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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안의 살림꾼-188화 (188/228)
  • 던전 안의 살림꾼 188화

    ‘주택 설계’ 능력이 뜨자마자 순간적으로 주변 풍광이 흐릿해졌다.

    반쯤 얼이 빠진 상태로 ‘홈 스위트 홈’ 스킬을 확인하니, 다음과 같이 떴다.

    <홈 스위트 홈(A): 스킬 시전자에게 집을 제공한다. 액티브 스킬. (현재 상태: ‘???’ Lv. 50)>

    방 개수와 화장실 개수, 평수가 쓰여 있던 현재 상태란이 물음표로 변해 있었다.

    “이제 자체적으로 주택 설계가 가능해져서 그런 건가?”

    이전까지는 시스템이 더 좋은 집으로 임의로 이사시켜 주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희나가 원하는 모습의 드림 하우스를 꾸밀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나저나 연면적 70평? 연면적은 대체 뭐야?”

    중얼거리자마자 시스템 창이 떴다.

    척척박사 모드였다.

    (*건축법 시행령 제 119조 제1항 제4호)>

    “그러니까…… 내가 1층으로 70평을 짓든, 1층 35평 2층 35평짜리로 짓든 모두 같은 70평짜리 연면적을 가졌다는 뜻인 거지?”

    곰곰이 생각해 중얼거리자 팡파르 비슷한 것이 터졌다.

    소름이 돋을 정도로 끔찍한 주접이었지만, 칭찬은 칭찬이라 그런지 영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헤헤……. 별 칭찬을 다…….”

    부끄러워서 한참 동안 헤헤 웃음을 짓다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아. 이럴 때가 아니지.’

    「집 짓자!」

    「업그레이드!」

    「주택 관리인 로망 = n층 주택!」

    「아기다리고기다리던!」

    발치에 선 오색이는 잔뜩 신이 나 둠칫둠칫 몸을 들썩이고 있었다.

    희나는 잠시 고민하다, 금세 마음을 정했다.

    아니, 사실 고민할 것도 없었다.

    머릿속으로만 그리던 멋진 집이 있었으니까.

    * * *

    희원은 현관문을 여닫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여, 여기 우리 집 맞나?”

    일을 마치고 문을 여니,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광경이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반쯤 굳어 있는 희원을 잡아끈 건 희나였다.

    “오빠, 뭐 해? 이리 와서 앉아.”

    희원은 어리둥절한 상태로 거실까지 끌려와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희원 형님, 오셨습니까?”

    먼저 도착한 강진현이 희원을 반겨 주었다. 어쩐지 유독 표정이 밝아 보였다.

    그러나 희원은 몹시 얼떨떨한 상태라 이를 눈치챌 겨를이 없었다.

    “여긴 내가 알던 우리 집이 아닌데?”

    “나 ‘홈 스위트 홈’ 랭크 업했거든. 기념으로 집 구조 좀 바꿔 봤어.”

    희나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생글생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번에는 내 마음대로 집안 구조를 설계할 수 있게 됐더라고.”

    “뭐야, 안 그래도 사기 스킬인데…… 여기에 뭐가 더 있다고?”

    희원의 동생에겐 시스템의 가호라도 내린 것일까?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모두 염원할 ‘내 집 마련의 꿈’을 실현해 준 것도 엄청났다.

    거기에 랭크와 레벨이 오를 때마다 집의 규모까지 조금씩 커지지 않았던가?

    ‘심지어 이젠 집 구조까지 마음껏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고?’

    희원의 능력도 남부럽지 않기로는 손에 꼽혔지만, 피부에 와닿기로는 희나의 능력이 훨씬 대단하게 느껴졌다.

    ‘아무래도 집 하나는 확실히 있으니 길거리 나앉을 걱정은 안 해도 되겠네.’

    ……라고 집세 밀려 길거리로 쫓겨날 뻔한 전직 가난뱅이 남매의 오빠는 생각했다.

    힘들었던 옛 기억을 떠올리던 희원의 눈빛이 아련해지기 직전.

    “오빠, 이것 좀 봐.”

    희나가 희원 앞에 종이 몇 장을 턱 내놓았다.

    집안 설계 도면이었다.

    아마추어의 솜씨라 어설프긴 했지만, 적당히 구조를 알아볼 정도는 됐다.

    지하엔 5평 정도의 창고 방을 만들었고, 1층은 45평, 2층은 20평 정도로 구성했다.

    넓은 1층이 주 생활 공간이긴 했지만, 2층도 좁지 않은 만큼 주방에, 거실까지 있을 건 다 넣어 두었다.

    “지하층, 1층, 2층으로 구분해 뒀어. 지하층에는 잡동사니를 넣을 거고, 1층은 오빠랑 진현 씨가, 2층은 내가 지낼 거야.”

    “야, 진현이는 이제……!”

    “아니! 진현 씨 방 안 뺄 거야! 계속 우리 집에서 지낼 거거든!”

    희나는 재빨리 희원의 말을 똑 끊었다.

    “한 공간에서 사는 건 안 된다며? 나는 같은 층에서만 안 살면 충분히 떨어져 지내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이 정도면 오빠 의견도, 내 의견도 충분히 반영한 집 아닐까?”

    집 평수를 넓혀서 같은 집에 있어도 아예 다른 공간에서 지내는 것처럼 느끼게 하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층을 나눌 수 있게 되었으니까……. 이 정도면 거의 다른 장소나 마찬가지지!’

    희나는 큰소리를 뻥뻥 쳤다.

    “이 이상은 양보 못 해! 진현 씨도 우리 식구니까! 나 없으면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하는 사람을 어떻게 내보내? 사람 정이 있지.”

    “희나 씨…….”

    강진현은 박력 넘치는 희나의 선언에 눈을 울먹거렸고, 희원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강진현과 떨어져 살자는 소리에 덜컥 스킬을 랭크 업해서 새집을 구해 온 셈이다.

    ‘이렇게까지 열렬한데 어떻게 더 반대해?’

    희원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만한 절충안을 가지고 왔는데 이래저래 반대하는 것도 우스웠다.

    친혈육이라며 오지랖 부리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희원은 콧김을 흥흥 내뿜고 있는 동생의 모습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 알아서 잘하겠지.’

    강진현도 경우를 아는 사람이니, 괜한 걱정은 접어야겠다 싶었다.

    “아이고. 항복이다, 항복. 집주인 말을 내가 어떻게 이기겠냐? 네 말대로 하자.”

    “야호!”

    희나는 불끈 주먹을 움켜쥐었다.

    강진현의 거처 문제 해결도 해결이거니와 무엇보다 오빠의 인정을 완전히 받아 낸 듯해 기분이 하늘을 찔렀다.

    헤헤 웃고 있는 희나의 발치로 기어 온 오색이가 안테나를 뿌뿌 늘렸다.

    「이것이 바로 사랑의 힘!」

    * * *

    [진현 씨: 올라가도 될까요?]

    그야 고민할 것도 없었다. 희나는 흔쾌히 답장했다.

    [그럼요! 대신 오빠 몰래요!]

    뭔가 켕기는 게 있는 건 절대 아니었다.

    이건 평범한 초대였으니까!

    다만…….

    ‘오빠가 워낙 호들갑이니까 조용히 올라오는 게 낫다는 거지.’

    겨우 잠재운 희원의 오지랖을 일깨우고 싶지 않았다.

    메시지를 보낸 지 채 몇 분도 지나지 않아 강진현이 2층으로 올라왔다.

    “오빠한테는 안 들켰어요?”

    장난스럽게 묻자, 강진현 또한 장난스레 눈을 휘었다.

    “발끝 세워서 조심조심 올라왔습니다.”

    정말로 그랬을 리는 없지만, 그 모습을 상상하니 절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희나는 한참을 숨죽여 웃었다.

    “……아, 이게 뭐라고 엄청 웃기네. 그나저나 오빠 몰래 집 안에서 만나니까 은근 스릴 있는데요?”

    청개구리 기질인지, 하지 말란 걸 하니까 더 재미있었다.

    강진현이 슬쩍 눈치를 살폈다.

    “그럼 앞으로도 몰래…… 올라와도 됩니까?”

    “네. 안 될 게 뭐가 있어요? 원래도 같이 살던 사인데!”

    희나는 별 경각심 없이 대꾸했다.

    “그나저나 무슨 일이에요? 메시지까지 보내고.”

    “보고 싶어서요.”

    고민조차 없이 튀어나온 대답에 희나의 광대께가 불그스레해졌다.

    “보고 싶어서……. 아, 아까도 봤는데, 우리.”

    “그래도 또 보고 싶을 수도 있지요.”

    강진현은 아주 당연한 진리를 말한다는 듯 태연하게 대꾸했다.

    희나는 거칠어지려는 숨을 애써 가다듬었다.

    ‘이건 유죄다!’

    사람 마음을 이렇게 쥐락펴락할 수가 있나!

    죄명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이건 유죄였다.

    희나가 마음속으로 강진현의 형량을 계산하는 사이, 그가 희나 곁에 조금 더 붙어 앉았다.

    둘 사이는 어깨가 밀착될 정도로 가까워졌다.

    침이 꼴딱 넘어갔다.

    ‘조용한 집안에 단둘.’

    아니, 1층에 오빠와 오색이, 바둑이가 있었으니 단둘이라고 하기엔 어폐가 있었지만…… 집 안이 워낙 조용해 둘만 남은 것 같았다.

    어쨌든 이 층에는 희나와 강진현, 단둘만 있기도 했고.

    괜스레 긴장이 올라왔다. 무서워서는 아니었다. 설레서였다.

    슬쩍 닿은 피부가 어찌나 뜨겁게 느껴지는지…….

    ‘오빠, 오빠 말이 맞았어.’

    다 큰 성인 남녀, 그것도 교제 중인 성인 남녀가 한집에 지내는데 이 정도 성적 긴장감이 흐르지 않는 것도 이상한 일이겠지.

    안절부절못하며 시선을 이리저리 굴렸다.

    ‘아 어쩌지? 이거 너무…….’

    희나는 이 기분을 무어라 표현할지 잠시 고민하다, 마침내 단어를 찾아냈다.

    ‘……너무 짜릿하잖아!’

    기분 좋게 심장이 두근거렸다.

    ‘나 의외로 연애 체질인가 봐.’

    희나는 팔락팔락 손부채질 하며 달아오른 뺨을 식혔다.

    강진현은 그 모습을 몹시 다정스러운 눈빛으로 내려다보았다.

    “사실, 드릴 게 있어서 왔습니다.”

    “뭘 줘요?”

    강진현이 주머니에서 작은 상자 하나를 꺼내 열어 보였다.

    형광등 불빛 아래서 뭔가가 반짝반짝 빛났다. 희나는 저도 모르게 당황해 말을 더듬었다.

    “이, 이게 뭐예요?”

    “선물입니다. 지난번 생일 축하 파티 끝나고 드리려고 했는데, 드릴 기회를 놓쳐서…….”

    강진현은 머뭇거리다 입을 마저 열었다.

    “저는 희나 씨처럼 손재주가 좋지 못해서, 직접 만들지는 못했습니다. 대신 아이템 제작 의뢰를 맡겼습니다.”

    “아, 아이템을, 개인 수주로요?”

    “예.”

    희나는 제 상식을 벗어난 스케일에 잠시 할 말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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