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안의 살림꾼-144화 (144/228)
  • 던전 안의 살림꾼 144화

    “그래요? 추가적인 정보는 없고요?”

    - 일주일이나 시간을 주셨는데! 물론 더 있지요. 연구소 정보까지 대강 빼돌려 왔습니다요. 관련 파일은 암호화해서 보내 두었고, 간단히 정리해서 말씀드리자면…….

    원덕삼이 목소리를 낮춰 숙덕였다.

    - 근방 던전을 죄다 조사했는데, D급 비충류 던전에서만 게이트 활성화 시그널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요지의 내용입니다.

    희나는 흐음, 하고 머리를 굴렸다.

    “활성화 시그널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건, 던전이 완전히 안정화됐다는 소리인가요?”

    - 맞습니다! 연구소 측에서는 던전이 높은 확률로 완전 비활성화했다고 결론지은 것 같습니다.

    “그 말인 즉슨…….”

    - 더는 보스 몬스터도, 조무래기 일반 몬스터도 나타나지 않을 것 같다 이 말이죠.

    희나는 미간을 찡그렸다.

    설마, 설마 했던 가설이 정말일 줄이야.

    원덕삼은 희나의 속도 모르고 흥분하여 떠들었다.

    - 세계 최초의 던전 비활성화 소식입니다! 엄청난 가격에 팔아먹을 수 있겠는데요?

    그러면서 그는 차후에 이 정보를 팔아먹을 일이 생기면 희나에게 일부 비용을 지불하겠다며 낄낄거렸다.

    - 정부가 기를 쓰고 정보를 막아 둔 이유가 여기 있었군요. 이건 정말 희나 아가씨 아니면 파 볼 생각도 못 했을 겁니다!

    어쨌건 아시아 최고 정보상이라는 작자가 이렇게 흥분할 정도의 소식이니, 보통이 아닌 이야기인 건 확실했다.

    “그럼 얘기는 여기까지인 거죠? 그럼 전화는 이만 끊어요.”

    - 그럼요, 그럼요! 더 큰 대어를 물어다 주시면…… 아니, 아니지! 좋은 소식 있으면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네네.”

    희나는 한숨과 함께 원덕삼과의 전화 통화를 마무리했다.

    전화를 끊자마자 희원과 강진현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입을 열었다.

    “우리 예상이 맞았네?”

    “아마 태릉 토끼 던전에서도 머지않아 비슷한 결론이 날 것 같군요.”

    희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네요.”

    물론 고작 두 개의 케이스만으로 속단하기는 이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결과가 너무나 엄청나고 확실했다. 외면하려야 외면할 수 없었다.

    “하, 던전 안에서 살림하고 농사지었을 뿐인데 세계 평화에 이바지할 기회를 이런 식으로 얻는다고?”

    희원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중얼거렸고, 희나도 아파 오는 머리를 꾹꾹 눌렀다.

    “그런데 시스템 에러를 처리하려면 거울 던전에 가서 보스 몬스터를 잡아야 하잖아! 살림꾼이랑 농사꾼한테 너무 과한 걸 바라는 거 아니야?”

    아무리 일행에 S급 헌터인 강진현이 있다고 해도, 던전은 개인의 뛰어난 능력만으로 공략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던전 구조상, 몬스터 특성상 천하의 강진현도 혼자서 돌파하기 힘겨운 던전이 있었다.

    던전 공략은 일종의 전쟁 같은 거였다. 적절한 전략과 병력, 보급이 필요한 전쟁!

    “아니 갑자기 부담이 확 오네. 알고도 아무 일도 안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내가 세상을 위해 나서겠다! 하기에는 무모한 짓인 거고! ……차라리 정부에 알리고 도와 달라고 할까?”

    희원의 의견에 강진현이 고개를 저었다.

    “정부 협조를 구하는 건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의외의 대답이었다. 정부의 일에는 누구보다 협조적으로 활동하는 강진현 아니었던가?

    “정부가 연관되면 얽히는 이익 집단이 너무 많아집니다. 그렇게 되면 상황이 너무 복잡해집니다.”

    “얽히는 이익 집단이라고 하면, 정부 부처나 다른 길드를 얘기하는 건가요?”

    질문에 강진현의 설명이 이어졌다.

    “……던전 및 몬스터 산업에는 수많은 기업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던전은 각 길드가 관리한다.

    그리고 길드는 관리 던전에서 나오는 부산물 등으로 창출한 이익으로 운영되는 구조다.

    거기다, 던전 부산물에 대한 2차, 3차 산업은 굉장히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런 의미에서 던전 하나가 비활성화했을 때의 여파는 상당합니다. 당장 태릉 토끼 던전의 경우에도 그렇습니다.”

    그는 손가락으로 테이블 위를 톡톡 쳤다.

    “토끼 던전의 몬스터 부산물 중 하나는 아티팩트 재료로 사용되는데, 이번에 공급이 끊기게 되면서 대체재의 가격이 폭등했습니다.”

    “음. 어떤 사람들에게는 던전 비활성화가 마냥 좋은 일만은 아니라는 뜻이네요.”

    “제대로 파악했습니다, 희나 씨.”

    “반발이 생길 수도 있겠구나…….”

    “아오! 좋은 일 한다는데 상황이 뭐 이렇게 복잡하냐!”

    희원이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로워할 때였다.

    세 사람의 눈앞에 반짝, 상태 창이 떴다.

    예상치 못한 내용이 튀어나왔다.

    “자유…… 의지?”

    네발로 뛰던 시스템이 갑자기 직립 보행하며 멀쩡한 소리를 했다.

    그러니까 이제는 퀘스트로 던전 안정화를 강제하지 않을 테니 양심과 주관에 따라 행동하라 이 말이었다.

    당연하기 그지없는 내용이었지만, 이는 희원의 불같은 분노를 일으켰다.

    “이 자식, 중요한 선택은 우리한테 다 맡기네! 제일 어려운 걸 시켜? 이거 안 하면 우리만 순 나쁜 놈 되는 거 아냐?”

    희나는 허공에 대고 손가락질하는 오빠를 간신히 진정시켰다.

    “여태껏 시스템이 우릴 귀찮게 했던 이유가 이거였구나.”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짐작이 들어맞으니 당황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머리가 맑게 개는 느낌이었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 알 것 같았다.

    희나는 공간의 조각을 꺼내 쥐었다.

    “에이, 모르겠다! 우선 집부터 고치고 생각해요!”

    수도 시스템을 고쳤다는 메시지가 뜨며 허공에서 마석 조각이 툭, 떨어졌다.

    “마석이 쓰다 남았으면 당연히 돌려줘야지. 뭘 양심적이고 올바른 서비스 문화래?”

    요즘 시스템에 대한 불만이 최고조에 달한 희원이 문구에 잔뜩 딴지를 걸었다.

    하지만 희원이 앙심을 품거나 말거나, 오색이는 즐거워하며 안테나를 천천히 흔들었다.

    「룰룰루♪♬」

    「ㄲㅓ억~」

    드디어 공간의 조각을 사용해 집을 고쳤기 때문이다.

    희나는 공간의 조각을 사용한 후 생긴 공간의 씨앗을 내려다보았다.

    설명과 함께 두 개 숫자로 이루어진 좌표가 떠 있었다.

    “일단 여기가 어떤 던전인지부터 알아봐요.”

    “던전 안정화를 진행할 생각입니까?”

    강진현의 물음에 희나는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꼭 하겠다는 건 아니지만…… 일단 알아는 보고 싶어서요.”

    갈팡질팡하는 스스로가 갑갑했지만, 공간의 씨앗을 완전히 외면하기에는 마음이 찜찜했다.

    좌표를 검색 창에 입력하자, 아주 낯선 지명이 떴다.

    “외국인데?”

    “어디지? 처음 보는 곳이야.”

    지도를 움직여 위치를 확인하니, 태평양 한가운데에 점처럼 찍힌 섬으로, 주변에는 작은 섬들이 무리를 이룬 채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이런 곳이면 정부 손이 전혀 안 닿겠는데요?”

    강진현도 희나의 생각에 동의했다.

    “예. 이런 곳까지 헌터를 파견할 리 없으니 던전 브레이크로 주변 지역이 엉망일 겁니다. 사람도 살 수 없을 테고요.”

    희나의 눈이 반짝 빛났다.

    “그럼 여기는 안정화했다고 사람들 이목이 쏠릴 일은 없겠네요! 관리하는 단체도 없고, 거주하는 사람도 없을 테니까요!”

    “……아마 높은 확률로 그렇지 않을까요?”

    여기까지 대화를 나누고 나니 그동안 고민했던 게 무색할 정도의 용기가 피어올랐다.

    희나는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여기, 알아보고 우리가 감당할 만한 곳이면…… 한번 해 볼까요?”

    * * *

    던전 좌표를 찍어 보낸 지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원덕삼에게 연락이 왔다.

    보고서 내용은 간단했다.

    이곳은 태평양 한가운데에 있는 D급 던전으로, 박쥐와 흡사한 모습을 가진 몬스터가 출몰했다.

    D급 중 난이도 하급에 속하는 던전이라 토벌이 어렵지는 않으나, 워낙 후미진 섬이라 정부나 길드의 손길이 뻗치지 않는 지역인 듯했다.

    짧은 보고서 내용 중 희나의 눈길을 잡아끈 건 바로 이 대목이었다.

    ‘던전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다른 섬에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의외로 이 작은 군도에 사람이 살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던전 게이트가 있는 섬에는 아무도 살지 않았다.

    다만, 근처에 자리한 작은 섬들에 소규모 공동체 생활을 이어 가는 이들은 있었다.

    ‘매번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날 때마다 크고 작은 인명 피해를 입는다고…….’

    차라리 육지형 몬스터였다면 섬에서 섬으로 넘어갈 수 없으니 안전했을 테다.

    하지만 해당 던전의 몬스터는 비행이 가능한 박쥐 형태를 하고 있으니, 다른 섬까지 날아가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는 것이다.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인데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군.”

    희원도 같은 대목에서 안타까움을 느낀 듯 입술을 깨물었다.

    전 세계 던전 게이트 숫자에 비하면 각성자의 수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즉, 한정된 인력으로 국토를 커버하자니 소외되는 지역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곳이 바로 그 ‘소외된’ 섬이었다.

    ‘이건…….’

    희나와 희원, 강진현의 눈이 마주쳤다.

    서로의 눈빛만으로도 속내를 알 수 있었다.

    가장 먼저 입을 연 건 강진현이었다.

    “공략 난이도는 D급 비충류 던전과 비슷할 것 같습니다.”

    이에 희나와 희원도 신이 나 잔뜩 말을 얹었다.

    “그럼 이것도 제 대청소 스킬로 싹 쓸어버리면 되지 않을까요?”

    “그러려면 주먹밥 잔뜩 싸 가야겠네.”

    “오빠는 빠져 있어. 전투 스킬로 쓸 만한 게 없잖아. 나는 진현 씨한테 길이라도 찾아 주지!”

    “윽……. 좋은 일 하는데 나만 쏙 빼고 가기야?”

    셋은 왁자지껄 던전 공략 계획을 논의했다.

    하급 던전이라 하여 방심한 건 아니었다. 으레 있어야 할 던전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그들 마음속 선의가 그보다 더욱 크게 빛났기 때문에 이토록 설렐 수 있는 거였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