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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집 살림을 하는 중입니다만-110화 (110/120)

110화. 복수의 끝

사람 일이라는 게, 그렇다. 나쁜 일이 있으면 좋은 일도 있는 것이다.

새로운 영주가 부임하면서 풀려날 줄 알았던 콜론은 풀려나지 못했다. 왜냐면 그가 한 탈세는 진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갑자기 몸져눕는 바람에 가택 연금으로 처벌이 완화되었다.

그래서 콜론은 현재 상단에서 요양 중이었다.

“주인님, 마차를 준비했습니다.”

콜론은 지팡이를 잡고 방에서 나섰다. 그러곤 짐을 싣는 마차에 올라탔다.

늦은 밤을 타 상단에서 나간 마차는 펠레포네 영지를 떠나 레버리 영지로 향했다.

“여길 또 오게 될 줄은 몰랐지.”

호숫가 앞 별장. 올리비아가 죽고 마코가 죽을 뻔한 곳.

오늘을 위해 거금을 주고 사두긴 했지만, 다시 오고 싶진 않았다.

“올리비아.”

그는 아주 오랜만에 아내의 이름을 불렀다.

“이제 당신도 편히 쉬어.”

그는 지팡이를 짚고 서서, 별장을 한참 노려보았다.

“형님, 안 들어오고 거기서 뭐 합니까?”

마코가 콜론을 부축하러 왔다.

“모두 모였습니다.”

지난 이십 년의 세월을 거치는 동안, 마코야데스는 도둑 길드의 수장이 되었다. 도둑 길드의 수장쯤 되는 사람은 물건은 물론이요, 사람도 훔칠 수 있었다.

그게 역모의 죄를 꾀한 반역자라 할지라도.

“오늘만 상상하면서 살았는데, 막상 눈앞에 다가오니 기분이 이상합니다.”

“막 용서하고 싶고 그러냐?”

“아니요. 그냥 기분이 이상하단 뜻입니다.”

“나도 그렇다.”

거기 모인 사람 모두가 그랬을 것이다. 후작의 손에 가족을 잃은, 모두가.

그들은 오직 복수의 날만을 기다렸고, 드디어 복수하게 되었지만, 아무도 즐거워하지 않았다.

누구도 웃지 않았다.

그들은 드디어 마음 놓고 울었다.

* * *

“아가씨.”

“응?”

“드디어 곳간이 텅텅 비었어요.”

콜론이 상단 운영에 개입하기 전에 모든 일을 끝내놓고 싶었다.

이런다고 콜론과 르니예의 죄가 다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새 출발 하는 데 발목은 잡히지 않을 것이다.

“잘됐네.”

“전혀 잘된 얼굴이 아닌데요. 상단주께 혼나실까 봐 그러세요?”

“아니.”

아버지에게 혼나는 건 무섭지 않다. 르니예를 고민스럽게 하는 건, 르니예가 숨기고 있는 비밀이었다.

본인이 회귀자라는 사실. 그렇게 되는 바람에 소원을 두 개나 빌어 버렸다는 그 사실 말이다.

“실은 벨데메르에게 숨기고 말하지 않은 게 있어.”

“중요한 거예요?”

르니예는 쉬이 대답하지 못했다. 중요한 것 같다가도 사소한 것 같기도 했다.

“모르겠어.”

아니, 그건 벨데메르가 정할 일이었다.

“계속 그게 마음에 걸릴 것 같으세요?”

“응.”

“그럼 말하세요.”

에니는 혼란스러워하는 르니예를 바라보았다.

“저번에도 작은 주인님 존재를 숨기느라 힘드셨잖아요. 이번 결혼식 전에는 모든 비밀을 다 털고 가세요.”

그렇지. 저번 결혼식도 비밀 때문에 전전긍긍 난리도 아니었다.

이번 후작 사건도 마음에 걸렸다. 아버지는 좋은 마음에 어머니 일을 숨겼지만, 그 때문에 일이 꼬일 뻔했다.

잘 풀렸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콜론이 평생 준비해 온 계획이 다 날아갔을 것이다.

만약 르니예가 회귀 사실을 숨겨서 벨데메르가 봉인을 푸는 데 걸림돌이 된다면…….

그는 이 시간을 아주 오래 기다렸다. 그걸 자신이 망쳐서는 안 되었다.

“말해야겠어, 벨데메르에게 전부 다.”

수도에서 내려와, 세사르에게서 해방된 샤피로는 몸도 마음도 가볍게 결혼식을 준비 중이었다.

아주 성대하고 아름다운 결혼식으로 만들 예정이었다.

“주인님, 르니예 님께 말해 정원의 장미를 꽃봉오리 정도로만 피워주시겠습니까?”

“그건 어렵지 않지. 그런데 장미로 뭘 하려고?”

“부케를 만들어 볼까 합니다.”

르니예는 장미를 좋아하니, 괜찮은 생각이었다.

“아, 마침 오시는군요.”

샤피로는 르니예가 정문을 여는 소리를 듣고, 현관 앞으로 나갔다.

그는 르니예가 현관 문고리를 잡기 직전 부드럽게 문을 열었다.

“어서 오십시오, 르니예 님. 오늘은 일찍 오셨네요.”

“아, 응.”

언뜻 보기에도 르니예는 평소와 달랐다. 어딘가 약간 부자연스럽다고 해야 하나?

“무슨 일 있는 건가?”

“일이 있는 건 아니고, 벨데메르한테 할 말이 있어요.”

르니예는 괜히 목을 가다듬었다. 마음을 굳게 먹고 왔는데 막상 이 앞에 오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무슨 말이기에 이리 뜸을 들이지?”

벨데메르는 주먹을 꽉 쥐어 하얗게 질린 르니예의 손등을 살며시 쓸었다. 그가 다정하게 굴자 르니예는 더욱 말하기가 힘들었다.

“괜찮으니 말해 봐.”

“내 소원에 관해서 벨데메르에게 말하지 않은 게 있어요.”

르니예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나, 소원을 두 번 빌었어요.”

르니예는 모든 이야기를 다 털어놓았다. 벨데메르는 조각상처럼 앉아서 르니예의 이야기를 들었다.

“꿈을 꾼 건 아닌가?”

“안타깝지만, 아니에요.”

르니예는 고개를 떨어뜨렸다. 앞으로 할 결혼식이나 혼인신고가 소원을 이루는 해답일 수 있다.

하지만 이건 숨겨서는 안 되는 이야기였다. 벨데메르는 조각상에 수백 년을 갇혀 있었다.

그에게 봉인을 푸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했고, 그는 자신이 들어준 소원에 관해 모든 것을 알 자격이 있었다.

“그랬군.”

벨데메르는 쓴웃음을 지었다. 제 남편이 되어 주세요. 그 이상한 소원을 빈 이유가 이거였다.

르니예가 저에게 반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대는.”

벨데메르는 생전 처음 접해 보는 감정에 휘말렸다. 화가 났지만, 오로지 화가 났다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었다.

“이 이야기를 가장 먼저 해야 했다.”

“난, 그러니까, 이혼만 하면 해결할 수 있을 줄 알고…….”

르니예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미안해요.”

그들 사이로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할 것 같군.”

벨데메르는 끝끝내 르니예를 쳐다보지 않았다. 르니예는 그런 벨데메르를 흘긋 보다가 조용히 일어섰다.

“그럼 가 볼게요.”

벨데메르는 떠나는 르니예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거칠게 머리를 쓸어 올렸다.

죽었다가 시간을 거슬러 돌아오고, 이런 짓을 할 수 있는 이는 단 한 명뿐이었다.

그러니까 이 모든 것이, 신의 농간이었던 것이다.

* * *

“셰론 후작이 돌아왔다지?”

2왕자 레브론은, 자기 방 안에 감금된 처지에도 여유가 흘렀다.

예전처럼은 아니었지만, 간간이 바깥소식도 전해 듣고 있었다.

예컨대 저와 대척점에 있던 셰론이 실은 저를 돕고 있었다는 소식 같은 것 말이다.

“누명을 벗을 증거를 가져왔다더냐?”

“시신으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시신으로?”

후작은 저를 도운 적이 없었다. 후작의 결백을 믿는 사람이 저라니,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후작이 조사를 받다가 사라졌을 때, 레브론은 그가 누명을 벗기 위해 탈출했을 거라 여겼다.

“레닌이 죽인 건가?”

1왕자인 레닌이 배신감에 밤잠을 설쳤으리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후작을 믿고 따랐다. 후작에게 딸이 있었다면, 레닌은 주저 없이 그 여자와 혼인했을 것이다.

“1왕자 저하가 아닌 것 같습니다. 주검의 모습이 아주 처참했다고 합니다.”

“처참해?”

조사를 받다가 없어진 후작이 처참한 주검으로 돌아왔다니.

“아주 고통스럽게 죽었을 거라고 하더군요.”

“그럼 레닌이 아닌데? 후작이 원한 살 만한 일을 했나 보지?”

레브론은 흥미롭다는 듯 눈동자를 반짝였다.

“그 일 때문에 궁의 경비가 강화되었습니다.”

“그건 흥미롭지 않군.”

레브론은 조만간 궁을 빠져나갈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는 아직 살아 있다. 그렇다면 기회가 있단 뜻이었다.

“탈출 계획을 수정하도록 하지.”

그리고 그는, 이 피 같은 기회를 놓칠 마음이 전혀 없었다.

* * *

“제 남편이 저만 사랑하게 해 주세요.”

벨데메르는 르니예의 소원을 되뇌었다. 그래서 제인인가 하는 여자가 그 소원을 빌었을 때, 르니예가 길길이 날뛰었던 것이다.

소원의 결과를, 본인은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하.”

벨데메르는 웃음을 터트렸다. 입이 썼다.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실은 제자리를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그리고 저 위의 대단하신 분께서는 이 모든 것을 보며 즐거워하셨겠지.

“주인님, 샤피로입니다.”

“들어와.”

샤피로는 벨데메르의 명에 따라 술상을 보아 들고 왔다. 벨데메르는 르니예가 다녀가고 며칠째 술로 잠을 청하고 있었다.

“몸이 상하실까 염려됩니다.”

“봉인이 풀리지 않는 한, 죽지 않을 테니 걱정할 것 없다.”

봉인이 풀리기나 할까? 르니예의 소원이 해결되긴 하는 건가?

르니예의 소원이 이뤄지지 않아도 괜찮을 거라 생각했는데…….

르니예에게 에드윈이 있었다는 걸 알았을 때보다 훨씬 더한 배신감이 들었다.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듯한 감정이 부글부글 끓어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어떻게 그 이후로 한 번을 오지 않을 수가 있지?”

혼자 있고 싶다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한 번을 안 오는 거지?

역시 소원 때문에 억지로 나를 만나고 있었던 건가?

똑같은 실수를 두 번 하지 않기 위해서 빈 소원인 줄도 모르고, 벨데메르는 르니예가 저에게 반했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르니예는 그런 척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면 왜 나를 그런 눈으로 쳐다본 거지?”

남편이 되어 달란 소원을 실수로 빈 주제에, 왜 그런 촉촉한 눈을 하고 나를 본 거야?

내 입맞춤은 왜 받아 준 거지? 어떻게 그리 아무렇지도 않게 나와 한 침대에서 잠을 자고, 같이 밥을 먹고,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거지?

“그런 건 아무것도 아니었던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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