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화>
“제가 알아보겠습니다!”
난 멈칫했다.
“잠깐만, 그거 함부로 움직이면 한붓그리기 경로 꼬여요!”
하지만 네드 님은 나보다 좀 더 똑똑한 사람이었다.
―파앗!
네드 님의 눈이 푸른빛으로 반짝였다.
“어?”
난 나도 모르게 눈을 크게 떴다.
지금 이 상황에서 천리안 쓰시는 거야?
―우웅!
그리고 네드 님의 천리안은 바로 네드 님 머리 위에 생겨났다.
뭘 하려고?
그렇게 생각한 순간.
천리안이 라이미트보다도 위로 솟아올랐다.
아, 설마 위에서 내려다보려고?
그 짐작이 맞았던 듯했다.
“7칸씩 네 줄, 28칸입니다!”
네드 님이 외쳤다.
“14칸 밟겠습니다!”
그러면서 빠르게 움직였다.
“오…….”
난 그 순간 감동받아서 채찍을 못 피할 뻔했다.
천재인가?
여기서 천리안 쓰실 생각을 하네?
난 지도에 안 떠서 욕하고 있었는데?
감동받는 사이 네드 님이 14칸을 모두 검은색으로 활성화시켰다.
나도 움직여야지!
―파파팟!
난 네드 님이 남겨 놓은 칸을 쭉 밟으면서 하얀색으로 채워 나갔다.
그리고 28칸이 검은빛과 흰빛으로 모두 차는 순간.
“크으읏!”
주변이 번쩍이면서 라이미트가 비틀거렸다.
이때다, 딜 타임!
[‘공격력 증가 1단계’ 스킬을 사용합니다.]
[‘재빠른 공격’ 스킬을 사용합니다.]
[‘속성 공격 강화(Lv.3)’ 스킬을 사용합니다.]
하필 이 스킬창에는 별다른 스킬이 없었다.
하지만 기본적인 공격력 증가 버프들은 레벨업을 하면서 쉽게 얻을 수 있었기에, 없는 건 아니었다.
내가 평소에 쓰던 것보다 훨씬 빈약한 버프를 감고 검을 내지를 때였다.
라이미트의 머리 위에 이펙트가 우르르 떠올랐다.
[네드가 ‘보스 라이미트’에게 ‘혼란’ 스킬 효과를 부여합니다.]
[네드가 ‘보스 라이미트’에게 ‘둔화’ 스킬 효과를 부여합니다.]
[네드가 ‘보스 라이미트’에게 ‘통증 극대화’ 스킬 효과를 부여합니다.]
저거 유네리아에 딜 자랑할 때 쓰는 3종 세트 디버프 아니냐?
지속시간이 3초인 것만 제외하면 완벽한 그 스킬들.
야호!
나도 모르게 속으로 환호성을 지를 때였다.
감동의 물결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네드가 ‘열린 마음’ 스킬 효과를 부여합니다.]
[지속시간 이내에 받는 버프의 효과가 증폭됩니다.]
[네드가 ‘순간 강화’ 스킬 효과를 부여합니다.]
[전체 능력치+20%]
[네드가 ‘극한 집중’ 스킬 효과를 부여합니다.]
[5초 이내 가하는 데미지에 200% 보너스가 붙습니다.]
[네드가 ‘속도 증가’ 스킬 효과를 부여합니다.]
[움직임이 빨라집니다.]
시작은 초라했지만 끝은 장대하게 버프가 휘감긴 검이 라이미트를 내리쳤다.
[-1,006,422!]
이게 레벨 300대에 나올 수 있는 딜이 아닌데?
[라이미트(69%)]
한 방에 체력이 팍 깎인 라이미트가 비틀거렸다.
여기서 숙달된 공대라면―
[네드가 ‘되감기’ 스킬 효과를 부여합니다.]
[버프창의 상태가 2초 전으로 돌아갑니다.]
되……감기……를……사용하지……?
다시 확 길어지는 버프창을 보면서 난 본능적으로 다시 검을 내질렀다.
되감기는 타이밍이 중요한 스킬이다.
딜도 더럽게 긴 주제에 판정은 칼 같아서, 2초 전의 버프 상황을 그대로 가져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버프가 애매하게 끝난 타이밍에 잘못 스킬을 썼다간 폭딜할 기회를 날려 먹을 수도 있었다.
유네리아에서 서포트를 잘하냐 못 하냐는 방어막 타이밍과 되감기 스킬 타이밍을 잘 맞추느냐로 갈린다.
그런 의미에서.
[버프 되감기 : 열린 마음, 순간 강화, 극한 집중, 속도 증가 버프가 다시 부여됩니다.]
네드 님은 최고의 서포터였다.
그 덕에 내 앞에 있는 라이미트는 마치 차려진 밥상처럼 3중 버프가 딱 1초 남은 채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파앙!
[-1,070,016!]
[라이미트(47%)]
순식간에 반피가 갈려 나간 셈이었다.
―파앗!
그 후 바로 주변이 번쩍거리면서 다시 빈 네모 칸이 떠올랐다.
원래 이걸 한 n번 채우면서 뜀박질을 신나게 한 후에야 클리어할 수 있는 보스일……텐……데……?
난 네드 님을 돌아보았다.
혹시 서포트의 별 아래에서 태어나셨습니까?
“이제 제가 잡으면 될까요?”
네드 님이 정중하게 물었다. 난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크아앗! 죽어라!”
[네드의 ‘견고한 방어막’ 스킬 효과를 받습니다.]
[-1]
멍 때리느라 못 피한 공격은 네드 님이 막아줬다.
나 오늘 왜 이러지? 민폐킹인데? 아니 근데 너무 잘하시는데?
그 사이 네드 님은 다시 맵을 밟기 시작했다.
“아.”
난 재빨리 그를 따라 다른 방향을 하얀색으로 칠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크아악!”
―파앗!
다시 음양 조화가 발동되면서 라이미트가 무릎을 꿇은 순간.
[네드 ‘광풍 스킬 조합’ 95%]
순식간에 스킬 몇 개를 조합한 네드 님이 머리 위에 새하얗게 번쩍거리는 창을 띄워 올렸다.
“아아아니!”
그거 광역기잖아요! 잘하다가 막판에 숲 쓸어 버리면 어떡해!
기겁한 내가 말릴 틈도 없이 네드 님의 ‘광풍 스킬 조합’이 뭉쳐진 창이 날아가 라이미트에게 꽂혔다.
―쿠쿠쿠쿵!
아무래도 세레나가 밑장빼기로 끼워줬던 숲 보호 조건은 못 지킬 것 같았다.
괜찮아, 세레나…… 숲…… 알라반에 많더라…….
내가 아련하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상황은 내가 생각한 것과 정반대로 굴러갔다.
“?”
일단 바람이 확 퍼지면서 주변 나무를 다 꺾어 버려야 하는데, 퍼져나가야 할 바람은 오히려 라이미트 쪽으로 모여들었다.
[-□!]
오류뎀?
유네리아의 UI로 표시할 수 없는 숫자의 데미지가 뜰 경우 뜨는 네모였다.
1억 이상의 데미지를 넣었다는 소리였다.
레벨 차이에 더불어 광역기인 광풍 효과가 가운데로 모이면서, 한 번에 데미지가 뭉쳐 발생한 듯했다.
내가 입을 떠억 벌린 사이.
[‘라이미트’를 처치했습니다!]
알림창이 떴다.
“크오오오오!”
대사는 아무래도 크아악 크오오밖에 남지 않은 것 같은 라이미트가 바닥으로 떨어져 처박혔다.
[숲 보존도 : 89%]
[퀘스트 ‘세레나의 선택 : 숲의 보호’ 클리어!]
숲도 안 박살 내, 서포트는 완벽해, 딜도 오류뎀으로 시원하게 박기까지?
난 시스템창이 뭐라고 뜨든 말든 네드 님을 돌아보았다.
이게…… 공대…… 희망편……?
[숲과 엘프 수장 ‘라이미트’의 공명이 사라집니다.]
[엘프들의 피가 새로운 수장을 추대합니다……]
[새로운 엘프의 수장 : 세레나]
새로운 엘프의 수장이 누군지는 모르겠고 새로운 서포트계의 별이 네드 님이란 건 잘 알겠다.
‘유네리아에서 쓸모 있는 서포터 저밖에 없는 거 아시죠?’
‘님 자꾸 그러면 안단테한테 찌를거임’
머릿속으로 네리아 서포터 자칭타칭 1위라는 ‘안단테’가 스쳐 지나갔다.
힐은 없어도 되지만 복잡한 기믹을 안 보고 한 방에 보스를 잡으려면 완벽한 서포터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서포터 능력으로 네리아 전체에서 유명한 것이 바로 안단테.
하지만 그놈도 보호막을 써 데미지를 0으로 만들거나, 난생처음 보는 보스 기믹을 한 번에 풀고, 타이밍 맞춰 되감기를 하진 못했다.
안단테의 시대는 갔다, 애들아!
[메인 퀘스트 ‘세레나의 선택’ 클리어!]
[‘보스 라이미트’ 초회 공략 보너스를 받습니다.
[‘보스 라이미트’ 1분 이내 처치 보너스를 받습니다.]
[Level Up!]
[Level Up!]
[Level Up!]
……
수많은 레벨업 창 사이로 네드 님이 보였다.
“적절하게 이끌어 주신 덕에 헤매지 않고 잡을 수 있었습니다.”
멍한 내게 네드 님의 말이 쏟아져 내렸다.
‘나 없었으면 조르아 판당 40분 걸렸다 ㅋㅋㅇㅈ??’
어디의 안단테와는 정반대인 반응이었다.
이끌어요? 누가요? 제가요?
난 나도 모르게 네드 님의 손을 덥석 잡았다.
“네드 님.”
“예, 예?”
네드 님은 바닥에 음양 조화 기믹이 깔릴 때보다 더 당황한 것 같았다.
난 그런 네드 님을 신경 쓸 틈이 없었다.
“제가 솔직히 말씀드릴 게 있거든요?”
이거 아주 심각한 문젭니다.
내가 진지하게 말하자 네드 님의 표정이 가라앉았다.
옆에서 라이미트가 사라지든 말든 난 네드 님의 손을 양손으로 꼬오옥 잡고 말했다.
“제가, 아주.”
아주. 아주 많이.
“아주?”
“네드 님이 탐이 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