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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안의 살림꾼-187화 (187/228)
  • 던전 안의 살림꾼 187화

    「( ͡° ͜ʖ ͡°)」

    「ㅋㅎㅋㅎ」

    오색이의 안테나가 흐느적흐느적 물풀처럼 움직였다.

    아주 은근했다.

    「얼레리꼴레리☞☜」

    「꺄울↗」

    「좋을듯ㅎ」

    ……아니, 은근하다는 말은 취소.

    ‘아주 노골적으로 놀리네.’

    달팽이의 몸만 아니었다면 아주 깔깔깔 배를 잡고 굴렀을 게 분명했다.

    희나는 오색이를 은근슬쩍 째려보았다.

    하지만 그도 오래가지 못했다.

    “언제부터 그런 사이 된 거야? 왜 나한테 얘기 안 했냐? 내가 안 물어봤으면 너희들끼리 몰래몰래 연애하려고 그랬냐? 어? 아주 스릴 넘치고 재미있었겠다? 응?”

    팔짱을 턱 끼고 있던 희원이 와다다 질문을 쏟아부었다.

    어쩐지 죄인이 된 기분이었다.

    ‘어째 한없이 쪼그라드는 느낌인데?’

    강진현을 보니, 그도 조금 주눅이 든 표정이었다.

    ……천하의 S급 헌터 강진현이!

    ‘진현 씨, 지면 안 돼요!’

    그 모습을 보니 이래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희나는 목을 빳빳이 세웠다.

    대한민국에서는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

    “언젠간 얘기해 주려고 했지! 일부러 속인 것도 아니고 그냥 말할 타이밍을 못 잡고 있었던 것뿐인데!”

    “그러다 결혼 직전에나 가르쳐 주겠다?”

    뜬금없는 결혼 이야기에 희나는 당황했다.

    “아니, 그건 너무 급발진이고!”

    하지만 강진현의 마음에는 쏙 드는 급발진이었나 보다.

    “겨, 결혼…….”

    그의 귓바퀴가 발그레하게 달아올랐다.

    “진현 씨! 왜 눈이 풀렸어요! 정신 차려요!”

    “아이고, 힘들게 다 키워 놨더니 이젠 얘가 오빠를 속여 먹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오빠도 좀!”

    「집주인♥하숙인」

    “으악, 오색아!”

    난리도 보통 난리가 아니었다.

    상황이 진정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다.

    혀를 쯧쯧 차던 희원은 어느새 술상을 차려 놓고 불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술잔은 세 개가 아닌 두 개였다.

    이에 희나는 팔을 척 펼쳐서 강진현 앞을 막았다.

    “설마 술을 마셔야 그 사람의 본성을 꿰뚫어 볼 수 있다는 고리타분한 소리를 하면서 진현 씨에게 술을 억지로 마시게 하려는 건 아니겠지?”

    그렇지 않아도 알코올 앞에선 한 마리 아기 사슴처럼 연약해지는 강진현이다.

    ……물론 이건 희나와 희원 남매의 어마어마한 주량을 기준으로 할 때나 가능한 평가다.

    아무튼, 희나는 가냘프기 그지없는 연인을 지키기 위해 의지를 다잡았다.

    ‘진현 씨는 내가 지킬 거야!’

    이글이글 타오르는 기세에 희나의 앞뒤로 앉은 두 남자가 탄식했다.

    “희나 씨……!”

    “이희나!”

    둘 다 희나의 이름을 외쳤다는 점에서는 별다를 바 없었지만, 담긴 감정은 굉장히 달랐다.

    몹시 감격한 듯 두 손을 맞잡은 강진현과 달리, 희원은 뒤통수가 짜르르한 듯 목 뒤를 짚었다.

    “아니, 내가 진현이한테 술을 왜 먹이냐? 잘 마시지도 못하는 애한테. 너랑 나랑 한잔씩 하면서 애기하자, 이거지.”

    “그래?”

    잔뜩 치켜 올라갔던 순한 눈매가 다시 원상 복귀했다.

    “하긴. 케이크랑 이슬이는 의외로 잘 어울리니까.”

    “고급 안주지.”

    남매는 주거니 받거니 하며 서로의 잔을 꼴꼴 채워 주었다.

    직전의 심각했던 분위기는 잠시 잊은 듯했다.

    희나와 희원은 맑은 술을 한 잔씩 입안에 털어 넣었다.

    쌉싸름하고 달달한 액체가 목구멍을 스치자 마음이 차분해졌다.

    “……뭐, 오빠.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

    슬쩍 화두를 던지자 희원이 술잔에 액체를 다시 채웠다.

    “언제부터 둘이 그런 관계 됐고?”

    “미국…….”

    희원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주 해결하러 가서 눈이 맞아 와?”

    “이런저런 일이 있었어. 그러다 보니…… 자세한 얘기는 안 할 거야. 이건 사생활이라고.”

    “나도 별로 알고 싶진 않거든!”

    희나는 입술을 쭉 내밀었다.

    “그럼 아깐 왜 그렇게 펄쩍 뛴 건데?”

    “놀랐으니까! 너는 내가 갑자기 누구랑 연애한다고 티 내면 안 놀랄 수 있겠어?”

    희나는 끄응, 신음했다.

    “음……. 상상이 안 가는데.”

    그저 ‘내일모레 서른인데 이성 손은 잡아 본 적은 있을까’ 하는 궁금증만 들 뿐이다.

    생각이 얼굴에 고스란히 티가 났는지 희원의 표정이 안 좋아졌다.

    “……됐다. 말을 말자.”

    옆에서 주스 잔을 만지작거리던 강진현이 덥석 물었다.

    “그럼 허락해 주시는 겁니까?”

    “허락하고 말고가 뭐가 있어요? 우리가 좋으면 된 거지.”

    “……!”

    희나의 박력 넘치는 대답에 강진현은 좋아서 유리잔을 터뜨려 깨 버릴 뻔했다.

    희원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래. 너희가 좋다는데 내가 뭐라고 할 수는 없지.”

    “맞아. 거기다 오빤 예전에 진현 씨 좋다고 했잖아.”

    희나는 예전에 희원이 지나가듯 자긴 매제감으로 강진현이 맘에 든다며 이야기했던 걸 기억했다.

    그 말에 강진현의 얼굴이 환해졌다.

    “영광입니다. 앞으로도 노력하겠습니다!”

    「주택 관리인에게도 성심성의 요함.」

    「러브 하우스♡」

    오색이가 안테나 두 개를 하트 모양으로 구부렸을 때였다.

    “하지만!”

    희원이 쾅! 하고 테이블을 내리쳤다.

    「간↓↓↓↓↓!!!!!!!!!」

    예상치 못한 진동에 오색이가 간 떨어질 뻔했다며 잔뜩 항의했다.

    “아, 깜짝이야!”

    희나도 잠깐이나마 술잔을 놓칠 뻔했다. 오빠에게서 흔히 보기 어려운 박력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현이가 마음에 드는 거와는 별개의 일이 있지!”

    희원이 두 눈에 힘을 빡 주고 소리쳤다.

    “어디 그렇고 그런 사이의 두 남녀가 한 공간에서 지내? 나는 너희 동거 반대다! 절대 안 돼!”

    * * *

    희나의 입이 떡 벌어졌다.

    “……허.”

    오색이가 동그란 머리통에 자그마한 띠를 묶고 있었는데, 거기에 쓴 문구가 어처구니없었기 때문이다.

    [동거 결사반대한다!]

    흰 띠에 쓰여 있는 빨간 글씨가 ‘투쟁!’ 하고 외치고 있는 듯했다.

    “이거 오빠가 그랬지?”

    「ㅇㅇ.」

    역시 손도, 발도 없는 오색이가 머리통에 이런 띠를 혼자 맬 수 있을 리가 없다.

    챱챱챱챱!

    저기서 나타난 바둑이도 목에 투쟁! 띠를 매고 있었다.

    “바둑아, 너도 이리 와.”

    희나는 오색이와 바둑이가 맨 띠를 풀어 주며 눈썹에 팍 힘을 주었다.

    “아오! 이희원! 정말!”

    희나와 강진현의 관계를 알게 된 희원은 두 사람의 동거를 격렬하게 반대했다.

    여태껏 했던 건 남녀 간의 동거가 아니었냐 물으니 그건 또 다르단다.

    ‘하숙생이랑 자기 여보 하는 사이는 다른 거지!’

    ‘자기……. 여보…….’

    그 와중에 강진현은 꿈같은 호칭에 또 얼굴을 붉혔다.

    아무튼, 이게 중요한 게 아니라.

    희원은 이제 둘이 교제하는 사이가 되었으니 더더욱 적당한 거리가 필요해졌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생각하면 조금 이해가 가긴 했지만…….

    ‘그렇다고 진현 씨를 집에서 쫓아내?’

    이미 희나의 머릿속에서 강진현은 ‘한 식구’ 카테고리에 든 지 오래였다.

    “내 집에 누굴 들일지는 내가 결정할 거라고!”

    희나는 씩씩거리며 꽉 쥔 양 주먹을 허리에 가져다 대었다.

    그리고 결연히 소리쳤다.

    “오색아!”

    「ㅇ」

    “현질 가자!”

    ‘현질’ 소리를 하자마자 시큰둥하게 축 처져 있던 오색이의 안테나가 바짝 섰다.

    「누가 현질 이야기를 하였는가!」

    「$$$$$$$가즈아$$$$$$$」

    「끼요옷↗」

    인벤토리에 얌전히 잠들어 있던 공간의 조각을 꺼냈다.

    얼마 전, 강진현과 파비안 앳킨스가 A급 던전을 처리하며 얻게 된 부산물이었다.

    집이 더 좋아질 필요는 없는 것 같아서 오색이에게 비밀로 하고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었으니, 이거라도 써야지.’

    공간의 조각을 쓰면 일정 확률로 집이 더 커지거나 업그레이드됐다.

    희나는 집을 더 크게 만들어서 한집에 동거한다는 느낌도 들지 않도록 만들어 버릴 작정이었다.

    ‘물론 공간의 조각을 과금하고서도 아무 일이 벌어지지 않을 수 있지만……!’

    그래도 희나는 자신의 행운을 믿어 보기로 했다.

    “그럼 가자, 오색아!”

    공간의 조각을 내려놓자, 오색이는 혼신의 힘을 다해 기었다.

    「돈돈돈!」

    「과금! 과금! 과금!」

    언제나 그렇듯, 오색이는 공간의 조각을 사용하여 집을 업그레이드할 때에는 잠시 정신을 놓아 버린 것 같은 모습을 보였다.

    이내 공간의 조각은 오색이에게 흡수되고, 조각이 있던 자리에는 씨앗이 남았다.

    ‘이건 오빠한테 주든지, 그냥 가지고 있든지 해야지.’

    생각하며 씨앗을 인벤토리에 넣을 때였다.

    시스템 창이 과금 결과를 띠롱띠롱 알렸다.

    희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오, 랭크 업?”

    아무리 공간의 조각을 사용하고 집을 쓸고 닦아도 레벨만 조금씩 오를 뿐, 몇 달간 B에 멈추어 있던 ‘홈 스위트 홈’ 랭크가 올랐다.

    ‘A 랭크라니!’

    처음으로 생긴 A랭크 스킬이었다.

    하지만 감격할 새도 없었다. 쉴 새 없이 팝업이 뜨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홈 스위트 홈 랭크 업에, 레벨 업, 거기다 ‘살림꾼’ 클래스 랭크 업까지……!

    새로운 소식은 그야말로 파도처럼 밀려들어 왔다.

    “대체 몇 가지 일이 한꺼번에 일어난 거야?”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난생처음 보는 능력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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