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안의 살림꾼-221화 (221/228)

던전 안의 살림꾼 외전 7화

외전 2. 그 악마의 하루

최근 ‘이너울’이라는 신분을 얻은 악마는 인간 세상을 만끽하고 있었다.

볼 것이 날리는 흙먼지뿐이던 과거와 달리, 이 세상은 온갖 자극적인 일들이 가득했다.

너울은 끝없이 자극을 갈구했다.

그런 악마가 인터넷 세상에 발을 들여놓게 된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너울은 최근, 유명 SNS에 계정을 만들었다.

SNS 속의 사람들을 구경하다 보니 어느새 그들의 일부가 되고 싶다는 욕망이 솟았기 때문이다.

“나도 인간들처럼 사진을 올려야겠어. 그럼 다른 인간들이 ‘좋아요’도 눌러 주고 댓글도 달아 주겠지?”

너울은 휴대전화를 쥐고 방을 오도도 뛰쳐나갔다. 적당한 피사체를 찾기 위해서였다.

나오자마자 작은 달팽이 하나가 발에 치였다. 오색이는 너울을 보자마자 안테나를 뻣뻣이 세우고 전속력으로 달렸다.

「끄허어어어억」

「비상! ㅂ;ㅣ상!」

자칭 ‘주택 관리자’인 이 미물은 요즘 들어 굉장히 너울을 멀리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나름 귀엽게 태워 달라고 조르고, 그랬던 것 같은데.’

너울은 다소 섭섭함을 느꼈다.

「끄허윽 끄흑ㅠ」

「본 주택 관리자, 노 맛! 노 맛!」

얼마 전에 인간들의 음식에 대해 조금 토론했을 뿐인데, 저랬다.

이런 건 관련자에게 물어보는 게 가장 확실하지 않겠는가?

……그날부터였을까, 오색이가 너울을 보면 반쯤 경계를 일으키기 시작한 게.

‘대답해 주기 싫으면 싫다고 말을 하든가.’

너울은 투덜거리며 도망가는 오색이의 모습을 찰칵, 사진으로 찍었다.

탁월한 사진 실력 덕분일까? 오색이는 흔들림 하나 없이 선명하게 찍혔다. 빠르게(?) 달리는 피사체를 찍었다고는 믿기지 않았다.

“역시, 나는 못 하는 게 없지. 완벽해!”

자화자찬하며 SNS 첫 게시글을 올렸다.

--------------

(사진)

#우리집 #달팽이_동거_달팽이가_요즘_나를_피한다_뭐가_문제지? #에스카르고

--------------

너울은 몇 발자국 정도 도망간 오색이를 향해 소리쳤다.

“야! 너는 정말 영광으로 알아야 해!”

「무엇을?」

「악마에게 먹힌 첫 주택 관리자가 될 것을?」

「끄허어엉.」

「이름, 이름, 집주인에게 이름!」

「복수! 복수!」

「ㅠ________ㅠ」

오색이는 텍스트적으로 엉엉 울며 희나를 향해 떠났다.

‘그건 안 되지.’

그런 의미에서, 너울은 선수를 치기로 했다. 요즘 부쩍 자신에게 거리 두기를 시전하는 오색이 무슨 말로 모함할지도 몰랐다.

“희나!”

너울은 2층으로 쿵쿵쿵 뛰어올라 갔다. 2층은 온전히 희나만의 공간으로 설계되어 있었으므로 희나는 쉬는 날에는 거기서 혼자만의 시간을……

“엄마야!”

2층 방문을 벌컥 열자마자 우당탕 소란이 일었다.

“뭐야, 둘이잖아?”

거실 소파에 희나가, 방바닥에는 강진현이 앉아 있었다.

이상하게도 희나의 얼굴은 빨갰고, 강진현이 앉은 자세도 어색했다. 방금 누가 밀쳐서 바닥으로 굴러떨어진 사람처럼 보였다고 해야 할까?

“흐음.”

심드렁하게 두 인간을 번갈아 보는데, 희나가 먼저 빽 소리쳤다.

“너울아! 2층 올라올 때는 노, 노크하고 올라오랬지!”

“죄송. 마음이 급해서.”

너울은 순순히 사과했다. 악마라서 양심도 별로 없었고, 자존심도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희나는 순순히 삐쭉 올라간 눈꼬리를 내렸다. 어린아이 모습을 하고 있어서 그런가, 희나는 너울에게 제법 너그러웠다.

“……그런데 급한 일이라니? 무슨 일 있어?”

희나는 부스스해진 머리카락을 정리하며 물었다.

“그게, 달팽이가 나를 모함할까 봐 걱정이 돼서 선수 치러 왔지.”

“응? 오색이가 왜 널 모함해?”

“요즘 걔가 날 별로 안 좋아하잖아. 방금도 아무 짓도 안 했는데 너한테 이르겠다고 엉엉 울면서 기어가기에.”

아무리 생각해도 억울했다. 입술을 불퉁 내미는데, 희나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헛웃음 쳤다.

“너, 얼마 전에 오색이를 잔뜩 겁줬잖아.”

“내가 걜 언제 겁줬어?”

“달팽이 앞에서 달팽이 요리 얘기를 물어본 건 겁준 게 아니야?”

“큰 달팽이 육질이 어떤지 궁금할 수도 있지!”

인간의 마음은 인간이 가장 잘 알듯 달팽이의 육질은 달팽이가 가장 잘 알 것 아닌가?

뻔뻔하기 그지없는 설명에 희나가 뒤통수를 짚었다.

“아이고, 골이야.”

“아무튼! 난 오늘 걔한테 잘못한 거 없다! 세상을 구한 위대한 악마에게 억지로 파프리카 먹일 생각일랑 하지 마!”

너울의 숙적, 파프리카 이야기가 나오자 희나의 눈빛이 희번덕 바뀌었다.

“골고루 먹어야 쑥쑥 크지. 편식은 나빠.”

“난 악마야! 어차피 이건 변신한 모습에 불과하다고. 쑥쑥 크는 데 필요한 건 파프리카가 아니라 마력이란 사실.”

“……편식쟁이를 내 집 안에 들이게 되다니. 믿을 수가 없네.”

어쩌다 보니 한참을 아웅다웅하게 됐다.

결국 대화를 듣다 못한 강진현이 끼어들었다.

“용건은 그것뿐인가?”

“어, 어어. 그렇긴 한데……. 맞다, 나 SNS 만들었어.”

“네가?”

“응. 가르쳐 줄까? 방금 글도 하나 올렸음.”

“그래. 가르쳐 줘.”

희나는 SNS를 해야 할 때 조심해야 할 일들에 관해 일장 연설을 한 후, 너울의 계정을 팔로우해 주었다.

‘아싸!’

너울은 팔로워가 0에서 1로 늘어난 게 기뻐 씨익 웃었다.

이곳 속담에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말이 있다고 했다.

‘아는 사람마다 팔로우해 달라고 하면 순식간에 숫자가 불어나겠는데?’

그러면서 팔로우된 희나의 계정을 슬쩍 들어가 보았는데, 이게 웬걸?

“뭐야? 희나 너 팔로워 수가 왜 이렇게 많아?”

딱히 SNS를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어서 자신과 수준이 비슷하리라 생각했는데, 팔로워 수가 무지막지했다.

너울의 눈이 번쩍 뜨였다.

“방법 좀 가르쳐 주라!”

“글쎄…….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

희나는 대답을 회피했지만, 결국 ‘파비안 앳킨스’라는 인간의 팔로우를 받아서 관심을 얻게 되었다고 털어놓았다.

“흠. 그럼 다음번에 미국 갈 때는 나도 데려가서 그 인간을 소개해 줘. 배울 점이 많아 보이네.”

너울은 자신의 SNS 스승으로 파비안 앳킨스를 점찍었다.

기어코 희나에게 약속을 받아 내고 배부른 고양이 표정을 짓고 있는데, 갑자기 몸이 허공에 붕 떴다.

“어엉?”

강진현이 너울의 양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번쩍 들어 올린 것이다.

“불청객은 이제 그만 퇴장할 시간이다, 꼬마 악마야.”

그는 무표정한 낯으로 너울을 2층 현관 역할을 하는 방문 앞에 내려놓았다.

“사고 쳐서 희나 씨 속 썩이지 말고. 앞으로는 꼭 노크하고 들어와라.”

그리고 몇 마디 훈계와 함께 문을 쾅 닫았다.

“……방금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순식간에 너울은 혼자가 됐다.

“나같이 작고 귀여운 악마를 이런 식으로 쫓아내다니, 믿을 수 없군. 차가운 심장을 가진 놈이야, 역시.”

너울은 잔뜩 투덜거리다 2층 방문을 찰칵, 사진 찍었다. 자신의 억울함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서였다.

--------------

(사진)

2층에는 바퀴벌레 한 쌍이 산다!

아무것도 모른 척해 준 걸 감사히 여기지도 못할망정? #염병커플

--------------

하소연하고 나니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여기 인간들은 꽤 똑똑하다니까.”

혼자 중얼거리기 싫다는 이유로 독백을 남에게 보여 줄 수 있는 창구를 만들다니.

너울은 가볍게 통통 튀어 걸었다.

목적지 없이 이리저리 배회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너울을 불렀다.

“꼬마 악마야! 뭐 하냐? 오늘은 TV 안 봐?”

늦잠을 푸지게 자고 일어난 희원이었다.

“오늘은 다른 거 하려고.”

“그래? 사고 치지 말고 얌전히 놀아라. 알았지?”

“왜 인간들은 나더러 다 사고 치지 말라고 하지? 내가 얼마나 얌전히 지냈는데!”

희원은 억울해하는 너울을 달랬다.

“그래, 그래. 며칠 전에 말도 없이 게임 과금을 350만 원어치 했지만, 그 정도는 큰 사고라고 칠 수는 없지.”

“그렇고말고. 너네 돈 많다며?”

“……우리가 말하는 건 돈 문제는 아니었지만, 뭐.”

어깨를 으쓱한 희원은 물을 묻혀 까치집인 머리를 정리하고 작업복으로 갈아입었다. 너울은 질린 듯 혀를 내밀었다.

“뭐야, 오늘 휴일이라면서? 넌 왜 또 일하러 가는데?”

“내 자식 키우는데 쉬는 날이 어딨냐?”

그러면서 오늘은 쌍둥이 던전으로 넘어갈 계획이라고 전했다.

“윽. 그 성격 더러운 달팽이 있는 곳?”

“반휘? 걔가 보기엔 차가워 보여도 은근히 마음씨 좋아. 오늘 내가 안 가면 외로워서 엉엉 울걸.”

“……흠. 생각은 자유라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방금 발언은 희원의 일방적인 착각 같았지만. 너울은 세상을 구한 악마답게 너그러이 그 사실을 모른 척해 주었다.

‘에휴. 나도 참, 속이 이렇게 넓어서야.’

너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나저나 넌 왜 자꾸 평행 세계로 넘어가려고 해? 지금 집 문 열어도 던전 택지는 나오잖아.”

희원은 몇 달 전부터 은근슬쩍 쌍둥이 평행 세계를 오가고 있었다.

너울의 질문에 희원이 어깨를 으쓱했다.

“거긴 오가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홈 스위트 홈’ 택지 넘어서도 농사지을 수 있거든. 그래서 훨씬 편해.”

던전 안의 살림꾼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