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8화 (68/112)

<68화>

“제가 알아보겠습니다!”

난 멈칫했다.

“잠깐만, 그거 함부로 움직이면 한붓그리기 경로 꼬여요!”

하지만 네드 님은 나보다 좀 더 똑똑한 사람이었다.

―파앗!

네드 님의 눈이 푸른빛으로 반짝였다.

“어?”

난 나도 모르게 눈을 크게 떴다.

지금 이 상황에서 천리안 쓰시는 거야?

―우웅!

그리고 네드 님의 천리안은 바로 네드 님 머리 위에 생겨났다.

뭘 하려고?

그렇게 생각한 순간.

천리안이 라이미트보다도 위로 솟아올랐다.

아, 설마 위에서 내려다보려고?

그 짐작이 맞았던 듯했다.

“7칸씩 네 줄, 28칸입니다!”

네드 님이 외쳤다.

“14칸 밟겠습니다!”

그러면서 빠르게 움직였다.

“오…….”

난 그 순간 감동받아서 채찍을 못 피할 뻔했다.

천재인가?

여기서 천리안 쓰실 생각을 하네?

난 지도에 안 떠서 욕하고 있었는데?

감동받는 사이 네드 님이 14칸을 모두 검은색으로 활성화시켰다.

나도 움직여야지!

―파파팟!

난 네드 님이 남겨 놓은 칸을 쭉 밟으면서 하얀색으로 채워 나갔다.

그리고 28칸이 검은빛과 흰빛으로 모두 차는 순간.

“크으읏!”

주변이 번쩍이면서 라이미트가 비틀거렸다.

이때다, 딜 타임!

[‘공격력 증가 1단계’ 스킬을 사용합니다.]

[‘재빠른 공격’ 스킬을 사용합니다.]

[‘속성 공격 강화(Lv.3)’ 스킬을 사용합니다.]

하필 이 스킬창에는 별다른 스킬이 없었다.

하지만 기본적인 공격력 증가 버프들은 레벨업을 하면서 쉽게 얻을 수 있었기에, 없는 건 아니었다.

내가 평소에 쓰던 것보다 훨씬 빈약한 버프를 감고 검을 내지를 때였다.

라이미트의 머리 위에 이펙트가 우르르 떠올랐다.

[네드가 ‘보스 라이미트’에게 ‘혼란’ 스킬 효과를 부여합니다.]

[네드가 ‘보스 라이미트’에게 ‘둔화’ 스킬 효과를 부여합니다.]

[네드가 ‘보스 라이미트’에게 ‘통증 극대화’ 스킬 효과를 부여합니다.]

저거 유네리아에 딜 자랑할 때 쓰는 3종 세트 디버프 아니냐?

지속시간이 3초인 것만 제외하면 완벽한 그 스킬들.

야호!

나도 모르게 속으로 환호성을 지를 때였다.

감동의 물결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네드가 ‘열린 마음’ 스킬 효과를 부여합니다.]

[지속시간 이내에 받는 버프의 효과가 증폭됩니다.]

[네드가 ‘순간 강화’ 스킬 효과를 부여합니다.]

[전체 능력치+20%]

[네드가 ‘극한 집중’ 스킬 효과를 부여합니다.]

[5초 이내 가하는 데미지에 200% 보너스가 붙습니다.]

[네드가 ‘속도 증가’ 스킬 효과를 부여합니다.]

[움직임이 빨라집니다.]

시작은 초라했지만 끝은 장대하게 버프가 휘감긴 검이 라이미트를 내리쳤다.

[-1,006,422!]

이게 레벨 300대에 나올 수 있는 딜이 아닌데?

[라이미트(69%)]

한 방에 체력이 팍 깎인 라이미트가 비틀거렸다.

여기서 숙달된 공대라면―

[네드가 ‘되감기’ 스킬 효과를 부여합니다.]

[버프창의 상태가 2초 전으로 돌아갑니다.]

되……감기……를……사용하지……?

다시 확 길어지는 버프창을 보면서 난 본능적으로 다시 검을 내질렀다.

되감기는 타이밍이 중요한 스킬이다.

딜도 더럽게 긴 주제에 판정은 칼 같아서, 2초 전의 버프 상황을 그대로 가져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버프가 애매하게 끝난 타이밍에 잘못 스킬을 썼다간 폭딜할 기회를 날려 먹을 수도 있었다.

유네리아에서 서포트를 잘하냐 못 하냐는 방어막 타이밍과 되감기 스킬 타이밍을 잘 맞추느냐로 갈린다.

그런 의미에서.

[버프 되감기 : 열린 마음, 순간 강화, 극한 집중, 속도 증가 버프가 다시 부여됩니다.]

네드 님은 최고의 서포터였다.

그 덕에 내 앞에 있는 라이미트는 마치 차려진 밥상처럼 3중 버프가 딱 1초 남은 채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파앙!

[-1,070,016!]

[라이미트(47%)]

순식간에 반피가 갈려 나간 셈이었다.

―파앗!

그 후 바로 주변이 번쩍거리면서 다시 빈 네모 칸이 떠올랐다.

원래 이걸 한 n번 채우면서 뜀박질을 신나게 한 후에야 클리어할 수 있는 보스일……텐……데……?

난 네드 님을 돌아보았다.

혹시 서포트의 별 아래에서 태어나셨습니까?

“이제 제가 잡으면 될까요?”

네드 님이 정중하게 물었다. 난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크아앗! 죽어라!”

[네드의 ‘견고한 방어막’ 스킬 효과를 받습니다.]

[-1]

멍 때리느라 못 피한 공격은 네드 님이 막아줬다.

나 오늘 왜 이러지? 민폐킹인데? 아니 근데 너무 잘하시는데?

그 사이 네드 님은 다시 맵을 밟기 시작했다.

“아.”

난 재빨리 그를 따라 다른 방향을 하얀색으로 칠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크아악!”

―파앗!

다시 음양 조화가 발동되면서 라이미트가 무릎을 꿇은 순간.

[네드 ‘광풍 스킬 조합’ 95%]

순식간에 스킬 몇 개를 조합한 네드 님이 머리 위에 새하얗게 번쩍거리는 창을 띄워 올렸다.

“아아아니!”

그거 광역기잖아요! 잘하다가 막판에 숲 쓸어 버리면 어떡해!

기겁한 내가 말릴 틈도 없이 네드 님의 ‘광풍 스킬 조합’이 뭉쳐진 창이 날아가 라이미트에게 꽂혔다.

―쿠쿠쿠쿵!

아무래도 세레나가 밑장빼기로 끼워줬던 숲 보호 조건은 못 지킬 것 같았다.

괜찮아, 세레나…… 숲…… 알라반에 많더라…….

내가 아련하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상황은 내가 생각한 것과 정반대로 굴러갔다.

“?”

일단 바람이 확 퍼지면서 주변 나무를 다 꺾어 버려야 하는데, 퍼져나가야 할 바람은 오히려 라이미트 쪽으로 모여들었다.

[-□!]

오류뎀?

유네리아의 UI로 표시할 수 없는 숫자의 데미지가 뜰 경우 뜨는 네모였다.

1억 이상의 데미지를 넣었다는 소리였다.

레벨 차이에 더불어 광역기인 광풍 효과가 가운데로 모이면서, 한 번에 데미지가 뭉쳐 발생한 듯했다.

내가 입을 떠억 벌린 사이.

[‘라이미트’를 처치했습니다!]

알림창이 떴다.

“크오오오오!”

대사는 아무래도 크아악 크오오밖에 남지 않은 것 같은 라이미트가 바닥으로 떨어져 처박혔다.

[숲 보존도 : 89%]

[퀘스트 ‘세레나의 선택 : 숲의 보호’ 클리어!]

숲도 안 박살 내, 서포트는 완벽해, 딜도 오류뎀으로 시원하게 박기까지?

난 시스템창이 뭐라고 뜨든 말든 네드 님을 돌아보았다.

이게…… 공대…… 희망편……?

[숲과 엘프 수장 ‘라이미트’의 공명이 사라집니다.]

[엘프들의 피가 새로운 수장을 추대합니다……]

[새로운 엘프의 수장 : 세레나]

새로운 엘프의 수장이 누군지는 모르겠고 새로운 서포트계의 별이 네드 님이란 건 잘 알겠다.

‘유네리아에서 쓸모 있는 서포터 저밖에 없는 거 아시죠?’

‘님 자꾸 그러면 안단테한테 찌를거임’

머릿속으로 네리아 서포터 자칭타칭 1위라는 ‘안단테’가 스쳐 지나갔다.

힐은 없어도 되지만 복잡한 기믹을 안 보고 한 방에 보스를 잡으려면 완벽한 서포터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서포터 능력으로 네리아 전체에서 유명한 것이 바로 안단테.

하지만 그놈도 보호막을 써 데미지를 0으로 만들거나, 난생처음 보는 보스 기믹을 한 번에 풀고, 타이밍 맞춰 되감기를 하진 못했다.

안단테의 시대는 갔다, 애들아!

[메인 퀘스트 ‘세레나의 선택’ 클리어!]

[‘보스 라이미트’ 초회 공략 보너스를 받습니다.

[‘보스 라이미트’ 1분 이내 처치 보너스를 받습니다.]

[Level Up!]

[Level Up!]

[Level Up!]

……

수많은 레벨업 창 사이로 네드 님이 보였다.

“적절하게 이끌어 주신 덕에 헤매지 않고 잡을 수 있었습니다.”

멍한 내게 네드 님의 말이 쏟아져 내렸다.

‘나 없었으면 조르아 판당 40분 걸렸다 ㅋㅋㅇㅈ??’

어디의 안단테와는 정반대인 반응이었다.

이끌어요? 누가요? 제가요?

난 나도 모르게 네드 님의 손을 덥석 잡았다.

“네드 님.”

“예, 예?”

네드 님은 바닥에 음양 조화 기믹이 깔릴 때보다 더 당황한 것 같았다.

난 그런 네드 님을 신경 쓸 틈이 없었다.

“제가 솔직히 말씀드릴 게 있거든요?”

이거 아주 심각한 문젭니다.

내가 진지하게 말하자 네드 님의 표정이 가라앉았다.

옆에서 라이미트가 사라지든 말든 난 네드 님의 손을 양손으로 꼬오옥 잡고 말했다.

“제가, 아주.”

아주. 아주 많이.

“아주?”

“네드 님이 탐이 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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