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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안의 살림꾼-73화 (73/228)
  • 던전 안의 살림꾼 73화

    “정말 나갈 셈이야?”

    바둑이보다 먼저 튀어나온 건 오빠인 희원이었다. 희원은 걱정 어린 낯을 하고 희나를 몇 번이고 만류했다.

    하지만 마음을 굳힌 동생의 마음을 되돌리는 데 실패했다.

    “가만히만 앉아 있을 순 없잖아.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로브 받은 김에 당장 나가 봐야겠어.”

    “너답지 않게 왜 이렇게 용감하게 구는데……!”

    “그럼 오색이가 영영 사라질 수도 있다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어? 너무 걱정하지 마. 생각보다 안전할 거야, 오빠. 나 겁 많은 거 알잖아? 이상한 느낌 들면 당장 튈게.”

    희나는 자기의 쫄보 레이더를 믿으라며 가슴을 탕탕 쳤다.

    하지만 희원은 마음이 놓이지 않는지 몇 번이고 ‘차라리 내가 다녀오고 말지, 왜 쟤한테 이런 퀘스트를 주냐’라며 시스템을 원망했다.

    「걱정이 태산.」

    「자나 깨나 안전 주의.」

    오색이도 희나가 걱정되는지 바닥을 뽈뽈뽈 기어 다니며 이런저런 걱정을 늘어놓았다.

    주변 사람들의 걱정이 과해지면, 막상 상황에 처한 장본인은 담대해지는 법이다. 희나의 쌀알만 한 간덩이가 콩알만 하게 커졌다.

    “걱정하지 말래도. A급 아이템을 두 개나 가지고 나가는데, 설마 별일이야 있겠어?”

    용감무쌍의 화신이 된 콩알 이희나 선생이 A급 은신의 로브를 걸치고 바둑이를 이끌었다.

    “로브 걸쳤는데도 네가 보여. 저 로브에 뭔가 이상 있는 것 아니야?”

    “이게 투명 망토인 줄 알아? 오빠는 이미 내가 여기 있는 걸 알고 있으니까 계속 보이는 거지. 상황 모르는 사람이 보면 내가 순간적으로 인식이 안 되는 거야.”

    희나가 톡 쏘아붙이듯 아는 척을 했다. 아까 강진현과 커피 타임을 가진 게 꽤 도움이 됐다.

    그는 은신의 로브에 관한 이야기를 해 주었고, 덕분에 희나는 이 A급 아이템에 상당한 신뢰감을 갖게 되었다.

    “가자, 바둑아!”

    희나는 커다래진 바둑이를 등 뒤에 두고 문을 열었다.

    첫 번째 산책 장소로 선택한 곳은 바로 지난번에 떨어졌던 B급 대왕 버섯의 던전이었다.

    “휑하네?”

    현관문에 선 희원이 주변 풍경을 간단히 묘사했다.

    그랬다. 던전은 아주 황량했다. 풀 한 포기, 아니 버섯 하나 찾아볼 수 없었다.

    “얼마 전에 보스 몹 잡은 던전이거든. 아직 비활성화 상태라서 몬스터는 없을 거야.”

    비활성화 상태의 던전이라고 해도 보통 조무래기 몬스터들이 남아 있기 마련이지만, 이 던전 같은 경우는 그런 걱정이 없었다.

    주변 버섯들이 던전의 한가운데에 있던 대왕 버섯에서 뻗어 나온 개체였기 때문이다.

    즉, 보스 몹이었던 대왕 버섯이 죽으면서 이 던전에 있던 모든 버섯이 전멸했다는 소리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의미에서 이곳은 희나가 아는 던전 중 가장 안전한 장소였다.

    바둑이와 첫 번째 산책을 하기에 아주 적당했다.

    “이런 데는 어떻게 알고 있어?”

    희원이 의문을 품었지만, 희나는 청룡 길드에서 일하면 이런 건 다 아는 방법이 있다며 큰소리쳤다.

    이 던전에 떨어져서 죽다 간신히 살아났다는 이야기는 희원에게 절대 비밀이었다.

    “그래? 네가 이런 장소만 골라서 산책 다닌다면 훨씬 안심이지.”

    희원은 한결 마음을 놓은 듯한 표정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래. 너무 걱정 마. 적당한 곳으로 잘 골라 다니면 될 거야. 설마 던전이 전부 위험하기만 하겠어?”

    희나는 근거 없는 큰소리를 쳤다.

    이렇게라도 말해야 희원도 안심하고, 저도 안심이 될 것 같았다.

    “그럼 다녀올게. 오빠는 여기서 오색이랑 기다리든지, 집 청소 좀 하고 있든지 해.”

    대수롭지 않게 손을 내젓고는 희나는 바둑이와 함께 ‘홈 스위트 홈’ 안전지대를 벗어났다.

    붉게 표시된 안전지대의 금을 지날 때 몸에 찌릿찌릿 긴장감이 돌았지만, 등 뒤에서 보고 있을 오빠를 생각해 최대한 태연한 척했다.

    ‘여긴 아무것도 없어. 뭐가 나타나더라도 내 곰팡이 박멸액으로 전부 물리쳐 버리면 돼.’

    희나의 곰팡이 박멸액에 파스스 녹아 사라지던 대왕 버섯의 기억이 자신감을 줬다.

    거기다 부쩍 좋아진 바둑이의 피지컬도 든든했다. 저 커다란 잎사귀와 줄기로 어지간한 중형 몬스터쯤은 물리칠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희원의 눈에는 아직 25%밖에 성장하지 않은 작고 예쁜 아가 식물인 듯했지만…… 객관적으로 판단하자면 그랬다.

    “가자, 바둑아.”

    희나는 바둑이와 함께 안전지대 주변을 둥글게 빙 돌았다.

    바깥세상이라고는 희원이 가꾸는 밭밖에 몰랐던 터라, 바둑의 호기심은 엄청났다. 심지어 첫 산책지가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벌판임에도 불구하고 그랬다.

    바둑이는 봉오리를 바닥에 대고 킁킁거리면서 마치 냄새를 맡는 것 같은 행동을 했다. 뿌리를 길게 뻗어 푹신한 땅에 퍽퍽 구덩이를 파기도 했다.

    그리고 그 안에 들어가 몸…… 아니, 줄기를 뒹굴었다.

    그렇게 안전지대 밖을 네댓 바퀴 정도 돌자, 첫 번째 퀘스트 완료 창이 떴다.

    <바둑이 산책(난이도 미정): 애완식물에게 필요한 건 충분한 영양뿐만이 아닙니다. 매번 다른 던전을 산책함으로써 바둑이가 다양한 토양을 경험하게 해 주세요! 한결 성숙해질 기회가 될 것입니다.

    ▶ 필수 퀘스트 (1/10)

    - 바둑이 던전 산책 1 (100/100%)

    - 바둑이 던전 산책 2 (0/100%)

    - 바둑이 던전 산책 3 (0/100%)

    ……

    - 바둑이 던전 산책 9 (0/100%)

    - 바둑이 던전 산책 10 (0/100%)>

    언제쯤 퀘스트의 ‘바둑이 던전 산책 1’ 항목이 100%가 되나 보고 있던 희나가 중얼거렸다.

    “잠깐 나갔다 온다고 퀘스트가 금방 완료되는 건 아니네.”

    짐작해 본 바로는 일정 거리나 일정 시간 이상을 안전지대 밖에서 보내야 하는 모양이었다.

    “어휴. 어려운 던전에 들어가면 100% 채우기 되게 어렵겠다.”

    시작이 반이라지만, 남은 반을 해결하자니 눈앞이 깜깜한 건 매한가지였다.

    “이제 돌아가자, 바둑아.”

    희나는 신이 나서 던전을 덩실덩실 뛰어다니는 바둑이에게 손짓했다.

    바둑이는 처음 맛본 산책의 꿀맛에서 헤어나기 힘든 듯 아쉬운 몸짓으로 희나의 주변을 맴돌았다.

    조금만 더 놀다 가요, 하고 조르는 것 같았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할 거야.”

    단호하게 선언하자 생생했던 바둑이의 이파리가 시들시들해졌다. 덩치가 열 배나 커졌는데도 아직 아기 같은 부분이 남아 있었다.

    “다음에 또 나가면 되지. 저기서 너희 아빠가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는데 안 들어갈 거야?”

    현관문 앞에서 희나와 바둑이를 지켜보고 있는 희원을 손가락질하자, 바둑이가 꽃봉오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희원이 오냐오냐 키우긴 하더니, 애착 관계가 확실히 형성된 모양이었다.

    “그럼 가자.”

    바둑이를 데리고 ‘홈 스위트 홈’의 안전지대 안으로 들어왔다.

    희원과 오색이가 후다닥 다가왔다.

    “어디 다친 곳은 없지?”

    「집주인, 사지 멀쩡?」

    둘 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앞다투어 희나의 안부를 물었다.

    뻥뻥 뚫린 황야에서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는 걸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해 놓고는 말이다.

    “괜찮아. 여긴 정말 안전한 곳이라니깐.”

    희나가 털끝 하나 다치지 않은 멀쩡한 몸을 보여 주며 둘을 안심시키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바둑이가 덩실덩실 춤을 추며 ‘홈 스위트 홈’ 안전지대 내부를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바둑아?”

    산책을 시켜 주었는데 진이 빠지기는커녕 되레 더 흥분한 채로 펄쩍펄쩍 뛰어다니니, 당혹스러웠다.

    예전처럼 작은 크기였다면 잡아서 진정이라도 시킬 텐데 이젠 덩치가 사람보다 더 커져서 그럴 수도 없었다.

    바둑이는 예전의 스무 배는 더 정신 사납게 주변을 팽팽 뛰어다녔다.

    “아이고 어지러워.”

    보다 못한 희나가 어지러운 머리를 짚었을 무렵이었다.

    덩실덩실 뛰어다니던 바둑이의 몸체에서 금빛 가루가 우수수 떨어지기 시작했다.

    금가루는 반짝거리며 던전 토양 위에 눈처럼 쌓였다. 그리고 이내 스르르 녹아 땅에 흡수되었다.

    “어라?”

    그 신비로운 광경에 희나는 눈을 크게 뜨고 깜빡거렸다. 마냥 낯설지만은 않은 장면이었다.

    희나는 이런 광경을 이미 한 번 본 적이 있었다. 바둑이가 처음 태어났을 때도 이런 일이 있었다.

    바둑이가 털어 내는 금가루가 땅을 비옥하게 해 준다는 이야기를 듣고, 저 금가루가 사실 똥 가루 따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어 기억은 더 선명했다.

    “오빠, 이건 뭐야? 빨리 설명 좀 해 봐.”

    희나는 희원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상황을 설명해 달라 졸랐다.

    희원은 뒤늦게 시스템 설명 창을 읽었다.

    “바둑이는 토양의 기운을 비옥하게 하는 애완식물이래.”

    “그건 예전에도 봐서 알고 있었어. 그런데 얠 봤던 첫날 이후로는 단 한 번도 이랬던 적이 없잖아. 지금은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산책하면서 던전의 기운을 흡수해서 그렇다는데. 흡수한 기운을 내뿜고 있는 거래. 산책에 익숙해지면 지금처럼 곧바로 기운을 뿜어내는 게 아니라 참았다가 원하는 때에 힘을 내뿜을 수 있게 된대. 바둑이의 기운을 받으면 밭의 토질 레벨이 상승하게 되고.”

    그러니까 바둑이가 조금 더 힘 조절에 익숙해진다면 살아 있는 퇴비 뿌리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한편, 희원은 설명 창을 읽다 무엇인가 깨달았는지 작게 탄식했다.

    “음……. 그동안 작물이 원활하게 자라지 못했던 건 던전 토양이 충분히 비옥하지 못해서 그랬던 거였구나. 바둑이의 도움이 있으면 작물들을 훨씬 더 잘 키울 수 있겠어.”

    「바둑이, 중요 식물! 마치 나처럼.」

    오색이가 옆에서 생색을 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오색이가 있어서 희나의 ‘홈 스위트 홈’이 멀쩡히 유지되는 것과 비슷한 원리인 것 같았으니까.

    바둑이가 없다면 희원은 토질을 올리지 못해서 제대로 된 농사를 짓지 못할 게 분명했다.

    던전 안의 살림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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