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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안의 살림꾼-2화 (2/228)
  • 던전 안의 살림꾼 2화

    ‘……뭐? 이게 뭐야?’

    난생처음 들어 보는 각성자 클래스에 희나는 절체절명의 상황도 잊고 입을 쩍 벌렸다.

    <살림꾼(D): 훌륭한 솜씨로 살림을 꾸려갈 수 있다!>

    심지어 등급은 D급 오빠 따라 D등급이었으며, 클래스 설명은 성의 없기 그지없었다.

    거기다 능력치도 아주 미비했다.

    F급이더라도 어지간하면 체근민(체력, 근력, 민첩) 스탯 합은 30을 넘어 주는 것이 도리라고 하였다.

    하지만 희나의 상태 창은 아주 처참했다.

    <◆체력 8 ◆마력 1 ◆근력 5 ◆민첩 6 ◆끈기 20 ◆행운 45>

    ‘각성해 봤자 이럴 거면, 일반인이랑 다를 게 뭐야?’

    체근민 총합보다 끈기와 행운 스탯 각각의 포인트가 더 높다는 사실도 어처구니없었다.

    ‘오빠가 행운 스탯은 눈에 보이는 능력이 아니라서 하나도 쓸모없다고 했는데!’

    희나는 커다란 나무 아래에 숨어 손톱을 잘근잘근 씹으며 어떻게든 이 상황을 개선해 보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그녀의 클래스가 아주 이상하다는 것과, 망스탯을 타고났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았다.

    [캬오오오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희나의 냄새를 맡은 듯 몬스터 울음소리까지 가까워졌다. 이대로라면 몬스터의 발톱에 갈기갈기 찢길 게 분명했다.

    ‘뛰어!’

    살기 위해서는 도망가야 했다. 희나는 민첩 6의 스탯을 최대한도로 발휘하여 무성한 풀 사이를 달렸다.

    [크에에에에엑!]

    하지만 몬스터의 민첩 스탯이 그녀보다 높았던 게 분명했다. 크흥크흥 내쉬는 몬스터의 더운 숨결이 목 뒤에서 바로 느껴졌다.

    머리가 비쭉 솟았다.

    “아, 안 돼!”

    희나는 20짜리 끈기 스탯을 발휘하여 끝까지 목숨을 포기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시퍼런 녹조가 둥둥 떠 있는 늪에 몸을 던지기를 선택했다.

    풍덩!

    요란한 소리와 함께 그녀는 질척한 늪에 빠졌다. 입안에 이상한 맛이 나는 물이 들어와 퉤퉤 뱉었다.

    허우적거리며 그저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등 뒤가 서늘했다. 무언가 위험한 존재가 가까이 있다고 본능이 경고했다.

    뒤를 돌아보자, 어지간한 소형 자동차만 한 악어 모양의 몬스터가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히이이익!”

    그 어마어마한 광경에 숨넘어가는 비명을 지르려는데, 희나의 앞을 가로막는 것이 있었다.

    [크에에에에엑!]

    희나를 추격해 오던 공룡 모양을 한 몬스터였다. 그 몬스터는 악어를 발견하지 못한 듯, 늪지를 첨벙거리며 희나를 향해 돌진해 왔다.

    [그오오오오!]

    악어는 그것을 자신을 향한 공격이라 생각했는지, 우둘투둘 나 있는 뾰족한 이를 번쩍이며 주둥이를 휘저었다.

    [키이에엑! 캿!]

    공룡 모습을 한 몬스터는 악어의 주둥이에 맞아 허공으로 나뒹굴었다.

    퍽 하고 뭐가 터지는 소리가 났지만, 공룡은 아랑곳하지 않고 몸을 일으켜 포효했다.

    [키이이, 크에에에엑!]

    [고오오오오, 오오오!]

    두 몬스터는 접촉 사고 난 두 난폭 운전자처럼 서로를 향해 소리 질렀다. 그리고 이내 엉겨 붙어 싸우기 시작했다.

    녹조를 뒤집어쓴 희나는 덩그러니 남겨 둔 채였다.

    ‘다, 다, 다, 다행이야.’

    희나는 하늘이 내린 천운, 혹은 45짜리 행운 스탯에 감사했다.

    그리고 엉금엉금 늪 바깥으로 기어 나갔다. 두 몬스터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아주 조심스럽게.

    ‘이제 어디로 가야 하지?’

    희나는 온통 초록색뿐인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딘가 여기보다 조금 더 안전한 곳에 틀어박혀 구조를 기다려야 했다.

    ‘뭐 도움 될 만한 능력 없나?’

    몸을 웅크린 채 상태 창을 빠르게 훑어보던 희나의 절박한 시선에 걸린 스킬이 하나 있었다.

    <안락한 침상(D): 다른 존재의 방해를 받지 않고 안전하고 조용하게 휴식을 누릴 수 있도록 안락한 침상을 만든다. 액티브 스킬.>

    어떻게 보자면 침대를 정리하는 스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희나의 눈에 띈 건 스킬 설명에 적혀 있는 한 단어였다.

    ‘안전하게!’

    던전 게이트에 홀로 빨려 들어온 지금, 희나는 지푸라기라도 붙잡아야 했다.

    그게 비록 D랭크의 허접한 침대 정리 스킬일지라도!

    스킬을 켜자 곧 시스템 안내 창이 눈앞에 떴다.

    “이런 것도 내가 직접 해야 해?”

    희나는 울상을 지었다. 하지만 시스템 창이 시키는 대로 차근차근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자 아까까지 보이지 않던 것들이 하나하나 보이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반짝이는 상태 메시지가 있었다.

    이상한 이름의 스킬이라고 생각하기도 전이었다. 희나에 눈앞에 수많은 글씨가 떠올랐다.

    <먹을 수 있는 풀(E)>

    <먹으면 죽는 풀(D)>

    <매우 맛있는 풀(B)>

    등등…….

    푸르디푸른 정글을 배경으로 먹을 수 있는 풀과 먹을 수 없는 풀들에 대한 정보가 빼곡히 찼다.

    ‘자, 잘된 거겠지? 이왕 누울 거면 먹을 수 있는 안전한 풀 속에 눕는 게 훨씬 나을 테니까.’

    희나는 이제 당황하지 않았다. 대신 먹을 수 있거나 안전하거나 맛있는 풀들을 닥치는 대로 뜯었다.

    알림 창이 뜰 때마다 희나의 손놀림은 신속 정확해졌다. 더러운 물에 잔뜩 젖은 채 미친 듯이 나물을 따는 모습은 광인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 정도면 되겠지?”

    희나는 숨을 헐떡이며 등 뒤에 쌓인 풀 무더기를 내려다보았다. 한 사람 정도 누워서 숨을 만큼은 되어 보였다.

    희나는 풀들을 낑낑 들고 적당히 구석진 자리를 찾았다.

    “안락한 침상!”

    스킬을 시전하자 손이 저절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머릿속에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가 또렷이 떠올랐다. 희나는 그대로 따라 하기만 하면 됐다.

    “……됐다!”

    재료가 단순해서일까? 풀로 만든 침대를 완성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희나는 자기 손으로 만들어 낸 결과물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설명 창이 팟 하고 떴다.

    <먹을 수 있는 풀들로 만든 안락한 침상(D): 먹을 수 있는 풀들로 만들어서 배고픔과 피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 회복 속도 20% 증가.>

    그리고 그 밑에는 숫자가 쓰여 있었다.

    <스킬 지속 시간: 05시간 59분 13초 남았습니다.* *잔여 시간은 스킬 시전자만 확인 가능합니다.>

    스킬 지속 시간은 시전자만 확인할 수 있는 정보라는 표시도 되어 있었다. 설명이 은근히 친절한 데가 있었다.

    “처음치곤 괜찮게 만든 것 같은데?”

    희나는 자화자찬했다.

    조금 허접해 보이기는 했지만, 원시인의 수준에서 보자면 꽤 잘 만든 잠자리였다. TV에서 광고하는 과학 그 자체였다.

    [쉬이이이이이-]

    때맞추어 무언가 가까이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온몸의 잔털이 비쭉 솟았다.

    희나는 이게 정말 효과가 있을지 반신반의하며 풀로 만든 잠자리 안으로 쏙 들어갔다.

    아늑하긴 했지만 두려움이 먼저였다. ‘안락한 침상’ 스킬이 제대로 먹히지 않는다면 진짜로 목숨 줄이 끊어질 판이었기 때문이다.

    [취익, 쉬이이이!]

    희나는 잘 만든 D급 ‘먹을 수 있는 풀들로 만든 안락한 침상’ 속에 숨어 숨을 죽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몬스터가 나타났다. 사람 정도는 한입에 삼킬 수 있을 것처럼 보이는 크기의 거대한 뱀이었다.

    이쯤 되니 징그러운 걸 떠나 컴퓨터 그래픽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치이이, 치이이익!]

    거대한 뱀은 길쭉한 혀를 날름거리며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주위에 먹을 것이 있나, 탐색하는 눈길이었다.

    ‘제발 살려 주세요!’

    희나는 두 손을 꼭 맞잡은 채 애절하게 빌었다.

    [취이이.]

    희나의 소원이 하늘에 닿았던 걸까?

    뱀은 희나를 코앞에 두고도 발견하지 못하고 몸을 돌렸다.

    희나는 딱딱 떨리는 턱을 겨우 고정했다.

    ‘스, 스킬이 효과가 있긴 있었나 봐.’

    개똥도 약에 쓴다고, 하잘것없는 클래스와 스킬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도움이 됐다. 이대로 버틴다면 구출대가 올 때까지 버틸 수 있을지도 몰랐다.

    ‘살림꾼인지 뭔지로 각성해서 다행이야. 안 그랬으면 진작에 죽었을지도 몰라.’

    오빠처럼 애매한 D급 헌터로 각성했으면 몬스터를 잡아 보겠다고 뻗대다가 그대로 황천길에 올랐을 게 분명했다.

    “……아, 졸려.”

    어느 정도 안전이 확보되니 놀란 몸에 피로가 파고들었다.

    침상은 고작 풀 따위로 만들었다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안락했다. ‘안락한 침상’이라더니, 이름값을 했다.

    ‘안 돼. 이대로 잠들면 안 되는데…….’

    희나는 풀 사이로 몸을 웅크린 채 천천히 눈을 깜빡거렸다. 졸음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잠이 아주 솔솔 왔다.

    효과가 회복 속도 20% 증가라더니, 강제로 회복에 들어갈 수 있도록 수면에 들게 하는 걸까?

    “아흠…….”

    참지 못한 하품이 비어져 나왔다.

    결국, 희나는 머리를 꾸벅거리다 잠에 빠져들었다. 꿈조차 없는 깊은 잠이었다.

    그것이 던전에서의 사투 때문인지, 아니면 사흘째 지속된 야근 때문인지는 아무도 몰랐다.

    * * *

    “……이봐, 이것 봐!”

    쨍한 목소리와 함께 무엇인가가 희나의 몸을 쿡쿡 찔렀다.

    감자가 다 익었는지 확인하는 것처럼 가차 없는 손길이었다. 그러니까 굉장히 아팠다는 뜻이다.

    “아야!”

    희나는 상황도 잊은 채 크게 비명 지르며 벌떡 일어났다.

    “아파!”

    “사람처럼 생긴 식물형 몬스턴 줄 알았는데, 진짜 사람이었네.”

    사나운 눈매를 한 여자가 희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가벼운 갑주를 입고 있었고, 손에는 긴 창을 들고 있었다. 아마 저 장창의 끄트머리로 희나를 거침없이 찔러 댄 게 분명했다.

    하지만 정신이 든 희나에게 그런 사소한 고통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헌터님이시군요!”

    여자는 던전 진압을 위해 입장한 헌터가 분명했다.

    던전 안의 살림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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