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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안의 살림꾼-60화 (60/228)
  • 던전 안의 살림꾼 60화

    으아악! 희나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이렇게 내 스킬을 또 들키게 되는 걸까?’

    우민아가 되도록 남들에게 들키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는데, 그게 참 어려웠다. 뭔가를 숨기려면 너무 많은 알리바이가 필요했다. 지금처럼 지레 찔리는 일도 많아졌다.

    “그러게. 어떻게 한다……?”

    희원이 턱을 쓸며 생각에 빠졌다. 그러다 이거다 싶은 게 떠올랐는지 아, 했다.

    “스킬이라고 하자.”

    “스킬?”

    “살림꾼 특화 스킬 중에 층간 소음 방지 스킬 같은 거 있다고 해. 그래서 기척 같은 것도 안 들린다고.”

    정말 이상한 설명이었다. 희나는 이마를 찌푸렸다.

    “그게 뭐야? 그런 허접한 거짓말이 통할 것 같아?”

    “들어 보면 세상에 별별 스킬 다 있잖아. 거기다 너는 클래스도 특이하니까 뭐라고 둘러대도 모르지 않을까? 히든 클래스라서 그렇다고 박박 우겨.”

    희원은 대한민국에서는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거라면서 꼬장에 가까운 삶의 지혜를 전수했다.

    「옳소옳소. 먼저 우기는 게 장땡.」

    오색이도 세상만사 이치는 그런 거라고 안테나를 까딱거렸다.

    심지어 바둑이마저 훌륭한 말을 들었다는 듯이 풀잎 두 개를 들어 팔랑팔랑 손뼉 비슷한 걸 쳤다.

    ‘역시 목소리 크고 뻔뻔한 게 답인 걸까?’

    한 사람과 한 달팽이와 한 식물이 이렇게까지 주장하니, 희나의 마음이 움직였다. 이렇게 뻔뻔하게 군다면 강진현을 속여 넘길 수 있을 것도 같았다.

    “그, 그런가?”

    “다음 일은 다음에 생각해. 설마 들키더라도 큰일이라도 나겠어? 그 사람, 네 음식 아니면 밥도 제대로 못 먹는다면서?”

    첫째인 희원은 희나에 비해 대범하고 태평한 데가 있었다. 거기다 밥 주는 사람을 해코지하는 놈은 짐승보다도 못한 놈이라며 기묘한 인류애를 드러냈다.

    ‘하긴…….’

    오빠의 설교를 듣고 있자니 또 틀린 말이 없는 것 같았다.

    강진현은 술에 취해서 희나를 들고 튈 정도로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모든 세상의 위협에서 지켜 준다는 로맨틱한 소리를 하면서 자기 방 안에 고이 모셔 놓을 정도로 말이다.

    “오빠가 그렇게 말해 주니까 좀 걱정이 가신다.”

    순순히 인정하자 희원은 뿌듯하게 웃으며 자기 가슴팍을 탁탁 쳤다.

    “영 걱정되면 아파트에 가구 좀 들여 놔서 사람 사는 것처럼은 만들어 놓고.”

    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한술 더 떴다.

    “그래. 그럼 우리 내일 가구 매장 가서 구경할까?”

    “내일 당장?”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데 뭐……. 돈도 많이 생겼는데 좀 써야겠어.”

    희나는 걱정과 염려가 아주 많긴 했지만, 한번 한다고 하면 빼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이왕 말 나온 김에 빨리 일을 해치우고 싶었다.

    결심하고 자리를 털고 일어나자마자 눈앞에 시스템 창이 팟 하고 떴다.

    <모델 하우스를 만들자!(난이도 미정): 다주택자가 된 당신. 마음껏 돈을 들여 당신의 미감을 뽐내 보세요!

    ▶ 필수 퀘스트 (0/2)

    - 적절한 가구 들이기 (0/100%)

    - 인테리어 소품 배치하기 (0/100%)

    ※ 시간제한: 없음

    ※ 퀘스트 불이행 시 불이익: 주택 미거주 여부를 들킬 수 있다는 두려움에 시달리게 됩니다.

    ※ 퀘스트 보상: 심신의 안정, ‘홈 스위트 홈’ 스킬 레벨 업!

    ※ 사용자의 선택에 따라 완료 시 추가 보상 지급>

    두 번째 받아 보는 퀘스트였다.

    자세히 살펴보니 이전 퀘스트와 내용은 비슷했다. 집 안을 꾸미라는 내용이었다. 보상도 ‘홈 스위트 홈’ 스킬 레벨 업으로 동일했다.

    이에 희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시스템은 대체 나랑 뭘 하자는 거지?’

    시스템은 현실 세계에서 희나가 집을 얻었다는 사실도 알았고, 강진현에게 스킬을 들킬까 봐 두려워한다는 사실까지 콕 집어 퀘스트에 적어 넣기까지 했다.

    사람들은 시스템이란 존재를 컴퓨터 프로그램에 비유하곤 했다. 특별한 감정과 목적 없이, 그저 그렇게 만들어졌기에 기계적인 입력과 출력을 반복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시스템은 희나에게 좀 다르게 다가왔다. 가끔 시스템은 희나를 도와주는 것 같기도, 앞길을 막는 것 같기도, 혹은 약 올리는 것 같기도 했다.

    가령, 희나가 처음 ‘홈 스위트 홈’ 스킬을 받고 끔찍한 상태의 원룸을 강매당했을 때처럼 말이다.

    퀘스트도 그랬다. 희나가 곤경에 처했을 때, 무언가 행동이 필요할 때마다 뿅 튀어나왔다.

    보통 퀘스트는 깨지 못할 경우 상당한 불이익을 받게 되는데, 희나는 그런 것도 없었다. 해 봤자 심미적인 고통, 심신의 불안함 정도였다. 상당히 너그러운 퀘스트라고도 볼 수 있었다.

    심지어 이번에 나온 퀘스트는 집이라는 공통점만 제외하면 ‘홈 스위트 홈’ 스킬과 연관도 없었다.

    ‘그런데 보상은 ‘홈 스위트 홈’ 레벨 업이라고?’

    청룡 길드에서 일하며 많은 헌터와 대화를 해 본 결과, 희나는 시스템이 이렇게 멋대로 행동하는 경우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건 내 행운 스탯이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에 그런 걸까?’

    하지만 보통 주는 게 있으면 받는 게 있는 법이다. 원하는 것이 있기에 이렇게 특별하게 구는 게 아닐까?

    의심을 품기에는 충분했다. 그 상대가 아무리 시스템이라 한들 말이다.

    “갑자기 왜 그래? 취기 돌아?”

    난데없이 허공을 노려보기 시작하는 희나가 이상하게 보이긴 했나 보다. 희원이 고개를 기울이며 킁킁댔다.

    “술 냄새는 많이 안 나고 고기 냄새만 나는데…….”

    희나는 오빠의 의심을 고쳐 주었다.

    “아냐. 나 퀘스트 새로 떠서 그래.”

    희원이 반색했다.

    “퀘스트가 떴다고? 어떤 내용인데?”

    “아파트에 가구 채워 넣고, 꾸미래.”

    “그게 끝이야?”

    “응.”

    “엄청 간단하네. 바둑이 키우는 내 퀘스트도 특이한데, 너도 못지않은걸. 히든 클래스는 다 이런가?”

    희원의 의문에 희나는 어깨를 으쓱할 수밖에 없었다.

    “난들 알겠어? 확실한 건, 시스템이 우리한테는 좀 이상하게 군다는 거야. 가끔 편의를 봐주는 것 같기도 하고…… 영 수상해.”

    희원은 의심쟁이 동생의 등을 욕실을 향해 떠밀었다.

    “뭐……. 그동안 힘들었으니까 드디어 우리 앞날에도 볕이 드는구나, 생각하자.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마. 너는 걱정이 너무 많아서 탈이야. 술 마셨으면 얌전히 발 씻고 자라.”

    하긴. 답이 없는 걸 머리 아프게 고민하는 것도 시간 낭비였다.

    희나는 오빠의 말에 수긍하며 씻으러 들어갔다. 뒤늦게 피로가 몰려왔다.

    * * *

    다음 날 아침. 희나는 일어나자마자 아파트 현관 앞에 스마트 초인종을 설치했다. 얼마 전에 주문해 놓은 물건이었다.

    스마트 초인종은 집 밖에 있더라도 초인종과 휴대전화를 연동해서 누가 집에 방문했는지 알 수 있게 해 주는 기기였다.

    다른 사람이 방문했을 경우를 대비해서 사 둔 물건이었다. 참고로 CCTV처럼 녹화도 됐다.

    한동안 방문객이 없을 거라고 생각해서 설치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던 것이었다. 하지만 옆집에 강진현이 산다는 걸 알게 된 이상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혹시나 진현 씨가 찾아올 수도 있으니까.’

    스마트 초인종을 설치한 후에는, 당장 청룡 길드 인사팀으로 전화를 했다. 수신인은 인사팀장 강목현이었다.

    - 잘 지내셨습니까, 이희나 씨. 아니, 이희나 상태 관리팀 팀장님.

    강목현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태연하게 전화를 받았다. 희나의 이마에 빠직 혈관이 솟았다.

    “인사팀장님! 옆집이 강진현 헌터네 집이라는 건 알려 주셨어야죠!”

    아무리 성격이 온순하다 해도 따질 때는 따져야 하는 법이다.

    - ……그걸 벌써 알게 되셨습니까?

    “네. 제가 알아내지 않았으면 영영 언질을 주시지 않았을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 아닙니다. 밝혀야 할 일이었죠.

    인사팀장이 유감을 표하기에, 희나는 따박따박 따졌다.

    “물론 이웃이 강진현 헌터님이라는 게 싫다는 말은 아니에요. 미리 고지를 해 주지 않으셨잖아요. 제게 집을 구해다 준 건 청룡 길드 측인데, 청룡 길드에서 강진현 헌터의 거취를 모르고 있었다는 건 말이 안 돼요. 특히 인사팀장님께서는 강 헌터님 친형이기도 하시잖아요.”

    어젯밤 가만히 침대에 누워 생각하자니, 배신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더랬다.

    계약상으로는 문제 될 게 없지만, 사기 계약을 당한 기분이었다. 철석같이 믿고 있던 길드인데, 이렇게 뒤통수 때리는 시늉을 할 줄이야!

    - 미안합니다. 무어라 변명할 거리가 없습니다.

    강목현 인사팀장은 정중히 사과하며 변명 비슷한 걸 꺼내 놓았다.

    - 던전 게이트에 휘말린 게 세 번……. 그러니까 벌써 돌발 상황에 엮이신 것만 해도 세 번째라고요. 덕분에 강진현 헌터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면서 기어코 경호를 자처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강진현 헌터 옆집에 살게 됐다는 건가요?”

    - 미리 말씀을 드리지 못해 미안합니다. 이왕 말이 나온 김에 마저 말씀드리자면, 희나 씨가 소유한 다른 집들도 옆집이 강 헌터 소유입니다.

    던전 안의 살림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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