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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안의 살림꾼-197화 (197/228)
  • 던전 안의 살림꾼 197화

    강진현의 성화에 남매는 잔뜩 무장한 채로 문을 열었다.

    ‘그래도 우리 집인데 뭐 위험한 일이라도 있겠어?’

    생각하며 나무문을 열자마자 싱그러운 풀잎 향기가 코끝을 간지럽혔다.

    “와!”

    “엄청난데?”

    희나와 희원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탄성을 터뜨렸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믿을 수 없이 아름다웠다.

    강진현마저도 잠시 경계를 잊고 감탄할 정도였다.

    “낙원 같군요.”

    그래, 그의 말대로 숨겨진 정원은 몹시 아름답다 못해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온실 벽에서부터 까마득할 정도로 높다란 천장까지 모두 반투명한 유리로 이루어져 있었다.

    유리를 투과해 들어온 햇빛은 푸른 잎사귀에 반사되어 사방으로 흩어졌다.

    “반짝거리는 게 너무 예쁘다…….”

    희나는 햇빛을 반사하며 오색 찬연한 빛깔로 반짝거리는 거대한 나무 한 그루를 올려다보았다.

    나무는 온실 정원 한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었다. 밑동은 다 큰 성인 두 사람이 팔을 벌려 간신히 안을 수 있을 정도로 두꺼웠다.

    ‘거기다 보석처럼 빛나는 잎사귀라니.’

    이 나무야말로 이 정원의 주인공이라는 걸 한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희나는 한참 동안 정원의 풍광을 감상했다.

    그나마 오색이가 아니었다면 한참 동안 정원을 구경하느라 넋 놓은 채로 있었을 게 분명했다. 꿈처럼 아름다운 나무였다.

    「본 달팽이 등껍데기 vs. 저 나무 나뭇잎」

    「뭐가 더 오색찬란?」

    오색이는 희나의 발치를 뽈뽈 기어 다니며 자기 이름의 어원을 잊지 말라는 듯 어필했다. 하여튼 관심받기 좋아하는 질투쟁이 달팽이였다.

    “우리 오색이 등껍데기가 훨씬 신비롭고말고.”

    희나는 오색이가 원하는 답변을 내주며 둥가둥가 안아 주었다. 오색이의 안테나가 의기양양하게 흐느적거렸다.

    「나뭇잎<<<(넘사벽)<<<본 달팽이 등껍데기」

    “그럼 그럼. 우리 오색이가 최고로 예쁘지.”

    「ㅋㅎㅋㅎ」

    칭찬은 달팽이도 춤추게 했다…….

    둠칫둠칫 춤추는 오색이를 품에 안고 희나는 거대한 나무 가까이로 다가갔다.

    “보통 나무가 아니네. 생긴 것도 특이하긴 한데…… 이건 풍기는 느낌부터가 달라.”

    희원이 이리저리 나무를 살피며 강진현의 눈치를 보았다.

    “진현아, 이 나무 설명 창 좀 확인하고 싶은데, 손대도 돼?”

    “네. 괜찮을 듯합니다. 위험한 기운은 느껴지지 않는군요.”

    “그럼 저도 볼래요!”

    순순한 허락에 희나도 호다닥 달려가 나무줄기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일이 벌어진 건 한순간이었다.

    파아앗!

    남매의 손이 닿자마자 시야가 환한 빛으로 가득 찼다.

    “앗! 눈부셔!”

    희나는 팔을 들어 눈을 가렸다. 강진현은 희나를 낚아채듯 끌어안아 빛으로부터 보호하려 했다.

    그렇게 몇 초가 지났을까, 어느새 시신경을 찌르는 듯 밝디밝은 빛은 순식간에 잦아들었다.

    희나는 강진현의 품 안에서 눈알을 이리저리 굴렸다.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죠?”

    “글쎄요. 나무에서 빛이 뿜어져 나온 것 같은데.”

    “그나저나 진현 씨 몸은 괜찮아요? 저 대신 빛 막아 줬잖아요.”

    “전혀 문제없습니다. 희나 씨는 괜찮습니까? 어지러운 데는 없고요?”

    “괜찮아요.”

    희나와 강진현은 순식간에 둘만의 세상에 빠져 버렸다.

    희원은 그 모습이 제법 꼴값이라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옆구리 빈 사람은 억울해서 살겠나…….”

    바둑이가 희원을 꼭 안아 주었지만, 큰 위안은 되지 못했다.

    바둑이와의 포옹을 마친 희원이 나무가 있던 자리를 한 바퀴 둘러 걸었다.

    “나무가 사라졌어.”

    방금까지 일행을 압도하던 아름다운 나무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귀신에라도 홀린 듯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 집에 살며 희원은 온갖 희한한 일들을 겪은 터라, 그렇게 놀라진 않았다.

    어느새 희나도 희원의 곁에 서서 나무가 있던 자리를 살폈다.

    “신기루인가? 신기루라기엔 너무 생생했는데.”

    “글쎄……. 원래 이 자리에 나무가 있었다는 걸 보여 준 건 아닐까?”

    “나무 심고 기르는 퀘스트라도 뜨려나?”

    “설마. 그렇게 뻔하다고?”

    남매의 시큰둥한 대화도 잠시, 눈앞에 시스템 창이 반짝 떠올랐다.

    서당 개 운운하는 묘하게 자존심 건드리는 멘트와 함께 퀘스트 창이 떴다.

    <세계수 키우기(Legendary): 세계수는 어긋나고 뒤틀린 공간을 보수하며, 모든 공간의 근원이 됩니다.

    그러나 모종의 사건으로 인해 세계수는 산산조각 났고 세상에 혼란이 도래했습니다. 세계수를 원상 복구하여 세계 평화를 되찾아 보는 건 어떨까요?

    ▶ 필수 퀘스트 (0/3)

    - 세계수의 씨앗 조립하기

    - 세계수 키우기

    - 세계수 활성화

    ※ 퀘스트 거절 시 불이익: 세상에 혼란이 도래합니다.

    ※ 시간제한: 시간이 허락하는 한, 세상의 마지막이 오기 전까지.

    ※ 퀘스트 보상: 세계 평화! 시스템 간섭 없는 홀가분한 삶!

    ※ 퀘스트 실패 시 불이익: 세상에 혼란이 도래합니다.>

    희나는 눈앞에 뜬 퀘스트 창의 내용에 입을 떡 벌렸다.

    퀘스트 등급부터가 엄청났다.

    ‘레전더리라니. 이건 처음 듣는 등급인데.’

    그대로 직역하면 전설급이다.

    어쨌든 어감부터가 엄청난 걸 봐서 보통 퀘스트가 아니었다.

    “다들 퀘스트 창 뜬 거 보여요?”

    “보입니다. 세계수를 키우라는군요.”

    “보상이 뭐 이리 거창해? 세계 평화라니?”

    쑥덕거리는데, 시스템이 어김없이 희나와 일행을 재촉해 왔다.

    희나는 끙, 하고 머리카락을 빙빙 꼬았다.

    “퀘스트 내용이 심상치 않은데……. 퀘스트를 거절해도, 실패해도 세상에 혼란이 도래한다고?”

    “이건 우리가 그동안 공간을 안정화해 왔던 일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요? 그때도 나무를 심고 키우는 일을 했으니…….”

    강진현의 추측은 그럴싸했다. 희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에 동의했다.

    “하긴. 우리가 저지하곤 있지만, 공간 불안정도는 계속 높아지니까……. 언젠가는 문제가 생길 테고, 그걸 세상에 혼란이 벌어진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긴 해요.”

    “그러니까 이 퀘스트를 완료하면 던전이나, 몬스터와 관련한 좀 더 근본적인 무엇인가를 해결할 수 있다, 이 말인 거지? 꼭 마지막 미션인 것처럼 들린다.”

    “……그래, 고마워 시스템아.”

    일행은 머리를 모으고 의견을 나눴다.

    의논은 금방 끝났다.

    “이건 할 수밖에 없네.”

    수락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었다.

    희나는 평화로운 세상에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세상이 망하는 건 바라지 않았다.

    퀘스트를 수락하자마자 상세 내용이 떠올랐다.

    <……

    ▶ 필수 퀘스트 (0/3)

    - 세계수의 씨앗 조립하기

    ① 세계수의 씨앗을 구성할 재료를 마련합니다. (완료!)

    ② 세계수의 씨앗을 조립합니다.

    ……>

    의아하게도 필수 퀘스트 세부 내용 중 하나는 이미 완료되어 있었다.

    “뭐야, 우리 세계수 씨앗 어쩌고 재료 가지고 있어?”

    그것이 무엇인지는 가르쳐 주지 않았으므로 일행은 한참 동안 인벤토리를 뒤졌다.

    “……이거다! 공간의 조각의 조각!”

    희나는 ‘공간의 조각의 조각’을 꺼내 들었다. 홈 스위트 홈 레벨 업할 때마다 간혹 떨어지던 보상이었다.

    “대체 이걸 어디 쓰나 했는데, 이렇게 쓰네.”

    ‘언젠가 쓰일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로 변변찮던 설명도 조금 바뀌어 있었다.

    <공간의 조각의 조각(?): 잘 모아 조립하면 꽤 대단한 걸 만들 수 있을 듯하다. 예를 들면, 세계수의 씨앗 같은 것?>

    쓸데가 없어 인벤토리 구석에 쌓아 둔 공간의 조각의 조각은 열 개나 있었다.

    “어디 보자…….”

    이 ‘공간의 조각의 조각’이라는 괴상한 이름을 가진 재료를 잘 살펴보니, 실제로 입체 퍼즐 모양으로 맞출 수 있을 듯 보였다.

    희나는 손재주가 있는 편이었으므로, 몇 번의 시도 끝에 퍼즐 조각을 전부 끼워 맞출 수 있었다.

    마지막 한 피스를 맞추자마자, 조립한 조각이 황금빛으로 달아올랐다.

    곧바로 시스템 창이 알림을 띄웠다.

    * * *

    “으으으! 저놈의 성질머리!”

    온실 문을 쾅 닫으며 희원이 짜증스럽게 머리를 벅벅 긁었다.

    희나는 오빠를 힐끗 바라보았다. 희원의 눈 밑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 있었다. 극도의 스트레스가 원인이었다.

    “오늘은 또 왜, 무슨 일인데?”

    “식물 성장에 좋다는 모차르트 틀어 줬는데, 잎이 시들었어.”

    “왜?”

    “지루하대.”

    “아하…….”

    “그래서 음악 멈췄더니 줄기가 풀이 죽더라.”

    “싫다는 걸 멈췄는데도?”

    “그렇다고 노래를 안 듣고 싶은 건 아니라더라.”

    “허어…….”

    대체 어느 장단에 맞추어야 할지 모를 변덕이었다.

    그러니까, 이놈의 꼬마 세계수란 녀석은 까탈스럽기가 이루 말할 데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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