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안의 살림꾼-8화 (8/228)
  • 던전 안의 살림꾼 8화

    * * *

    희나는 손뼉을 치며 환호성을 질렀다.

    “드디어 대충 다 끝났다!”

    오색이도 손뼉을 치는 희나를 따라 귀여운 안테나를 짝짝 맞부딪쳤다.

    “와, 진짜 이걸 내가 해내다니. 인간 승리다, 인간 승리야.”

    희나는 손에 든 생수를 맥주처럼 꿀꺽꿀꺽 마시며 스스로를 칭찬했다.

    원룸 청소를 시작한 지 벌써 사흘이 지났다. 첫날에는 방바닥을 닦다가 그대로 기절하듯 잠들었고, 둘째 날에는 온종일 화장실 청소를 했다.

    화장실은 찌든 때가 장난이 아니었다. 줄눈에는 곰팡이가 새카맣게 끼어 있었다.

    희나는 그 위에 락스에 절인 휴지를 올려 두었다. 그리고 남은 시간에는 세면대와 변기를 청소 솔로 벅벅 닦았다.

    혼자 하는 화장실 청소가 얼마나 고됐던지, 둘째 날에는 김밥을 통틀어 열두 줄이나 먹었다.

    하지만 천만다행으로 ‘야무진 손끝’ 스킬은 제 몫을 톡톡히 했다.

    청소에 몰두할수록 타일은 반들반들해졌다. 절대 벗겨지지 않을 것 같았던 때와 곰팡이도 희나의 ‘야무진 손끝’에 퇴치되었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만 하루라는 엄청난 시간이 걸렸지만…….

    셋째 날에는 원룸에 딸려 온 싱크대를 청소했다. 다행스럽게도 싱크대 청소는 방바닥이나 화장실 청소에 비하면 청소도 아니었다.

    그사이 희나는 ‘낡은 기본형 원룸’의 레벨을 2에서 5까지 올렸다.

    화장실 청소를 끝내니 한 번에 레벨이 두 계단 올랐고, 싱크대를 청소하니 레벨이 한 계단 올랐다.

    레벨 업 보상도 받았다.

    처음에 E급짜리 매트리스 침대를 받은 것이 나름 희나에게는 충격이었는데, 다음에는 ‘앉으면 변비가 해결되는 만능 비데(A)’와 ‘얼음은 나오지 않지만 쓸 만한 냉장고(C)’, 그리고 ‘곰팡이 박멸액(A)’을 받았다.

    랜덤 뽑기의 확률을 생각해 본다면 썩 나쁘지 않은 결과였다.

    오색이도 조금 더 영롱해졌다.

    희나는 자개 공예처럼 은은하게 반짝거리는 오색이의 껍데기를 보며 ‘이름을 영롱이로 지어 줄걸…….’ 하는 늦은 후회에 시달렸다.

    레벨 업을 조금만 더 하면 진짜 영롱하게 빛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희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방 안에 대자로 드러누웠다.

    “어휴. 대충 다 됐다. 벽지 곰팡이는 천천히 해결할래. 난 이제 지쳤어요.”

    「땡벌. 땡벌.」

    별걸 다 아는 오색이가 웬일인지 맞장구를 쳐 줬다.

    단시간 안에 깨끗해진 집……, 아니, 단시간 안에 영롱해진 자기의 껍데기에 마음이 풀어진 듯했다.

    “그럼 어디 한번 구직 결과를 확인해 볼까?”

    희나는 무거운 마음으로 휴대전화를 켰다. 여전히 오빠에게선 답장이 없었다.

    그리고 희나가 입사 지원서를 넣어 둔 수많은 회사에서도 연락이 없었다. 암묵적인 거절이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비참한 현실에 머리를 쥐어뜯었다. 경기가 어렵다, 취직이 어렵다 해도 이렇게까지 어려울 줄이야.

    하지만 희나는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악에 받쳐 다른 회사에 지원서를 마구마구 날려 댔다.

    강제로 백수 신세가 된 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았지만 희나는 놀고는 못 지내는 사람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돈을 벌고 있지 않은 상태를 견디지 못했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한 군데쯤은 연락이 오겠지. 그치, 오색아?”

    「확답 불가.」

    작은 달팽이가 초를 쳤지만 희나는 대답을 못 본 척하는 것으로 상황을 현명하게 해결했다.

    그리고 앞치마 주머니에서 어느새 꼬깃꼬깃해진 명함을 꺼내 들었다. 우민아 헌터가 꼭 다시 연락하라며 주고 간 명함이었다.

    “빈말은 아닌 것 같았는데…….”

    희나는 골똘히 명함을 내려다보았다. 명함에는 푸른 용이 그려져 있었고, ‘청룡靑龍’이라는 글자가 멋들어지게 박혀 있었다. 이건 희나도 알았다.

    “청룡 길드잖아.”

    청룡 길드는 대한민국 5대 길드 중 하나였다. S급 헌터 강진현이 속해 있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래서 그렇게 편하게 대했던 걸까?’

    희나는 우민아가 강진현을 편하게 대했던 것을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같은 회사 직원이라지만, 그렇게 무서운 사람을……. 우민아 헌터도 대단한 사람일 거야.’

    생각난 김에 인터넷에 ‘우민아’라는 이름 세 글자를 검색해 보자 포털 사이트에 결과가 와르르 떴다.

    [우민아 (만 26세): 대한민국 헌터 랭킹 23위]

    가장 먼저 뜬 건 우민아의 랭킹이었다. 희나는 눈을 크게 떴다.

    ‘우리나라에서 23위나 하는 대단한 헌터였잖아?’

    한 자리 숫자권이 아닌 애매한 순위라 얼굴은 알려지지 않은 것 같았지만, 국내 100위권 안에 든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나게 강하다는 의미였다.

    “돈도 엄청 많겠지? 감사의 의미로 밥이라도 한 끼 대접하려고 했는데…….”

    희나는 통장에 남아 있는 액수를 생각하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래도 감사 인사는 드려야겠지?”

    돈이 많은 건 아니었지만, 누구 한 명 거하게 대접할 정도는 됐다.

    거기다 희나는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잃고, 세상이 얼마나 각박한지 몸소 경험해 본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문자로 우선 연락해 봐야겠다.”

    희나는 휴대전화를 잡고 텍스트 메시지를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 입력했다.

    자기는 이희나이고, 지난번 구조 나가셨던 E급 정글 던전에서 나뭇잎 속에 파묻혀 있던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자기소개가 좀 이상했지만 이게 최선이었다.

    Rrrr…….

    문자를 보내자마자 몇 분 지나지 않아 전화가 걸려 왔다. 우민아였다. 희나는 허둥지둥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 드디어 연락했네! 잘 지냈어?

    “예. 그동안 경황이 없어서 연락을 곧바로 못 드렸어요. 저는 잘 지냈고요.”

    그러자 우민아가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 아하하! 말은 여전히 곱게 하는구나! 그나저나 오늘 시간 돼? 나 오늘 오프인데, 밥 한 끼 할래?

    “아, 네. 저도 오늘……. 오늘 괜찮아요.”

    희나는 우민아의 기세에 눌려 얼떨결에 밥 데이트 신청에 응했다.

    우민아는 순식간에 약속 시간과 장소를 정해 통보한 후 통화를 끊었다.

    “순식간에…….”

    어쩐지 엄청나게 휘둘린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희나는 어쨌든 밥 한 끼 사려고 했던 건 사실이었으니 잘된 일일 거라고 스스로를 위안했다.

    * * *

    “여기라고 했는데…….”

    희나는 고깃집 입구에서 서성거렸다. 약속이 3시 30분이라 고깃집에 사람은 거의 없었다.

    다만 키 큰 손님 하나만이 고기를 구워 먹고 있었다. 그런데 어쩐지 그 손님 뒷모습이 익숙했다.

    ‘설마, 우민아 헌터?’

    손님은 시선을 느낀 듯 고개를 돌렸다. 우민아였다.

    “왔구나! 빨리 와. 앉아, 앉아. 내가 먹는 양이 워낙 많거든. 그래서 미리 배 좀 불릴 겸 먹고 있었어.”

    우민아는 반갑게 손을 휘저었다. 희나는 고개를 꾸벅 숙이며 그녀 앞에 앉았다.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어요?”

    “나야 잘 지냈지. 그런데 너는 그새 좀 홀쭉해진 것 같다? 마음고생이 많았나 봐?”

    정확히 말하자면 몸 고생을 좀 많이 했다.

    원룸 청소로 며칠 빡세게 굴렀더니 살이 좀 빠졌나 보다. 안타깝게도 그간 먹은 수십 줄의 김밥의 흔적은 온데간데없었다.

    우민아가 안쓰럽다는 얼굴을 하더니 추가 주문을 했다.

    “너도 많이 먹어야겠다. 사장님, 여기 삼겹살 3인분 더요!”

    손님이 희나와 우민아, 둘밖에 없었던 덕에 고기는 금방 나왔다.

    “앗, 고기는 제가 구울게요.”

    희나는 고기 집게를 드는 우민아의 손길을 저지했다. 은인에게 고기를 굽게 하는 건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희나는 자기가 고기 굽기에 일가견이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래서 회사 다닐 때도 직급을 막론하고 고기는 언제나 희나가 구웠다.

    치이익, 먹음직스러운 소리와 함께 삼겹살이 적당히 달아오른 불판 위에 올려졌다.

    ‘맛있겠다.’

    요 며칠 동안 편의점 음식으로만 적당히 배를 채운 터라, 희나의 입안에도 군침이 고였다.

    ‘엄청 맛있게 구워야지.’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잠잠하던 시스템 창이 스킬 시전을 알려 왔다.

    희나는 갑자기 시전된 스킬에 놀랐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계속 고기를 구웠다. 고기 앞에서 딴생각은 금물이었다.

    “와. 너 고기 진짜 잘 굽는구나! 때깔부터가 다르네.”

    척척 삼겹살을 뒤집고 자르는 유려한 손길에 우민아가 감탄했다.

    “회사에서도 원래 제가 고기 담당이었어요.”

    대답하며 다 익은 고기를 불판 가장자리에 동그랗게 얹어 놓았다. 이제 먹어도 된다는 의미였다.

    “드세요. 오늘 구운 건 특히 맛있어 보이네요.”

    희나는 우민아의 앞 접시에 고기를 한 점 올려 주었다. 그리고 자기도 고기 한 점을 집어 입안에 넣었다.

    “맛있어!”

    우민아가 감탄했다. 희나도 그녀의 말에 동감했다.

    씹자마자 입안에서 육즙이 파사삭 튀어나왔다. 이건 마치 고기 요정이 입안에서 발레를 하고 있는 것 같은 맛이었다. 여러모로 완벽했다는 뜻이다.

    그리고 순간, 희나와 우민아의 시선이 한데 모였다. 그리고 마음이 통했다. 곧바로 우민아가 손을 들어 올려 크게 외쳤다.

    “사장님, 여기 3인분, 아니 4인분 더요!”

    희나와 우민아는 고깃집을 통째로 먹어 치울 것처럼 고기를 시켜 댔다. 그리고 한마디도 없이 고기를 굽고, 먹고, 굽고, 먹기를 반복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둘 중 먼저 정신을 차린 건 희나였다. 배가 터질 듯이 불러 왔기 때문이다.

    “배, 배불러…….”

    헐떡이며 불룩해진 윗배를 부여잡았다. 그러자 우민아 또한 꿈에서 깬 것처럼 퍼뜩 정신을 차렸다.

    “헉. 한마디도 안 하고 줄창 먹기만 했잖아?”

    “그러게요. 먹는 데 정신을 다 빼놓고 있었어요.”

    몽롱한 목소리로 대답하니, 우민아가 덥석 희나의 손을 잡아 왔다.

    “희나야. 너 내 친동생 할래? 살면서 고기 이렇게 잘 굽는 사람 처음이야. 지금 먹은 고기가 내가 먹어 본 고기 중에 최고야, 진짜!”

    희나는 고기 굽기로 대한민국 헌터 랭킹 제23위를 완벽히 꼬여 냈다.

    <이 맛이 바로 손맛(D): 최고의 MSG를 맛보게 해 준다. 그것은 바로 손맛. 액티브 스킬.>

    던전 안의 살림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