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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화 (57/112)
  • <57화>

    “이거…….”

    하마터면 욕을 할 뻔한 내 말끝을 네드 님이 부드럽게 받았다.

    “다른 엘프들과 대화를 하면서 자세한 사정을 파악해야겠군요.”

    “맞아요.”

    원래 그렇게 깨는 건데. 난 살짝 고개를 저었다.

    “근데 남쪽 숲 퀘스트가 X랄맞은 게 많아서 그렇게 했다간 한나절이에요.”

    유네리아 서브 퀘스트가 뭐 그렇지!

    유네리아가 메인 퀘스트를 낼 때마다 듣는 욕이 있었다.

    분명 퀘스트 스토리는 별로 진행이 안 됐는데, 플레이타임은 10시간이 넘는다는 것이다.

    대체 왜!?

    그야…….

    [내가 X발 NPC 따까리 하러 온 건지 대륙을 구하러 온 건지]

    [개싫어 진짜 차라리 내 골드를 가져가도 좋아 제발 꺼져줘]

    NPC들이 부탁이라 쓰고 퀘스트라 읽는 것들을 엄청나게 쏟아주었기 때문이었다.

    대부분 라비스를 부어서 처리할 수 있었지만 문제는 그러면 자세한 퀘스트 내막을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스토리에 집중하는 유저들은 서브 퀘스트를 일일이 다 처리해야 했다.

    몬스터 99마리는 양반이고 무슨 드랍율이 10%도 안 되는 물건 100개 모아오기 같은 거지 같은 것까지, 싹 다!

    그리고 그 중 화룡점정은 바로 이 남쪽 숲이었다.

    여기도 물론 호감도를 올리면 편해지는 건 맞았다.

    문제는 얘네가 엘프라는 점. 그래서 호감도 올리기가 까다롭다는 점이었다.

    난 네드 님이 사고를 치기 전에 재빨리 말했다.

    “인벤토리 보면 풀떼기라는 칸에 샐러드 있거든요?”

    “아.”

    네드 님은 인벤토리를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남부 숲은 겉옷 때문에 메인 퀘스트를 끝내고도 자주 오는 곳이라, 이곳의 호감도를 올릴 아이템은 들고 다닐 수밖에 없었다.

    그 흔적은 당연하게도 고스란히 네드 님의 아이템창에 있을 터였다.

    “이거 말씀이십니까?”

    [아이템 링크 : ‘신선한 샐러드’]

    신샐이면 고기 안 들어가는 거 맞다.

    애초에 내가 고기 들어가는 음식을 풀떼기 칸에 넣어놨을 리가 없지만.

    그렇다. 엘프 전용 풀떼기창이 있는 이유는 분명했다.

    엘프들은 고기를 못 먹었다. 그리고 하필 라비스에는 고기가 들어갔다.

    “네네, 그거면 될 것 같아요!”

    하지만 고기가 안 들어간 샐러드를 주면 OK! 엘프들의 표정이 활짝 펼 터였다.

    내 확인을 받은 네드 님은 펠릭스에게 다가갔다.

    “펠릭스 님, 떠나기 전에 가볍게 준비한 음식입니다.”

    그리고 유려한 말빨을 뽐내며 자연스럽게 펠릭스에게 샐러드를 건네기 시작했다.

    역시 유네리아 호감도 시뮬레이션 만점다운 모습이었다.

    “……!”

    샐러드를 받은 펠릭스가 눈을 번뜩였다.

    “이방인인 저희가 엘프 님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으니, 이런 작은 성의는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서요.”

    정말 청산유수였다.

    “크흠.”

    그러자 펠릭스가 모른 척 샐러드를 받아들었다.

    그러더니 슬그머니 포크를 들었다.

    엘프들이 원래 이렇게 외부인 음식을 잘 먹는 놈들이었어???

    “이렇게까지 정성을 보인다니…….”

    그러면서 포크로 샐러드를 뒤적이기 시작했다.

    드레싱도 안 뿌렸는데 왜 뒤적거리는지 모를 일이었다.

    “자네들은 어느 나라 출신인가?”

    엘프가 언제 모험가 출신국 따졌어?

    하지만 씹었다간 호감도 마이너스였다.

    “저는 알라반인이고, 이분은 메디카인이에요.”

    이번엔 알라반 왕성과는 달리 국적이 달라도 된다.

    엘프들은 고기만 안 주면 화 안 내니까^^!

    “흐음.”

    내 말에 펠릭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샐러드를 더 열심히 뒤적이기 시작했다.

    눈썹을 치켜올린 게 뭔가 마음에 차지 않는 듯했다.

    왜???

    설마?

    “독 안 탔습니다.”

    바로 가져와서 좀 의심스러웠나?

    내가 말하자 펠릭스가 더 크게 헛기침을 했다.

    “크흠!”

    그러더니 그제야 샐러드를 먹기 시작했다.

    ―와삭.

    신선한 샐러드라는 이름답게 싱싱한 야채가 씹히는 소리가 들렸지만 펠릭스의 표정은 펴질 줄을 몰랐다.

    네드 님이 멈칫했다.

    “……점수가 높은 샐러드를 줬어야 했을까요?”

    “그건 아닌 것 같은데…….”

    내 풀떼기 창에 들어있는 요리는 죄다 6점 이상의 요리들이었다.

    나름 엄선된 요리란 소리다.

    그런데 저렇게 불만족스러운 얼굴로 자꾸 뒤적거리는 걸 보면…….

    뭐 재료 빼먹은 거 있나? 아닐 텐데? 그럼 점수부터 6점이 나올 수가 없는데.

    내가 고개를 갸웃거릴 때였다.

    접시를 비운 펠릭스가 매우 내키지 않는다는 얼굴로 말했다.

    “모험가와 깊은 대화를 하는 건 오랜만인 것 같군. 원래는 엘프들의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었지만, 이번만큼은…… 크흠.”

    아까는 그렇게 간곡하게 부탁하더니 뜬금없이 자존심을 세우네?

    NPC들이 다 이런다지만 빡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샐러드가 맛이 없었단 말인가?

    “어쩔 수 없지. 불의 정령을 우린 다룰 수 없으니…….”

    그렇게 뇌까리는 펠릭스는 곤란한 얼굴이었다. 그때 퀘스트창이 다시 떴다.

    [대륙 남부 : 마법의 숲

    - 엘프들의 사정 들어보기(완료)

    - 엘프 도울 방법 찾기(완료)

    - 숲의 불 정령에 대해 물어보기(NEW!)]

    난 퀘스트창을 보고 펠릭스에게로 시선을 주었다.

    “좀 많이 건조하다고는 생각했는데, 최근에 불 정령 수가 그렇게 많이 늘었나요?”

    사실 천리안으로 보고 온 후라, 이미 숲이 난리가 났다는 거야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고로 이럴 때일수록 모른 척해야 최대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법!

    꿀팁을 실천하자 아니나 다를까, 펠릭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더니 입을 열었다.

    “원래 사막과 숲의 경계가 분명했다는 사실을 아는가?”

    여기서 고개를 끄덕이면 세계관 설명은 패스될 것이다.

    “그랬습니까?”

    하지만 네드 님은 흥미로운 얼굴이라, 난 모른 척 고개를 흔들어 주었다.

    그러자 펠릭스가 말했다.

    “원래 우리 엘프들의 터전은 물 정령과 바람 정령이 수호하는 땅이었지. 항상 녹지로 가득했고.”

    이거야 천리안으로 숲 안을 봤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천리안 있는 사람이 나랑 네드 님뿐이라 그렇지.

    “반면 건너편 남부의 유목민들은 고대에 불 정령과 계약한 대가로 땅이 황폐해져 버렸다네.”

    그들은 힘만을 추구하였기에 파워가 가장 센 불 정령하고만 계약해 버렸다.

    그래서 그들이 살던 땅은 이글이글 사막이 되었다는 뭐 그런 설정이었다.

    “유목 민족들과 불 정령이 뿜어내는 열기는 구름마저 물러가게 하는 강력한 열기였지. 그리고 이 숲에는 자연스럽게 그들에게 밀려난 물과 바람 정령이 모여들어, 숲과 사막의 경계는 점점 뚜렷해져 갔지…….”

    펠릭스는 아련한 얼굴로 숲을 돌아보면서 말을 이었다.

    “그렇게 균형이 잡혔지. 우린 유목민들과 싸울 이유가 없었네. 어차피 그들과 우리는 원하는 것도 주식도 다르니까. 그런데…….”

    뭔가를 말하려던 펠릭스는 말을 돌렸다.

    “……아무튼 얼마 전부터 숲에 불 정령이 갑자기 늘어나기 시작했다네. 물 정령과 바람 정령들이 막지 못할 정도로 강한 정령들이 말이야. 그리고 그런 짓을 할 자들이라면 불 정령과 친한 저 유목민족들뿐이 아니겠나?”

    펠릭스가 혀를 찼다.

    “그래서 우리는 수장님께 공식적인 항의를 하자고 말씀드렸는데, 수장님께서는 왠지 모르게 아무 말씀도 없으시네.”

    이 부분은 확실히 내가 했던 메인 스토리와 전혀 달랐다.

    “그리고 그사이, 불 정령들은 어딘가에서 힘을 받는 것처럼 강력해지기 시작했네.”

    “?”

    나와 네드 님의 시선이 마주쳤다.

    잠깐, 어딘가에서 힘을 받아?

    받을 만한 곳은 한 군데밖에 없었다.

    불 속성 크리스탈!

    “그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알 수 있나요?”

    숲 중심부에 있다는 거야 오는 길에 천리안으로 알아냈다.

    하지만 숲 중심부라는 것만 알 수 있었을 뿐, 자세한 위치는 몰랐다.

    이 넓은 숲을 뒤지는 것보단, 이 숲의 엘프들에게 묻는 게 더 빠르다.

    혹시 수상한 거 본 적 없느냐고.

    난 재빨리 물었다. 정확한 위치 알아?

    알면 그거만 들고 튀자!

    내 눈이 반짝였다.

    “모르겠네.”

    ……하지만 일이 그렇게 쉽게 풀리면 유네리아가 아니었다.

    “정령들이 두려워하며 알려주질 않으니…….”

    그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무튼 그것에 대해 알아봐 주게. 불 속성 정령들을 쫓아내는 것도 좋지만, 결국 수장님께 말씀드려 유목 민족들에게 공식적인 항의를 하는 것이 좋겠지.”

    그건 니들이 하는 게 빠르지 않을까요?

    왜 굳이 외부인더러 수장을 만나래?

    “나는 배가 고파서 이만.”

    하지만 펠릭스는 따질 틈도 없이 우리 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아니, 방금―”

    샐러드 드셨잖아요???

    내 말은 듣지도 않고. 황당해하는 우리 앞에 다시 퀘스트가 떴다.

    [대륙 남부 : 마법의 숲

    - 엘프들의 사정 들어보기(완료)

    - 엘프 도울 방법 찾기(완료)

    - 숲의 불 정령에 대해 물어보기(완료)

    - 엘프들의 방식대로 수장 만나기(NEW!)]

    정말 제멋대로인 NPC가 아닐 수 없었다.

    분명히 불 정령들은 불 속성 크리스탈에 영향을 받고 있을 텐데.

    내가 눈살을 찌푸릴 때였다.

    네드 님이 불쑥 물었다.

    “알라반 왕성에서 크리스탈 추적기를 가져올 수는 없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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