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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안의 살림꾼-14화 (14/228)
  • 던전 안의 살림꾼 14화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희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정신을 차렸다.

    [캭! 캭캿캿캿!]

    [끼유우우우우- 끼유우우우!]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이빨을 번쩍이는 징그러운 몬스터들을 코앞에 맞닥뜨리면, 저절로 정신이 든다고 해야 할까.

    “헉, 여기 공격하는 것 아니야?”

    현관문 손잡이를 잡고 문을 쾅 닫았다. 그리고 주춤주춤 뒤로 물러서는데, 발꿈치에 뭐가 통! 하고 치였다.

    「뒷걸음질 주의!」

    시야에 뜨는 메시지를 보니, 오색이였다.

    “수건에 둘둘 말아 둔 채로 화장실 문까지 닫아 놨는데, 어떻게 나왔지?”

    「주택 관리자 = 유능.」

    무서운 몬스터들을 보다가 자그맣고 귀여운 달팽이를 보니 안심이 되었다.

    희나는 현관문을 등진 채로 폭 쪼그려 앉아 오색이를 바라보았다.

    “그나저나 오색아, 이게 무슨 일이야? 아무 생각 없이 문 열었는데 던전이 나왔어.”

    「곰팡이 박멸액 유독. 15분 후 환기 필요.」

    희나의 물음에 오색이는 곰팡이 박멸액이 유독하다는 허튼소리를 해 댔다.

    그리고 곰실곰실 기어 와 안테나로 현관문을 톡톡 쳤다. 누가 봐도 밖에 나가자는 소리였다.

    희나는 질겁해서 손을 휘저었다.

    “야, 야! 지금 환기가 문제가 아니야. 지금 집 밖에 던전이 있었다고! 던전! 몬스터가 막 돌아다니는 던전!”

    「?」

    오색이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물음표를 크게 띄웠다.

    그건 마치 던전이 무엇이냐고 묻는 것처럼 보여서, 희나는 오색이에게 던전의 존재를 설명해 주려고 했다.

    “오색아. 던전은……”

    하지만 그보다 오색이의 메시지가 완성되는 게 먼저였다.

    「야외, 던전. 당연함. <홈 스위트 홈> 주택 택지 = 던전 내부.」

    그 말에 희나는 질겁해서 되물었다.

    “잠깐. 그러니까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집이 사실 던전 안에 있는 거라는 말이야?”

    「긍정.」

    “그게 말이 돼?”

    이 집도 인벤토리 기능처럼 알 수 없는 공간에 이어진 곳이겠거니, 하고 어림짐작했는데 아니었다.

    “집터가 던전 안에 있다니……. 뭐야 이건? 엄청 위험한 곳이잖아!”

    희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의외의 사실에 머리가 띵했다. 어쩌면 ‘해충 박멸액’ 냄새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머리가 띵했다.

    “안 되겠다. 여기선 못 살겠어. 당장 짐 싸서 나가야겠어. 오색아, 너도 같이 갈래?”

    희나는 그동안 정든 오색이에게도 이사를 권했다. 오색이 같은 작은 달팽이는 몬스터들에겐 한입 거리도 안 될 게 분명했다.

    하지만 오색이는 희나의 호의를 둘리로 받아들였다.

    「무단 퇴소 불가! 무단 퇴소 불가!」

    희나의 다리를 타고 붙잡은 것이다. 거기다가 아주 굵은 폰트로 ‘무단 퇴소 불가!’라고 연달아 외쳤다.

    「입실 = 자유, 퇴실 ≠ 자유!」

    입실은 마음대로였겠지만, 퇴실에는 자유가 없다는 소리까지 함께였다.

    이에 희나는 반 울상, 반 죽상으로 오색이를 내려다보았다.

    “아, 왜! 내가 나간다는데! 이 밖은 던전이라면서? 몬스터가 덮치고 들어오면 어떻게 해?”

    그러자 오색이가 또 굵은 글씨로 희나의 눈앞에 메시지를 띄웠다. 이번에도 정말 진지하다는 듯, 두꺼운 궁서체 글씨였다.

    「<홈 스위트 홈> 스킬, 안전 보장. 공격 ×. 현관 반경 2m → 안전 구역.」

    오색이는 ‘<홈 스위트 홈> 스킬은 안전을 보장하는 스킬이라 몬스터에게 공격받지 않는다. 그래서 현관 반경 2미터는 안전 구역이라고 볼 수 있다.’라는 요지의 말을 최대한 짧게 줄여 말했다.

    다행스럽게도 축약어에 익숙한 희나는 그 말을 잘 알아들었다.

    “……정말이야? 진짜로 안전한 거 맞아?”

    「주택 관리자 본인 ≠ 거짓말쟁이.」

    오색이는 자기가 거짓말쟁이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건 맞는 말이었다. 오색이는 틀린 말을 한 적은 없었다.

    희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오색이를 손 위에 올렸다. 그리고 다시 아까처럼 던전 문을 열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바닷가 모래사장이 아니라, 광활한 초원이 펼쳐져 있었다. 보아하니 문을 열 때마다 던전이 바뀌는 것 같았다.

    “곰팡이 박멸액 때문에 실내에서는 대화하기 힘들 것 같으니까, 집 앞에서 대화하자. 현관문 2미터 이내에서는 안전하다고 했지?”

    「안전함.」

    두 개의 안테나가 까딱거렸다. 희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그래. 너는 거짓말쟁이는 아니야. 틀린 말을 한 적은 없지. 난 네 말을 믿어.”

    ……하지만 거짓말쟁이만 아닐 뿐, 중요한 사실들을 숨기고 있던 사기꾼이었다.

    “그러니까 나한테 <홈 스위트 홈> 관련해서 얘기 안 하고 있던 것들, 전부 다 털어놔! 당장!”

    희나의 형형한 두 눈동자 앞에서 달팽이의 안테나가 형편없이 쪼그라들었다.

    “……그래, 이게 전부야? 내게 숨기고 있는 건 더 없는 거지?”

    오색이의 안테나가 까딱였다.

    「현재 떠오른 내용 전부 실토.」

    지금 기억나는 건 다 얘기했다는 소리였다. 이에 희나는 조금의 빈틈도 놓치지 않았다.

    “까먹고 얘기 안 한 거 떠오르면 나중에라도 얘기해야 해. 알았지?”

    이 달팽이는 귀여운 외양 아래에 사기꾼의 기질을 다분히 갖추고 있었으니까.

    ‘시스템이랑 쿵짝 맞춰 가며 이 집을 내게 떠넘길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희나는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콧김을 흥흥 내뿜었다.

    그 거센 콧바람에 연약한 오색이의 안테나가 휘청거렸다.

    결론적으로 희나가 오색이에게 알아낸 <홈 스위트 홈> 스킬의 정보는 이랬다.

    <홈 스위트 홈>에서 주어지는 주택의 집터는 ‘던전’이었다. 그러니까 더 정확히 말하자면 ‘특정 던전’이 아니라 ‘모든 던전’ 말이다.

    그랬다. 희나의 스위트 홈은 모든 던전에 존재했다.

    이상한 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다. 어떻게 같은 시간대에 동시다발적으로 집이 존재할 수 있느냐 묻는다면 대답할 길이 없었다.

    이건 마치 갑자기 던전과 몬스터가 나타나고, 각성자와 시스템이 생겨난 것과 같은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희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뺨을 긁었다. 그보다 더 골치 아픈 일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모든 던전에 내 집으로 통하는 문이 하나씩 있다고 했지.’

    덕분에 너른 던전 어딘가에는 반드시 희나의 집 현관문이 하나쯤은 붙어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 문은 몹시 찾기 어려운 곳에 숨겨져 있어서, 던전에서 희나의 집 현관문을 찾기란 건초 더미에서 바늘 하나 찾기보다 더 어렵다고 했다.

    다행이라면 다행인 일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희나의 집 현관문은 아주 신기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집주인이 떠올리는 장소라면 던전 밖 어디든지 문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단, 집주인이 직접 가 봐서 알고 있는 장소여야만 했다.

    여기까지는 희나도 직접 경험해 보아서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몰랐던 건, 이 뒤부터다.

    그런데 만약 집주인이 아무 목적지 없이 문을 연다면?

    예를 들어, 아까의 희나처럼 ‘집 안 냄새가 지독하니까 문 좀 열어 둬야겠다.’라는 생각을 하며 문을 열었을 때처럼 말이다.

    ‘그럴 때는 원래 집터인 던전과 연결된다, 라…….’

    희나는 오색이가 말해 준 정보를 차근차근 머릿속에 정리했다.

    ‘구체적으로 가고 싶은 곳을 생각하면 그곳에 문이 열리는데, 그런 거 없이 문을 열면 아무 던전이나 랜덤으로 펼쳐진다는 거지?’

    참고로 던전 안에서는 집터 문이 고정되어 있었다. 그래서 던전 밖처럼 아무 데서나 문을 열 수는 없었다. 던전 하나당 한 자리에서만 문을 열 수 있었다.

    그리고 한 번 가 봤던 던전을 다시 방문하고 싶을 때에는, 던전 바깥에서 하는 것처럼 그곳을 떠올리며 문을 열면 된다고 했다.

    어쨌든 던전 밖에서는 희나가 한 번 가 본 장소는 무조건 다시 갈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고, 모든 던전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가지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스킬의 랭크를 감안하지 않더라도 엄청난 능력이었다.

    거기다 던전에 집터가 있는 만큼,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있었다.

    던전에서 희나의 현관문 반경 2m는 안전 지대였다. 이 구역 안에만 있으면 몬스터들이 인식하지 못했다.

    ‘내가 미치지 않은 이상 위험하게 2m 밖으로 나갈 일이 뭐가 있겠어?’

    희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걱정을 털어 냈다.

    거기다 스킬 등급이 높아질수록 안전 지대 반경도 넓어진다고 했으니, 희나가 할 일은 열심히 스킬을 갈고닦아 안전, 또 안전을 도모하는 것이었다.

    ‘역시 뭐든 안전, 안정!’

    편안할 안(安) 자는 희나가 가장 좋아하는 글자였다. 영어 이름을 짓는다면 편안한 ‘안’ 자를 따서 ‘안나’라고 지을 의향도 있었다.

    ‘되도록 던전에는 들어가지 말아야지.’

    오색이에게 스킬에 대한 설명을 다 듣고 나니, 곰팡이 박멸제 환기까지 끝이 났다.

    희나는 오색이를 손바닥에 올린 채 방 안으로 들어갔다.

    독한 냄새가 빠진 집 안은 훨씬 숨쉬기가 수월해졌다. 그리고 얼룩덜룩, 더럽기 그지없던 벽의 곰팡이 또한 싹 사라진 상태였다.

    다만 화려한 장미꽃 벽지는 여전히 남아 희나를 심란하게 했다.

    “저것부터 어떻게 좀 해야겠어. 이런 벽지를 두고 잠자다간 가위에 눌릴지도 몰라.”

    저 꼴을 보니 고민할 시간도 아까웠다.

    희나는 던전 나들이에 놀란 가슴을 가라앉히자마자 휴대전화로 셀프 벽지 시공, 셀프 벽 페인팅 등등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던전 안의 살림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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