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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안의 살림꾼-115화 (115/228)

던전 안의 살림꾼 115화

희나는 입술을 동그랗게 말았다.

“S급 돌솥 비빔밥이요? 시금치나물만 넣었는데, 또 그게 특성이 붙은 요리가 됐구나.”

이건 또 생각 외의 발견이었다.

다 완성한 시금치나물을 넣었기에 그대로 시금치나물 특성만 가지고 있을 줄 알았는데, 또 새로운 요리가 되다니…….

“근력, 체력 두 가지 항목이 각각 8%, 4% 상승했습니다. 굉장한 효과입니다.”

“체력 버프가 붙은 건 또 처음인데……. 2차 가공을 하면 효과가 또 색달라지네요.”

희나는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그러고 보니 땅콩도 그랬네. 껍질 까기 정도는 다른 사람에게 맡겨도 특성이 달라지지 않았어. 내가 그 땅콩을 받아서 볶아야 특성이 뻥튀기되었지.’

연구에서는 철저한 원칙주의자인 유한이는 우선 희나의 조리 단계를 일정하게 만들기 위해 힘썼다.

‘뭐든 영점이 제대로 잡혀야 연구를 시작할 수 있다나……?’

물론 유한이의 말도 틀린 건 없었다.

연구라는 건 무언가 데이터를 만들고 비교해서 더 나은 방법을 찾아가는 과정인데, 기준점이 올바르지 못하면 장기적으로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런 까닭에 이 둘의 합동 연구는 제대로 된 첫발을 내딛지도 못하고 있었다.

희나의 ‘손맛’ 스킬을 단련하는 과정부터가 꽤 까다로웠기 때문이다.

그러한 터라, 희나는 한동안 진짜 목표인 시금치 개발은 까맣게 잊고 시금치 무침을 만드는 데만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시금치도 땅콩처럼 내가 2차 가공을 하는 건 어떨까?’

문득 머릿속에서 아이디어가 하나 반짝 솟아났다.

‘내가 곧바로 시금치를 써서 요리해야 한다는 법은 없지. 시금치를 가공해 만든 가루나 즙을 내가 다시 요리에 사용하는 건?’

시금치는 천연 색소로도 많이 사용하는 재료이니, 나쁠 건 없어 보였다.

“한입에 먹기 간편한 떡 같은 걸 만들어도 될 것 같고…….”

반대로 연금술을 사용해 희나가 조리한 시금치 요리를 포션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연금술을 사용해 포션을 제작하면 본 재료의 특성을 그대로 녹여 낼 수 있는 듯했으니까.

“그게 정말 가능할지는 모를 일이지만……. 그건 유한이랑 같이 해 보면 되는 거고.”

어쨌든 물어볼 만한 가치는 충분했다.

희나가 눈을 반짝이다 무언가를 중얼거리는 모습이 낯설어 보이기는 했나 보다.

강진현이 희나의 생각을 끊어 냈다.

“아까 그 연금술사를 생각하고 계십니까?”

“예?”

생각지도 못한 질문에 희나는 어리둥절하고말았다.

“따져 보자면 걔 생각을 한 게 맞긴 한데……. 진현 씨가 말하는 것처럼 애틋한 느낌으로 생각했던 건 아니었는데요.”

순전히 비즈니스적인 의미에서였다.

일적인 측면을 제외하면 유한이는 그다지 교류하고 싶은 타입의 인간은 아니었다.

그저 호수처럼 평온한 희나의 마음에 흙탕물을 일으키는 미운 미꾸라지 같은 존재였다.

“그와 함께 보낼 시간을 기대하시는 듯 보이기에.”

하지만 강진현의 눈에는 퍽 달라 보였나 보다. 그는 유한이를 언급하며 씁쓸한 기색을 내비쳤다.

“스스럼없이 교류하는 모습이 몹시 가까워 보이더군요.”

“……걔랑 제가 어딜 봐서 그런 교류를 나누는 사이로 보였죠?”

심지어 그의 말에 따르면 유한이와 상당히 친밀한 사이인 것처럼 들렸다. 끔찍한 이야기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하지만 강진현은 희나의 기색을 눈치채지 못했는지, 눈을 내리깔고 중얼거렸다.

“거리낌 없이 편안히 여기시질 않습니까?”

“제가요?”

“예. 제가 없는 사이에 말도 편안하게 트고…….”

“걔가 먼저 싸가지 없이 굴어서 포기하고 반말 깐 거예요.”

“이름을 직접 부르시던데, 희나 씨가 제 이름을 제대로 불러 주시기까지는 훨씬 더 오래 걸렸고…….”

“직급도 불러 주기 싫을 정도로 꼴불견이잖아요.”

“한집에 사는 제게도 해 주지 않는 친밀한 접촉까지 하고…….”

마침내 희나는 기함하며 물었다.

“대체 그 ‘친밀한 접촉’은 뭐예요? 이건 기억나는 게 전혀 없는데? 제가 걔한테? 친밀한 뭔가를 했다고요?”

정말로 억울했다!

친밀한 접촉이라고 하면, 신발을 벗어 등짝을 때린 것밖에 기억이 안 났다.

그게 희나 기억 속의 가장 속 시원하고 좋았던 기억이었으니까!

‘아니, 그 전에 진현 씨는 왜 이게 왜 억울하다고 하소연하는 거야?’

애당초 강진현과 유한이는 같은 선상에 놓을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전자인 강진현은 엄청나게 중요한 상대였고, 후자인 유한이는 다루는 법을 얼추 터득했다 뿐이지 여전히 짜증스러운 상대였다.

오늘 두 사람을 대하는 희나의 태도만 해도 완전히 다르지 않았던가?

유한이는 불청객처럼 내쫓겼고, 강진현은 희나의 정성 어린 밥상을 받았다.

“아이, 참. 진현 씨, 그간 정말 무슨 일 있었던 것 아니에요? 왜 계속 이러시는데요?”

주방에 들어오자마자 유한이에게 공격적으로 굴었던 것도 그렇고, 바로 옆에서 음식 하는 희나를 지켜봤던 것도 그렇고.

희나에게 콩나물무침을 얻어먹으려고 한 것도 그렇고, 지금 하는 말들도 그렇고…… 평소의 강진현답지가 않았다.

희나는 가슴을 콩콩 치며 갑갑해했다.

“……하지만!”

마침내 강진현이 꿀 바른 듯 딱 붙어 있던 입을 열었다.

“만난 지 며칠 되지 않는 그자에게 직접 음식을 먹여 주었잖습니까! 제게는 한 번도 그래 주었던 적이 없는데……!”

“예?”

“제게는 모두 쉽지 않았던 것들뿐인데, 그 연금술사에게는 너무나 쉽게 허락해 주시지 않았습니까! 심지어 손으로 직접 음식을 먹여 주기까지 하는 건…… 한집에 사는 저조차도 받아 보지 못했던 친절이었습니다.”

희나는 뒤늦게 종전의 장면 하나를 기억해 냈다.

‘시금치나물을 다 무쳐서 먹어 보라고 맨손으로 내밀었지?’

별거 아닌 일이었지만, 딱 그때 강진현이 주방에 등장해서 기억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고작 그것 때문에?’

당혹스러운 고백이었다. 특히 그 상대가 강진현이라고 한다면, 더더욱 그랬다.

“어……. 음, 진현 씨.”

희나는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며 강진현을 불렀다.

강진현은 벌을 받는 어린아이처럼 눈을 천천히 깜빡였다.

“예. 말씀하십시오. 희나 씨가 보시기에 고작 콩나물무침 하나에 아쉬움을 느끼는 제가 한심하게 느껴지시겠지만……”

“아니, 그게 아니라.”

“희나 씨와 더 가까워지고 싶다는 마음에 철없는 어린아이처럼 굴었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지, 진현 씨!”

이 상황에 대한 판단은 제쳐 두더라도, 우선 오해를 푸는 게 급선무였다.

희나는 어디서부터 말을 정정해야 할지 생각을 더듬었다.

“우선 유한이, 걔랑은 전혀 친한 사이 아니에요! 시금치 먹여 준 거? 지나가는 개한테 밥 주는 것보다 더 의미 없어요! 차라리 강아지는 귀엽기라도 하지, 걔는 정말…… 어휴!”

……아무래도 이게 제일 먼저인 것 같았다.

강진현은 희나와 유한이 사이를 단단히 오해하고 있었다.

“걔랑 만난 첫날은, 정말 답도 없었어요. 이건 인사팀장님도 아실걸요. 싹수가 노래 가지고, 이런 사람이랑 절대 일 못 하겠다고 얘기했었어요.”

“하지만……”

“쓰읍. 이상한 착각 하지 말고 계속 제 말 들으세요.”

희나는 씁, 하고 혀를 찼다. 그러자 강진현이 잘생긴 눈썹을 축 내리며 입을 다물었다.

‘어쩌다 보니 진현 씨를 훈계하는 것처럼 되어 버렸는데…….’

그래도 이건 뭐라고 할 만했다.

‘아니, 다른 사람도 아니라 유한이랑 나를 사이좋다고 엮어?’

여기까지 생각했다가 희나는 바락 소리쳤다.

“제가 진현 씨보다 걔를 왜 더 좋아하겠어요? 성격도 진현 씨가 훨씬 친절하고, 다정하고, 예의 바르고, 우리 오빠도 도와준 적이 있는 데다가, 우리 가족한테 잘 대해 주고, 해 주는 밥도 맛있게 먹고, 거기다 외모도 훨씬 잘생겼고, 능력도 훨씬 잘났고, 웃는 것도 멋있고, 사려 깊고…….”

떠오르는 대로 아무렇게나 지껄이다 보니 조금 낯부끄러운 칭찬이 되어 버렸다. 민망함에 서둘러 말을 마무리했다.

“……아무튼, 저는 유한이 그 인간보다 진현 씨가 훨씬 좋아요!”

“정말입니까?”

“그럼요!”

어두웠던 강진현의 얼굴에 먹구름이 가셨다.

“저도 그 연금술사보다 희나 씨가 훨씬 좋습니다.”

‘그거야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 아닌가……? 둘은 초면인데.’

아무튼 희나는 애먼 오해를 간신히 풀어냈다.

다만 강진현이 너무 심각하게 울적해하는 바람에, 대화가 조금 이상하게 어긋난 채 상황이 마무리되었다는 사실은 금세 잊고 말았다.

“맞다, 아까 콩나물무침 먹여 달라고 한 것도 그것 때문이에요? 유한이한테 해 줬는데, 진현 씨한테는 안 해 줘서? 진현 씨보다 유한이랑 더 친한 사이인 것처럼 보여서?”

희나의 물음에 강진현은 미간을 살풋 찌푸렸다. 무엇인가 헷갈리는 듯 고개를 약간 기울이기도 했다.

“……음.”

그는 잠시간의 침묵 끝에 천천히 대답했다.

“그동안 희나 씨와 가까워지기 위해 무수한 노력을 해 왔는데, 그 노력이 한순간에 부정당한 느낌이었습니다. 제가 자리를 비운 사이 다른 남자와 함께 있었을 희나 씨를 상상했더니, 분을 참기 어려웠습니다.”

“아……하.”

희나는 얼굴을 붉혔다.

늘 그렇듯 강진현은 말을 오해하기 좋은 방식으로 하는 버릇이 있었다.

‘‘다른 남자와 함께 있었을’이라니. 표현이 참…….’

이제 그를 안 지도 수개월.

강진현의 플러팅 아닌 플러팅에 익숙해질 때가 되었건만, 이렇게 진지하게 말을 하면 괜히 다른 생각이 들었다.

“그럴 리가요. 저는 진현 씨랑 훨씬 더 친하죠.”

그의 의미심장한 멘트에 얼굴을 붉히면서도 희나는 손사래를 치며 강진현과의 친분에 힘을 실어 주었다.

“유한이 걔한테는 연구용 시금치만 줬지 물 한 잔 제대로 대접한 적 없는걸요. 흥, 오늘 커피 얻어먹은 것도 진현 씨 덕분인 줄 알아야 하는데.”

“……그렇습니까?”

생색에 강진현의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

그 모습이 어쩐지 귀엽게 느껴져서 희나는 속으로 키득키득 웃었다.

던전 안의 살림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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