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9화 (69/112)
  • <69화>

    내 말에 네드 님이 멈칫했다.

    “……예?”

    “꼭 나랑 공대 뛰어요.”

    내가 진지하게 한 말에 네드 님의 표정이 풀렸다.

    “그건 이전에도 약속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야 그랬지만!

    “그러니까 더 욕심이 나요.”

    엄청나게 맛있는 걸 한 달에 한 번만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해 보라고요!

    이건 말도 안 돼!

    좀 더 많이. 자주 봅시다!

    사실 내 옆에만 묶어 놓고 싶다!

    유네리아로 돈 버는 사람들도 있거든요?

    혹시 직업으로서의 유네리아 유저는 생각해 본 적이 없으십니까?

    저도 사실 본업보다 부업인 유네리아가 더 짭짤하다고요!

    “약속은 지킬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네드 님이 부드럽게 웃었다. 한번 사람 뒤에 후광이 보이니까 별말이 다 감동스러웠다.

    [#속초바닷가 #너와함께 #단둘이 #컾스타그램 #사랑해]

    언젠가 봤던 바닷가 공대빌런 커퀴벌레 한 쌍이 생각나면서 감동은 더해졌다.

    솔직히 약속만 잘 지켜도 유네리아 상위 1% 아니냐?

    “네드 님.”

    “?”

    내가 너무 노골적으로 탐내고 있나?

    하지만 난 내가 느끼기에도 끈적한 이 눈빛을 죽일 수가 없었다.

    너무…… 너무 탐이 난다, 이 사람……!

    “저랑 하루 한 번…… 아니, 주에 한 번만 뛰어요.”

    공대. 날 잡아서. 내 말에 네드 님이 멈칫했다.

    “……일정한 시간을 잡아서, 말씀이십니까?”

    조금 곤란한 얼굴이었다.

    안 될까요? 안 돼?

    난 눈을 반짝였다.

    * * *

    네드는 반짝이는 눈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유니를 내려다보았다.

    순간 숨이 막힐 것 같았다.

    머릿속이 어지럽혀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힘들면 힘들다고 해요.’

    ‘사람이 어떻게 실수 한 번을 안 하겠어요?’

    세상이 만든 갑갑하고 좁은 방에서, 점점 좁아지는 그 방에서 숨이 막혀 가고 있을 때 자신을 꺼내 준 사람.

    ‘대충 살아요, 대충!’

    그는 생각해 본 적도 없는 말로 해방감을 준 사람. 그리고.

    ‘실패하면 한 번 더 하면 되죠. 괜찮아, 괜찮아.’

    실패나 실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처럼 가볍게 말하며 그에게 무언가를 ‘시도하는 방법’을 가르쳐 준 사람.

    그 두 사람은 동일인이었다.

    처음 네드는 그게 운이 안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필 왜 당신이 그 사람일까.

    이 세상에 제가 붙잡을 수 있는 동아줄이, 편히 숨 쉴 수 있는 공간이 둘에서 하나로 줄어드는 기분이었으니까.

    하지만 네드는 지금 이 순간 깨달았다.

    그 두 사람이 하나여서 다행이라고.

    당신, 오직 한 명뿐이라서 다행이라고.

    그런 당신이 나를 원하는 것이 너무나도 기적 같다고.

    맞물리는 자물쇠와 열쇠처럼 나와 당신의 시간이 맞춰 돌아갈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물론 지금은 조금 어긋나 있었다.

    강이현은 그녀 자체를 원했지만, 그녀는 강이현이 아닌 네드를 원하는 듯했다.

    정확히는 그의 능력, 그것도 게임 능력만을.

    ……이게 그렇게나 탐나는 능력인 줄은 몰랐지만.

    “…….”

    네드는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뭐든 시작한다면 완벽하게.’

    ‘어디에서든 돋보일 수 있도록.’

    그렇게 교육받은 것이 지옥 같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이 순간은 너무나도 감사했다.

    그녀의 시선을 잡아둘 수 있었다는 사실에.

    그렇기에 그는 유니의 제안을 거절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제가 매달리고 싶었다.

    내가 당신과 더 함께하고 싶어요.

    주에 한 번이 아니라 매일 만나.

    아니, 당신과 함께 있을 수 있다면 좋겠어.

    그건 그의 순수한 욕망이었다.

    좋아요.

    그래서 그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차마 그 말이 입 밖으로 새어 나오지 않는 건, 결국 그를 옭아맨 어린 시절부터의 교육 때문이었다.

    ‘원하는 걸 절대 먼저 말하지 마라.’

    ‘사람과의 관계에서 을이 되는 첫 번째 조건이지.’

    ‘상대가 네가 원하는 것을 원하게 만들어. 그게 사람을 대하는 것의 기본이다.’

    자주 싸우는 부모님이었지만 그것에만큼은 두 분의 의견이 일치했다.

    ‘원하는 걸 절대 먼저 말하지 마라.’

    ‘그건 을이 되는 지름길이니.’

    하지만 을이 되어도 좋다면요?

    네드, 강이현의 견고한 세계에 다시 한번 금이 갔다.

    몇 겹이고 감싸져 있던 그의 세계에 유니라는 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어때요? 제가 시간 다 맞춰 드릴게요. 아, 직장 때문에 하루에 9시간 정도는 안 되거든요? 근데 저 밤새우는 거 익숙하고 밤낮 바꾸는 건 더 익숙한 사람이라―”

    그렇게 조잘거리는 유니를 보니 입이 간질거리는 기분이었다.

    ‘절대 원하는 걸 먼저 말하지 마라.’

    그는 하마터면 어릴 때부터 마치 규율처럼 그를 옭아맸던 것을 부술 뻔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그는 떠올렸다.

    ‘네가 원하는 걸 먼저 말하는 순간, 너는 그것보다 더 적은 것을 얻게 돼.’

    어머니는 그건 흥정의 기본이라고 했다.

    ‘하지만 상대가 네가 원하는 것을 말하게 한다면? 너는 네가 원하는 것을 더 많이 취할 수도, 더 적게 취할 수도 있지.’

    상대가 네가 원하는 것을 말하게 해라.

    이 사람이, 이 여자가, 내가 원하는 것을 말하게 해.

    나를 원한다고 말하게 해.

    그것이 내가 원하는 것을 더 많이 취하는 길이다.

    강이현은 그 순간 자신이 뭘 해야 하는지 깨달았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진심 대신 대가만이 오가는 거래 관계를 싫어했다.

    그리고 그것에 익숙한 자신에게 환멸을 느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그런 인간이라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KJ그룹의 강이현이 아닌, 유네리아의 네드가 된 순간.

    그때부터 잠시 잊고 있었던, 그가 억눌러 두었던 그의 본성이 깨어났다.

    하지만 더 이상 방에 갇힌 듯 답답한 느낌이 아니었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 알 것 같다.

    네드는, 강이현은 가볍게 웃었다. 그리고 유니에게 아주 살짝, 고개를 기울여 보였다.

    당신이 원하는 건 다 들어 주고 싶어.

    당신이 원하기 전에 내가 당신과 함께하길 원해요.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는 한발 물러나기로 결심했다.

    “그건 조금 곤란할 것 같습니다.”

    진심과 정반대되는 말을 하면서.

    * * *

    “그건 조금 곤란할 것 같습니다.”

    네드 님의 말은 내게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왜?? WHY??

    라고 따지기에는 이 사람이 너무 바빠 보이는 사람이기는 했다.

    게다가 게임이 처음인 사람.

    으음, 아무리 게임을 천부적인 재능으로 잘한다고 해도 어쨌든 이 사람은 일반인이었다.

    얼마 전까지 공대라고는 공과대학밖에 몰랐던 사람에게 일주일에 한 번은 너무 부담될 수도 있었다.

    “좋아요. 그럼 격주에 한 번이라도 정해서…….”

    그래도 2주는 좀 너무하지 않나?

    이러다가 상위 컨텐츠 파밍 타이밍 다 놓치는 거 아니야?

    혼자 하는 거랑 다를 게 없을 것 같은…… 아니지.

    그렇게 차차 적응시키는 거다! 이건 투자야!

    내가 주먹을 불끈 쥐었을 때였다.

    네드 님이 불쑥 말했다.

    “제가 주기적으로 시간을 비우기가 어려운 상황이라…….”

    “회사 일이 바빠서요?”

    예상대로의 답변에 난 재빨리 물었다.

    어차피 난 간호사다. 3교대고 3교대 일정은 한 달 단위로 먼저 쭉 뽑혀서 나온다.

    그거 맞춰서 월초마다 주에 한 번씩 날짜만 정하면 될 것 같은데!?

    아무리 바쁜 직장인이어도 회사에서 24시간 살진 않잖아요? 그죠? 제가 피곤할 일 없게 재밌게 모십니다!

    물론 내가 피곤해 죽겠지만!

    하지만 그런 공대 빌런들이랑 공략하는 게 더 피곤해!

    이런 기깔나는 서포트를 맛만 본 다음 없던 것처럼 돌아갈 순 없어!

    혼자 공략하면 죽으면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고! 그게 얼마나 개빡치는 일인지 알아!?

    “회사 일도 바쁘지만.”

    그때 네드 님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시작했다.

    “…….”

    그러더니 곤란한 듯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바쁘지만?”

    바쁘지만 뭔데요? 이거 ‘용의 HPㄱ’ 2탄인가요?

    한국인을 미치게 하는 방법은 말을 끝까지 하지 않는 것이고?

    내 머릿속이 끓어오를 때였다.

    네드 님의 입에서 상상 이상의 답변이 튀어나왔다.

    “……아마 선 자리 때문에 힘들 겁니다.”

    “예?”

    뭔 자리요? 선 자리?

    사냥터 자리 미리 잡아 놓는 그런 거 말하는 건 아닌 것 같고……

    잠깐, 선?

    “설마 그 선이요?”

    주변에서 막 이렇게 이렇게 누구랑 만나 보라고 이어 주는 거?

    “예.”

    난 입을 떠억 벌렸다. 그게 들어올 수야 있지. 나도 들어오니까.

    다 씹지만.

    근데 그게 바쁠 만큼 들어온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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