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6화 (46/112)
  • <46화>

    하지만 내 말에 네드 님은 멈칫했다가 고개를 저었다.

    “일단 해 보죠.”

    이 사람이 키트 무서운 줄을 모르네. 저번엔 14개 만에 끝났지만 초심자의 운은 끝이라고요!

    또 나올 것이란 보장이 없다고!

    “아이템 두 개만 뽑으면 된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오는 길에 난 네드 님께 그 빌어먹을 요리도구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기가 막힌’ 등급의 요리도구 중에서도 스테이크를 하려면 ‘구름처럼 폭신한 플레이팅용 철판’과 ‘육즙을 가두는 칼’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친구들은 나오는 확률도 극악인 주제에 3번 쓰면 박살 나는 유리 조각상들이었다.

    그리고 최고의 대장장이에게 가져가도 수리를 할 확률은 70%.

    실패해서 박살 나면?

    다시 뽑아야 한다. 와, 신난다!

    “뭘 찾는데?”

    그때 데이아가 돈에 미쳐 반짝이는 금빛 눈으로 물어 왔다.

    네드 님이 담담하게 말했다.

    “구름처럼 푹신한 플레이팅용 철판과 육즙을 가두는 요리용 칼입니다.”

    그런 쪽팔리는 이름을 그런 잘생긴 얼굴로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것도 능력이 아닐까요?

    내가 잠시 감탄하는 사이 데이아가 박수를 짝 쳤다.

    “아, 그거! 그거라면 있지~”

    있어? 있다고? 상시판매야? 키트 아니야?

    내가 눈을 반짝였을 때였다.

    ―도르르르르르…… 탁!

    데이아가 어디서 꺼냈는지 모를 긴 두루마리를 펼쳐 들었다.

    [‘데이아의 절친 상자’ 랜덤 아이템 박스 확률 고지]

    그리고 그건 당연히 랜덤 아이템 박스 확률을 고지한 두루마리였다.

    내가 유네리아에 뭘 기대한 거지?

    “음…….”

    나와 네드 님의 시선이 두루마리 상단을 훑었다.

    난 두루마리를 위에서부터 살폈다. 아래는 볼 필요도 없었다. 보나 마나 확률은 X 같을 거고 그럼 가장 위에 있을 테니까.

    아니나 다를까.

    [구름처럼 푹신한 플레이팅용 철판]

    [육즙을 가두는 요리용 칼]

    찾았다! 3회용 요리도구 주제에 맨 꼭대기에 있는 놈들의 확률은 가관이었다.

    “……0.45%?”

    내 말에 네드 님이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난 어이가 없어서 웃어 버렸다.

    이야, 하늘의 기운보다 네 배는 안 나오네?

    이거 해야 할까? 굳이 해야 할까요? 천리안 없이도 잘 살았는데?

    “그냥 남부로…….”

    갑시다, 하려는데 네드 님은 내 옆에서 소매를 걷어 올리고 있었다.

    “지지진짜 하시게요?”

    이 말도 안 되는 골드 회수용 키트를?

    “하지 말까요?”

    네드 님이 담담한 목소리로 물어 왔다.

    “너무 비효율적이라서요.”

    물론 게임 랭킹권쯤 되면 스탯 1에 목숨 걸고 몇십 몇백만 원을 지르는 건 기본이다.

    효율이고 가성비고 쓰레기통에 처박는다는 소리다.

    하지만 천리안 얻겠다고 몇천을 바닥에 갖다 박아야 할까요? 언제 갑자기 회수될지 알 수도 없는 스킬에?

    내가 고개를 흔들자, 네드 님은 나를 지켜보다가 불쑥 물었다.

    “하고 싶으십니까?”

    “네?”

    담담한 목소리는 무슨 답을 원하시는지 알기 힘들게 했다.

    시선이 마주치자 네드 님이 부드럽게 웃었다.

    “비효율적이어도, 하고 싶으십니까?”

    “그야 그렇긴 한데―”

    내가 비효율적인 이유를 늘어놓으려는 때였다. 네드 님이 손을 펼쳐 보이며 가볍게 말했다.

    “그럼 하죠.”

    “네?”

    그렇게 가볍게 보실 일이 아니라니까요? 난 그를 돌아보았다.

    효율적인 것만 좋아하실 것 같았는데 의외였다.

    “가진 돈 다 써도 안 나올 수도 있어요.”

    그럼 데이아만 배불리는 꼴이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네드 님은 담담하게 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데도 하지 않으면 슬프잖아요. 그리고,”

    그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아까 천리안 퀘스트가 생겼을 때, 유니 님 표정이 아주 밝았거든요.”

    내내내가 그렇게 밝히는 표정 지었어요?

    나도 모르게 얼굴에 피가 몰렸다.

    그런 내게 그가 악마처럼 속삭였다.

    “가지고 싶으면, 가지셔야죠.”

    이 사람, 이렇게 적극적인 면도 있었어?

    * * *

    상자를 까면서 알았는데, 네드 님은 돈으로 할 수 있는 건 뭐든 참지 않는 사람이었다.

    “돈을 벌어도 쓰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서요.”

    상자를 까면서 할 짓도 없겠다, 의미 없는 수다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당연히 이야기 주제는 랜덤박스 하나에 100골드나 하는 이 상자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야 그렇긴 한데요.”

    그래서 요즘 20대가 그렇게 욜로를 한다잖아.

    팔팔할 때 개처럼 벌어서 모아 봐야 어디 집 살 돈도 없고, 그냥 그럼 노후를 위해 존버하는 대신 지금 즐겁자는 거지.

    하지만 이 사람은 그러기엔 돈이 너무 많은 것 같은데??

    “무슨 일 하시는지 물어봐도 돼요?”

    결국 난 그에게 물었다. 네드 님은 상자를 까던 손을 멈칫했다.

    그래도 벼락같이 열린 걸로 판정됐는지, 그의 손안에서 사르르 녹은 상자 안에서 나온 건 쓰레기 잎사귀였다.

    그는 그걸 옆으로 치우면서 말했다.

    “사람을 상대하는 일을 합니다.”

    내가 그를 쳐다보자 네드 님은 말을 고르는 듯했다.

    뭘 하길래 저렇게 말을 고르시지?

    “특이한 직업이에요? 일반적이지 않은?”

    사람 상대하는 직업 중에 그런 게 있나?

    하지만 내 말에 네드 님은 고개를 저었다.

    “특이하지는 않습니다.”

    “특이하진 않지만 사람을 상대하는 직업?”

    그럼 너무 많은데? 굳이 말을 고를 이유가 없는데? 내가 상자를 다시 열어서 나온 천 쪼가리를 옆으로 치웠을 때였다.

    “서비스직?”

    내 말에 네드 님이 웃었다.

    “포함되겠네요. 그냥 회사원이라고 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냥 회사원이 그렇게 돈이 많을 리가. 난 볼을 긁적였다.

    “회사원…….”

    그때 네드 님이 불쑥 물었다.

    “유니 님은요?”

    “네?”

    “유니 님의 직업이요.”

    평소답지 않게 묘하게 적극적인 모습이었다.

    아니, 원래 적극적이었나?

    잘 생각해 보면 네드 님은 나뿐만 아니라 NPC들에게도 친절했지만, 개인적인 질문은 한 적이 없었다.

    웃어주거나 이야기 들어주시는 건 마치 십년지기 친구의 인생 고민 들어주듯 진지하게 들어주다가도, 막상 생각해 보니 그런 것치고는 묘하게 거리를 두는 듯한 느낌?

    그래서인지 이렇게 내게 질문해오시는 게 낯설게 느껴지는 걸지도 몰랐다.

    뭐 말 못 할 것도 없지.

    “간호사예요.”

    내 말에 네드 님은 살짝 입을 벌렸다.

    뭐야, 놀라신 거야? 난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놀랄 일이에요?”

    “……아니, 음.”

    네드 님은 그제야 표정을 정리했다. 그러더니 웃었다.

    “많은 환자들이 유니 님을 좋아하셨을 것 같습니다.”

    “왜요?”

    내 말에 네드 님은 의외로 고민 없이 답했다.

    “그야, 마음이 넓으시니까요.”

    난 그 말에 눈을 깜빡였다.

    “제가요?”

    “네.”

    네드 님이 손을 펴 보였다.

    “제가 잦은 실수를 해도 웃어주시잖아요.”

    “아니…….”

    그게 실수입니까? 자고로 뉴비의 실수는 컨텐츠인 법이었다.

    “전 네드 님이 실수했다고 생각 안 해요.”

    결국 난 웃음을 터뜨렸다.

    “…….”

    내 말에 네드 님은 가만히 나를 바라보았다.

    난 그의 앞에 손을 흔들어 보였다.

    저기요? 렉 걸리셨어요?

    “네드 님?”

    “……아.”

    그제야 네드 님이 반응했다. 그는 조금 입가를 매만지다가, 빙그레 웃었다.

    “제가 너무 쓸데없는 말을 많이 했네요.”

    난 그를 바라보았다.

    다시 상자를 열기 시작하는 그는 평소처럼 살짝 미소 지은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 얼굴이 평소와는 좀 다르게 보였다.

    다른 건 몰라도.

    “쓸데없는 말이 어디 있어요. 하고 싶으면 하는 거지.”

    난 어깨를 으쓱했다.

    일하다가 아무래도 무슨 일이 있어서 쉬게 되신 것 같은데.

    “…….”

    내 말에 네드 님이 나를 보았다.

    난 네드 님이 그러는 사이 상자를 열심히 열었다.

    다행히도 데이아가 준비한 상자는 친환경 고오급 상자라서, 리본을 풀어 여는 순간 상자는 증발하고 내용물만 남기 때문에 백몇십 개째 열어도 유네리아의 환경을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천상계의 공기를 담은 병]

    음, 쓰레기군. 난 병을 옆으로 던지려다가 무심코 설명을 보았다.

    [테리반 길거리의 어느 남자가 천상계에 다녀왔다고 주장하며 판매한 병.]

    ……이거 설마 음유시인이 갖다 팔았던 아이템? 내가 눈에 힘을 줄 때였다.

    [지하세계의 물을 담은 병]

    연달아 튀어나오는 템이 심상치 않았다. 이거 무슨 음유시인 에디션이야?

    데이아랑 음유시인이랑 커넥션 있어? 왜 이렇게 어두운 유네리아의 뒷세계를 보는 느낌이…….

    [산타 이비 인형]

    [2012 윈터 에디션 이비]

    유네리아 마스코트 인형도 잊지 말아 달라는 듯 튀어나왔다.

    “이야, 무슨 근 10년 전 아이템이 튀어나오네.”

    데이아, 재고처리 했니? 돌아보니 데이아는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아오, 저걸 콱!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