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안의 살림꾼-1화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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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던전 안의 살림꾼

    던전 안의 살림꾼 1화

    1. Hidden Class, 살림꾼

    준수한 외모를 지닌 남자가 품속을 뒤졌다. 품 안에서 카드가 한 장 나왔다.

    희나는 저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카드 키였다. 그러니까, 집 열쇠였다.

    “저의 미래를 책임져 주시지 않겠습니까?”

    그는 카드 키를 희나에게 건네며 엄청난 이야기를 꺼냈다.

    희나의 두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세상에.’

    어린 시절 까르×에 반지를 내밀며 청혼하는 잘생긴 연인을 망상해 본 적은 있다.

    망상은 망상일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과 비스무리한 상황에 처하게 될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잘생긴 데다 능력 좋기로는 세상에서 내로라하는 잘난 남자가 까르×에 반지의 몇백 배는 비싼 집 열쇠를 건네며 미래를 기약하고 있다니!

    이건 어릴 적 했던 상상 이상의 잭 팟이었다. 아마 돌아가신 부모님이 보았더라면 등짝을 후드려 패서라도 당장 잡으라고 할 기회였다.

    하지만 이런 희대의 행운 앞에서, 희나는 조심스럽게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저, 강진현 헌터님.”

    “저를 포함한 모든 것을 맡기겠습니다.”

    전 세계 헌터 중 손꼽히는 강자로 일컬어지는 강진현이 굳건하다 못해 애절한 눈빛으로 희나를 바라보았다.

    당장이라도 안아 주고 싶을 정도로 안타까워 보였다.

    ‘이게 바로 미인계인가?’

    무력만 대단한 줄 알았는데 그는 심계도 대단했다. 희나는 잠시 제정신을 잃을 뻔한 자신을 책하며 조심조심 말을 꺼냈다.

    “그, 그게…….”

    “얼마든지 이야기하십시오. 희나 씨 앞에 가져다드리지 못할 것은 없습니다.”

    결국, 희나는 반쯤 울 듯이 소리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전속 가사 도우미로 들어와 달라는 소리를 왜 그렇게 이상하게 하세요?”

    “저의 의식주를 도맡아 주실 그 누구보다 중요한 분께 그럼 대체 어떻게 말을 해야 합니까?”

    진지하기 그지없는 대답에 희나는 머리를 부여잡을 수밖에 없었다.

    ‘소소하고 평범하게 살고 싶었는데, 어쩌다 이런 사람이랑 엮이고 말았지?’

    이 일은 바야흐로 3개월 전, 어느 날로 돌아간다…….

    * * *

    눈앞이 번쩍, 하며 어지럼증이 일었다.

    그리고 허공에 사무적인 글자들이 떠올랐다. 과포화 상태인 머리는 줄글의 뜻을 곧바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내가 헛것을 보나?’

    사흘 밤낮으로 야근에 시달리던 희나가 처음 ‘그것’을 보고 헛것이라 치부한 건 썩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쉬지 않고 컴퓨터 모니터를 들여다보다 보면 내가 문서 창인지, 문서 창이 나인지 분간이 쉽게 되지 않았으니까.

    희나가 눈앞에 팝업 창처럼 뜬 문장의 내용을 해독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뭐? 각성?”

    얼떨떨한 표정을 하고 허공을 바라보자, 옆자리의 권 과장이 푸드덕 일어났다.

    그녀의 입가에는 옅은 침 자국이 말라붙어 있었고, 다크서클은 턱 밑까지 내려와 있었다. 아마 지금의 희나 꼴도 권 과장과 다를 바가 없을 테다.

    “뭐? 뭐라고? 클라이언트가 또 뭐라고 했다고?”

    “아, 아니에요! 절대 그런 끔찍한 일은 없었어요!”

    “그럼 다행이고……. 그럼 무슨 일이야, 희나 씨?”

    “갑자기 눈앞에 뭐가 떠서 저더러 각성했다고 하는데…….”

    더듬더듬 방금 자기에게 생긴 일을 설명하고 있는데 권 과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뭐? 각성? 각성했다고? 희나 씨 그럼 지금 각성자 된 거야?”

    “어…… 어? 네, 그런 것 같은데요?”

    그녀는 방금까지의 피로는 완전히 잊어버린 듯 희나의 어깨를 붙잡고 방방 뛰었다.

    “나 각성자 처음 봐! 아니, 그것도 각성한 순간에 같이 있었다니! 신기해 죽겠네. 어때? 정말 게임 창처럼 능력이나 스탯 같은 게 뜨고 그래?”

    “어, 그건 잘 모르겠는데…….”

    권 과장의 말을 듣고 ‘그런 건 어떻게 하는 거지?’ 하고 생각한 순간 눈앞에 설명 창이 뿅 나타났다.

    “지금 제 직업군을 탐색 중이래요. 시간이 상당히 소요될 수 있는 작업이라는데요?”

    묘하게 현실감 있는 설명이었다. 덕분에 잠깐 나갔던 정신이 돌아왔다.

    권 과장 또한 의외의 답변에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어……. 그렇구나. 그럼 희나 씨도 직업군 정해지면 회사 관둘 거야? 헌터, 그런 거 하면 돈 많이 번다잖아.”

    “글쎄요. 뭐든 낮은 랭크 뜨면 그냥 일반 회사 다니는 것만 못하다는데, 두고 봐야죠. 음, 그런데 어지간해선 저는 계속 여기 다닐 것 같아요.”

    각성이라는 예기치 않은 소동이 찾아왔지만, 희나는 지독한 현실주의자였다.

    10여 년 전, 갑자기 세상에 ‘던전’이라는 것이 열리면서 세상엔 큰 변화가 찾아왔다.

    던전 안에서 튀어나온 몬스터들은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해쳤고, 그 와중에 희나 또한 부모님을 잃었다.

    이대로 인류가 멸망할지도 모르겠다는 비탄에 빠졌을 때였다.

    몬스터들에 대항할 능력자들이 하나둘 생겨났다. 사람들은 그들을 ‘각성자’라고 부르기로 했다.

    각성자들은 강력했다. 그들은 던전 속에서 튀어나온 괴물들을 빠르게 진압했고, 그들 덕분에 혼란스러웠던 세상은 빠르게 안정되어 갔다.

    그리고 10여 년이 흐른 지금, 각성자들은 사회의 중요한 한 축으로 기능하고 있었다.

    특히 전투 현장에 나가는 ‘헌터’들은 목숨을 대가로 하루에 억 단위 금액을 족히 벌어들였다.

    때문에, 사람들은 ‘각성자’라고 하면 굉장히 고소득을 얻을 수 있는 직군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도 다 잘난 사람들 얘기지.’

    희나는 매번 던전에서 빌빌거리다 다쳐 들어오는 D급 헌터인 오빠를 두고 있었기 때문에 각성자계의 각박한 현실을 잘 알았다.

    ‘한 번 전투 들어가면 저랭크 각성자들은 몸 다치고 마음 다치고! 돈 남들보다 조금 더 많이 받아 봤자 뭐 해? 남는 게 없는걸. 괜히 목숨 걱정에 가족 속이나 썩이지.’

    네 살 많은 오빠는 10년 전 각성했고, 어린 희나를 책임진다며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했다.

    덕분에 오빠의 몸에는 상처가 아물 날이 없었고 희나의 걱정 어린 눈물은 마를 날이 없었다.

    희나가 스무 살이 되자마자 작은 회사에 취직해서 자기 앞가림을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오빠는 몸을 혹사하다 못해 쓰러졌을지도 모른다.

    ‘바보. 이제 내가 일하니까 좀 쉬어도 되는데.’

    희나는 얼마 전, 돈을 좀 벌어 오겠다며 쪽지를 남기고 홀연히 떠난 오빠를 떠올리며 한숨 쉬었다.

    ‘나는 돈보다는 오빠랑 같이 평범하고 행복하게 사는 게 꿈이란 말이야.’

    난리 통에 부모님을 잃은 희나가 바라는 건 아주 평범한 삶이었다.

    지금처럼 오빠가 어딘가에서 다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아니라, 적당히 먹고살 걱정, 노후 걱정이나 하며 둘이서 티격태격하며 살아가는 것 말이다.

    생각에 빠진 희나를 현실로 잡아끌어 올린 건 권 과장이었다.

    “나중에 잘되면 입 씻을 생각 하지 말고. 나 아는 척해 줘야 한다?”

    그녀는 빙그레 웃으며 희나의 어깨를 톡톡 쳤다.

    “아무튼, 나는 깬 김에 이만 가 봐야겠어. 희나 씨 각성 직업군이 궁금하긴 한데…… 이렇게 회사에서 꾸벅꾸벅 졸 바에야 집에서 1시간이라도 제대로 자고 올래.”

    어쨌든 그녀 또한 피로에 찌든 직장인이었다.

    희나에게 일어난 각성이라는 대격변은 밀린 일을 대신 해 주는 것도 아니었고, 있는 피로를 없애 주는 것도 아니었다.

    권 과장은 금세 생기를 잃고 희나에게 손을 흔들었다. 이만 먼저 가 보겠다는 표시였다.

    “조심히 가세요.”

    희나는 좀비처럼 걸어가는 권 과장의 뒷모습에 꾸벅 고개를 숙여 보였다.

    “아흠, 졸려. 나도 집에 가고 싶다…….”

    눈앞이 침침했다. 하지만 희나의 작업 마감일은 당장 내일까지였으므로 권 과장처럼 자리를 비울 수가 없었다.

    “각성하면 일단 체력은 일반인보다 좋아진다던데, 직업군 정해지는 김에 체력 회복이나 되면 좋겠다.”

    희나는 중얼거리며 다시 컴퓨터 모니터를 응시했다.

    봐야 할 문서가 아직 한참 남아 있었다. 이걸 내일 아침까지 다 할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감이 들었다.

    “아, 회사 망했으면 좋겠다!”

    모든 직장인이 천 번쯤은 해 봄 직한 생각까지 육성으로 내지를 정도로, 희나는 피곤했다.

    그때였다.

    우르릉!

    건물 전체가 흔들리며 땅이 울렸다. 탁상 위의 물건들이 추위라도 타는 것처럼 부들부들 떨렸다.

    지진이었다.

    불 켜진 사무실에 홀로 남아서, 희나는 어쩔 줄 모르다 책상 밑으로 기어들어 갔다.

    지진이 났을 때는 책상 밑으로 들어가 대피해야 한다는 안전 지침이 퍼뜩 떠올랐기 때문이다.

    ‘어쩜. 권 과장님도 가고 나밖에 없는데! 무서워 죽겠네!’

    한반도가 지진 안전지대라고 말했던 건 누구였던가?

    희나는 책상 밑에 숨어서 두 눈을 꼭 감았다. 그와 동시에 차갑고 새파란 빛이 사무실 안을 가득 밝혔다.

    번쩍!

    눈앞에 섬광이 비쳤다. 그리고 순식간에 주변 풍경이 바뀌었다. 야근의 흔적이 역력한 사무실은 사라지고, 푸르른 잎사귀가 시야를 가득 메웠다.

    정글이었다. 희나는 금세 상황을 파악했다.

    ‘던전 게이트에 빨려 들어왔구나!’

    가끔 이런 식으로 랜덤하게 던전 게이트가 열려 지나가던 일반인들을 낚아채 가는 경우가 있었다.

    하지만 그건 몹시 희박한 확률로, 지나가다 날벼락 맞을 가능성 정도 됐다.

    ‘그런 확률인데!’

    희나가 이 재수 없는 룰렛 게임에 당첨되어 버린 것이다.

    ‘안 돼! 새벽이라서 헌터 출동도 늦을 텐데 어떻게 해?’

    좌절감에 휩싸여 눈물이 찔끔 나오던 순간이었다. 허공에 글자가 떠올랐다. 시스템 안내 문구였다.

    ‘각성이야!’

    희나는 두 손을 맞잡고 희망 어린 시선으로 시스템 안내 문구를 읽었다.

    만약 전투 계열로 각성하면, 헌터들이 올 때까지 여기서 살아서 버틸 수 있을지도 몰랐다.

    ‘각성자 중 80% 이상은 다 전투 계열이랬어!’

    희나는 제발 전투계 클래스가 뜨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제발하느님부처님알라신님!’

    그리고 시스템 창이 희나의 적합 클래스를 알렸다.

    던전 안의 살림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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