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안의 살림꾼-196화 (196/228)

던전 안의 살림꾼 196화

A급 탱커인 김수나와 B급 환각술사인 정수원에게만 조심스레 제안을 꺼내려던 때였다.

‘수나 씨는 경험 많은 헌터니까. 거기다 어른이고!’

그런데 이때, 권다혜와 권환웅이 벌컥 문을 따고 난입할 것은 무어란 말인가?

권다혜는 전황을 보는 눈을 가진 S급 버퍼답게 상황을 재빨리 파악했다.

‘사람들 몰래 뭐 하려는 거죠? 위험한 일 나서려고?’

그러면서 자기도 도울 수 있다며 나섰고, 권환웅 또한 누나를 따라 생떼를 썼다.

그러다 보니 권다혜와 권환웅의 보호자인 이정화와 권준용에게도 사실을 알릴 수밖에 없었고, 이렇게 팀이 짜여 버렸다.

세계 평화를 구할 사람들을 이렇게 주먹구구식으로 모아도 되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긴 했으나 어쩌겠는가?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댔다.

‘다들 믿음직스러운 데다, 능력도 괜찮으니까.’

우민아의 특별 훈련 기간을 거쳐, 그럴싸하게 팀 업 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기간이 걸리지 않았다.

16. 비밀의 정원과 농사꾼과 살림꾼

평일에는 나름 평범한 회사원, 주말에는 세계 평화를 지키는 비자발적 영웅(!)을 겸업하게 된 지 어언 석 달째.

벌써 2월이었다.

시스템 의지 때문인지, 행운 스탯 때문인지 공간의 조각은 어떤 방식으로든 끊임없이 희나의 손에 들어왔다.

덕분에 가장 신이 난 건 오색이다.

좋아하는 과금에, 주택 업그레이드까지!

「반짝반짝 작은 달팽이♬」

그렇지 않아도 자개처럼 신비로워 보이던 등껍데기가 별처럼 반짝반짝 빛났다.

물론 희나도 얻은 게 없는 건 아니었다.

‘세계 평화를 위해 모인 좀비 던전 크루’와 함께 몇 번의 전투를 치르는 사이, 희나의 랭크도 상당히 올랐다.

이제 희나도 어엿한 A랭크의 살림꾼이었다.

‘D급을 어디다 가져다 쓰냐……라고 착잡해하던 게 엊그제 일 같은데.’

희나는 쌀쌀해진 공기를 들이마셨다.

“조금 있으면 구정이네. 다 같이 만두 빚으면 재밌겠다.”

옹기종기 모여 앉아 이야기 나눌 걸 생각하니 벌써부터 즐거웠다.

‘진현 씨는 설 전에 돌아오겠지?’

몬스터들에게도 연말 마감이라는 게 존재하는 것일까? 지난 연말연시는 유독 바빴다.

크리스마스도 챙기지 못했을 정도니, 강진현이 얼마나 정신없이 바빴는지 설명하자면 입이 아플 정도였다.

희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래도 바빠지기 전, 11월 말 김장철은 챙겼으니 다행이지.’

……물론 강진현이 들었다면 로맨틱과는 3억 광년 정도 거리가 있는 이벤트라며 한숨을 내쉬겠지만, 어쨌든 희나에겐 크리스마스만큼이나 중요한 행사였으니까.

‘김치는 못 참지.’

그대로 어깨를 으쓱하며 ‘홈 스위트 홈’ 현관문을 열었다.

“다녀왔습니……!”

채 말을 끝내기도 전에 단단한 두 손이 허리를 끌어당겼다.

강진현이었다.

“앗!”

가슴에 코를 콩 박았지만 별로 아프지 않았다. 희나는 그대로 킁킁 냄새를 맡았다.

깨끗한 빨래 향기와 함께 막 씻은 듯, 청량한 물 냄새가 났다.

“진현 씨, 임무 빨리 끝났네요. 며칠은 더 걸릴 줄 알았는데.”

강진현은 몸을 옹송그리고는 희나의 어깨에 머리를 문질렀다.

“희나 씨가 빨리 오라고 해서 열심히 했습니다.”

희나는 손을 들어 그의 등을 톡톡 두들겨 주었다. 단단히 짜인 등 근육이 얇은 티셔츠 너머로 느껴졌다. 뜨끈뜨끈한 체온이 기분 좋았다.

“일주일이나 나가 있느라 힘들었죠? 고생했어요.”

“일 끝내고 왔는데 보고서까지 쓰고 가라고 하지 뭡니까.”

강진현은 웅얼거리며 자기 일이 얼마나 많았는지 투덜거렸다. 희나는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옛날엔 할 일 없다고 야근까지 도맡아 하던 사람이.’

그런 사람이 이제는 일하기 싫다고 끙끙거린다.

물론 이게 절대 나쁘게 보인다는 뜻은 아니다.

뭐 하나 재미난 것 없이 무감하던 그의 일상에 활기가 돌아왔다는 뜻이니까.

‘하기 싫은 일이 있다는 건, 그만큼 재밌는 일이 있다는 거잖아.’

그리고 이 변화의 중심에 자신이 있다는 건, 굉장히 기분 좋았다.

행복감에 취해 히히 웃고 있는데, 등 뒤에서 아니꼬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니. 누가 신성한 집 안에서 연애질이야?”

막 밭일을 끝내고 들어온 희원이었다.

“얼씨구? 현관에서 신발도 안 벗고.”

“부러워? 오빠도 안아 줄까?”

희나가 몸을 휙 돌려 팔을 크게 벌리자 희원이 질겁했다.

“아니! 완전 필요 없거든!”

“가족끼리 포옹할 수도 있지!”

“가족끼린 그런 짓 하는 거 아니다!”

희원은 혀를 쯧쯧 차며 집 안에 후다닥 들어갔다.

오빠의 치를 떠는 모습에 희나는 깔깔 웃으며 강진현을 껴안았다.

* * *

저녁 식사에 설거지까지 마무리한 후, 가족은 자연스럽게 거실에 둘러앉았다.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이었다.

강진현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 인벤토리를 열었다.

“이번에도 얻었습니다, 공간의 조각.”

역시 가장 먼저 반응한 건 오색이였다.

「과금! 과금!」

「$$$」

오색이는 강진현을 향해 맹렬히 기었다. 달팽이로 치면 가히 초음속이나 다름없는 속도였다.

하지만 그래 봤자 달팽이는 달팽이.

“아이참, 오색아. 그동안 과금을 얼마나 했는데! 공간의 조각이 아직도 그렇게 좋아?”

희나의 손짓에 바둑이가 오색이를 잡아챘다.

「뿌애애애앵」

「주택 관리자는 원한을 잊지 않는다!」

“얘는 공간의 조각만 앞에 두면 정신을 못 차리네요.”

「뿌애애애액!」

「이것만 있으면!」

「빨뤼빨뤼!」

「ㅠ_______ㅠ」

오늘따라 물욕이 심했다. 이번 공간의 조각은 또 어찌나 원하던지, 등껍데기가 미러볼처럼 현란하게 빛났다.

눈부심을 참다못한 희원이 손을 휘휘 저었다.

“오색이 터지겠다. 그냥 줘. 공간의 조각이 다 거기서 거기지.”

“매번 이러잖아. 이젠 흥분 가라앉히는 법도 배워야지.”

희나는 오색이를 두고 앉아, 쉬어, 기다려 등을 시도했으나 흥분한 달팽이는 말이 전혀 통하지 않았다.

결국 희나는 한숨과 함께 달팽이 훈련을 포기했다.

“이럴 때 보면 바둑이보다 더 철이 없다니깐…….”

「가즈아! 가즈아!」

「떡상!」

마침내 오색이는 그토록 원하던 공간의 조각을 얻었다.

조막만 한 몸통으로 챱, 공간의 조각을 덮자마자 황금빛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와 동시에 허공에 시스템 메시지가 뿅뿅 뜨기 시작했다.

“어어?”

이내 희나의 눈이 커다랗게 변했다.

어쩐지, 오늘 오색이가 유독 난리였던 까닭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A랭크에서 S랭크로 단숨에 올랐네.’

그뿐만이 아니었다. ‘홈 스위트 홈’ 스킬의 레벨까지 100으로 올랐다.

S랭크에 레벨 100이라니, 제법 의미심장했다.

요즘 나날이 위엄을 잃어 가고 있는 시스템마저 몹시 흥분한 듯 번쩍거리며 메시지를 띄웠다.

희나는 흥미진진한 눈초리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시스템은 희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동시에 거실 한구석에 반짝거리는 빛 가루가 모여 문의 형상을 이루었다.

튼튼한 나무로 만들어진 나무문에는 팻말이 붙어 있었다.

비밀의 정원!

놀란 토끼 눈을 하고 문을 바라보니, 희원과 강진현의 시선도 자연히 그곳을 향했다.

“이건 또 무슨 일이야?”

“집이 또 업그레이드된 겁니까?”

이 집에서 온갖 일을 겪다 보니, 둘 다 갑자기 벽에 문 하나 생기는 거로는 눈썹 하나 까딱 안 하게 됐다.

다만 주택 관리자인 오색이만은 몹시 감동하여 안테나를 비비 꼬았다.

「파이널 루트 오픈!」

「본 주택 관리자, 더는 여한 없음.」

「또,,,르,,,르,,,」

어찌나 감동했는지, 실내 습도가 순식간에 올라갔다. 희나는 깜짝 놀라 오색이를 들고 탈탈 흔들었다.

“아악! 오색아! 진정해! 공기 습해진다!”

「본 주택 관리자 여운에 잠길 권리 있을 유!」

“벽지에 곰팡이 슨다! 진정! 진정!”

「끄…… 끄흑.」

오색이를 간신히 진정시키고, 희나는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홈 스위트 홈 스킬 S랭크 됐어. 그랬더니 숨겨진 문이 열렸다면서 저게 생겼어. 비밀의 정원이래.”

희원의 귀가 쫑긋 솟았다.

“정원? 정원이면 나랑 연관된 공간일 것 같은데?”

“내 생각도 그래.”

희원의 농사꾼 스킬들은 희나의 홈 스위트 홈 스킬과 여러모로 연관되어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정원’이라는 이름이 붙은 저 공간은 아마 희원을 위한 곳일 가능성이 굉장히 높았다.

“거기다 우리 둘 다 연관된 공간이면, 지금 진행 중인 던전 안정화와 관련한 정보가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희나의 추측을 그럴싸하다고 느꼈는지, 희원 또한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들어가 보자. 저기에 좀 더 원론적인 해결책이 있을 수도 있어.”

「고고싱↗」

강진현은 흥분한 두 사람과 달팽이 하나를 붙잡았다.

“잠시만요. 위험할지도 모릅니다. 안전 장비부터 챙기고요.”

「집 안 = 99.99% 안전!」

오색이는 안전을 울부짖었지만, 강진현은 귓등으로도 안 들었다.

“어쨌든 0.01퍼센트 정도는 위험하다는 뜻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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