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안의 살림꾼-62화 (62/228)
  • 던전 안의 살림꾼 62화

    이번에도 유료 서비스가 필요한 걸까? 또 마석을 구할 생각을 하니 눈앞이 아득해졌다.

    희나의 표정을 읽었는지 오색이가 안테나를 팔랑거렸다.

    「간단한 오류. 그러나 문제 해결 마법사 가동 성공.」

    이에 희나의 낯에 화색이 돌았다.

    “정말? 이번에는 마석 없어도 돼? 시스템 유료 서비스 필요 없어?”

    「당근빠따.」

    오색이가 철 지난 유행어를 쓰며 머리를 굼실거렸다. 안테나가 평소보다 좀 빳빳한 게 어쩐지 자랑스러운 것 같기도 했다.

    “그나저나 바둑이는 어디 있어?”

    자칭 ‘바둑이 아빠’ 아니랄까 봐, 희원은 바둑이부터 찾았다. 오색이는 안테나를 절레절레 흔들며 대답했다.

    「바둑. 몹시 신남. 광란의 파티 중.」

    “광란의 파티?”

    뜬금없는 소리였다. 해충 박멸 시스템이 고장 났는데, 웬 광란의 파티라는 건지.

    의아하던 찰나였다. 찹찹찹, 바둑이가 장판 바닥을 뛰어다니는 소리가 거실을 울렸다.

    “……바둑아?”

    희나와 희원은 현관에서 손을 쏙 내밀어 거실 불을 켰다. 그리고 펼쳐진 놀라운 광경에 경악했다.

    “으악!”

    우우웅, 어쩐지 진동 소리가 유독 요란한 것 같더니만 이명 따위가 아니었다. 그건 날파리들의 날갯짓 소리였다.

    손가락만 한 날파리들이 환히 밝힌 거실 이곳저곳을 요란하게 날아다니고 있었다. 끔찍한 장면이었다.

    “방제 시스템 복구했다면서! 벌레가 왜 이렇게 많아?”

    소스라치게 놀라며 소리치자, 시스템이 대답해 주듯 창을 띄웠다.

    복구가 완전하지 않아 창궐한 벌레가 사라지지 않았다는 뜻인 것 같았다.

    「무과금 복구. 속도 느림. ㅠㅠ」

    오색이가 변명하듯 말을 덧붙였다. 결국 이것도 돈…… 아니, 마석이 없어서 이 꼴이 났다는 거였다.

    “시스템 완전히 복구되면 벌레들은 다 사라지는 것 맞지?”

    「아님. 해충 퇴치 = 수동.」

    거기다가 혹시나가 역시나였다. 남은 벌레들은 알아서 잡아야 한단다.

    “이 많은 걸 다 어떻게 잡아? 대체 이번 휴가는 왜 이렇게 난리인 거야?”

    웅웅, 희나가 요란하게 집 안을 날아다니는 날파리들을 보며 울상을 짓고 있던 찰나였다.

    찹찹찹, 텁!

    녹색 잔상이 빠르게 스쳐 지나가며 커다란 날파리 한 마리를 낚아챘다. 희원은 그 녹색 잔상의 정체를 금세 알아챘다.

    “어? 바둑아?”

    바둑이는 희원을 반기듯 팔랑팔랑 잎사귀를 흔들었다. 늘 오므라들어 있던 꽃봉오리는 날파리를 와그작와그작 씹어 먹고 있었다.

    「날파리는 굶주린 바둑이의 아주 좋은 영양 공급원.」

    오색이가 동물의 왕국의 한 장면 같은 내레이션을 했다.

    와작, 와작.

    바둑이는 오색이의 말에 꽃봉오리를 끄덕이며 잎사귀를 척 들어 보였다.

    「따봉!」

    이건 딱히 오색이가 해석해 주지 않아도 알 것 같은 몸짓이었다. 아주 맛있다는 뜻이었다.

    잎사귀를 엄지처럼 척 내민 바둑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귀신처럼 거실을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며 텁, 텁, 텁, 커다란 날파리들을 집어삼켰다.

    “내가 애를 배고프게 키웠구나…….”

    희원이 가슴 미어진다는 듯 중얼거렸다.

    한편, 해충 방제 시스템은 몹시 느리게 복구됐다.

    바둑이가 날파리를 잡아먹는 속도도 대단했지만, 벌레가 늘어나는 속도는 더 빨랐다.

    즉, 상황을 바둑이에게만 맡길 수 없다는 의미다.

    “우리도 벌레를 잡아야겠어.”

    희나와 희원은 비장하게 팔을 걷어붙였다.

    ‘어디 벌레 잡을 만한 도구 없나?’

    주변을 둘러보았으나, 적당한 도구가 보이지 않았다.

    “벌레 잡는 데는 신문지가 딱인데…….”

    하지만 요즘 세상에 종이 신문을 구독하는 집은 흔치 않았다.

    ……거기까지 생각하던 희나는 문득 인벤토리 안에 잠자고 있는 아이템 하나를 떠올렸다.

    ‘아, 맞다! SSS급 쓸모 있는 신문지!’

    SSS급 쓸모 있는 신문지는 대왕 버섯 던전에서 바둑이 씨앗을 주웠을 때 함께 얻은 아이템이었다.

    이름대로 실제로 쓸모가 있는지 없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SSS급이라는 높은 등급에 걸맞게 등급 감추기 기능까지 있었다.

    오늘은 아이템에 붙은 수식어인 ‘쓸모 있는’이라는 표현이 이름값을 하게 되는 날이었다.

    희나는 인벤토리에서 SSS급 쓸모 있는 신문지를 꺼내 들었다.

    <쓸모 있는 신문지(SSS): 다방면에 두루두루 사용할 수 있는 몹시 쓸모 있는 신문지. 쉽게 찢어지지 않고, 구겨짐이 쉽게 회복된다. 사용자의 쓰임에 따라 진정한 가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부가 기능: 사용자의 상황에 따라 등급 감추기가 가능한 아이템입니다.>

    신문지를 둘둘 말아 잡으니 손에 착 감겼다. 그립감이 아주 좋았다. 쓸데없는 데에서 SSS급다웠다.

    어느새 희원도 프라이팬을 꼬나들고 나타났다.

    “이건 쓰고 내가 따로 새 걸로 사 줄게.”

    그러면서 허공을 내리쳤다. 깡! 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날파리가 기절해 떨어졌다.

    챱챱챱!

    희원이 잡은 날파리는 바둑이가 뛰쳐나와 와구와구 먹어 치웠다.

    “바둑아, 내가 계란 껍데기는 몰라도 오늘 벌레만은 원껏 먹여 주마!”

    희원은 이상한 데에 꽂혀서 투지를 불태웠다.

    ‘의욕은…… 좋네.’

    희나도 SSS급 신문지를 꽉 쥐었다. 아직도 시스템 복구율은 90%였고, 날파리는 조금씩 많아졌다. 이러다간 집 안이 벌레로 가득 차게 될 마당이었다.

    정신을 가다듬고 허공의 날파리들을 주시하자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비장해 보이는 문구였다.

    희나는 눈을 번뜩이며 손에 쥔 신문지를 휘둘렀다. 그와 동시에 스킬 창이 번뜩였다.

    부웅!

    희나가 팔을 휘두르자, 바람 가르는 소리가 웅장하게 울렸다.

    희나의 ‘해충 박멸’ 스킬이 SSS급 신문지와 환상적인 첫 조합을 이루는 순간이었다. ‘해충 박멸’ 스킬을 먹은 신문지는 가차 없이 허공을 내리쳤다.

    퍼버벅!

    일개 벌레를 내려쳤다기에는 다소 파괴적인 소음이 터져 나왔다.

    희나의 신문지가 지나간 곳에는 10여 마리의 날파리 사체들만이 남아 바닥을 굴렀다. 마치 검술의 대가가 일당백을 상대하는 것 같은 모양새였다.

    바둑이는 상황 판단이 빨랐다.

    한 번에 한 마리만 상대하는 희원의 곁에 있는 것보다, 희나의 곁에 가는 것이 훨씬 더 많은 날파리를 주워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금방 깨달았다.

    타다닥, 챱! 챱챱챱!

    바둑이는 다리…… 아니, 뿌리를 타다닥 움직여 희나를 향해 달려갔다.

    “어? 바둑아! 어딜 가니! 이리로 와!”

    희원이 애절하게 바둑이를 불렀으나,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바둑이는 먹이 앞에서는 한없이 냉정해지는 차가운 던전 식물이었다.

    “이야압!”

    희나는 기합을 빡 내지르며 손을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그럴 때마다 날파리가 비 오듯 후드득 후드득 떨어졌다. 징그러우면서도 은근히 쾌감 넘치는 순간이었다.

    합, 챱챱.

    바둑이는 바닥에 머리를 박고 진공청소기처럼 벌레를 빨아들였다. 저 가는 줄기 어디로 그 큰 부피의 날파리들이 사라지는지는 미스터리였다.

    희나가 정신없이 집 안을 가득 채운 날파리들을 해치우는 사이, 몇 번의 시스템 알람이 띠롱띠롱 울렸다.

    하지만 적들을 처치하는 데 몰두한 희나는 그 메시지를 읽을 겨를이 없었다.

    날파리 퇴치는 ‘해충 박멸’ 스킬의 훌륭한 밑거름이 되어 주었다.

    각각이 주는 경험치는 썩 높지 않았지만, 그 수가 엄청나다 보니 경험치가 대단히 많이 올랐다.

    퍼버벅! 팟!

    비장한 손목 스냅으로 마지막 날파리를 제거했을 때였다.

    마침내 시스템 창은 희나의 손을 들어 주었다.

    더불어 희나의 유일한 전투 스킬인 ‘해충 박멸’ 스킬이 랭크 업했다.

    “으아아…….”

    희나는 그 창을 확인하자마자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팔다리에 힘이 쪽 풀렸기 때문이다.

    거기다 스킬인 ‘해충 박멸’까지 썼으니, 체력 소모는 더했다.

    꼬르륵.

    방금 밥을 먹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배 속에서 천둥 치는 소리가 났다. 소진한 체력을 회복하기 위해 ‘밥심’ 스킬이 자동 시전되었다.

    “희나야, 괜찮아?”

    동생의 활약을 넋 놓고 지켜보던 희원이 슬금슬금 다가와 희나를 살폈다.

    그 물음에 희나는 고개를 저었다.

    “……안 괜찮아.”

    “그래 보인다. 일으켜 세워 줄까?”

    “아니. 그건 됐고, 오빠. 밥통에 밥 남은 것 있어?”

    “밥은 왜?”

    “나 배고파. 밥 줘.”

    어찌나 배가 고프던지 당장 맨밥 한 솥 정도는 그대로 퍼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꾸르륵, 꼬륵.

    다시 한번 크게 울리는 고동 소리에 희원이 부리나케 부엌으로 뛰어갔다. 희나는 달려가는 등 뒤로 외쳤다.

    “빨리! 솥째로 가져와!”

    던전 안의 살림꾼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