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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집 살림을 하는 중입니다만-81화 (81/120)

81화. 변한 건 누구인가

“왜 비밀인데요. 말해 줘요.”

“그대가 내 질문에 대답해 주면 말해 주지.”

“뭔데요?”

벨데메르는 르니예를 쳐다보며 물었다.

“왜 내 눈을 안 보지?”

“내가요?”

르니예는 시치미를 잡아뗐다. 하지만 그러는 와중에도 르니예의 시선은 벨데메르의 목과 턱 사이 어디를 맴돌고 있었다.

“지금도 못 보잖아.”

“아닌데? 보고 있는데?”

르니예의 눈동자는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렸다. 그래, 정신을 차리고 난 뒤부터 벨데메르의 눈을 쳐다볼 수가 없었다.

그 깊은 눈동자를 보고 있노라면 기억을 잃었던 동안 했던 짓이 하나둘 떠올랐다. 욕실에서 장난친 거며, 먹여 달라고 투정 부렸던 것 등등.

그걸 마주할 자신이, 르니예는 없었다.

“르니예.”

벨데메르는 르니예의 턱을 쥐어서 저를 보게 했다. 방황하던 시선이 벨데메르의 눈과 마주치자, 갈피를 잃고 흔들렸다.

목부터 빨갛게 올라오는 열에 르니예의 얼굴은 순식간에 새빨간 사과처럼 익었다. 르니예는 차마 그를 더 보지 못하고 또 고개를 푹 숙였고, 벨데메르는 터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웃지 마요.”

“그럼 귀엽게 굴질 말든가.”

저건 또 무슨 소리야. 르니예는 울상을 지었다. 벨데메르도 머리를 다친 거야? 오늘 왜 이래?

“주인님, 이 샤피로가 왔습니다.”

르니예의 얼굴이 터지기 직전, 샤피로가 나타났다. 구원자가 따로 없었다. 그의 뒤로 질질 짜면서 따라 들어오는 남자도, 구원자처럼 보였다.

“흐윽, 정말, 죄송합니다.”

남자는 르니예를 보자마자 무릎을 꿇었다. 남자가 저에게 잘못을 한 건 알지만, 이건 좀 당황스러웠다.

“그, 알겠으니까, 진정을 좀 해 보세요.”

그래야 뭘 물어보기라도 할 것 아닌가.

“때렸어?”

르니예가 입 모양으로 샤피로에게 물었다. 샤피로는 아주 짜증이 난 눈으로 남자를 노려보며 고개를 저었다.

“제 얼굴을 보자마자 울었습니다.”

차라리 안 오겠다고 버티는 걸 데려오는 게 쉽지, 잘못했다고 우는 걸 달래서 데려오려니 미치는 줄 알았다.

“기절시키고 싶었는데.”

“싶었는데?”

“너무 짜증이 나 힘 조절을 못 할 것 같아서 참았습니다.”

진심이었고, 그 진심은 남자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었고, 남자는 더 크게 흐느꼈다.

누가 보면 여기서 억울한 사람이 남자인 줄 알 정도로 대성통곡이었다.

“이봐요, 저기요, 그만 울고 왜 그랬는지나 좀 들어봅시다.”

르니예가 하는 수 없이 손수건을 건네며 물었다. 남자는 그 손수건에 얼굴을 파묻고 웅얼거렸다.

“제가, 흑, 얼, 얼굴 좀 고쳐 보려다가, 흐윽…….”

남자의 이름은 찰리.

그는 영주 성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밥벌이를 했다. 그가 하는 일은 남들 다 잠든 시간에 말을 돌보고, 순찰하는 병사들의 밤참을 만들어 주는 일이었다.

왜 남들 다 자는 시간에 일하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남들 앞에 서기 싫었기 때문이라고 답할 수 있다.

“그, 수, 수도에 유명한 성형외과 의사가 있거든요.”

“성형?”

“예,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 준대요.”

성형외과 의사 이야기를 하면서 찰리는 눈을 반짝였다.

“저, 남들 앞에 당당히 나서고 싶어요.”

“그냥 당당히 나서면 되잖아요.”

찰리는 아주 격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의 볼에 있던 눈물이 튀었고, 샤피로가 짜증을 삼키며 입술을 깨물었다.

“이 얼굴로는 안 돼요.”

눈도 너무 작고, 코도 너무 낮고, 피부도 좋지 않았다. 얼굴에 점도 많고, 턱도 너무 두툼하고.

아무튼 하나같이 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근데 얼굴 고치는 것과 마차 나사 빼는 거랑 무슨 관계가 있지?”

르니예는 그 연관 관계를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저, 부모님이 도망 노비 출신이셔서, 통행증 없이 수도로 올라갈 수가 없습니다.”

“영주가 시키는 대로 하면 통행증 준다던가요?”

“정확히는 집사 어르신이요.”

그랬겠지. 영주가 직접 움직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영주가 뒤에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명령이 이상하단 생각은 안 해 봤어요?”

“해, 했지만…….”

자기같이 허드렛일 하는 사람이 집사 명령에 토 달아 봐야 돌아오는 건 싫은 소리일 뿐이었다.

찰리에게 하지 않겠다는 선택권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토 달지 않고 순순히 명령을 따르고 통행증을 받든지 아니면 혼나고서 하든지, 둘뿐이었다.

“영주가 뒤에 있다면 어차피 증언을 해도 소용없을 겁니다.”

“그렇겠지.”

르니예는 찰리를 쳐다보았다. 잡아 오긴 했는데 딱히 쓸모가 없었다.

“술집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바퀴 나사를 느슨하게 해라, 말고 다른 명령 있었어요?”

“없었습니다.”

무슨 일인지 찰리도 마부가 잡혀가면서 알았다. 사고를 낸 마차고, 방금 자신이 한 일이 증거 조작이었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마차에 치인 사람이 크게 다쳤다고 하자 찰리는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자신이 얼굴을 고치기 위해 남을 억울하게 만드는 것이 옳은가?

“정말 죄송합니다.”

선택지가 없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잘못은 잘못이었다. 샤피로가 제 눈앞에 나타났을 때, 찰리는 올 것이 왔구나 했다.

순순히 따라나선 것도 그래서였다. 최소한 잘못이라도 빌기 위해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뭐라도 하겠습니다.”

본성은 선한 사람이네. 그를 보면 그게 딱 느껴졌다.

거부하지 못할 명령 앞에서 자기 이득을 조금 챙겨 보려고 했지만 양심의 가책 앞에 무너진 사람.

르니예는 그를 책망하고픈 마음이 싹 사라졌다. 책임을 문다면 영주에게 물어야겠지.

“됐으니까 돌아가 봐요.”

“네?”

“그쪽이 뭔 힘이 있었겠어요. 그쪽이 아니면 다른 사람 시켰겠지.”

딱히 유용한 정보를 알 것 같지도 않았다. 그래, 그런 걸 모르니까 찰리에게 그 일을 시켰을 것이다.

여차하면 없애도 될 만한 인물이니까.

“르니예 님, 그래도 애써 잡아 왔는데 뺨이라도 한 대 때리셔야 되지 않겠습니까?”

“네가 때리고 싶어서 그러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정말 때리고 싶어 보였다.

“우리를 만났다는 이야기만 하고 다니지 마요.”

“비밀을 지킬 수 있을 것 같지 않은데.”

벨데메르는 르니예와 생각이 달랐다.

“샤피로 얼굴을 보자마자 우는 심약한 성정이라면, 영주가 부르기만 해도 우리를 만났단 사실을 털어놓을 것이다.”

그렇게 둘 수는 없었다. 그럴 마음도 없었고.

“저, 저를 죽이실 겁니까?”

찰리는 벨데메르의 발밑에서 흐르는 서늘한 기운에 몸을 살짝 떨었다. 벌써 죽고 싶지는 않았다.

아직 얼굴도 못 고쳐 봤는데.

“제발 살려 주십시오. 비밀은 절대 지키겠습니다.”

“그걸 우리가 어떻게 믿지?”

“그, 그러니까.”

자신이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증명할 방법이, 찰리에게는 없었다.

“아! 제가 세작을 하겠습니다.”

“세작? 그걸 할 수 있겠어요?”

르니예는 미덥지 못한 눈치였다. 밤에만 허드렛일하러 영주 성에 가는 놈이 빼 올 수 있는 정보란 한계가 있었으니 말이다.

“제가 밤에만 일하러 간다고 말씀드렸지요. 밤에만 알 수 있는 정보가 있습니다.”

찰리의 관심은 온통 외모였지만, 그래도 절로 보이고 들리는 것 정도는 기억해 두고 있었다.

“그게 뭐지?”

“최근에 밤늦게 출발하는 파발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거의 없는 일이었다. 전쟁이 난 것도 아닌데 굳이 야밤에 파발 보낼 일이 뭐가 있겠는가.

그래서 최근에 새벽에 말을 꺼내올 때마다 의아하게 여겼다. 물론 이유는 물어보지 않았지만.

“정기적인가?”

“아니요, 비정기적입니다.”

영주가 밤늦게 파발을 보낸다. 정황상 2왕자에게 보내는 것이라 추정해도 크게 무리는 없을 것이다.

“어쩌면 유용하게 쓰일지도 모르겠어요.”

영주도 상단에 세작을 심어놓았는데, 저라고 영주 성에 세작을 심으면 안 되는 이유는 없지 않나.

그게 밤에만 나와 일하는 사람일지라도.

“그래도 여전히 믿을 수가 없는데.”

그게 문제였다. 찰리를 어떻게 믿을 것인가. 그를 믿을 수나 있는가.

“그렇다면 거래를 하지.”

“네?”

“얼굴을 고치는 게 평생 꿈이라고 했지?”

찰리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끄덕임에서 강한 열망이 느껴졌다.

“만약 네가 우리를 배신하지 않고 네가 맡은 일을 잘해 준다면, 네 얼굴을 고쳐 주지.”

벨데메르가 샤피로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저 얼굴도 내가 만든 것이다.”

“……!”

찰리는 당장 흐트러졌던 자세부터 바로잡았다. 솔직히 눈물을 흘리면서도 샤피로 얼굴을 보며 감탄하고 또 감탄했다.

어쩌면 저렇게 빚은 것처럼 생겼을까.

그런데 그게 정말 빚은 것이었다니.

“저만큼 잘생겨질 수 있는 겁니까?”

“배신하지 않으면.”

“배신하지 않겠습니다. 아니, 오늘부터 저도 주인님으로 모시겠습니다.”

찰리는 벌써 미남이라도 된 것처럼 들떴다.

“허나 잘생겨 봐야 좋을 일이 하나도 없다는 건 알아둬라.”

“그렇습니다. 괜한 오해도 사고, 그것 때문에 결투도 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너를 가질 수 없다면 죽여 버리겠다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경험에서 우러나온 조언에 찰리는 감탄했다. 잘생긴 사람들의 일상이란, 저런 거구나. 너무나 부러웠다.

“괜찮습니다. 저는 목이 잘려 죽더라도, 잘생긴 얼굴로 잘리고 싶어요.”

* * *

“프리야는 아직 못 찾은 것이냐?”

“예. 아무래도 상단 밖으로 나간 듯합니다.”

에드윈이 프리야를 신고하겠다고 말한 이후, 프리야는 없었던 것처럼 사라졌다.

바딜은 몰래 프리야를 찾아보았지만, 아무도 본 사람이 없었다. 프리야가 도망쳤다는 말에 에드윈은 기가 차 헛웃음을 터트렸다.

“상단 밖으로 나가면 죽는다고 매달릴 때는 언제고, 상황이 불리해지니 바로 나가는군.”

도둑이라 그런지 도망치는 게 제법 날렵했다. 도둑질하러 온 것도 모르고 마음이나 준 자신이 한심했다.

“상단 밖으로 도망쳤으니 신고는 안 하실 거죠, 도련님?”

“프리야가 훔쳐 간 것이 있다면 해야겠지.”

에드윈의 말에 바딜은 충격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도망까지 쳤는데, 신고를 하겠다니. 한때 마음에 품은 여자에게 어떻게 이리 잔인하실 수 있는가.

“왜 훔쳤는지는 궁금하지 않으세요?”

“이유가 무엇이든 도둑질은 잘못이다. 죗값을 받고 새 출발을 하는 편이 프리야에게도 나아.”

에드윈은 괴고 있던 턱을 들어 바딜을 똑바로 응시했다.

“바딜.”

“예, 도련님.”

“네가 프리야에게 연심을 품은 걸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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