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안의 살림꾼-50화 (50/228)
  • 던전 안의 살림꾼 50화

    실제로 오색이는 희나의 ‘홈 스위트 홈’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그 능력은 잘 알고말고.’

    오색이를 진노하게 하는 바람에 인테리어 테러에 시달렸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희나는 이젠 거의 땀을 흘리는 수준이 되어 버린 벽을 바라보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집 안은 점점 습해지고, 꿉꿉해졌다.

    “일단 상황이 더 나빠지기 전에 오색이를 찾아내야겠어.”

    조금 있으면 바닥에 물이 고이고, 온 벽면이 곰팡이투성이가 되어 버릴지도 몰랐다.

    “오색아! 일단 대화로 풀자!”

    “어디 있어? 오색아!”

    남매는 한층 더 다급하게 달팽이를 찾아 온 방 안을 뒤졌다.

    “오색아! 여기 있었구나! 얼마나 찾았는데!”

    집 안을 다 뒤집어 놓은 끝에, 희나는 마침내 오색이를 찾아냈다. 오색이는 희나의 양말 서랍 가장 안쪽에 처박혀 있었다.

    달팽이 집 안에 쏙 들어가 버린 오색이는 동글동글하게 접어 놓은 양말들과 잘 구분되지 않았다. 희나와 희원이 한참을 찾지 못할 만도 했다.

    희나와 희원은 양말 서랍을 사이에 두고 앉았다.

    “오색아?”

    “잠깐 나와 볼래?”

    말을 걸었지만, 달팽이 집 껍데기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네 속이 많이 상한 건 알겠어. 하지만 우린 대화가 필요해.”

    희나는 껍데기를 살살 쓰다듬으며 오색이를 얼렀다.

    어쩐지 오색이를 중심으로 양말이 유독 흠뻑 젖어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이에 희나는 속으로 ‘달팽이도 눈물을 흘릴 수 있었던가?’ 하고 궁금해졌다.

    “너는 우리 가족이나 마찬가지인데, 고작 집이 몇 채 더 생겼다는 이유로 영영 안 보고 지낼 수는 없잖아.”

    몸을 숙여 간절히 속닥거리자, 껍데기가 움찔 떨리는 것 같기도 했다.

    “응? 오색아. 세상에서 제일 예쁜 껍데기를 가지고 있는 달팽이님! 저희 대화를 좀 해요! 설마, 우리 집을 이대로 내버려 둘 생각이야?”

    ‘홈 스위트 홈’ 이야기를 하니 달팽이 안테나가 빼꼼 튀어나왔다.

    「현 상황: 집주인이 자초함. 배신. 배신.」

    그러면서 희나를 비난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희나는 그 말에 기분이 나쁘기는커녕 기뻤다. 드디어 오색이가 대화를 할 생각이 든 거니까!

    “그래. 네가 배신감을 느끼는 건 당연해.”

    「ㅠㅠ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ㅠ」

    슬슬 달래니 오색이의 서러움이 폭발한 것 같았다. 오색이는 온갖 축약어와 특수 문자, 이모티콘을 사용해 가며 자기가 느낀 감정을 서술했다.

    「홈 스위트 홈 <<<<< 새로운 집, 더 넓은 집, 더 쾌적한 집」

    홈 스위트 홈보다 새집이 훨씬 더 좋지 않으냐.

    「집주인 = 쫄보, ∴ 선택 → 던전 택지(×), 바깥 새집(○)」

    집주인인 희나는 겁쟁이라서 던전 안에 있는 이 집보다 바깥에 있는 안전한 새집을 선택할 게 분명하다.

    「본 관리자 뒷전 → 서서히 잊힘.」

    나는 뒷전에 놓여 서서히 잊힐 것이다.

    「( ˃̣̣̥᷄⌓˂̣̣̥᷅ )」

    엉엉.

    오색이는 멋진 새집이 생겨 뒷전이 되어 버릴 자신의 처지가 서러운 듯했다. 감정을 서술한 후, 집 안의 습도가 부쩍 높아졌다.

    이에 희나와 희원은 동시에 입을 열었다.

    “아니야. 그럴 리가! 어째서 네가 뒷전이 될 거라고 생각해?”

    “맞아. 그리고 던전 밭으로 가려면 이 집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고. 절대 잊을 리 없어.”

    솔직히 말해서 청룡 길드 근처에 있는 집은 워낙 인프라가 좋아서 실제로 살아 볼 생각이 있긴 했다.

    ‘이 기회 아니면 언제 이렇게 좋은 집에 살아 보겠어?’

    물론 그렇다고 ‘홈 스위트 홈’을 뒷전으로 놓을 생각은 없었다.

    이곳은 ‘문’을 열 때마다 지나쳐 가야 하는 곳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오색이가 있는 장소였다. 정성을 다해 가꾸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오색이가 일침을 날렸다.

    「사람이 살고 있지 않은 집 ≠ 진짜 집」

    「주택 관리자 → 진짜 집에 깃들어야만 의미 有」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은 진짜 집이 아니라고. 주택 관리자인 자신은 진짜 집에 있을 때 존재 의미가 있다고.

    “음…….”

    희나는 침음했다.

    희나는 오색이가 단순이 새집을 부러워해서 질투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색이가 이토록 강경하게 반대했던 데에는 그보다 더 깊은 사정이 있었다.

    오색이는 희나와 희원에게 조금이라도 잊히기 싫었던 거였다. 그리고 이건 자기가 책임지고 있는 집을 진짜 집답게 남겨 두기 위한 투쟁이기도 했다.

    희나는 그제야 오색이의 생각을 완전히 이해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어휴. 진작에 진지하게 얘기해 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우리 때문에 괜히 속만 잔뜩 탔겠다.”

    「ㅠ ㅇㅇ」

    어느새 달팽이 집 안에서 완전히 기어 나온 오색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바탕 감정을 퍼붓고 났더니, 한결 개운해 보였다. 시꺼메졌던 껍데기 색깔이 다시 반들반들 빛나고 있었다.

    그런 오색이를 가운데에 둔 채, 희나와 희원은 시선을 마주쳤다.

    ‘어떻게 할래?’

    둘 사이에서 눈빛이 빠르게 오갔다. 다행히도 남매는 지금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 작은 달팽이를 달랠 길은 단 하나밖에 없었다.

    “오색아.”

    희나는 양말 사이를 고물고물 조용히 기어 다니는 오색이를 불렀다. 듣고 있다는 듯 오색이의 안테나가 빳빳이 섰다.

    「?」

    “우리 계속 여기 살 거야. 약속할게. 진짜로. 네가 여기 있겠다는데, 어떻게 우리가 떠날 수 있겠어? 넌 이미 우리 가족이야. 떨어져 지낼 수는 없지.”

    희나의 가족이라는 표현에 오색이의 안테나가 파르르 떨렸다. 어떤 감정적 변화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얼마 있지 않아 오색이의 머리 위로 메시지 창이 떴다.

    「알겠음.」

    “이제 알겠지? 그럼 이제 그만 울어. 뚝!”

    희나는 탱글탱글한 달팽이의 머리통을 손가락으로 쓰다듬었다. 오색이는 그 손길을 피하지 않았다. 대신 궁금한 걸 물었다.

    「그럼, 나머지 주택 처분 여부 궁금.」

    희나가 받은 나머지 세 채의 집을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였다.

    “음……. 그건.”

    희나는 말꼬리를 늘렸다. 이건 오색이의 이해가 필요한 부분이었다.

    “집을 당장 팔 수는 없어. 이 집에는 마석을 건 계약이 있거든. 마석 걸고 약속한 거 어기면 큰일 나는 것 알지?”

    「…….」

    침묵하는 오색이가 무슨 일을 저지를지 두려워 희나는 재빨리 말을 이었다.

    “대신 정말로 그 집에 들어가지 않겠다는 의미로 빨리 세입자를 찾아볼게. 전세든, 월세든 누군가 이미 사는 집에 우리가 들어가서 살 수는 없겠지? 그렇지?”

    「ㅇㅇ.」

    오색이는 간신히 고개를 끄덕였다.

    희나는 그 모습을 보며 마른침을 꼴딱 삼켰다. 이것 말고 넘어야 할 산이 하나 더 있었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서 제일 꺼내기 어려운 말이 있었다.

    “그, 근데, 오색아.”

    「듣고 있음.」

    “집 세 채 중에 한 채는 남겨 두면 안 될까?”

    오색이의 안테나가 공격적으로 솟아올랐다.

    「!!!!!!!!!!!! !! !!!!!!!」

    희나는 차근차근 설명했다.

    “바깥세상에서 제대로 살아가려면 행정적으로 써넣을 주소 하나쯤은 있어야 해. 하지만 이 집은 주소가 없잖아. 남들 눈을 속이기 위한 바깥세상의 집 한 채는 필요해. 아니면 내 ‘홈 스위트 홈’ 스킬이 들켜 버릴 수도 있어. 그러면 아주 곤란하잖아. 내가 이 스킬 때문에 나쁜 사람한테 납치돼서 노예처럼 지내면 좋겠어?”

    한참의 침묵 끝에, 오색이의 답변이 떴다.

    「……그건 아님. 집주인 안전 우선순위.」

    “이해해 줘서 고마워. 그 집은 정말로 행정적으로만 사용할게.”

    「여아일언 중천금!」

    “그래, 그래. 약속할게. 손가락 약속……은 네가 손가락이 없어서 못 하는구나. 아무튼, 나랑 오빠는 여전히 이 집에서 살 거야.”

    희나의 약속에 오색이가 안테나를 기역 자로 까딱거렸다.

    「본 달팽이, 넓은 아량. 감동 실화.」

    그러면서 자기의 넓은 아량에 감동하라며 몸을 빳빳이 했다.

    희나와 희원은 그 모습을 보며 하하 웃었다. 어찌 되었건 오색이와의 합의가 잘 끝나서 다행이었다.

    한편, 오색이는 일을 벌일 줄만 알지 복구는 못하는 달팽이였다.

    자연히 축축해진 집은 희나와 희원의 몫이 되었다.

    희나는 우선 찬장을 뒤져 식빵을 찾았다. 그리고 식빵에 딸기 잼을 슥슥 발라 오빠의 입에 쑤셔 넣었다.

    희원은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희나의 손짓을 멍하니 바라보다 급작스러운 습격을 받았다.

    “으읍!”

    “빨리 먹고 누웠다가 일어나. 오빠가 소처럼 힘써야 할 일이 많아.”

    희나는 오빠의 자기 계발에 적극적인 아주 좋은 동생이었다. ‘근면 성실 소 되는 법’이라는 좋은 스킬을 활용하지 않는 건 크나큰 손실이었다.

    “아라써, 아라써!”

    희원은 희나의 배려에 힘입어 달콤한 빵 조각을 씹으며 축축한 마룻바닥에 한동안 대자로 누워 있어야만 했다.

    남매는 축축한 집 안을 청소하느라 온 힘을 다 쏟았다.

    “아!”

    방바닥에 맺힌 물을 소처럼 닦아 내던 희원은 문득 깨달음을 얻었다. 오색이와 처음 만나기 전, 동생이 신신당부하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래서 달팽이를 소중히…… 여겨야 하는구나.”

    희나는 앞치마와 머릿수건을 두르고 청소 무아지경에 빠져 있었으므로, 희원의 깨달음의 순간을 보지 못했다. 아마 보았더라면 자기가 빈말을 했겠냐며 톡 쏘아붙였을 것이다.

    “오빠, 뭐 해? 손이 쉬고 있잖아.”

    대신 희원을 재촉했다. 오늘 안에 습기를 다 거두어 내고 곰팡이를 없애 버리는 것이 목표였다.

    던전 안의 살림꾼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