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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집 살림을 하는 중입니다만-91화 (91/120)

91화. 하나만 기억하면 돼

“에드윈 그놈인가?”

예상대로 영주와 카밀도 금이 적발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영주는 분개했고, 카밀은 그 많은 금괴가 허공에서 사라진 것이 아까워 미칠 지경이었다.

“영지를 빠져나가기 전에 잡았어야 했는데! 자네는 라포어 경의 동태를 예의주시하지 않고 뭐 했나?”

불똥이 카밀에게 튀었다. 카밀은 욕이 튀어나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에드윈이 본격적으로 움직일 것 같으니 영지 밖으로 못 나가게 해 달라는 단순한 부탁도 들어주지 못한 주제에 큰소리는.

“라포어 경이 아닙니다.”

그리고 생각을 좀 해라, 생각을! 카밀은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저거는 귀족으로 태어나서 영주 노릇 하지, 평민으로 태어났으면, 제 밥벌이도 못 했을 인간이었다.

카밀은 영주 모르게 이를 갈았다.

“라포어 경이 수도로 떠난 건 어제 오후이지 않습니까. 아무리 빨리 달렸어도 지금이나 도착했을 겁니다.”

“흠, 그것도 그렇군.”

이런 당연한 사실도 알려 줘야 아는 놈이랑 내가 무슨 큰일을 한다고. 카밀은 속으로 혀를 매우 찼다.

“그럼 누구란 말인가?”

“짐작 가는 사람이 하나 있습니다.”

“그러니까 누구?”

“르니예가 한 것 같습니다.”

이 정보를 아는 영주와 카밀 둘 다 서로를 배신하지 않았다는 전제하에, 이런 짓을 벌일 사람은 하나였다.

“정신이 온전치 못하다며?”

“그런 척을 하는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정신이 멀쩡했을 때 벌인 일일 수도 있습니다. 에니라고, 그 애 몸종이 제법 머리를 씁니다.”

고아로 떠돌던 것을 콜론이 데려와 르니예 말동무 겸 몸종으로 삼았다. 르니예는 뭐든 에니와 함께하고 싶어 해서 교육도 비슷하게 받았다.

상단에서 큰 것이나 마찬가지니, 상단 안에 아는 사람도 많았다.

상단 일도 어깨너머로 배웠는데, 그게 이십 년을 넘어가니 준전문가급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아마 제 아가씨가 명령한 일이니 남몰래 수행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방심했다. 여러모로 정신이 팔려 에니를 잊고 있었다. 르니예 병간호하느라 정신없는 줄 알았더니 깜찍하게 이런 일을 벌여?

“……제가 조치하겠습니다.”

“당연히 그래야지.”

영주는 이제야 조금 흥분을 가라앉혔다.

“다음에 들어오는 무기는 어떻게 할 계획인가?”

“새로 상단을 하나 만들 생각입니다.”

비어 있는 사무실에 대충 명패 하나 걸고, 마차꾼과 용병단만 고용하면 된다.

어차피 임시 상단이고, 영주가 허가만 제때 해 준다면 하루 만에도 만들 수 있었다.

“그 전에 그 딸이랑 라포어 경 싹 다 없애 버리자고.”

“확실히 죽이지 못하면 역으로 당하기만 할 겁니다.”

에드윈이 성 밖으로 빠져나가는 거 하나 잡지 못하는 주제에 말은.

“자네가 어릴 때부터 보던 아이라 정이 들어 못 죽이는 것은 아니고?”

“제가 그런 각오 하나 없이 이 일에 임했겠습니까?”

의심받지 않으려 최선을 다했다. 콜론을 감옥에 보내고 르니예를 죽이면, 에드윈에게 ‘내가 무슨 일을 꾸미고 있다.’라고 알려 주는 꼴이었다.

반대로 에드윈을 먼저 죽여도 문제였다. 그럼 눈이 돌아간 르니예가 무슨 짓을 할지 몰랐다.

둘을 동시에 죽인다? 그러면 영지 안에 소문이 파다하게 퍼지겠지.

콜론의 상단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구나, 하고.

“상단에서 수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소문이 나는 순간, 영지 안에 있는 1왕자 측 세작의 귀에 들어갈 겁니다.”

“이 작은 영지에 세작이 있겠어?”

“셰론 후작인가 하는 사람이 라포어 경에게 접근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뭔가 걸리는 것이 있으니 라포어 경을 찾아왔겠지요.”

이미 의심을 받는 상황이었단 뜻이었다. 과연 세작이 에드윈 하나 있을까?

“그럼 이대로 방해하는 걸 보기만 하겠다고?”

“정신을 못 차리도록 흔들어 놓겠습니다. 르니예는 절대 1왕자 편을 들지 못할 겁니다, 영주님.”

* * *

에드윈은 무리를 하면서까지 수도로 향했다. 2왕자 측으로 금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또 앞으로 들어올 무기가 어떻게 반입될 것인지 알려 줄 기대에 가득 차 있었다.

“아, 라포어 경.”

“후작님.”

후작저의 응접실에서 기다리던 에드윈은 셰론을 보고 벌떡 일어섰다.

“펠로포네 영지에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건가?”

“예, 이번에 영주가 2왕자 측에 자금을 보낸 듯싶습니다.”

“아, 그거.”

미적지근한 반응에 에드윈은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앉지, 일단.”

“예.”

하인이 차를 가져다 놓는 동안 응접실에는 정적이 흘렀다.

“소금 포대에 금을 넣어 보냈더군.”

“아셨습니까?”

“무기인 줄 알고 수색했는데, 금이었어. 저쪽에 우리가 감시하고 있다는 정보만 넘겨준 셈이네. 자네가 조금 더 빨리 왔으면 좋았을 것을 그랬어.”

“죄송합니다.”

에드윈이 면목 없어 하자, 셰론 후작은 손사래를 치며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런 말 들으려고 한 소리 아니네.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했는데 저녁은 들고 가지.”

“아닙니다. 상단을 오래 비워둘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라고 중얼거리며 후작은 떠나는 에드윈을 마중했다.

“저, 후작님.”

“그래. 뭔가, 라포어 경?”

“그 정보는 누가 알려 준 겁니까? 펠레포네 영지에 저 말고 다른 사람이 또 있습니까?”

도대체 누굴까, 그런 정보를 알고 있는 사람이. 에드윈은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라인허트 경이라고, 패러히트 공작께서 아끼시는 친구가 하나 있네. 그 친구가 펠로포네 영지에 아는 정보원이 있더군.”

라인허트 경? 라인허트라면 벨데메르의 성이 아닌가.

“벨데메르 라인허트 경입니까?”

“아니, 펙 라인허트 경일세.”

펙 라인허트. 벨데메르의 친척이나 그쯤 되는 건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튀어나온 이름에 에드윈은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도련님, 괜찮으십니까?”

후작저를 나오는 에드윈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는 곧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아 보였다.

“……괜찮다, 바딜.”

패러히트 공작과 연이 닿아 있어 이상하다고 했는데, 1왕자 측 사람이었던 건가?

그렇다면 그자도 같은 목적으로 르니예에게 접근한 건가?

르니예는? 르니예는 그자의 목적을 알았을까?

“……젠장.”

에드윈은 작게 욕을 읊조렸다. 알았겠지. 에드윈이 버티고 있는 바람에 벨데메르는 상단에 들어오지 못했다.

그럼 소금이며 화살촉 정보는 누가 주었는지 뻔했다. 르니예 말고는 없었다.

“용병 분장을 하고 상단으로 들어온 이유도 정보를 캐기 위해서였군.”

르니예를 지키기 위해서 자존심을 세우지 않아? 웃기지도 않는 말이었다.

공을 세우기 위해 용병 옷도 아무렇지 않게 입은 것이었다.

“도련님, 쉬었다 가시죠. 밤이 너무 깊었습니다.”

“……그러도록 하지.”

에드윈과 바딜은 평평한 풀밭에 말을 세웠다. 이틀을 무리했다. 그러나 잠이 쉬이 오지 않았다.

벨데메르가 모든 공을 채 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그러면 저는 이대로 모든 것을 잃는 건가? 이혼당하고, 공도 세우지 못하고, 그다음은 무엇인가? 패배자의 삶?

“도련님, 정말 아무것도 안 드실 겁니까?”

“입맛이 없다고 몇 번이나 말했는데.”

바딜은 두 번 묻지 않았다. 에드윈은 어려운 상황에 빠진 듯 보였지만 그것도 묻지 않았다.

상황이 어려운 건 프리야가 더할 테니.

바딜은 이해할 수 없었다. 어째서 에드윈은 프리야를 외면하는 걸까. 아무리 프리야가 저를 속였다 할지라도 한때 마음을 준 여인인데.

왜 결과에 승복하지 않는 걸까? 기사도에 죽고 사는 것이 기사 아닌가.

내가 아는 도련님이 맞나? 바딜 역시 머리가 복잡해 쉬이 잠들지 못했다. 그는 계속해서 상상했다.

내가 도련님이라면, 귀족이었다면, 기사였다면…….

* * *

카밀은 르니예를 불렀다. 긴밀히 할 말이 있으니 혼자 오라는 말에, 르니예는 에니도, 벨데메르도 없이 정말 혼자 갔다.

“할 말이 뭐예요, 숙부?”

“일단 앉아라.”

르니예는 건들건들 걸어가, 의자를 드르륵 끌어 풀썩 주저앉았다.

“무슨 말인데 혼자 오라고 한 거예요?”

“이 이야기를 너한테 해 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다.”

쓸데없이 서론이 길었다.

“네 기억이 돌아오지 않았는데, 이런 말을 하게 되어 안타깝구나.”

별로 안타깝다는 표정은 아니었다.

“라포어 경에 관한 이야기다.”

“아, 내 남편?”

“그래, 그리고 네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

어머니? 예상하지 못했던 단어에 르니예가 멈칫했다.

에드윈과 어머니가 무슨 연관이 있는 건지, 쉽게 연상되지 않았다.

“라포어 경이 셰론 후작의 명을 받아서 우리 상단을 조사하고 있다.”

“……왜요?”

르예는 애써 정신을 가다듬었다.

내 정신이 돌아왔는지 떠보는 중일 수도 있어, 넘어가면 안 돼.

르니예는 카밀 모르게 입 안 여린 살을 지그시 씹었다.

“내가 2왕자의 반란을 돕고 있거든. 내일 도착하는 무역선에 무기가 실려 있는 이유지.”

이걸 솔직하게 다 얘기한다고? 르니예는 당황했다. 당황한 표정을 채 숨기지도 못했는데 카밀은 벌써 다음 이야기로 넘어갔다.

“셰론 후작은 1왕자의 오른팔이나 다름없으니, 반란을 막으려 드는 거지.”

남의 집 이야기하듯 태연하게 카밀은 주전자를 들어 차를 따랐다.

“그런데 내 생각엔, 너도 셰론 후작을 돕고 있는 것 같구나. 물론 기억을 잃기 전에 너 말이다.”

알고 있었던 거야? 하지만 그걸 왜 나한테 알려 주는 거지?

르니예는 도무지 그의 저의를 알 수 없었다. 혼란스러웠다. 만일 르니예를 혼란에 빠트리는 게 목적이라면 카밀은 벌써 성공했다.

“사실 숙부도 셰론 후작을 돕고 있었어요?”

“뭐? 아니, 아니다.”

“그게 아니면 왜 나한테 그런 말을 해 줘?”

르니예의 반문에 카밀이 손을 저으며 허허 웃었다.

“기억은 잃었어도 머리는 잘 돌아가는 모양이구나. 아니면 기억이 돌아온 거냐? 뭐, 아무튼 상관없지.”

상관이 없다? 왜 상관이 없을까. 르니예는 비스듬히 앉아 있던 자세를 바로 했다.

상관이 없으시다니, 연기는 더 이상 필요 없겠지.

“상관이 없는 이유가 뭘까요, 숙부.”

“네가 네 어머니만 기억하면 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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