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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나랑 맞춰 볼래요?-3화 (3/110)
  • 01.

    “네 맞아요. 베르 신전에 있는 카일 사제님이요. 룩스 대륙에서 오신 지 오래되지 않았기에 아직 견습 신분이지만 벌써 앞길이 창창하다는 소문이 파다해요.”

    “저도 들었어요! 젊은 나이에 강한 성력이 깃들어 있다나 뭐라나. 소문으로 듣기엔 외모가 그렇게나 아름답다고 하던데요?”

    “저도 들었어요. 아드리안 님은 이목구비가 자기주장을 강하게 하고 있다면, 카일 님은 피부도 곱고 얼굴도 곱상하다고.”

    “게다가 스펜서 후작 가문 차남이잖아요. 성격도 얼마나 온화하고 착하고 부드럽던지. 그렇게 완벽한 사람은 본 적이 없어요. 성직자라서 아까울 따름이죠.”

    영애들은 아쉬운 듯 제각기 한숨을 내쉬며 말을 했다.

    “아직 견습으로 들어갔을 뿐이잖아요. 사제가 되기 전이니 아직 희망은 있지 않나요? 그래서 지금 다들 눈치 싸움하고 있잖아요. 누가 먼저 그 남자의 사제복을 벗길 수 있을지 말이에요.”

    “하지만 많은 영애들이 다가갔지만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다면서요?”

    “그게 그의 매력 아닐까요? 게다가 신 대신 나를 선택해서 사제가 되는 걸 포기한다면 얼마나 낭만적이겠어요?”

    ‘사제를 꼬시겠다는 얘길 아무렇지도 않게 얘기하다니. 얼마나 남자가 부족하면 성직자를 노리는 거야?’

    대화를 들을수록 어이가 없었기에 리첼의 입에서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동시에 일단 그들의 관심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간 것에 안심했다. 질문하지 말라고 눈을 부릅뜬 채 인상을 쓰며 눈치를 준 효과가 있던 모양이다.

    아드리안과 자신의 관계를 직접적으로 물어볼까 봐 겁이 났다. 그와는 그저 친구 사이일 뿐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자신이 생각해도 어이없고 비참한, 복잡 미묘한 감정이었다.

    하필이면 생일날 차이는 기분이 들다니. 아버지가 조금은 원망스럽기도 했다.

    ‘이럴 땐 술로 마음을 달랠 수밖에.’

    오늘따라 술이 달게만 느껴졌다. 평소보다 과하게 마셨기에 어느새 옆에 다가온 아드리안이 리첼을 말렸지만 그의 손을 뿌리쳤다. 그리고 나선 보란 듯이 손에 들고 있는 술잔의 술을 전부 마셨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마시고 죽자란 생각으로 끓어오르는 슬픈 마음을 술로 달래고자 했다.

    하지만 너무 과하게 마셨던 모양이다. 어느 순간 현기증과 함께 몸이 살짝 비틀거렸다.

    “괜찮아?”

    리첼이 지금 할 수 있는 건 자신을 걱정해주는 아드리안의 품속으로 비틀거리는 척하며 살며시 안기는 것, 그것밖에 없었다.

    “아, 아니. 안 괜찮은 것 같아….”

    다른 영애들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지만 괜찮았다.

    ‘뭐 어때? 오늘은 나를 위한 날인데. 이런 날 아니면 언제 또 아드리안의 품에 안겨볼 수가 있겠어? 오늘이 마지막이니 마음 정리하기 전에 실컷 그의 품을 즐기는 거야.’

    리첼은 아드리안의 품 안에서 마음을 진정시키는 그의 향기로운 체향을 느꼈다.

    ‘너무 과했나?’

    하지만 너무 많이 마셨는지 스르륵 눈이 감기는 것만 같았다.

    이 순간을 잠시나마 즐겨야 하건만 눈치 없는 눈꺼풀이 자꾸 무겁게만 느껴졌다.

    정신을 잃지 않으려고 몇 번이나 눈을 깜빡여도 소용이 없자 눈을 비비려 했다. 그 순간 리첼은 그만 아드리안의 품 안에서 정신을 잃고 말았다.

    “음냐….”

    입을 쩝쩝거리며 리첼은 갑자기 눈을 번쩍 떴다.

    벌떡 일어나 주위를 바라보니 그곳은 연회 중간에 쉴 수 있도록 마련된 휴식 공간이었다.

    머리가 지끈거려 손으로 이마를 감싸며 시선을 옆으로 돌리자 걱정스러운 듯 바라보는 아드리안의 눈빛이 느껴졌다.

    “일어났군. 괜찮아?”

    그는 일어나려는 리첼을 부축해준 후 탁자 위에 마련된 물이 담긴 잔을 건네주었다.

    리첼은 그제야 자신이 갈증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물을 벌컥벌컥 마시니 겨우 정신을 차릴 것 같았다.

    “나… 얼마나 잤어?”

    “다행히 얼마 되진 않았어.”

    자신의 생일을 기념한 연회에서 술에 취해 자빠진 주인공이라니. 개망신이 따로 없었다.

    창피하다고 생각이 들자 리첼은 제 손으로 양 볼을 감쌌다. 아직 취기가 남아있었는지 손바닥 끝에선 옅은 열기가 느껴졌다.

    “다들 춤추느라 바빠서 네게 신경 쓰지 않을 거야.”

    그녀의 생각을 읽은 아드리안이 위로의 말을 건넸다.

    마음이 찡해진 리첼은 두 손으로 입을 막으며 아드리안을 바라보았다.

    ‘내 남자도 아니면서 이렇게 멋있어도 돼?’

    신께서도 무심하시지. 다른 여자의 남자가 될 아드리안을 상상하자 마음 한구석이 씁쓸했다.

    아쉬움을 느끼며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던 그때였다.

    “!”

    투명해야 할 목걸이의 보석이 붉게 변했다.

    “여기 너 말고 이곳에 누가 들어왔었어?”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놀란 리첼은 황급히 아드리안에게 물었다.

    정신을 잃은 후 아드리안 외에도 누군가 휴식 공간에 들어왔고, 그 남자로 인해 그녀의 목걸이 색이 변했다는 건데….

    “글쎄. 나도 방금 와서. 내가 잠시 나간 사이에 누군가 들어왔을 수도 있겠군. 여긴 누구나 들어올 수 있는 곳이잖아. 나는 잠시 레녹스 공작님께서 부르셔서 나갔었거든.”

    아버지는 이럴 때마저 도움이 되지 않았다.

    하필 쓰러져 있을 때 아드리안을 부르다니…. 아마도 리첼이 보이지 않아 찾으려고 불렀을 것이다.

    “혹시 지나가다 누가 왔다 갔는지도 보지 못했어?”

    “왜? 무슨 일인데?”

    아드리안이 의아한 듯 물었다.

    “아냐. 아무것도.”

    보아하니 그는 휴게실에 들어온 다른 누군가를 보지 못한 모양이었다.

    이 이상 물어봤자 원하는 대답이 나올 것 같지 않았다. 그럴 바엔 나가서 확인하는 수밖에 없었다.

    “나 좀 부축해줘.”

    그러자 아드리안이 손을 내밀었고 리첼은 아드리안의 도움을 받고 일어섰다.

    ‘대체 어떤 남자일까?’

    리첼의 심장이 점점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아드리안이 말릴 틈도 없이 리첼은 황급히 무도회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떤 남자가 그녀와 궁합이 맞을지 궁금했다.

    하지만 어느새 연회는 끝나는 분위기였고, 손님들은 다들 돌아가고 있었다.

    환한 미소로 그들을 배웅하던 레녹스 공작이 그녀를 발견하자 눈을 가늘게 떴다.

    리첼은 포식 동물에게 쫓기는 겁에 질린 어린 양처럼 긴장했다.

    “리첼. 넌… 대체….”

    공작은 너무 어이가 없어서 말이 나오질 않는 것 같았다.

    “죄송해요. 술과 분위기에 취해 제가 잠시 정신이 나갔었나 봐요. 왜 그랬지? 이럴 줄 정말 몰랐어요. 저 술 잘 마시는 거 알잖아요. 오늘은 평소보다 왜 이리 빨리 취했는지 저도 알 수가 없네요. 어쨌든 오늘 제가 주인공인데 본의 아니게 빠지다니. 정말 죄송해요.”

    리첼은 공작이 먼저 뭐라고 하기 전에 자진해서 자신의 잘못을 열거하기 시작했다. 아직 술이 덜 깼는지 말은 어수선했고 발음이 꼬였다.

    “저… 저… 말괄량이 같으니라고! 성인이 되면 조금은 성숙해질 줄 알았더니 아직도 그대로구나.”

    기가 막힌다는 듯 혀를 내두르던 공작은 이내 고개를 흔들며 어이없어하며 하핫, 하고 웃었다.

    리첼도 공작의 눈치를 보다 그냥 웃어버리고 말았다.

    “네게 잘 맞는 상대는 찾았느냐?”

    공작이 슬쩍 다가와 그녀의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일단 찾긴 했는데 누군지 모르겠습니다.’가 정확한 대답이지만 사실대로 말할 필요는 없었다.

    “아직이요.”

    “나는 네가 결혼 전에 많은 경험을 하고 싶다면 반대하지 않으마. 하지만 인생 선배로서 너와 잘 맞는 남자를 만나라고 추천하고 싶구나. 행복한 부부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면 더더욱 말이다.”

    아버지의 말에 괜스레 리첼의 얼굴이 붉어졌다.

    다들 몰래 감추려 하는데 대놓고 많은 경험을 해도 괜찮다니….

    “제가 알아서 할게요.”

    괜히 민망하기에 그녀는 당황한 걸 티 내지 않으려 무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고 보니 여러 여인들과 어울리던 오라버니 루이스는 현재 한 여인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과거를 떠올려 본다면 보고도 믿기지 않는 광경이었다.

    물론 바람기가 완전히 사라졌을 거라고 완전히 믿진 않았다. 언젠가 다시 다른 여인들에게 눈이 돌아가지 않을까 문득문득 생각하곤 했다.

    ‘대체 그게 뭐라고…. 목걸이가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리첼은 루이스의 변화를 인정하고 싶지 않으면서도 궁금하긴 했다.

    대체 어떻길래 오라버니가 그렇게 갑자기 변하고, 아버지는 자꾸 목걸이로 짝을 찾으라고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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