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5화 (35/112)
  • <35화>

    네드 님이 당황하거나 말거나 켄은 네드 님을 보고 아련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떨리는 손끝으로 네드 님의 볼을 쓰다듬으면서.

    “네드 님…….”

    아무래도 나랑 네드 님 캐릭터 정보가 꼬인 것 때문에 버그가 걸린 듯했다.

    아니, 너랑 아는 사이인 모험가는 여기 있거든?

    “처음 뵈었을 때부터…… 이런 미래가 있을 것 같았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나랑 미래도 그렸냐?

    아니 그 전에 오류 난 것 같거든? 너랑 네드 님은 개인적으로 만난 적도 없거든?

    심지어 초면에는 서로 칼 뽑으려고 했거든?

    “당신은…… 위험한 곳을 여행하는 모험가이고, 나는 그저 마을의 청년이었기에, 당신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쿨럭!”

    아련하게 손끝으로 네드 님 만지는 걸 잡아서 뗄 수도 없고 떨떠름하게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네드 님은 슬퍼하지도 못하고 떨떠름한 상태였다.

    당연했다.

    처음 보는 NPC가 갑작스럽게 직진을 해대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촌극을 리리스……모양의 항아리는 먼 곳에서 지켜보고만 있었다.

    리리스가 ‘오호호, 죽어라!’ 하면서 스킬 한 번만 쓰면 우리 셋 다 날아가는 건데, 리리스는 그저 우리를 지켜보고만 있었다.

    애니메이션에서 주인공이 변신할 땐 안 건드리는 것하고 비슷한 이치(?)인 듯했다.

    어휴, 참 이해심 깊은 항아리 언니예요.

    “그래서, 당신을…… 한순간이나마, 지키고 싶었습니다.”

    리리스의 이해심과 우리의 떨떠름함 속에서 켄의 떨리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가 네드 님의 볼에 손등을 얹었다.

    “…….”

    네드 님은 그 손등을 매우 치우고 싶어 하는 얼굴이었지만 차마 치우지는 못했다.

    그 꼴을 내 어깨 위에서 보던 엘데가 감탄했다.

    ―인간들은 조금만 눈을 떼도 또 다른 고뇌를…….

    들어가라, 들어가!

    눈을 반짝이는 엘데를 집어넣는 동안 갑자기 시야가 천천히 진회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이건?

    설마?

    그러면서 아련한 BGM이 깔리기 시작했다.

    실로폰 베이스로 뚱땅거리는 이 아련한 BGM은 설마?

    [검을 배우고 싶습니다, 아버지.]

    왜 예상은 빗나가는 법이 없는가?

    갑작스레 우리의 앞에 펼쳐진 회색빛 배경의 영상은 켄의 과거 영상이었다.

    [배우거라. 누가 말렸느냐?]

    아들 교육에 별 관심이 없어 보이는 쿨한 켄의 아버지는 그에게 검을 쥐여 보냈다.

    그리고 열 살 남짓 되어 보이는 켄은 열심히 검을 휘두르며 점차 성장해 나갔다.

    그러다가.

    ―크아아아!

    몬스터들이 초보 마을에 몰려온 날.

    [비켜요.]

    내가 네드 님의 유네리아 공학 끝장판 레이저포를 사용하는 뒷모습이 보였다.

    켄이 그 모습을 인상 깊게 지켜본 듯했다.

    그러더니 그가 중얼거렸다.

    [강해져야겠어.]

    몬스터 때려잡느라 못 들었던 결심이었다.

    그 후 내가 떠나가는 게 보였다.

    [여행길에 평안만이 깃들기를…….]

    켄은 나를 아련하게 떠나보냈다. 그러고는 다시 수련을 시작했다.

    [하아!]

    이때부터 기합이 제대로 들었던 듯했다.

    그렇게 그가 기합 넘치는 수련을 한참 했을 때였다.

    [켄 형! 몬스터가!]

    마을에서 청년 하나가 달려와 그에게 외쳤다.

    그리고 켄이 마을에 도착했을 때 마을은 이미 초토화된 후였다.

    ―크르르, 크아아!

    [하아압!]

    덮쳐 오는 몬스터들을 켄은 최대한 베어냈지만 몬스터를 다 막는 건 무리였다.

    [이대로면 다 죽겠어!]

    그렇게 생각한 켄은, 손에 웬 생고기 하나를 들었다.

    저거 몬스터 몰이할 때 쓰는 템인데?

    내가 그렇게 생각한 순간, 켄이 고기를 흔들며 외쳤다.

    [여기다!]

    설마 저렇게 몬스터 주의를 끌어 보려는 건가? 고기 하나로 되겠어?

    ―크르르르!

    하지만 효과는 매우 뛰어났다!

    몬스터들은 물론 켄이 들고 있는 고기만 고기로 보는 것 같진 않았지만 아무튼 켄을 쫓아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켄은 있는 힘껏 달리고 또 달려…… 마을을 최대한 벗어났다.

    [이 정도면……!]

    숨이 턱까지 차오른 켄이 결국 뛰어가다 말고 넘어졌다.

    그리고 그를 따라온 몬스터들이 둥글게 둘러쌌다.

    ―스릉!

    켄은 검을 뽑아 몬스터들과 대치하려고 했지만, 이미 시야조차 제대로 잡히지 않는 상태였다.

    그가 저항할 힘이 없다는 걸 알아차리자, 몬스터들이 그에게 달려들었다.

    ―크르르!

    들고 있는 검이 바닥을 구르는 건 순식간이었다.

    그렇게 켄은 바닥에 쓰러졌다. 죽어가는 그가 생각하는 소리가 울렸다.

    ‘모험가님…… 당신이 있었다면 무사했겠지요.’

    ‘이런 상황에조차 당신에게 기대어야 한다니.’

    그가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갑자기 검은색 깃털 하나가 그의 앞에 팔랑팔랑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그의 얼굴에 그림자가 졌다.

    뭐지, 이 힘이 필요한 선역이 죽어가는 가운데 악역이 와서 힘을 빌려줄 것 같은 연출은?

    [어리석은 검사야, 죽어가고 있구나.]

    아니나 다를까 그렇게 말하는 건 다름 아닌 리리스의 목소리였다.

    그녀의 손끝이 켄의 턱 끝을 들어올렸다.

    [죽음은 두렵지. 근데 너는 아직 원하는 걸 이루지 못한 것 같은데……, 무엇을 원하느냐?]

    ‘신인가?’

    켄은 그 순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는 사이 리리스의 손끝에서 핏빛의 마력이 켄에게 흘러 들어가기 시작했다.

    네크로맨서라더니 죽어가는 몸에도 스킬을 걸 수 있는 듯했다.

    그럼 켄은 이미 죽은 채로 조종당한 거란 말이야?

    이건 10년 차도 충격받을 스토리텔링이었다.

    유네리아 원래 이렇게 하드한 게……임이었지, 참.

    유네리아 시나리오 라이터는 아무래도 켄에게만 유독 더 모진 듯했다.

    [힘…… 모험가님을 지킬…… 힘.]

    그때 켄이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리리스가 말했다.

    [좋아, 그 힘을 주지. 하지만 대가 없는 힘은 없는 법.]

    그러더니 그에게 뭔가를 내밀었다.

    그건 다름 아닌 푸른색의 크리스탈이었다.

    오.

    [대신 이것으로, 알라반을 무너뜨리거라. 천천히, 확실하게.]

    그때는 이미 켄의 눈이 리리스의 마력으로 빛나고 있었다.

    완전히 마력으로 조종당하게 된 듯했다.

    [후후후후…… 하하하하……!]

    그리고 진부한 웃음소리를 내면서 리리스가 사라졌다.

    난 좀 어이가 없었다.

    아니, 크리스탈을 댁이 갖고 있었습니까?

    대륙 가라앉히는 주범이 리리스였어?

    원래 내가 했던 퀘스트 내용에는 크리스탈로 대륙을 가라앉히려는 사람이 누군지 나오지 않았다.

    대충 ‘다음 메인 퀘스트 내용을 기대해주세요’ 같은 내용으로 끝났는데?

    덕분에 유네리아 시나리오 시즌1인지 뭔지가 끝나고 우리가 대륙을 구했을 때, 유네리아 게시판은 다시 한번 불탔었다.

    [아니 그래서 범인 누구냐고 X발]

    [누가 대륙 가라앉혔는데]

    [이런 발싸개같은 스토리로 뒷내용 궁금하게 하는 것도 능력임]

    [경식이 : 아무튼 다음시즌 봐달라고ㅋㅋ]

    참고로 경식이…… 아니, 오경식은 유네리아의 당시 디렉터 이름이었다.

    게임 업데이트 방향을 총괄하는 사람.

    그리고 보통 망겜일수록 유저들은 디렉터 이름을 잘 알게 된다던데, 우리 게임은 뉴비도 시작한 지 사흘 내로 디렉터 한 번은 꼭 욕하게 된다는 망겜 중의 망겜이었다.

    그런데. 그랬는데!

    드디어!

    이제는 나오는 거야?

    니네 시나리오 제대로 바꾼 거야? 드디어 모험가들이 누구 때려잡으면 되는지 알 수 있게 된 거야?

    내가 잠깐 감동을 받는 사이, 화면이 바뀌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