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안의 살림꾼-18화 (18/228)
  • 던전 안의 살림꾼 18화

    그러자 누군가가 물었다.

    “그래서 저 침대에 누우면 회복 20% 버프가 걸렸다는 겁니까?”

    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 같아요. 물론 저는 회복 버프 효과까진 생각은 못했지만…….”

    “그게 그쪽 아가씨 능력이란 걸 증명할 수 있나?”

    그러나 최상훈은 끝까지 희나의 스킬을 물고 늘어졌다.

    대단할 것 없는 스킬이었지만, 자기 능력을 의심하는 것 같아서 희나는 조금 화가 났다.

    “그럼 여기 바닥에서 이부자리 깔아 볼까요? 버프 효과 뜨는지, 안 뜨는지?”

    그래서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을 제안을 했다.

    “그래! 확인할 겸 여기서 능력 좀 보고 가지!”

    최상훈도 흔쾌히 판을 깔았다. 그는 팔짱을 낀 채로 상황을 관망하기 시작했다.

    구경하던 사람들도 희나의 능력이 궁금한지 숨을 죽이고 지켜보았다.

    수많은 시선에 얼굴이 따끔따끔했다. 그러나 희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입을 열었다.

    “혹시 담요 가진 분 있으세요? 몇 장 정도만 가져다주실 수 있으신가요? 휴게실에 있는 이불로 제 스킬 쓰면 안 믿을 수도 있으니까, 대신 담요로 이부자리를 깔게요.”

    이왕 일을 벌인 거, 뭐라도 보여 줘야 했다.

    희나의 요청에 직원들이 사무실에서 알록달록한 담요 몇 장을 모아 왔다. 대충 한 사람이 눕고 덮을 만한 양이었다.

    희나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스킬을 시전했다.

    스킬에 익숙해진 손이 슥슥 움직여 담요로 이부자리를 만들었다.

    담요 몇 장으로 이루어진 이부자리였기 때문에 시간은 몇 초 걸리지도 않았다.

    “다 했어요.”

    희나는 무릎을 탈탈 털고 일어나 담요로 만든 안락한 이부자리를 손짓했다.

    후줄근한 담요 몇 장으로 만든 침상이었지만, 사람들은 이상하게 저 담요 안으로 들어가 당장 눕고 싶어지는 묘한 마력을 느꼈다.

    그랬다. 담요 무더기는 그 정도로 포근해 보였다.

    “어느 분께서 누워 보실래요?”

    주변을 둘러보며 묻자 몇 명이 손을 번쩍 들었다. 희나는 그중 한 명을 골라 손짓했다.

    희나의 선택을 받은 헌터는 살금살금 담요 안으로 들어가더니, 신기하다는 듯 소리쳤다.

    “오, 정말로 그냥 바닥에 담요만 깔았는데도 20% 회복 버프가 뜨네!”

    “정말인가?”

    최상훈이 믿지 못하겠다는 듯 눈을 가늘게 뜨기에, 희나는 그에게도 담요로 만든 이부자리에 누워 보라고 권했다.

    “못 믿겠으면 그쪽 헌터님도 누워 보세요.”

    다른 헌터가 한 번 누웠다 일어났어도 이 담요엔 여전히 ‘안락한 침상’ 스킬이 걸려 있긴 하겠지만, 희나는 다시 한번 담요를 판판하게 펴고 정리했다.

    최상훈에게 본때를 보여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희나는 속으로 툴툴거리며 손을 움직였다.

    ‘끝까지 안 믿다니. 두고 봐! 깜짝 놀라게 해 줄 테다!’

    시스템 창이 띠롱띠롱 뜨며 희나의 비장한 마음가짐을 알렸다.

    “거참, 별일을 다 해 보는군.”

    한편, 최상훈은 꿍얼거리며 몸을 웅크려 이부자리 안으로 들어갔다. 덩치가 워낙 커서 담요를 덮으니 발이 삐죽 튀어나와 웃겼다.

    하지만 그는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담요 안에 자리를 잡았다.

    “흐음. 정말로 버프가 뜨는군.”

    그리고 자기 눈앞에 뜬 시스템 창을 읽는 듯하더니…….

    “……드르렁.”

    반쯤 눈을 뜬 채 그대로 드르렁 코를 골며 잠들었다.

    “뭐야? 진짜 잠들어 버린 거야?”

    사람들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숙면에 빠진 최상훈을 내려다보았다.

    곯아떨어진 최상훈을 복도 한구석에 내버려 둔 채, 묘한 신경전이 시작됐다.

    “아니, 이런 회복 버프 스킬이 있는 직원이 있으면 헌터 전용 휴게실부터 담당시켜야 했던 것 아닙니까?”

    “일반 사원들도 업무 과중 때문에 많이 지쳐 있고 피곤한데, 왜 꼭 헌터가 우선이 되어야 하죠?”

    헌터들과 일반인 직원들이 희나를 두고 다투기 시작한 것이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 모두 5층 휴게실의 침대에 누워 본 사람들이었다.

    희나의 ‘안락한 침상’ 스킬의 손맛을 보아 버린 이상, 예전의 보통 침대에 쉽게 적응할 수 없으리라.

    ‘어쩌지?’

    희나는 그들 사이에 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눈치만 살폈다. 자기가 어디를 맡고 안 맡고는 전적으로 희나의 권한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일입니까?”

    때맞춰 환경 미화팀 김화순 팀장이 몸을 드러냈다. 그녀는 사람들 사이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희나를 끄집어냈다.

    “내 팀원이니, 청소 구역 담당 배치는 내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그러자 모여 있던 사람들이 제각각 아우성쳤다.

    “우리도 팀장님 불러서 미화 담당 건의 넣을 겁니다!”

    “이런 손길은 다 같이 누려야 할 권리가 있습니다!”

    “옳소, 옳소!”

    하지만 이들의 소란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는데, 건물 안의 소란을 감지한 우민아가 어기적어기적 기어 나왔기 때문이다.

    “야, 너네들 거기서 뭐 하고 있어? 시끄럽게 일 방해하지 말고 헌터 전용 공간으로 꺼져!”

    우민아는 사나운 얼굴(과 무기)로 헌터들을 해산시켰다.

    헌터들은 바닥에 대자로 누워 잠들어 있던 최상훈도 같이 질질 끌고 갔다.

    일반 직원들도 상급자의 지시를 따라 다시 사무실로 돌아갔다.

    마침내 시끄럽던 복도에는 희나와 김화순 팀장, 우민아, 일반 직원 대표자 한 사람만 남게 되었다.

    김화순 팀장과 우민아는 희나에게 자초지종을 들었다.

    이야기를 들은 김화순 팀장은 잠시 생각에 빠진 기색이었고, 우민아는 배를 잡고 웃었다.

    “아이고, 침대 때문에 이 소란을 피웠다고? 네 능력은 실생활에서 쓸모가 많다니까, 정말.”

    그러면서 이런 유의 스킬을 사용해서 침대를 정리한 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다만, 이제 사람들이 모두 희나가 정리한 침대에 눕고 싶어 할 거라는 게 문제라고 했다.

    희나는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내가 스킬을 함부로 사용한 게 잘못은 아니라니까 다행이긴 한데…….’

    김화순 팀장이 안도하는 희나의 어깨를 톡톡 쳤다. 잠시 할 말이 있다는 뜻인 것 같았다.

    “말씀하세요, 팀장님.”

    고개를 끄덕이자 김화순 팀장이 그제야 입을 열었다.

    “상황이 좀 복잡해진 것 같네요. 그나저나 일은 할 만해요?”

    “예. 제가 함부로 스킬을 써서 문제가 되긴 했는데……. 그것 외에는 일도 재미있고, 다들 친절하시고 좋아요.”

    “그래 보여요. 생각 이상으로 일을 잘해 주고 있거든.”

    팀장의 칭찬에 희나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칭찬,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희나 씨. 정말이니까. 보통 이 일에 익숙해지는 데 석 달 정도 걸리는데, 희나 씨는 한 달 만에 완벽하게 일을 해내고 있으니까 정말 대단한 거지.”

    그녀는 격려하듯 희나의 등을 통통 쓰다듬어 주었다. 손길이 몹시 인자했다.

    “그렇지 않아도 업무 분담을 재조정하려고 하긴 했어요. 원래는 팀원 한 명당 층 두 개를 맡으니까. 희나 씨는 신입이라 일단 한 층만 맡겨 봤던 거고.”

    김화순 팀장의 설명에 우민아가 쏙 끼어들었다.

    “그럼 희나가 담당할 나머지 한 층은 헌터 전용 휴게실이 있는 8층으로 하면 되겠네요. 그럼 헌터 쪽, 일반 사원 쪽 모두 만족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우민아의 대책에 김화순 팀장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염려를 비쳤다.

    “그래요. 그럴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헌터들이 사용하는 구역은 청소가 좀 고돼서 신입인 희나 씨에게는 조금 힘들 수도 있어요. 괜찮겠어요?”

    희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별다른 대안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희나가 두 휴게실 중 하나만 맡는다면, 또 이런 시끄러운 소동이 벌어질 게 틀림없었으니까.

    그건 정말로 사양하고 싶었다.

    결국, 희나는 8층을 추가로 맡기로 하고 입을 열었다.

    “5층하고 8층, 둘 다 맡도록 하겠습니다.”

    “미안해요, 희나 씨. 갑자기 일을 두 배로 늘려 버렸네.”

    김화순 팀장의 목소리에 미안함이 서렸다. 희나는 별거 아니라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차피 언젠가 두 층을 청소해야 할 거였으니까 괜찮아요. 제가 해야 할 일을 예상보다 조금 빨리 받은 것뿐인걸요. 사실 스킬 중에 청소 관련 스킬도 있어서 좀 더 빠르게 일할 수도 있어요. 여기보다 훨씬 더러운 곳도 치워 본 경험도 있고요.”

    “그럼 정해졌네! 깔끔하게 5층 8층 휴게실 전부 스킬 맛을 보여 달라고!”

    우민아가 손뼉을 짝짝 치며 파장을 알렸다. 이에 희나는 할 말이 있는 듯 급하게 입을 열었다.

    “저, 그 대신…….”

    “대신?”

    순순한 태도로 고개만 끄덕이다가 갑자기 대체 무슨 조건을 거나 싶은지, 세 쌍의 눈동자가 희나를 향했다.

    희나는 조금 부끄러워하며 말을 이었다.

    “……대신, 지금 입는 옷 위에 앞치마랑 머릿수건을 추가로 두를 수 있을까요? 제가 착장 버프가 있어 가지고.”

    던전 안의 살림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