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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안의 살림꾼-42화 (42/228)
  • 던전 안의 살림꾼 42화

    강진현은 간신히 버려진 음식에서 눈을 뗐다.

    “아닙니다. 보스 몬스터의 곁에서 미리 공격 대기하고 있는 편이 가장 효율적입니다.”

    “그럼 그쪽으로 가요. 제가 지도 스킬 쓸까요?”

    “괜찮습니다. 한 번 와 본 곳이라 방향을 압니다.”

    던전 이야기에 강진현은 다시 정신을 차리고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도시락 한 통에 눈을 촉촉하게 적시던 남자는 사라지고, 노련한 헌터의 모습만이 남았다. 그는 능숙하게 희나를 이끌었다.

    ‘여기 와 봤다는 말은 정말인가 봐. 길을 다 알고 있네.’

    희나는 ‘내 집은 어디에’ 스킬을 사용하여 힐끔힐끔 지도를 훔쳐보았다. 강진현은 보스 몬스터를 향해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보스 몬스터, 그러니까 대왕 버섯의 곁에 도달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희나의 종종걸음으로도 30분밖에 안 걸렸다. 날도 선선했고 바닥이 조금 습한 것 빼고는 평탄했으므로 걷기도 편했다.

    “와……. 누가 봐도 이 버섯이 보스네요.”

    희나는 커다란 버섯을 올려다보았다. 엄청나게 컸다. 일단 둘레만 해도 장정 세 명이 힘껏 끌어안아야 할 정도로 커다랬다.

    ‘이 버섯은 먹을 수 있을까?’

    괜한 호기심이 들어 기웃기웃 대왕 버섯을 구경하던 참이었다.

    “이리 와서 앉으십시오.”

    어느새 강진현은 버섯 옆에 자리를 만들어 두고 손짓했다. 자리를 빙 둘러 환영의 마석 가루를 뿌려 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 던전은 별로 위험하지 않다더니, 할 건 다 해 두었다.

    ‘뭐든 안전한 게 좋지.’

    희나는 강진현의 행동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그란 원 안으로 들어갔다. 모포나 침낭, 물통처럼 못 보던 물건들이 있었다. 아마 인벤토리에 있는 걸 꺼낸 모양이었다.

    ‘내 인벤토리에는 뭐가 있지……?’

    희나는 자기의 인벤토리 창을 띄웠다. A급짜리 곰팡이 박멸액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없었다. 그야말로 텅텅 비어 있었다.

    ‘나도 비상시를 대비해서 인벤토리에 뭘 좀 넣어 두어야 하나? 석 달 사이에 던전에 세 번이나 떨어지다니.’

    희나는 강진현의 곁에 털썩 주저앉으며 속으로 투덜거렸다.

    ‘그래도 다행인 건, 이번에도 강진현 헌터님과 함께라는 점이야.’

    바닥에 떨어진 음식을 주워 먹고 싶어 하는 땅강아지 같은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강진현은 엄연한 S급 헌터였다. 이 세상에 그보다 든든한 동료는 없었다.

    거기다 그는 희나를 꽤 세심하게 챙겨 주었다. 어디선가 돌을 구해 와 앉을 만한 자리를 만들어 주었고, 모포도 둘러 주었다. 심지어 먹을 것까지 챙겼다.

    “허기지실 수 있을 테니, 드리겠습니다.”

    그가 손바닥만 한 비스킷 하나와 육포 한 줌, 물 한 병을 건넸다.

    “헌터님, 고맙습니다.”

    희나는 그의 호의를 감사히 받아들였다.

    해가 지고, 다시 뜨기까지는 12시간이 넘게 남았다. 그러니까 희나와 강진현이 단둘이 보내야 하는 시간도 그만큼 남았다는 뜻이었다.

    ‘그래도 옛날보단 좀 낫네.’

    그동안 점심 식사를 같이했던 이력이 있어서 그럴까? 이번에는 지난번보다 훨씬 덜 어색했다.

    할 말이 없으면 다음에 무슨 도시락 메뉴를 쌀지에 대해 이야기하면 됐다.

    강진현은 희나의 손이 닿은 음식이라면 다 좋다고 했지만, 희나는 몇몇 메뉴에서 그의 눈이 반짝이는 걸 놓치지 않았다.

    ‘닭 요리를 좋아하는구나. 다음에는 닭강정을 해 가야지.’

    그렇게 대화가 속닥속닥 이어지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

    어색하지는 않았고, 편안했다. 희나는 육포 한 개를 집어 잘근거리고 있었다.

    그런 희나를 한참 동안 바라보던 강진현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희나 씨.”

    “네, 헌터님. 무슨 일이세요?”

    “그렇게 어렵게 부르지 않으셔도 됩니다.”

    뜬금없는 소리에 희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예?”

    “그, ‘강진현 헌터님’이라는 호칭 말입니다. 조금 더 편하게 불러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어떻게요?”

    ‘야, 라고 부르란 뜻은 아닐 테고.’

    희나는 멍하니 육포를 씹으며 생각했다.

    “‘헌터님’은 부담스럽습니다. 강진현 씨나 진현 씨라고 불러 주십시오.”

    상상도 해 본 적 없는 소리여서 희나는 먹던 육포를 뱉어 낼 뻔했다.

    “예?”

    ‘진현 씨’라니! 그런 낯부끄러운 호칭이라니!

    ‘누구누구 씨’는 사회에서 자주 쓰이는 호칭이긴 하지만, 강진현의 이름 옆에 붙은 ‘씨’라는 글자는 좀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일반적으로 강진현 헌터라는 표현을 더 자주 들어서일까?

    “희나 씨만 일방적으로 극존칭을 쓰시는 것이 다소 불편했습니다.”

    자주 보는 사이이니 편하게 부르라는 강진현의 말도 그럴싸하긴 했다. 하지만 단둘이 있는 상황에서 이런 주제의 대화를 나누는 건 어쩐지 부끄러웠다.

    ‘좀 더 사적인 느낌이 든다고 해야 하나.’

    희나는 대답을 머뭇거렸다.

    “그렇지만…….”

    “부탁드립니다. 부디 저를 조금 더 편안히 여겨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강진현은 희나에게 깍듯이 부탁했다.

    이런 상황에서 ‘싫어요, 저는 끝까지 강진현 헌터님이라고 부를 거예요!’하고 고집을 부리는 것도 못 할 짓이었다.

    희나는 결국 강진현의 요청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알았어요. 대신 사람들 많은 곳에서는 강진현 헌터님이라고 부를게요.”

    “어째서입니까?”

    “눈에 너무 띄잖아요. 저는 다른 헌터들도 전부 ‘무슨무슨 헌터님’ 하고 부른단 말이에요. 그런데 가, 가, 강진현 씨만 다르게 부르면 다들 신경 쓸 것 아니에요?”

    “희나 씨가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어쩔 수 없지요. 알겠습니다.”

    강진현은 더 고집부리지 않고 순순히 물러났다.

    어쨌든 희나의 입에서 ‘강진현 헌터님’이 아닌 ‘강진현 씨’라는 소리를 들은 게 만족스러운 것 같았다.

    희나는 어쩐지 짠한 기분이 들어 물었다.

    “그렇게 제가 한 음식이 좋으세요?”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저한테 좀 더 가까운 호칭을 허락하신 거잖아요. 제 음식이 맛있어서 그런 것 아닌가요?”

    자뻑으로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S급 헌터가 C급 살림꾼과 친해지고 싶어 할 만한 이유는 그것밖에 없었다.

    “그건…….”

    강진현은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쩌면 그렇게 볼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음식이 맛있어서’라는 단순한 이유 때문은 아닙니다.”

    그렇게 강진현은 자기 이야기를 시작했다.

    “S급으로 각성한 이후, 한순간도 편안히 지내 본 적이 없습니다. 예민한 오감 때문입니다. 주변의 온갖 자극이 하나하나 증폭되어 들어옵니다. 휴식을 취하기엔 주변이 너무 시끄럽고, 맛을 느끼기에 미각이 너무 예민합니다.”

    “모든 S급 각성자들은 그렇게 예민한 건가요?”

    희나는 예전에 일반 휴게실 침대를 뜯어 보겠다고 난동을 피우던 최상훈 감정사를 떠올렸다. 그 또한 S급이었다.

    하지만 그는 불같은 동시에 태평한 성격이었다. 강진현처럼 예민해 보이지는 않았다.

    “……글쎄요. 제가 특출하게 예민한 것 같긴 합니다.”

    강진현이 대답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고갯짓에 풀리지 않는 깊은 피로가 보였다.

    “힘드시겠어요.”

    “그만한 힘을 얻었으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희나 씨의 음식을 먹으면 잠시 평화가 찾아옵니다. 예전에 느꼈던 그 맛들을 떠올리며 추억에 잠길 수 있으니까요.”

    그 대답에 희나는 안쓰러움을 느꼈다.

    ‘랭크가 높고 강하다고 무조건 좋은 게 아니었구나.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의식주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희나에게는 재앙이나 마찬가지인 삶이었다.

    그러다 문득, 희나는 자기가 어쩌면 강진현의 피로를 조금이나마 풀어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강진현 헌터, 아니……, 강진현 씨. 혹시 헌터 휴게실에서 쉬어 본 적 있으세요?”

    “시끄럽고 요란해서 거의 가지 않습니다.”

    “거기 침대 써 본 적 없으세요?”

    “없습니다.”

    희나의 솜씨를 맛보지 못했다는 소리였다.

    그 말을 듣자마자 자리에서 발딱 일어나 강진현이 펴 놓은 침낭으로 향했다. 구면인 침낭이었다.

    <상급 침낭(A): 외부 기온과 상관없이 체온이 유지된다. 회복 속도 +5%>

    지난번에 이 침낭에 ‘안락한 침상’ 스킬을 써서 회복 속도를 100%까지 올려 본 적 있었다.

    거기다 희나는 이미 S급 감정사인 최상훈을 재워 본 전적이 있었다.

    ‘어쩌면 내 스킬로 S급 헌터도 재울 수 있지 않을까?’

    희나는 온 정성을 다해서 침낭에 ‘안락한 침상’ 스킬을 시전했다. 특히 강진현에 대한 안쓰러움을 한껏 담아 손을 움직였다.

    ‘강진현 헌터님이 잠시나마 편히 쉴 수 있기를!’

    시스템 창이 또롱또롱 스킬 시전을 알렸다. 스킬도 평소보다 훨씬 잘 먹힌 것 같았다. 뿌듯한 기색을 가득 담아 뒤돌아보았다.

    “잠깐 눈 좀 붙이실래요?”

    “예?”

    “스킬을 사용해 침낭을 깔았거든요.”

    희나는 ‘안락한 손길’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주었다.

    자기 스킬에 대해 함부로 말하면 안 된다고는 하지만, 이 스킬은 거의 온 길드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거였다.

    거기에 강진현 한 명을 더 추가한다고 뭐가 달라질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안전하고 안락한 잠자리를 만들어 주는 스킬이라……. 독특합니다.”

    강진현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자신의 A급 침낭을 내려다보았다. 하지만 별로 누울 생각은 없어 보였다.

    희나는 그를 설득했다.

    “새벽까지 시간은 무척 많이 남았어요. 이곳은 얌전히만 있으면 안전한 곳이라면서요? 저기에 환영의 마석 가루도 뿌려 놓았으니까 더 안전하고요. 거기다 영 불안하면 제가 강진현 씨를 깨우면 되니까요.”

    희나는 이 사람에게 잠시나마 꿀 같은 휴식을 선물하고 싶었다. 순수한 인간적 호의에서 우러난 친절이었다.

    ‘내 스킬이 완전히 먹히지는 않더라도, 다른 침낭보단 편안하긴 하겠지.’

    사실 모든 능력치에서 톱을 찍은 강진현을 고작 C급 스킬로 재울 수 있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럼, 잠시 누워 보도록 하겠습니다.”

    강진현 또한 그렇게 생각한 것 같았다.

    그는 침낭이 갑갑해서 오래 누워 있지는 못할 것 같다고 말하면서 그 속으로 들어갔다.

    던전 안의 살림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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