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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화 (45/112)
  • <45화>

    가장 높은 주제에 지하세계의 신 이름을 달아놓은 산봉우리는 수많은 유저들이 그곳에서 낙사하면서 이름을 잘 지었다고 평가받는 곳이기도 했다.

    심지어 거긴 고도가 높아서 중간부터는 용을 타고 올라가지도 못했다.

    [고도가 너무 높습니다. 용이 힘들어합니다.]

    그런 시스템창을 띄우니까.

    “그렇다면 등산 준비를 해야겠군요.”

    네드 님이 침착한 얼굴로 노트를 꺼냈다. 등산 장비 목록이라도 정리하시려는 듯했다. 하지만 난 그에게 손을 내저었다.

    “아뇨, 제 생각대로면 등산 준비는 필요 없어요.”

    굳이 필요하다면…… 예누스 정제육 정도?

    난 어깨에 앉아 있는 엘데를 은근한 눈으로 돌아보았다.

    그는 졸고 있었다.

    용 중의 용.

    원래 탈것이 아니라 NPC로 나온 데다 비정상적인 속도를 가진 엘데가 고도 제한에 막힐 것 같진 않았다.

    내 뜨거운 시선 때문인지 눈을 슬쩍 뜬 그가 멈칫했다.

    ―……뭔가를 원하는 표정이군.

    바로 그겁니다.

    내가 싱긋 웃었다.

    * * *

    일단 네드 님과 나는 테리반 성을 벗어났다.

    그리고 근처의 평원에서, 엘데를 타기 좋은 크기로 키워 놓았다.

    ―흐음.

    엘데는 아까부터 내가 뭘 원하는지 궁금하다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네드 님은 곧바로 알아챘다.

    “용을 타고 하늘로 날아오르실 생각이십니까?”

    “그게 가장 빠르죠.”

    난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레벨 300대 중반과 500이라지만 산을 쌩으로 타는 건 좀.

    게다가 PC버전 유네리아였다면, 하데스 산봉우리를 오르는 건 캐릭터고 키보드와 마우스로 그걸 조종하면 그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실제로 등반해야 하는 입장인데? 초보 등산가가 하데스 산봉우리를?

    [충격)전직 등산가도 경악한 유네리아 하데스 산봉우리]

    너튜브에는 이런 영상이 돌아다녔다.

    그 옆에는 등산가 모자를 쓰고 놀라는 표정을 하고 있는 사람의 썸네일이 있었지.

    그리고 그 등산가의 말에 의하면.

    [이런 길로 등산을 한다는 것 자체가 미친 겁니다.]

    ……라고 했다.

    등산가도 아닌 우리가 실제로 등반하기는 무리라는 것이다.

    “그런데 용으로 올라가는 건 고도 제한이 있었습니다.”

    그때 네드 님이 침착한 얼굴로 말했다.

    비상식량을 타고 날아다니실 때 고도를 쭉 올려보신 모양이었다.

    “네, 있긴 한데 엘데는 제한을 안 받을 거예요.”

    난 믿음의 눈으로 엘데를 쳐다보았다.

    그렇지?

    ―용 중의 용인 내게, 한계가 있을 것 같으냐?

    아니나 다를까 엘데가 날개를 활짝 펼쳐 보였다.

    그렇지! 믿고 있었다구!

    유네리아는 하늘을 ‘낮은 하늘’ ‘중간 하늘’ ‘높은 하늘’과 ‘천상계’로 나누었다.

    하늘다리를 통해 가는 것 말고는 천상계까지 닿을 수가 없는데, 천상계에서는 어지간한 용도 금세 고도 제한에 막혀 올라갈 수가 없었다.

    하지만 천상계 위로도 날아다녔던 용이 딱 한 마리 있었다.

    “넌 천상계 위에서도 날 수 있지?”

    내 말에 네드 님이 눈을 크게 떴다. 난 엘데를 가리켰다.

    “엘데는 하늘다리 무너지고 나서도 천상계에서 마음대로 날아다녔거든요.”

    얘라면 천상계 위에 뭐가 있는지도 알걸?

    내 말에 엘데가 황당해했다.

    ―제집 위를 날지 못하는 자도 있단 말이냐?

    그의 말에 별안간 네드 님의 어깨에 앉아 있던 비상식량이 날개를 축 늘어뜨렸다.

    ―뀨우우.

    여기 있네.

    나와 네드 님이 비상식량을 돌아보았다가 엘데를 돌아보자, 엘데가 헛기침을 했다.

    ―아직 어린아이는 그럴 수 있지.

    “비상식량이 어리다고?”

    얘 하늘다리 업데이트되자마자 집어온 앤데?

    ―뀨우우…….

    다시 비상식량이 몸을 축 늘어뜨렸다. 엘데의 헛기침이 심해졌다.

    ―……근데 무슨 일이지?

    엘데는 결국 말을 돌렸다. 비상식량은 네드 님의 주머니로 쏙 들어가 버렸다.

    엘데의 푸른 앞발이 주춤하더니 내려왔다.

    같은 용이라고 미안한 모양이었다.

    괜찮아, 쟤는 이따가 네드 님이 맛있는 거 줄 거야!

    그때 넌 입맛만 다시면서 반성해!

    난 그렇게 생각하면서 엘데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우릴, 이 세상이 한눈에 내려다보일 만큼 가장 높은 곳으로 데려다줘.’”

    이 대사는 유네리아를 몇 년 한 유저라면 다 알고 있는 대사였다.

    왜냐하면―

    [퀘스트 ‘멀리서 내려다보는 세상’을 입수했습니다.]

    이 퀘스트를 시작하는 마법의 말이거든.

    ……근데 정말 천리안 손보고 내놓은 거 맞지?

    알고 보니 그대로 낸 거 아니지?

    버그 아니지?

    왜 마법의 말까지 똑같냐, 사람 불안하게?

    내 말에 엘데가 눈을 크게 떴다.

    ―드디어 이 ‘천상의 왕’에게 알맞은 비행을 하고 싶어 하는군.

    엘데는 흡족한 얼굴이었다.

    비협조적일 줄 알았더니 의외네?

    이렇게 천리안 날로 먹는 거?

    ―하지만 이 몸이 천상계 위로 나는 건 너무나도 오랜만의 일.

    ……는 어림도 없었다는 듯이 엘데는 갑자기 고개를 홱 돌렸다.

    난 어이가 없어서 물었다.

    “아까는 집 위라며?”

    멈칫하는 엘데는 여전히 논리가 결여된 용이었다.

    ―……아무튼 준비가 필요할 것 같군.

    나 까인 거야?

    지금까지 밥을 예누스 정제육으로 줬으면 미래가 달라졌을까요?

    내가 얼굴을 구긴 순간이었다.

    [멀리서 내려다보는 세상

    - 천상계 위로 올라갈 방법 찾기(완료)

    - 천상계 위로 올라가기(NEW!)]

    퀘스트가 진행이 되긴 했다.

    “어떤 준비?”

    결국 내가 물었다.

    너도 혹시 하늘의 기운 달라고 할 거니? 키트 까게 할 거야?

    내가 인자하게 웃었을 때였다.

    엘데는 뻔뻔하게 말했다.

    ―‘천상계의 지평을 바꿔 놓을’ 예누스 스테이크를 먹고 싶군.

    “?”

    네드 님은 준비물을 필기하려고 하셨던 듯 다시 노트를 꺼냈다가, 멈칫했다.

    이게 뭔 소리인가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난 그와 다른 이유로 멈칫했다.

    “뭘 달라고?”

    난 입을 떠억 벌렸다.

    생각보다 더한 놈이잖아, 이거!

    * * *

    유네리아의 요리 시스템은 아주 복잡미묘하다.

    요리에는 0점부터 10점까지의 점수가 주어지는데, 점수에 영향을 끼치는 요인은 다양했다.

    아무리 요리 재료를 맞게 넣고 미니 게임을 잘해도 순수 실력으로 만들 수 있는 건 7점까지.

    그럼 7.1점부터는 어떻게 만드는가?

    “장인은 도구를 가리지 않는다지만.”

    난 자야겠다며 하품을 하는 엘데를 주머니에 집어넣으면서 네드 님에게 설명했다.

    이놈이 얼마나 괴악한 것을 요구했는지를.

    “유네리아는 도구를 가리거든요?”

    그냥 등산할까?

    아니야…….

    난 간신히 이성을 찾고 네드 님에게 요리 시스템에 대해 간략히 설명해 주었다.

    요리를 7점 이상으로 만드는 방법.

    여기부터는 도구에 붙은 ‘입맛 보너스’를 받아서 채워야 한다.

    게다가 야외에서 만들었는가, 어떤 날씨에 어떤 장소에서 어느 시간대에 만들었는가에 따라 점수가 달라졌다.

    어떤 요리는 고도 2천 미터 이상의 산봉우리에서 벼락이 떨어지는 순간에 만들어야 10점이 나오는 것도 있었다.

    물론 벼락이 언제 떨어질지는 나도 모르고 만드는 사람도 모르고 네리아GM도 몰랐다.

    이름도 ‘벼락 맞은 샐러드’라는 괴이한 이름의 그 샐러드를 10점짜리로 먹어 본 사람은 지금까지 아무도 없었다.

    다행히 엘데가 요구한 건 그 정돈 아니었지만, 문제는 ‘천상계의 지평을 바꿔 놓을’에 있었다.

    “천상계의 지평을 바꿔 놓는다는 건 무슨 뜻입니까?”

    네드 님이 결국 물었다. 처음엔 네드 님도 그게 음식 이름인 줄 알았던 모양이었다.

    그런 쪽팔리는 이름의 스테이크가 있으면 엘데도 안 먹지 않았을까요?

    “요리 점수로 10점이란 뜻이에요.”

    “아.”

    네드 님은 멈칫했다.

    “그럼…….”

    “만들기 엄청 까다롭다는 거죠. 다행히 예누스 스테이크면 날씨나 위치 조건은 까다롭지 않은데.”

    내가 알기로 예누스 스테이크의 최고 점수를 얻을 수 있는 곳은 맑은 날 새벽 4시의 예누스 목장 일대였다.

    예누스 스테이크를 예누스 친구들 근처에서 구우라는 인정사정없는 조건은 둘째치고, 이걸 다 채워도 8점이다.

    내 설명에 네드 님이 곧바로 물었다.

    “그럼 나머지 2점은……?”

    “그게 문제예요.”

    ‘천상계의 지평을 바꿔 놓을’ 요리가 X랄 맞은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그게 어디서 나오냐면요.”

    내가 참담한 표정으로 네드 님을 데려간 곳은 언젠가 네드 님과 내가 함께 왔던 곳이었다.

    “어머어머 얘, 또 왔어?”

    그건 다름 아닌 NPC 데이아 앞이었다.

    “이 NPC는…….”

    네드 님이 멈칫했다.

    “또 상자 사러 왔니? 그치? 역시 상자 맛은 한 번 보면 잊을 수가 없다니까.”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사행성을 찬양하는 이 NPC는 우리가 저번에 하늘의 기운을 뽑았을 때 만났던 NPC였다.

    “……설마 또, 상자를 열어야 합니까?”

    네드 님이 물었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번보다 안 나올걸요. 그것도 두 개 얻어야 하는데.”

    그냥 때려치울까? 어차피 천리안 스킬 없어도 잘 먹고 잘살았는데?

    하지만.

    새 스킬인데? 특정 루트 아니면 얻을 수도 없는 스킬인데?

    제대로 패치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누가 음유시인 NPC와 네리아GM에게 사사한 동문 사이가 되어 퀘스트를 받을 수 있겠는가?

    라비스도 수십 개씩 먹이면 배부르다고 오히려 호감도 까이는데, 방금 음유시인의 그 폭발적인 반응은 라비스로만 끌어낸 게 아닌 것 같았다.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듯한 네드 님의 리액션도 한몫한 게 분명했다.

    다시 말해, 이 퀘스트가 유네리아 PC버전에 있다고 해도 이게 가능한 사람은 거의 없을 거라는 뜻이다.

    하지만 키트를 또 까라고? 그 빌어먹을 요리도구 얻으려고?

    “그냥 때려치울까요?”

    이게 현명한 선택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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