    솔직히 펠릭스는 첫인상과 두 번째 인상이 최악이었다. 다른 여인들에게 추파를 던지는 모습을 두 눈으로 보기도 하고 오라버니의 과거의 모습과 겹쳐 보이기까지 하니 좋아 보일 수는 없었다.

    두 사람에 대해 잘 알지는 못했지만 펠릭스에게 선입견이 생긴 리첼이 카일 사제에게 마음이 더 쏠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래. 일단 카일 사제와 가까워지자.’

    올리비아의 말대로 일단 친분을 쌓는 것이 먼저였다. 그래서 사제와 먼저 친해지자고 결심했다.

    하지만 신전에 간다고 해도 그를 쉽게 만날 순 없었다. 많은 여인들이 그를 꼬시러 갔기에 사제는 웬만하면 다른 사람과의 접촉을 피하고 있다는 소문도 돌고 있었다. 일전에 마주친 건 우연일 뿐이었다.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이럴 땐 권력을 이용할 수밖에.”

    리첼이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다음날 날이 밝자마자 리첼은 황녀 밀리아를 찾아갔다.

    황녀가 받는 수업엔 신학이 있었고, 매번 신전에서 추천한 사람이 선생님으로 온다고 들었다.

    리첼이 그녀를 찾은 건 황녀가 지명한 성직자가 그녀의 선생으로 올 수도 있다는 사실을 떠올려서였다.

    레녹스 공작이 황제의 동생이기에 황녀는 리첼과 친했다. 핏줄이 이어져서인지 몰라도 성격도 비슷하고 잘 맞기도 한, 뭐든 부탁하면 들어줄 수 있는 편한 사이였다.

    “황녀님.”

    “둘이 있을 땐 편하게 불러.”

    밀리아는 리첼이 격식 차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밀리아 언니. 부탁이 있어요.”

    리첼은 황녀에게 카일 사제와 한 번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

    “오호라. 너도 그 사제님께 관심이 있었니? 네 오랜 짝사랑은 이제 완전히 포기하기로 결심이라도 선 거야?”

    그녀의 기나긴 짝사랑을 알았기에 밀리아가 물었다.

    “잊기 위해 다른 남자들을 탐색 중이라고 생각해 주세요.”

    미련이 남지 않는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이었다.

    “네가 이제 다른 남자에게 흥미를 갖기 시작했다니…. 좋은 소식인데? 좋아. 내가 도와줄게. 그런데 하필이면 카일 사제야? 정식 사제가 되면 결혼도 하지 못하잖아.”

    밀리아는 벙글거리면서도 의아한 듯 물었다.

    “그… 그게. 사정이 있어서.”

    리첼은 망설였다. 그녀에게 목걸이의 존재를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지만 밀리아의 맑고 초롱초롱한 눈빛에 지고 말았다.

    밀리아는 순순히 리첼의 편을 들어줄 사람이었다.

    아드리안을 짝사랑하는 것을 알고 응원해 준 것도 그녀였고, 차였다는 것을 알았을 때도 위로해 준 건 그녀였다. 리첼은 잠시 작게 숨을 내쉬곤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그녀에게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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