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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안의 살림꾼-41화 (41/228)
  • 던전 안의 살림꾼 41화

    우민아는 머리를 헝클어트리며 끙, 신음했다. 그러자 누군가가 대답했다.

    “S급 헌터가 민간인 데리고 던전 하나 혼자 못 돌겠습니까?”

    “아오……. 그렇겠지? 지난번에도 잘 데리고 나왔으니까 이번에도 상처 하나 없이 데리고 나오겠지?”

    “랜덤이라곤 해도 B급 던전에 떨어질 테니 S급한테는 껌 씹는 것보다 쉬운 일일걸요.”

    듣고 보니 그랬다. 우민아는 희나에 대한 걱정을 잠시 접어 두고 휘하 팀원들에게 소리쳤다. 눈길이 이글거렸다.

    “여기서 노닥거릴 생각 말고 게이트석 활성화 실험하던 놈이나 족쳐 내!”

    희나가 던전에서 이틀 안에 나오지 못한다면, 그놈을 아주 잡아 죽여 버릴 생각이었다.

    * * *

    “으아아.”

    몰려오는 어지러움에 희나는 정신을 못 차리고 소리 질렀다.

    마치 다람쥐 통 놀이 기구 안에 있는 것 같았다. 세상이 360도로 빙글빙글 돌았다. 진공청소기에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그 이상한 어지러움은 약 10초간 지속되다 딱 멈췄다.

    “어, 어지러워.”

    희나는 띵한 머리를 붙잡으며 신음했다. 너무 어지러운 나머지 빈혈이 온 것처럼 눈앞이 보였다, 안 보였다 했다.

    강진현은 그런 희나를 바닥에 내려놓아 앉혔다.

    “희나 씨, 괜찮으십니까? 많이 어지럽습니까?”

    그는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주저앉은 희나를 붙잡고 이리저리 살폈다.

    강진현은 겉으로 보이는 외상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는 희나의 어깨에서 손을 뗐다. 그리고 희나가 제정신을 차릴 때까지 가만히 기다려 주었다.

    정신을 차린 희나가 가장 먼저 꺼낸 말은 이거였다.

    “……뭐, 뭐예요?”

    강진현은 차분히 대답해 주었다.

    “이곳은 B급 던전입니다.”

    앞뒤를 너무 생략한 게 문제였지만.

    “아니, 그게 아니라.”

    희나는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따져 물었다.

    “……저랑 강진현 헌터님은 방금까지만 해도 회사 옥상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잖아요.”

    “그렇습니다.”

    “근데 왜 갑자기 배경이 던전으로 바뀐 거죠?”

    꿈꾸는 것 같았다. 평온한 일상이 비일상으로 바뀌는 데에는 채 몇 분, 아니 몇 초도 걸리지 않았다.

    “이번에는 동전 같은 것도 안 닦았는데! 설마 또 던전 게이트가 열린 건가요? 청룡 길드 사라지는 거예요? 안 되는데!”

    희나의 실직 트라우마가 자극되려는 순간이었다.

    “던전 게이트가 열린 건 맞습니다만, 일반적인 게이트 오픈은 아닙니다.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게이트입니다.”

    “인공적으로 게이트를 만들어요?”

    “게이트 마석이 폭주한 것 같습니다.”

    강진현이 얼떨떨한 희나에게 간단히 설명해 주었다.

    누군가가 인공 게이트 마석을 실험하다가 폭주시켰고, 그걸 처치하기 위해 아무도 없는 장소를 찾아 던져 버린 것 같다고.

    자주는 아니지만 길드에선 아주 가끔씩 이런 일이 벌어진다고도 덧붙였다.

    희나는 경악을 참지 못하고 되물었다.

    “그걸 이런 식으로 처리해 왔어요? 옥상 정원 위에 던져 버리는 식으로?”

    커다란 길드에서 하는 일 처리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주먹구구식이었다.

    “그동안 별문제는 없었습니다.”

    “이런 건 문제가 생기고 말고의 일이 아닌 것 아니에요?”

    희나는 헌터들의 범상찮은 사고방식에 적응하지 못하고 어리바리했다. 그러자 강진현은 아무렇지 않게 대꾸했다.

    “물론 옥상 정원에 아무도 없을 때만 이 방법을 씁니다. 다만 이번에는 우민아 헌터가 제 기척을 잡아내지 못했을 뿐이지요.”

    당연했다. 기척을 감춘 S급 헌터와 그 일행이었다. 그러니 옥상에 아무도 없다고 판단하고 허공에 게이트 마석을 던져 버린 우민아의 잘못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참고로 인공으로 만든 게이트는 그 규모가 작은 데다, 열리는 시간이 극도로 짧은 편입니다.”

    강진현은 쓸모없는 게이트 잡학 상식까지 친절하게 알려 주었다.

    희나는 찬찬히 그 설명을 듣고는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했다.

    “그러니까 우리는 재수 없게 인공 게이트에 빨려 들어와서 던전에 떨어졌다는 말씀이시죠?”

    “맞습니다. 잘 이해했습니다.”

    강진현이 입꼬리를 올리며 똑똑한 학생을 칭찬해 주었다. 그러나 전혀 기쁘지 않았다.

    희나는 절규했다.

    “던전 다녀온 지 한 달도 안 된 것 같은데 또 던전에 떨어지다니!”

    헌터도 아닌데 벌써 세 번째 던전이었다. 다른 사람은 평생을 살아도 한 번 떨어질까 말까 하는 던전을 벌써 세 번째!

    ‘이럴 거면 차라리 던전 공략팀 가서 기본급 빵빵하게 받고 말지!’

    억울함에 희나는 말도 안 되는 생각까지 했다. 희나의 음식을 맛보기 전의 강진현이었다면 두 손 들고 환영할 만한 생각이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공략이 쉬운 편에 속하는 던전입니다. 2주 후에 청룡 길드에서 공략 예정인 던전이었는데, 이렇게 미리 들어오게 되었군요.”

    강진현은 이곳이 어딘지 아는 것 같았다. 익숙한 표정으로 희나를 일으켜 세웠다. 맞잡은 단단한 손이 유독 든든하게 느껴졌다.

    희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3m는 되어 보이는 커다란 기둥들이 듬성듬성 나 있었다. 가지나 잎이 없는 걸 봐선 나무는 아닌 듯 보였다.

    대신 기둥 꼭대기에 주름진 꽃봉오리 같은 게 입을 다문 채 매달려 있었다. 기둥의 크기는 조금씩 달랐지만, 모양은 다 비슷했다.

    “이 던전에 와 본 적 있으세요?”

    “그렇습니다.”

    대답은 시원하게 나왔다. 희나는 새삼스럽다는 듯 그를 올려다보았다.

    “공략이 어렵지 않아 지금은 제가 나서지 않지만, 아무 정보가 없었던 첫 토벌 때 입장한 기억이 있습니다.”

    강진현은 덤덤하게 이 던전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한 치의 동요조차 느껴지지 않는 여유로운 모습이 새삼스럽게 보였다.

    “이 던전은 버섯 형태의 몬스터들이 군집을 이룬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이럴 경우, 군집 정중앙의 보스 몬스터만 잡으면 나머지는 다 시들어 사라집니다.”

    “버섯이…… 몬스터?”

    희나는 오늘 된장국에 넣은 느타리버섯과 팽이버섯을 떠올렸다.

    ‘그런 버섯이 몬스터가 될 수 있다니?’

    표정을 읽었는지, 강진현이 조금 더 자세히 설명했다.

    “버섯 자체는 움직이지 못합니다. 하지만 포자를 내뿜어 적을 공격할 수 있습니다.”

    “포자요?”

    “그렇습니다. 포자가 마치 벌 떼처럼 움직이죠.”

    “으……. 상상은 잘 안 되지만 징그럽고 위험하게 들리네요. 마스크라도 껴야 할까요?”

    희나는 청소할 때 끼는 일회용 마스크를 꺼내 강진현에게 건넸다.

    강진현은 그 친절을 정중히 거절했다.

    “괜찮습니다. 먼저 공격하지만 않으면 포자 공격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해 뜰 무렵을 제외하면 완전히 안전하다고 볼 수 있죠. 무엇보다 희나 씨는 제가 지켜드릴 테니, 아무런 걱정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러면서 추가로 설명했다.

    “공략법은 간단합니다. 해가 뜬 후 한 시간 동안, 버섯 군집의 봉오리가 벌어지고 활동을 시작합니다. 그때 보스 몬스터의 봉오리 또한 벌어지는데, 그 틈을 타 벌어진 한가운데를 찔러 제거하면 됩니다.”

    말이 끝나자마자 희나는 자기 그림자를 내려다보았다. 해가 머리 꼭대기에 있는지, 발밑에 그림자가 고여 있었다.

    “아직 정오밖에 안 됐는데, 새벽까지 기다려야 하는 거네요?”

    “예. 하지만 기다리는 동안 전투를 할 필요는 없으니, 비교적 공략이 깔끔하고 간단하다고 할 수 있겠지요.”

    그는 조용히 대답하며 그들과 함께 게이트에 휩쓸린 물건들을 주섬주섬 주워 담았다. 명품이라도 만지는 듯, 손길이 아주 조심스러웠다.

    ‘뭐지?’

    고개를 쭉 내밀어 자세히 살펴보니 그건 바로 희나의 보온 도시락 통이었다.

    “도시락 통도 같이 쓸려 왔나 봐요. 망가졌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멀쩡하네.”

    희나는 그의 옆에 쪼그려 앉아 말을 걸었다. S급 헌터가 도시락 통을 수습하고 있으니,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도시락 통만 멀쩡하군요.”

    그런데 강진현이 풍기는 기색이 어쩐지 심상찮았다. 희나는 고개를 돌려 그의 표정을 살폈다.

    ‘어라?’

    대체로 무심하기만 하던 눈이 평소와는 좀 달랐다. 도시락 통을 향해 일명 ‘멜로 눈깔’이라고 불리는 촉촉한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헉. 설렌다.’

    희나의 심장은 미남의 얼굴에 취약했다. 희나는 콩닥콩닥 뛰는 가슴을 애써 가라앉혔다.

    “무슨 일이라도 있어요?”

    묻자, 강진현이 천천히 입술을 뗐다.

    “도시락을…….”

    “도시락을?”

    “희나 씨가 손수 싸 주신 도시락을 반절도 못 먹었는데, 다 엎질러 버렸습니다.”

    그랬다. 그는 엉망이 된 도시락 내용물을 보며 슬퍼하고 있었다.

    마치 물에 씻다가 사라져 버린 솜사탕을 바라보는 라쿤의 모습처럼 허망해 보였다.

    도시락 통을 붙잡고 어쩔 줄 모르기에, 끼어들어 도시락 통을 낚아챘다.

    “한 끼 도시락일 뿐이잖아요.”

    그러면서 희나는 흙이 튄 밥과 반찬을 던전 바닥에 탈탈 털어서 버렸다.

    음식이 바닥에 가차 없이 버려질 때마다 강진현의 동공이 흔들렸다.

    희나는 그에게 ‘헌터님, 바닥에 떨어진 건 드시면 안 돼요.’라고 말해 주는 게 실례가 될지 잠깐 고민해야 했다.

    “대충 다 정리했네요.”

    다행히 희나는 큰 사고 없이 도시락 통을 수습했다. 강진현은 바닥에 버려진 음식들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계속 힐끗거렸다.

    “여기서 나가면 더 맛있는 걸로 도시락 싸 드릴게요. 너무 아쉬워하지 마세요.”

    “하지만 이건 특별…….”

    “씁, 헌터님.”

    희나는 저도 모르게 강아지에게 하듯 ‘씁!’ 하고 혀 차는 소리를 내고 말았다.

    다행히 강진현은 희나의 대우에 개의치 않았다. 대신 꼬리를 말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미안합니다. 희나 씨 손길이 닿았던 음식이고, 물건이라고 생각하니 아쉬움이 많이 남았던 듯합니다.”

    어쨌거나 S급 헌터의 땅거지 같은 모습을 계속 지켜보는 건 매우 힘겨운 일이었다.

    희나는 강진현의 관심사를 돌리기 위해 다른 것을 물었다.

    “그래서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나요? 이대로 있으면 돼요?”

    던전 안의 살림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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