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안의 살림꾼-17화 (17/228)
  • 던전 안의 살림꾼 17화

    * * *

    “흠흠, 흠, 흠흠~”

    희나는 콧노래를 부르며 대걸레로 바닥을 뽀득뽀득 닦았다.

    이제 희나가 청룡 길드의 엄연한 정직원이 된 지 어언 한 달이 지나갔다.

    낯설었던 사람들은 이제 익숙하게 눈을 맞춰 왔다. 어색했던 건물 구조도 속속들이 파악했다. 이제 5층 관리는 누구보다 자신 있었다.

    대걸레가 리드미컬하게 움직일 때마다 바닥이 반짝반짝 윤이 났다. 동시에 눈앞에 시스템 창이 뜨고, 숙련도가 올랐다.

    그사이 희나에게는 꽤 많은 변화가 있었다.

    가장 먼저, D랭크였던 ‘야무진 손끝’ 스킬이 C랭크로 올랐다. 전적으로 새로 얻은 직업 덕분이었다.

    직업이 건물을 깨끗하게 유지, 관리하는 일이니 자연스럽게 숙련치도 쑥쑥 차올라 갔다. 숙련도가 조금씩 차는 걸 보면 일할 맛도 났다.

    ‘돈도 벌면서 랭크도 올리고. 이게 바로 일석이조지.’

    일은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다. 적어도 희나의 원룸을 처음 청소할 때보다는 안 힘들었다.

    그리고 ‘밥심’ 스킬이 있었기 때문에 중간중간 쉬는 시간마다 집에서 싸 온 김밥을 간식으로 먹어 주니, 저질스러운 체력이나마 회복이 잘됐다.

    희나는 걸레질하며 어깨를 으쓱했다.

    ‘하긴, 원룸 청소할 때보다 힘들면 문제가 있는 거지.’

    더불어 5층에 있는 휴게실을 정돈하며 ‘안락한 침상’ 스킬의 숙련도도 쏠쏠하게 올렸다.

    초반에는 잘 오르지 않더니, 최근 들어서는 하루에 거의 50에 가깝게 숙련도가 오르고 있었다.

    아직 ‘안락한 침상’ 스킬을 다 파악하지 못해서 숙련도가 어떤 기작을 통해 쌓이는지 파악은 안 됐지만, 일단 팍팍 오르니까 좋긴 했다.

    ‘좋은 게 좋은 거야.’

    벌써 ‘안락한 침상’의 숙련도도 700이 넘어갔다. 이 속도대로라면 몇 주 안에 곧 1000을 넘겨서 C랭크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

    그다음으로 생긴 변화는, 희나의 ‘낡은 기본형 원룸’이었다. 이제 ‘낡은 기본형 원룸’의 레벨은 9로, 곧 두 자릿수 레벨 진입을 앞두고 있었다.

    레벨 9가 된 희나의 집은 아주 아늑했다. 현관에 들어서기만 해도 하루의 피로가 풀리는 것 같았으며, 지쳤던 몸에 활기가 돋았다.

    거기다 희나를 맞이해 주는 귀여운 동거 달팽이, 오색이까지 있으니 기분이 절로 좋아졌다.

    “이대로 다 좋으니까, 오빠만 돌아오면 완벽한데.”

    희나는 여전히 던전에서 나오지 못한 듯, 연락이 없는 오빠를 걱정하며 중얼거렸다.

    대체 어디서 무얼 하는 건지. 유독 부재가 길어지는 것 같아서 마음이 쓰였다.

    그래서 그럴까, 청룡 길드의 헌터들이 영 남처럼 보이지 않았다.

    “저분, 오늘도 또 오셨네. 엄청 피곤해 보여.”

    희나는 5층 휴게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헌터를 힐끗거렸다.

    ‘헌터 휴게실은 따로 마련되어 있다고 들었는데. 자리가 부족한가 봐. 그렇지 않으면 5층의 일반 휴게실까지 올 필요가 없지.’

    듣기로는 헌터 휴게실은 훨씬 더 넓고 쾌적하다고 했다. 그런 휴게실을 두고 5층에 내려온다니, 얼마나 피로에 지친 헌터들이 많다는 뜻일까?

    혀를 차고 있을 때였다.

    쾅! 하고 뭔가 터져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라 소리의 근원을 바라보니 휴게실이었다.

    덩치 큰 헌터 하나가 활짝 열린 휴게실 문 사이로 침대를 끌고 가고 있었다.

    ‘앗, 깨끗하게 정리해 뒀는데……!’

    세탁에 건조까지 끝낸 침구로 깨끗하게 정리해 둔 침대가 엉망이 되어 가고 있었다. 아니, 휴게실 자체가 엉망이 되어 갔다.

    “이게 무슨 일이야!”

    “요새 헌터들이 계속 5층에 들락날락하더니 내 언제 이런 일 생길 줄 알았지.”

    “그래서 뭔데?”

    큰 소리에 놀라서 나온 직원들이 수군거렸다. 희나도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상황을 지켜봤다.

    “무슨 일이십니까? 여긴 일반인 휴게실입니다. 이렇게 난동 부리셔서는 안 됩니다.”

    직급이 높아 보이는 담당자 하나가 나와 덩치 큰 헌터에게 한 소리 했다.

    하지만 헌터는 아랑곳하지 않고 휴게실에서 침대를 두 개나 끌어냈다. 덩치만큼이나 힘도 대단했다.

    “최상훈 감정사님? 대체 무슨 일입니까?”

    담당자가 마침내 그의 이름까지 불렀다.

    그러자 최상훈이라고 불린 남자가 드디어 고개를 들어 올렸다. 수염이 덥수룩하게 나 있는 중년의 사내였다. 며칠이나 씻지 않았는지 얼굴이 꼬질꼬질했다.

    “……이걸 좀 살펴봐야겠습디다.”

    그는 걸걸한 목소리로 양손에 하나씩 쥔 침대를 덜컹거렸다. 힘이 어찌나 좋은지 그 커다란 침대들이 딸랑이처럼 덜렁거렸다.

    골이 당기는 듯 담당자가 이마에 손을 올렸다.

    “휴게실 침대의 상태가 어떻길래 호기심이 생기셨나요?”

    질문에 최상훈이 얼굴을 찌푸렸다. 그 모습이 마치 곰 같았다.

    “감정 스킬을 사용했는데, 아이템 정보가 뜨질 않아.”

    “평범한 물건에 왜 감정 스킬을 사용하셨어요? 이건 아이템이 아니라 그냥 공산품인데.”

    담당자가 문제점을 지적하자 이 난동을 지켜보고 있던 헌터들이 한마디씩 던졌다.

    “이거, 아이템 아니었습니까?”

    “아이템이 아니면, 어떻게 누웠을 때 회복 버프 효과가 발동한다는 시스템 창이 뜹니까?”

    “그런데 좀 이상하긴 했어. 아이템이면 시스템 창을 보면 이름이나 등급 정도는 떠야 했는데 아무것도 안 떴잖아?”

    “그러게. 왜 여태까지 아무도 그게 이상하단 걸 생각하지 못했지?”

    헌터들이 웅성거리는 소리에, 희나는 그제야 이게 ‘안락한 침상’ 스킬과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헉. 침대 정리할 때 스킬 썼는데……. 다들 그걸 얘기하는 거야?’

    괜히 사고를 친 것 같아서 뜨끔했다.

    ‘침대가 많길래 스킬 숙련 올리려고 쓴 건데. 괜히 썼나 봐.’

    D등급 ‘안락한 침상’의 효과는 대충 6시간쯤 됐다.

    그래서 희나는 출근 직후와 퇴근 직전, 하루에 두 번씩 스킬을 쓰며 숙련도를 올리고 있었다.

    ‘남의 물건에 함부로 스킬 쓰고 그러면 안 되는 건가?’

    희나는 헌터 오빠를 둔 것에 비해, 헌터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그래서 각성자들 사이에 암묵적으로 통용되는 상식이나 매너를 몰랐다.

    ‘어쩌면 허락을 받지 않고 남의 물건에 스킬을 시전하는 건 엄청난 실례였을지도 몰라.’

    그렇지 않으면 저 곰 같은 아저씨가 저렇게 무서운 얼굴을 할 리가 없었다.

    희나가 당혹감에 빠져 있는 사이 최상훈은 엄청나게 심각한 표정을 한 채, 팔짱을 탁 꼈다.

    “대한민국 최고의 감정사, 나 최상훈! 내 아이템 감정 스킬로 이깟 침대를 제대로 감정해 내지 못할 리 없습니다. 뭔가 문제가 있는 게 분명하니 작업실로 가져가서 분해해 보려고 합니다.”

    그 소리에 희나는 대걸레 봉을 쥔 채 발을 동동 굴렀다.

    ‘아이고, 저건 아이템이 아닌데!’

    희나의 ‘안락한 침상’ 스킬을 시전한 평범한 침대일 뿐이었다.

    최상훈은 정말로 침대를 자기 작업실에서 분해해 볼 생각인 것 같았다.

    그대로 커다란 침대를 번쩍 들어 올리자 담당자가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아무리 직급이 높다 해도, 일반인일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 광경에 희나의 머리가 핑글핑글 돌았다.

    ‘이대로 모른 척할까? 아니면 이건 내 스킬이었다고 고백할까?’

    희나는 금방 결론을 내렸다.

    ‘말하자.’

    이대로 모른 척하기엔 일이 너무 커질 것 같았다.

    저 최상훈이라는 사람이 침대가 정말로 평범한 제품이란 걸 깨닫는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어쩌면 상부에 이야기해서 더 철저한 조사를 벌일 수도 있었다.

    그럼 희나가 침대에 스킬을 사용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건 금방일 게 분명했다.

    ‘매도 차라리 먼저 맞는 게 낫고, 신입일 때 잘못한 건 1초라도 빨리 얘기하는 게 낫댔어!’

    그랬다. 희나는 아직 회사에 입사한 지 3개월도 안 된 신입이었다. 이 정도 일은 해프닝으로 지나갈 수 있으리라. 아마도…….

    희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그리고 한숨을 푹 내쉬고는 둥글게 모여 있는 사람을 헤쳐 나갔다.

    중간중간 힘 좋은 헌터들이 섞여 있어서 틈을 벌리고 지나가기가 몹시 어려웠다.

    “저, 저기! 좀 비켜 주세요!”

    “뭐야? 왜 갑자기 끼어들어?”

    “제가, 제가 할 이야기가 있어서 그래요!”

    겨우겨우 군중을 뚫고 지나간 희나는 침대를 끌고 가는 최상훈 앞에 섰다.

    그러자 사람들은 갑자기 상황에 난입한 희나를 바라보았다.

    ‘어휴. 어떻게 해!’

    민망해서 얼굴이 빨개졌다. 하지만 할 말은 해야 했다.

    “저……, 최상훈 헌터님? 아니, 최상훈…… 감정사님? 그거, 아이템 아니에요.”

    “아이템이 아니면 뭔데? 일반인으로 보이는데, 너는 이게 뭔 줄 알고 내 앞을 막는 거야?”

    최상훈이 사나운 얼굴을 했다.

    담당자 앞에서는 존댓말을 쓰던 그였지만, 거푸 자기의 앞을 막는 희나의 모습에 골이 날 대로 났는지 이젠 틱틱 반말을 내뱉었다.

    아무리 나이가 많다고 해도 초면인 사람에게 반말을 듣는 건 기분이 나빴다. 불쾌함에 희나는 잠시 부끄러움도 잊고 허리에 척, 손을 올렸다.

    “저는 이게 왜 이런지 알아요!”

    희나의 당당한 태도에 최상훈은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침대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물었다.

    “뭔데?”

    희나는 침대를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이건 평범한 침대예요.”

    “그럼 왜 평범한 침대에 버프 효과가 붙어서 나와?”

    “그야 제가 저 침대에 침구 정돈 스킬을 썼으니까요.”

    희나의 대답에 최상훈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스킬을 썼다고? 그것도 침구 정돈 스킬? 그런 게 다 있어? 아니, 그 전에 네가 각성자라고? 각성자가 왜 여기서 청소부 역할을 하고 있어?”

    희나와 최상훈의 대치를 구경하던 군중도 신기하다는 듯 웅성거렸다.

    쟁쟁한 청룡의 헌터들 앞에서 자기 능력을 말하려니 민망했지만, 희나는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전투 관련 스킬이 없어서요. 제 능력은 청소랑 정리 정돈에 관련한 거거든요.”

    던전 안의 살림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