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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안의 살림꾼-30화 (30/228)
  • 던전 안의 살림꾼 30화

    사 왔던 고기가 거의 동나 갈 때쯤이었다.

    고기를 흡입하는 데 여념이 없던 희원이 퍼뜩 무엇인가 떠올랐다는 듯 고개를 들어 올렸다.

    “헉. 내 정신 좀. 고기가 너무 맛있어서 삼겹살의 소울 메이트를 잊고 있었어.”

    “뭐?”

    희나는 오빠가 뭘 말할 생각인지 알 것 같았지만 모른 척 시치미를 뗐다.

    희원이 작은 잔을 잡는 시늉을 하며 팔목을 꺾었다.

    “여기에 이슬 한잔으로 입 씻으면 딱일 것 같지 않아?”

    은근슬쩍 맑고 독한 액체를 언급하는 오빠를 향해 희나는 고개를 딱 잘라 저었다.

    “안 돼.”

    “왜? 오늘 좋은 날이잖아. 나가서 사 오는 거 귀찮으면 내가 사 올까? 네가 마트 있는 데서 문 열어 주면 가는 김에 안주도 사 올게. 그 앞에서 기다려만 주라.”

    희원은 정말로 술이 당겼는지 심부름까지 자처했다.

    하지만 희나는 아주 강경하게 금주를 외쳤다. 왜냐하면…….

    “이거 다 먹고 집 청소해야지.”

    그 대답에 희원이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뭐? 청소? 여기 이대로도 괜찮은데 청소할 게 뭐 더 있다고 그래?”

    물음에 희나의 눈이 번뜩였다.

    “맘에 안 차! 이런 데에서 어떻게 자? 당장 오빠가 너무 배가 고파 보여서 밥을 먹인 거지, 아니었으면 청소부터 했을 거야.”

    살림꾼 스킬을 얻은 지 어언 두 달이 넘어갔다. 이제 어지간한 청결도로는 ‘야무진 손끝’을 가진 희나의 눈에 차지 않게 되었다.

    “내 클래스 이름이 있지, 살림꾼이나 되어서 이런 집에서 지낼 수는 없어!”

    불끈 주먹을 쥐고 외쳤다. 그러자 옆에서 오색이가 안테나를 손뼉 치듯이 짝짝 쳤다.

    「옳소옳소. ♥올바른 마음가짐♥」

    “휴가도 사흘이나 받았으니까 하루는 집 치우는 데 쓰려고.”

    「옳소옳소.」

    “……사흘이나 있는데, 좀 나중에 치우면 안 되나?”

    희나는 중얼거리며 입안에 쌈을 밀어 넣는 희원에게 엄포를 놓았다.

    “안 돼! 내 집에 살고 싶으면 청소에 동참해야 해!”

    “아이고. 악덕 집주인 나셨네.”

    “오빠한테 많이 시키지는 않을 거니까, 손이나 좀 거들어. 그 정도는 할 수 있잖아?”

    “예이, 예이. 알겠습니다.”

    희원이 시큰둥하게 대답하며 부른 배를 툭툭 쳤다. 홀쭉하게 꺼졌던 배는 어느새 팽팽하게 늘어나 있었다.

    “다 먹었어?”

    물어보자, 희원은 대답하는 대신 힘찬 기합 소리와 함께 그대로 뒤로 자빠져 누웠다.

    “으쌰!”

    희나는 그런 오빠의 허벅지를 찰싹찰싹 때렸다.

    “오빠! 밥 먹고 곧바로 누우면 안 돼!”

    “아, 오빠가 다 큰 뜻이 있어서 그래. 10분만 누울게, 희나야.”

    희원이 늘어지게 기지개를 켜며 대답했다.

    희나는 드러누운 희원을 어처구니없다는 듯 내려다보았다.

    ‘대체 이런 버릇은 어디서 옮아온 거야?’

    노역장 1등 노예였다면서, 이런 게을러 보이는 버릇은 어디서 배워 온 건지 모를 일이었다.

    “……으이구. 집에 온 첫날이라서 봐준다.”

    희나는 혀를 쯧쯧 차며 둥근 소반을 들어 치웠다. 가는 길에 오빠의 옆구리를 모른 척 걷어차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발재간이 제법 매서웠는지, 희원이 억하고 소리 질렀다.

    “야! 이희나! 언제는 일하지 말고 놀기만 하라면서, 말이 너무 빨리 바뀌는 거 아냐?”

    “위험한 일 자처해서 고생하지 말라는 뜻이었지 밥 먹자마자 퍼질러 누우라는 뜻은 아니었거든!”

    희나는 근면 성실했던 부모님을 닮아 허투루 게으름 피우는 걸 두고 보지 못했다.

    설거지는 밥 먹자마자 곧장 해치워야 했고, 물걸레질은 못 하더라도 바닥 청소는 매일같이 해야 했다.

    잠잘 때가 아니면 큰 이유가 없는 한 드러누워 게으름 피우지도 않았다. 꼼지락거리며 뭐라도 해야 했다.

    남매 아니랄까 봐, 희원도 한시도 가만히 못 있기는 매한가지였다.

    ‘……그랬는데!’

    그랬던 희원이 두 달 만에 이 꼴로 변해 오다니. 먼저 돌아가신 부모님이 저승에서 곡할 노릇이었다.

    희나의 한심하다는 듯한 시선을 눈치챘는지 희원이 항의했다.

    “나도 다 이유가 있어서 누운 거라니까! 그렇게 한심하게 바라보지 말아 줄래?”

    “눕는 데 이유가 어디 있어? 그냥 누운 거지.”

    “스킬 때문에 누운 거야.”

    “스키이일?”

    희나가 눈을 가늘게 떴다. 얼토당토않은 소리에 웃음도 안 나왔다.

    하지만 희원은 꽤 진지해 보였다.

    “노역장에서 새 스킬 해금됐거든. 스킬 이름은 ‘근면 성실 소 되는 법’이야.”

    스킬 이름은 또 왜 그 꼴인지.

    희나의 스킬 이름도 못지않게 이상하긴 했지만, ‘근면 성실 소 되는 법’만큼은 아니었다.

    “대체 그건 무슨 스킬이길래 밥 먹고 드러눕기까지 해야 한대?”

    의심스럽다는 듯한 물음에 희원이 재빨리 대답했다. 물론 여전히 대자로 뻗어 누운 채였다.

    “스킬 설명 읽어 줄게. ‘근면 성실 소 되는 법’. D랭크. 밥 먹자마자 누우면 소 된다. 즉, 소처럼 일을 열심히 할 수 있게 된다. 생산 버프 20%. 액티브 스킬. 역류성 식도염은 자동 방지된대.”

    그 소리를 들은 희나가 보일 수 있는 반응은 단 한 가지밖에 없었다.

    “뭐?”

    말도 안 되는 스킬에 경악하는 것이었다.

    희원이 희나의 경악을 이해한다며 손을 휘저었다.

    “알아, 알아. 이상하게 들릴 건 알고 있지만, 정말로 사실이야. 시험해 봤는데, 15분 이상 누워 있으면 버프가 오더라. 그 이상은 누워 본 적이 없어서 효과를 잘 모르겠어.”

    “솔직히 말해서 오빠가 게으름 피우고 싶어서 거짓말하는 것처럼 들려.”

    이런 이상한 스킬 시전 조건에, 버프라면 누구라도 희나 같은 의심을 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휴. 내가 겨우 몇 분 누워 있겠다고 이런 구차한 거짓말을 지어낼 사람으로 보여?”

    “음……. 아니.”

    그건 그랬다.

    희나는 희원을 알았다. 상상력이라고는 쥐뿔도 없었다. 그래서 미술 숙제로 상상화 그리기만 나오면 동생인 희나가 대신 그림을 그려 주었던 일도 허다했다.

    “이상하게 보일 거란 건 이해해. 돌아가신 부모님을 걸고 맹세할게. 하지만 정말로 이건 내 스킬 맞아.”

    거기다가 부모님까지 걸 정도면, 진짜가 맞았다. 희나는 한숨을 쉬었다.

    “어쩌다 우리 남매는 이런 이상한 클래스로 각성해서 이상한 스킬들만 가지게 되었을까?”

    “난들 알겠어? 우리 팔자가 그런 거겠지.”

    희원이 드러누운 채로 대꾸했다.

    희원의 스킬에 대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설거지하다 보니 15분은 금방 갔다.

    “희나야, 나 스킬 조건 다 찼다. 버프 올라온다!”

    희원이 개운한 표정으로 방바닥에서 벌떡 일어섰다. 철근이라도 씹어 먹을 것처럼 기운이 넘쳐 보였다.

    “다행이네. 그럼 청소 시작하자.”

    희나가 앞치마와 머릿수건을 두르며 말했다.

    “창문부터 열게.”

    희원이 씩씩하게 창문을 향해 걸어갔다. 창문은 불투명해서 바깥 풍경이 보이지 않았다. 참고로 3평짜리 원룸에는 없었던 것이었다.

    ‘어? 그러고 보니 창문 밖에는 뭐가 있지?’

    희나는 뒤늦게 ‘홈 스위트 홈’의 택지 정보를 떠올렸다.

    ‘여긴 던전 안에 지어진 집인데!’

    제일 중요한 것 중 하난데, 집이 투 룸으로 업그레이드되었다는 기쁨에 까맣게 잊고 있었다.

    오색이를 내려다보니 안테나를 좌우로 흔들고 있었다.

    「이전 일, 일부러 안 가르쳐 준 것 아님.」

    자기도 희나처럼 그 사실을 잠깐 까먹었을 뿐, 일부러 택지 정보를 안 가르쳐 준 게 아니라며 변명하는 것처럼 보였다.

    오색이와 시선을 교환하고 있을 때였다. 꽤애애액 하는 몬스터 울음소리가 들렸다.

    “으악! 이게 뭐야!”

    덩달아 희원도 비명을 지르며 열었던 창문을 다시 쾅! 하고 닫았다. 그리고 창백한 얼굴로 희나를 돌아보았다.

    “희, 희나야? 내가 기가 허해지긴 했나 봐. 허깨비를 본 것 같은데.”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다. 희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문밖이 던전이니까 설마 창밖도 던전일까 했는데, 진짜잖아?’

    청소는 역시 뒷일로 미뤄야 했을까? 희원에게 설명할 게 많았다.

    잠자코 희나의 설명을 듣던 희원이 침착하게 요지를 정리해 말했다.

    “……그러니까 이 집은 사실 던전 안에 있는 집이라는 말이지?”

    “응. 정확히 말하자면 모든 던전 안 어딘가에 우리 집으로 통하는 문이 한 개씩은 달려 있대.”

    “문은 하난데, 그게 어떻게 가능해?”

    “몰라. 애당초 던전이 집터라는 것부터 이상하잖아. 상식을 버리고 받아들여, 오빠.”

    희나가 겸허한 태도로 충고했다.

    희원은 얼떨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두 남매의 스킬은 정상인 게 별로 없었다.

    “그럼 창밖이 던전이면, 창문은 못 여는 거야? 환기도 못 해?”

    남매 아니랄까 봐 희나가 했던 걱정을 희원도 똑같이 했다.

    「주택 안전성 99.9% 보장. 반경 4m 안전거리 보장.」

    오색이는 열심히 ‘홈 스위트 홈’의 안전함을 강조했다. 그 와중에 희나는 안전거리가 기존 2m에서 4m로 늘어난 걸 눈치챘다.

    “오색아! 안전거리가 4m로 늘어난 건 내 스킬이 C랭크로 올라서 그런 거야? 원래는 2m였잖아.”

    「랭크 업 → 안전거리 증가」

    오색이는 답지 않게 허공에 표까지 그려 가며 상세히 설명했다.

    랭크

    안전거리 (m)

    S

    10

    A

    8

    B

    6

    C

    4

    D

    2

    E

    1

    F

    0

    표를 살펴보니, F급은 안전거리가 아예 없었다. 희나는 자기가 D급으로 각성한 것에 대해 깊은 안도감을 느꼈다.

    “휴. 어쨌든 내 ‘홈 스위트 홈’ 등급이 C로 올라가서 안전거리도 늘어났다는 거구나.”

    「ㅇㅇ. ㅊㅋㅊㅋ」

    “그래. 축하해 줘서 고마워.”

    말이 나온 김에 희나는 오빠와 함께 던전 부지를 살펴보러 가기로 했다.

    참고로 희나에게 스페어 키를 받은 희원도 던전으로 향하는 문은 열 수 있었다. 손님은 던전 바깥 공간의 문만 마음껏 열지 못하는 거였다.

    “이대로 아무 생각 없이, 혹은 던전으로 간다는 생각을 하면서 문을 열면 된다고?”

    “응. 오빠가 가 본 던전을 떠올리면서 열면 거기에 다시 갈 수도 있어.”

    “글쎄. 다시 가 보고 싶은 던전은 없는데.”

    “오빠가 고생을 어지간히 했어야 말이지.”

    희원의 서글픈 대답에 희나가 대신 문고리를 붙잡아 열었다. 그러자 두 남매 앞에 푸르른 녹음을 자랑하는 숲이 펼쳐졌다.

    “와. 나무 냄새.”

    희나는 숨을 크게 들이켰다. 가슴이 뻥 뚫렸다. 마치 삼림욕장에 온 것 같았다.

    희원도 집 앞마당(?)을 돌아보고 있었다.

    “선 넘지 않도록 조심해. 오빠.”

    “알았어. 조심할게.”

    다행히 집에서부터 4m 지점까지는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표시가 되어 있었다. 덕분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안전지대를 벗어날 걱정은 없었다.

    “여긴…….”

    던전 안의 살림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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