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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생지연多生之緣 (20)화 (20/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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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건물에서 나가 따로 동떨어져 있는 장례식장으로 가는데 장례식장에 가까워질수록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그리고 병원에서보다 더 노골적인 속삭임이 더욱 많이 들렸다.

『저 녀석 아까 저승사자랑 같이 있었어.』

『저승사자야?』

『아니야. 저승사자가 아까 인간이라고 했어. 살아 있는 놈이야.』

『그럼 지금 우리 말이 들리는데 안 들리는 척하는 거야?』

『킥킥킥, 언제까지 버틸까?』

턱뼈가 없는 귀신부터 얼굴 반이 눌린 자, 다리가 없는 자, 배가 갈라져 있는 자 등.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고 그저 주변에서 떠들기만 하는데 목소리가 한두 개가 아니라서 정신이 없었다. 하람이 또다시 울렁이는 속에 마른침을 자꾸만 삼키며 장례식장으로 애써 걸어갔다.

“어, 하람아!”

혹시나 하고 이한이 준 유소를 부여잡으니 미세하게나마 상태가 나아졌다. 불량해 보이지만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걷던 중 장례식장 입구에 있는 종연이 이름을 크게 불러왔다.

“아, 종연…….”

『하람이래.』

『이름이 하람이야.』

『하람아, 하람아.』

쑥덕거리던 속삭임이 모두 ‘하람’으로 바뀌었다. 동시에 구토감이 강하게 들고 전신이 훅 무거워졌다. 마치 이름을 중얼거리는 귀신들이 일제히 온몸을 부여잡은 듯 몸이 굳었다.

“아, 이…….”

식은땀이 쏟아지다 못해 숨까지 제대로 쉴 수 없었다.

벅찬 숨을 토해 내는데 다리에 힘이 풀렸다. 풀썩 주저앉은 채로 이한의 이름을 읊조리다 힘겹게 주머니에서 유소를 꺼내 두 손으로 꽉 부여잡았다.

『히익!』

『저거 뭐야!』

“이하람, 너 왜 이렇, 야, 정신 차릴 수 있냐?”

주저앉는 모습에 놀라 급하게 달려온 종연이 하람의 어깨를 감쌌다. 힘겹게 숨을 내쉬는 하람을 천천히 일으켜 세우며 괜찮냐고 계속해서 물었다. 하람이 벤치로 이끄는 종연을 따라 걸으며 고개를 느리게 끄덕였다.

“괜찮냐? 얼굴 너무 창백한데.”

“……괜찮, 아.”

벤치에 앉아 숨을 고르는 사이 종연이 물을 사 왔다. 하람이 내미는 물을 받아 마시고 한숨을 푹 쉬었다.

“놀랐겠다, 미안.”

학교 다닐 때도 방금까지 잘 웃고 떠들다가 갑자기 쓰러지고는 했다.

오랜만에 놀라게 했다. 하람이 미안하다고 하며 물병을 내밀었다.

“와, 난 진짜 친구 아버지도 모자라 너까지 보내나 싶어서 진짜 식겁했다.”

이제 보니 종연의 얼굴이 허옇게 질렸다. 하람이 남은 물을 다 마시고 버리는 종연을 보며 가볍게 웃었다.

“애들 다 안에 있는데, 들어갈 수 있겠냐?”

“어. 왔으니 인사하고 가야지.”

아무래도 오래 못 있겠다. 하람이 아쉬워하는 종연의 손을 잡고 일어섰다.

“근데 아까부터 뭐 잡고 있는 거냐?”

“어? 아, 이거는…….”

뭐라고 해야 하지? 장례식장과 어울리지 않으면서 액세서리라고 하기에는 복장과 어울리지 않는데. 지켜보는 종연을 보며 고민하다 어색하게 웃었다.

“끊어진 장식.”

“넌 무슨, 끊어진 장식을 그렇게 소중하게 쥐고 있냐. 가자.”

대충 답했는데, 잘 넘어간 것 같다. 하람이 걸을 수 있겠냐며 부축하려 드는 종연에게 괜찮다고 하고 힘없이 걸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무슨 일인지 검은 슈트와 상복을 입은 사람이 가득했다. 뭔가 싶어 눈이 둥글게 뜨였다.

“너도 놀랐냐? 나도 처음 왔을 때 이게 뭔가 했다니까.”

장례식장에 많이 와본 건 아니지만 이렇게 사람 많은 장례식장은 처음이다.

“요즘 무슨 일이 있나. 경수가 그러는데 장례식장이 꽉 차서 아버지도 어렵게 모셨다더라.”

운이 좋아서 들어왔다, 아니었으면 병원에서 먼 곳에 모셔야 할 뻔했다더라. 종연의 혼잣말 같은 말을 듣는 사이 익숙한 이름이 적힌 빈소에 도착했다.

빈소 홀에 모여 있던 친구들이 아는 척을 해 왔다. 친구들과 함께 분향소에 올라갔다.

“왔냐.”

분향 후 절을 하자 상주석에 서 있는 허망하면서도 지친 기색의 경수가 말을 걸어왔다. 친구들이 말없이 경수의 어깨를 치거나 팔을 짧게 주물렀다. 경수가 옆에 선 형에게 잠시만, 하고 따라왔다.

“다들 바쁜데 와 줘서 고맙다.”

“바빠도 와야지.”

접객실에 남은 테이블이 하나뿐이다. 그 테이블 하나에 빙 둘러앉았다.

“그런데 하람이 넌 얼굴이 왜 그러냐. 어디 아파?”

돌아가신 아버지에 관해 얘기하던 경수가 조용히 앉아 있는 하람을 보았다.

“어? 아니.”

“아니긴. 야, 여기 오기 전에 이하람 주저앉았어. 오랜만에 식겁했다니까.”

“이하람 이거 생긴 거랑 다르게 약골이라니까.”

종연이 옆에 앉은 하람의 머리를 아무렇게나 쓰다듬었다. 그리고 주변에 앉아 있던 친구들이 왜 자꾸 아프냐고 하며 잔과 수저 따위를 챙겨주었다. 하람이 짧게 고민하고는 젓가락을 들었다.

이한이 음식을 먹지 말란 말은 하지 않았다. 수육을 입가로 가져가는데 『하람아.』 하고 불렸다.

『손에 쥐고 있는 그거 좀 치워 줄래? 응?』

『어휴, 지독해.』

『그것 좀 치워!』

언제 왔는지 테이블에 둘러앉은 친구들 너머로 온갖 것들이 서 있었다.

“수육 맛있네.”

『하람아, 그것 좀 치워 보라니까?』

“야, 하람아, 이것 좀 먹어라.”

『도대체 그게 뭐야? 지독해!』

“차 가지고 왔냐? 나는 차…….”

『하람아, 그것 좀 치워 보…….』

친구들의 목소리와 귀신의 목소리가 섞여 들렸다. 그렇지 않아도 어지러운 머리가 더 어지러워지면서 또다시 속이 좋지 않아졌다.

젓가락을 내려놓고 덜덜 떨리는 손으로 물 잔을 감싸 드는데 친구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다들 여기 있었네.”

물을 마시고 잔을 내려놓는데 맞은편에 이제 막 온 남자가 허락도 없이 앉았다. 어어, 하고 밀려나는 친구들에 잠시간 소란스러워졌다.

“오랜만이다?”

맘대로 자리에 앉은 남자가 하람을 보며 웃어 보였다. 하람이 여유와 자신감이 넘치는 반듯한 인상의 남자를 가만 보다 “응.” 짧게 답했다.

“얼굴색 안 좋은데, 어디 아파?”

“아니.”

“많이 아파 보이는데.”

“신경 꺼.”

“왜 이렇게 뾰족해. 다른 사람이 들으면 너랑 나랑 싸운 줄 알겠다.”

남자가 안 그러냐고 하며 아까부터 보고 있는 친구들을 보았다. 그의 옆에 앉아 있는 기철이 둘이 무슨 일 있냐고 눈치 보다 슬쩍 물었다.

“내가 하람이랑 어떻게 싸워. 하람이가 일방적으로 짜증 내는 거면 또 몰라.”

“……김상준.”

상준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보다 못한 하람이 그만하라는 뜻을 담아 상준의 이름을 낮게 불렀다. 지켜보던 종연이 소리 내어 한숨 쉬었다.

“둘이 뭔 일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상준이 네 말대로 하람이 상태 안 좋으니까 그만해라.”

종연이 상준 쪽에 있는 수육 접시를 하람의 앞으로 대놓고 옮겼다. 상준이 피식, 다 들리게 웃었다.

학교 다닐 때부터 하람과 상준은 성적과 평판 관련으로 사이가 그리 좋지 않았다. 그 사실을 친구들이 다 알고 있었다.

나이를 먹어도 여전히 좋지 않은 모습에 빠르게 대화 주제를 바꿨다. 하람도 상준을 무시하고 음식을 먹었다.

『저 녀석 마음에 안 들면 우리가 골려줄까?』

『그건 내가 전문이지!』

『저놈 못 걷게 해 줄 테니까 그것 좀 치워 주라. 응? 응?』

속이 불편해서 시락국에 밥을 말아 먹는데 귀신들이 신났다. 상준을 어떻게 해주겠다고 너 나 할 것 없이 나서 댔다.

자꾸 들으니 조금 혹한다. 상준이 사람들 다 보는 앞에서 넘어지게 해달라고 할까, 하다 제가 너무 유치한 것 같아 그만두었다. 그냥 유소를 왼손으로 꽉 잡은 채로 밥을 빠르게 먹어 치웠다.

“나는 먼저 가 볼게.”

“뭐? 벌써?”

몸 상태도 몸 상태지만 귀신들의 시선과 쑥덕거림을 더는 못 참겠다. 더 있다간 진짜 정신이라도 잃을 것 같아 먼저 일어났다.

계속 조용히 있던 하람이 일어났다. 자리에 앉아 있던 친구들이 하나, 둘 따라서 일어났다.

“아쉬운데 조금만 더 있다가 가지.”

『맞아. 왜 벌써 가!』

『조금만 더 놀아 줘!』

“그래. 조금만 더 있다가 우리랑 같이 가자.”

“미안. 몸이 안 좋아서 가봐야 할 것 같아.”

“어렵게 모였는데, 아쉽네.”

종연과 경수, 원식이 아쉽다며 붙잡았다. 그도 모자라 귀신들까지도 우는소리를 냈다.

하람이 당황스러운 풍경을 보는데 떠들던 귀신들이 일제히 한곳을 보더니 히익 소리 내며 물러났다.

차사라도 왔나 싶어 고개를 돌려 귀신들이 보던 곳을 보는데 갑자기 왼손이 잡혔다. 놀라 앞을 보았다.

“이거 뭐야?”

“뭐, 하는 짓…….”

언제 일어났는지 가까이 온 상준이 유소를 홱 가져갔다. 동시에 물러났던 귀신들이 일제히 보았다.

『……하람아!』

지금까지 일정 거리를 유지하던 귀신들이 눈을 시뻘겋게 한 채로 달려들었다.

밀물처럼 우르르 달려드는 귀신들의 모습에 하람이 저도 모르게 물러나는데 별안간 발목이 틀어 잡혔다.

『원한을 풀어 줘……. 우리의 원한을 풀게 해 줘…….』

얼음물이 전신에 쏟아진 것처럼 오싹해졌다. 곧 마치 물에 빠지기라도 한 것처럼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푹 젖은 여자가 스르르 올라왔다.

젖은 머리카락 사이로 무어라고 하듯 달싹이는 보라색으로 질린 입술을 보는데 정신이 점차 흐려졌다.

“……아, ……람아!”

외치는 소리가 멀겋게 들리고, 그렇지 않아도 무겁게 느껴지는 몸이 더욱 무거워졌다.

『……름을, 불……줘.』

달싹이는 입술을 따라 입술이 제멋대로 움직였다.

“……장, 희.”

얼굴을 뒤덮고 있던 머리카락 사이로 벌건 불빛이 보인다고 느낀 순간 눈이 스르륵 감겼다.

“……이, 한 님.”

하람이 목을 쥐어짜듯 힘겹게 이한의 이름을 부르다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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