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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안의 살림꾼-7화 (7/228)
  • 던전 안의 살림꾼 7화

    희나의 의문에 달팽이는 아주 깔끔하게 설명했다.

    「랭크 상승 → 쾌적한 공간 조성 → 심신의 평화 → 세계 평화 이룩.」

    “……너도 시스템이랑 다를 바가 없구나.”

    아니, 시스템보다 한술 더 떴다. 청소로 세계 평화 이룩이라니! 오버도 이런 오버가 없었다.

    ‘수신제가 치국평천하도 아니고.’

    희나는 자기가 괜한 걸 물어봤나 하는 회의감에 잠깐 시달렸다. 그렇지만 희나의 집념…… 아니, 끈기 스탯 20은 여전했다.

    희나는 한숨을 내쉬는 대신 질문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건네 보기로 했다.

    “살림꾼 랭크가 높아지면 여기보다 더 좋은 집으로 이사 갈 수 있니?”

    「가능.」

    긍정적인 대답이었다.

    “그래? 더 좋은 곳으로 이사 갈 수 있다는 말이구나!”

    희나는 167시간의 수련을 통해 이 구질구질한 원룸을 언젠가 벗어나고 말리라는 결심을 다졌다.

    힘 있는 밀대 걸레질에 장판의 땟국물이 벗겨진 건 바로 그 순간이었다. 노오란 장판이 까꿍 하고 얼굴을 드러냈다.

    “헉, 원래 바닥이 이런 색이었어?”

    3시간 동안 벅벅 쓸고 닦은 회색 바닥이 원래 노란색이었다니!

    희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휴대전화를 들어 땟국물이 벗겨진 바닥을 찰칵 찍었다.

    밀대가 지나간 곳과 땟국물이 남아 있는 곳은 빛과 어둠처럼 대비가 선명했다.

    “이건 마법 수준인데?”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희나는 금세 원기를 회복했다.

    어차피 3평밖에 안 되는 방이다. 조금만 더 하면 깨끗한 방바닥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희나는 신나게 밀대의 일회용 걸레를 갈아 끼웠다.

    참고로 희나는 일회용품을 사용하는 걸 아깝다고 생각하는 파였다. 하지만 끔찍한 방 안의 상태를 생각해서 일부러 일회용 청소용품을 골랐다.

    이 더러운 곳을 한번 스치고 지나가면 어떤 걸레든 재기 불능이 될 게 분명했으니까.

    “와, 속이 다 시원해지네!”

    깨끗한 새 걸레를 가지고 바닥을 벅벅 닦으니 드디어 장판의 맨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다.

    시스템 창도 희나의 흥겨운 걸레질에 박자를 맞추어 탬버린을 찰찰 흔들어 주었다.

    “으흠, 흠, 흠~ 으흠~.”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싹싹 문지를 때마다 깨끗해지는 바닥을 지켜보았다. 희나는 이게 바로 살림의 기쁨이구나, 생각했다.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눈앞에 팝업 창이 떴다.

    “와…….”

    희나는 탄성을 내질렀다. 여태 시스템을 불친절한 강매꾼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통이 컸다.

    ‘고작 살림이 즐겁다는 생각을 했다고 숙련도를 500이나 줘?’

    시스템은 희나가 채워야 할 167시간 중 83시간 20분을 순식간에 깎아 줬다. 아울렛도 아니고, 대바겐세일이었다.

    “계속 이런 식이면 할 만하겠다. 그치, 달팽아? 팍팍 스킬 숙련도 올리는 재미가 있네. 게임 같아.”

    희나는 어느새 어깨에서 머리 위까지 타고 올라간 달팽이에게 말을 걸었다. 달팽이도 맞장구를 쳐 줬다.

    「노력 99 + 즐거움 1 = 뭐든 가능.」

    자기 계발서에 나올 것 같은 격언이었지만.

    그래도 눈으로 결과가 보이니 작업 능률이 확 치솟았다. 희나는 피로함도 잊고 방바닥을 닦았다.

    밀대로 묵은 때를 제거하고 나서는 본격적인 중노동에 들어갔다. 밀대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희나는 옷소매를 걷어 올리고 엎드려서 직접 바닥을 닦기 시작했다.

    허리와 팔이 아플 만도 한데, 무아지경에 빠진 희나에게는 고통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희나는 정신없이 바닥을 닦았다.

    희나의 손이 지나간 바닥은 반들반들 윤이 났다. 한국인인 이상, 보기만 해도 대자로 드러눕고 싶어지는 깨끗한 장판이었다.

    “끝났다!”

    마침내 희나는 방 구석구석까지 걸레질을 마쳤다. 하다 보니 가속이 붙어서 완전히 걸레질을 끝내는 데는 2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총 3시간 20분가량.

    3평밖에 안 되는 방치고는 청소하는 데 오래 걸렸지만, 그 결과물을 보면 다들 납득할 것이다.

    노란 장판은 개미가 피겨 스케이팅을 해도 될 정도로 반짝거렸다. 이 세상의 솜씨가 아니었다.

    “뿌듯해라!”

    희나는 그제야 몸에서 힘을 풀고 발라당 드러누웠다.

    「주의! 주의! 낙상 주의!」

    머리에 붙어 있던 달팽이가 굴러떨어지면서 시끄럽게 외쳤다. 희나는 방구석으로 데굴데굴 굴러간 달팽이를 향해 사과했다.

    “미안. 네가 있는 걸 잠깐 까먹었어.”

    「차후 주의 요망.」

    “알았어. 조심할게.”

    달팽이와 조곤조곤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드러누워 있는 희나의 눈앞에 무언가 반짝이는 글씨가 뿅 하고 나타났다.

    시스템 창이었다. 레벨 업을 정말로 축하한다는 듯 글자가 무지개색으로 번쩍거렸다.

    “레벨 업 보상?”

    희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는데, 안 받을 이유가 없었다.

    “예스! 받을래!”

    추첨 중이라는 글자가 떴다. 어째 조금 불안했다.

    ‘왜 레벨 업 보상을 추첨으로 주지?’

    의아할 때였다. 시스템이 축하 메시지를 띄웠다.

    희나는 게임에서 거지 같은 확률 보상을 받았을 때 유저가 해야 할 올바른 행동을 했다.

    시스템을 욕하는 것이다.

    “뭐야, 이 확률 똥망 게임은?”

    희나는 잔뜩 구시렁거리며 눈앞에 뿅 하고 나타난 침대 매트리스를 내려다보았다.

    다행스럽게도 조금 낡아 보이는 걸 제외하곤 꺼진 데는 없어 보였다.

    <프레임 없는 낡은 매트리스 침대(E): 최고 품질의 숙면은 아니지만, 그냥저냥 괜찮은 숙면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일어나고 나면 정신이 그냥저냥 개운해진다. 1시간당 체력 +1포인트 회복.>

    ‘프레임 없는 낡은 매트리스 침대’는 E급 아이템이지만 엄청난 부가 기능을 가졌다. 1시간마다 체력을 1포인트씩 추가로 회복해 주는 기능이었다.

    수백,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체력 회복 포션의 시세를 생각한다면 상당히 괜찮은 기능이다.

    희나는 땡잡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대로 내다 판다면 어지간한 자동차 한 대 값은 벌 수 있었다.

    “뭐, 고작 E급밖에 안 되는 아이템이지만……. 맨바닥에서 자는 것보다야 낫겠지?”

    하지만 각성자 세계에 문외한인 희나는 그런 사실 따위는 몰랐다. 그저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라고 생각하면서 애써 자기를 위로했을 뿐이었다.

    “아, 방 청소만 했는데도 너무 피곤해. 나머지는 내일 해야겠어.”

    휴대전화를 들어 시계를 보니 벌써 저녁 8시였다. 아까 김밥을 세 줄이나 먹었는데도 배 속에서 또다시 꼬르륵 소리가 났다.

    “먹을 거 더 없던가?”

    희나는 엉금엉금 기어가 식료품 봉지를 뒤졌다. 다행스럽게도 김밥 외에도 간식거리 삼아 과자를 좀 사 둔 게 있었다.

    일단 급한 대로 과자를 입안에 후다닥 쑤셔 넣었다. 살 것 같았다.

    「바닥. 과자 가루 떨어짐.」

    어느새 희나를 쫄쫄 따라온 달팽이가 깨알같이 잔소리를 해 댔다.

    “알았어, 알았어. 먹고 나서 치울게.”

    희나는 달팽이를 향해 대충 대꾸하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무언가 변화를 감지했기 때문이다.

    “달팽아, 네 집 색깔이 원래 이런 색이었던가?”

    탁한 회색빛이었던 달팽이 껍데기 색이 밝아져 있었다. 무광이었던 껍데기에 광택이 돌았고, 빛 반사에 따라 희미하게 색깔도 보였다.

    「레벨 업 효과.」

    달팽이는 안테나를 흔들었다. 어쩐지 기분이 좋아 보였다.

    희나는 과자를 마저 삼키고는 달팽이의 미모(?)를 칭찬해 주었다.

    “레벨 업 하면 네 껍데기 색도 바뀌나 보네. 벌써 이렇게 예뻐졌는데, 레벨이 더 높아지면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휘황찬란!」

    “그래. 휘황찬란해진다고? 그것 참 대단하겠네.”

    달팽이의 안테나가 으쓱했다. 희나는 그 모습을 가만히 내려다보다 입을 열었다.

    “그런데 우리 이렇게 계속 같이 지낼 거면 너도 제대로 된 이름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내가 계속 너를 달팽아, 달팽아, 하고 부를 수는 없잖아.”

    「동감.」

    “내가 너를 뭐라고 부르면 좋겠어?”

    희나의 물음에 달팽이는 즉각 대답했다.

    「주택 관리자님!」

    “……그건 이름이 아니잖아. 너무 정 없다. 음, 뭐가 좋을까. 달팽이니까 팽이?”

    「무성의 그 자체.」

    단순한 작명 센스에 달팽이가 반발했다.

    희나는 턱을 문지르며 생각에 빠졌다.

    “그럼 오색이는 어때?”

    「오색?」

    달팽이의 의문에 희나는 달팽이 껍데기를 손가락질했다.

    “네 집을 가만히 지켜보다 보면 오색빛으로 반짝거리거든. 그러니까 오색이.”

    「……심사숙고 중.」

    “에이. 맘에 들었잖아. 여기 안테나도 좋아서 씰룩거리고 있으면서.”

    희나는 달팽이를 살살 놀렸다. 몇 시간 함께 있었다고 부쩍 친해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승락. 오색.」

    마침내 달팽이는 희나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러면서 예뻐진 자기의 등껍질을 뽐내는 것처럼 제자리에서 몇 바퀴를 빙글빙글 돌았다.

    그 모습이 무척 귀여워 보였으므로 희나는 잠시 모든 근심을 잊고 깔깔 웃을 수 있었다.

    던전 안의 살림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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