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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2/112)
  • <2화>

    붉은 구슬 이벤트의 당첨자 발표 시간이 되자 초보 마을의 광장에는 사람들이 속속들이 모여들었다.

    “이렇게 북적거리는 건 처음 보네.”

    만남의 광장에는 당연히 내가 아는 사람도 있다.

    웨이브 진 금발에 안경을 쓴 여자 캐릭터가 멀리서 걸어왔다.

    아까 귓속말했던 에이리 님이었다.

    “어, 외형 바꾸셨어요?”

    “네. 어차피 이 게임 할 짓이 외형 바꾸기밖에 없잖아요.”

    그건 그렇지……. 고개를 끄덕인 난 광장을 둘러보았다.

    사람이 많아져서 그런지 화면 보이는 게 뚝뚝 끊겼다.

    “렉 걸리는데 빨리 발표해 줬으면 좋겠네요.”

    이놈의 집 인터넷을 어떻게 하든가 해야지, 진짜.

    “렉 걸리면 조용한 데로 가요.”

    “안 돼요. 그럼 사람들 실시간 반응을 못 보잖아요.”

    이벤트 당첨자가 단 한 명이라니, 유얼머니게임즈에서 말한 대로 전무후무한 이벤트였다.

    대체 얼마나 큰 선물을 주려고 대놓고 한 명을, 그것도 게임 내의 공지 메시지로 발표하는 건지 모르겠다.

    이미 게임 커뮤니티는 새로고침 할 때마다 대여섯 개의 글이 올라오고 있었다.

    [이벤트 당첨되면 내가 광장에 템 다 뿌리고 접는다]

    이벤트를 기다리는 사람의 유형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 하나는 저런 허언형이다.

    [이벤트 선물 대체 뭐임?]

    질문형도 있다.

    저놈들은 아주 멍청한 게 특징인데, 다른 유저도 당연히 모르는 걸 굳이 물어본다.

    [선물 천만 원에 산다]

    아예 뭔지도 모르는 선물을 사려는 놈도 있네. 헛웃음이 나왔다.

    《안녕하세요, 네리아GM입니다.》

    “오, 떴다.”

    순식간에 광장이 시끄러워졌다.

    렉이 세 배쯤 심해진 것 같다.

    캐릭터들 움직이는 게 뚝뚝 끊기는 건 물론이고 폭발적으로 시끄러워진 대화창도 몇 초나 멈췄다가 훅 훅 올라가길 반복했다.

    난 렉을 견디지 못하고 대화창을 귓속말만 보이게 바꿨다.

    > 귓속말(에이리) : 오 오 나온다 나온다

    에이리 님이 흥분해서 뭐라고 하는 게 보였지만 렉 때문에 대답하지도 못했다.

    귓속말 탭에서도 공지는 보였기 때문에, 난 공지에 집중했다.

    어차피 유얼머니게임즈 하는 꼬라지 보면 기대할 만한 선물은 아닐 게 분명했다.

    삼 년 전에도 이 비슷한 이벤트를 했었는데 꼴랑 당첨자 백 명 골라 놓고 준 게 유네리아 네 글자 박힌 케이크였다.

    맛은 차라리 화분에 있는 흙을 퍼먹는 게 더 부드러웠을 것 같다는 평이 많았다.

    “이번엔 뭐 주려나? 멍청한 트로피 같은 거 주면 진짜…….”

    《길게 이야기하는 거 싫어하시죠? 그럼 붉은 구슬 이벤트의 당첨자를 발표하겠습니다.》

    광장이 한층 더 시끄러워졌다.

    렉이 미친 듯이 먹으면서 화면이 까맣게 번쩍였다.

    《당첨자는……》

    나오려는데 갑자기 컴퓨터가 확 꺼졌다.

    “어?”

    난 눈을 깜빡였다.

    눈을 깜빡여도 앞이 달라지는 게 없을 정도로 칠흑 같은 어둠에 휩싸였다.

    컴퓨터만 꺼진 게 아니라 주변의 불이 다 꺼진 것처럼.

    “?”

    이상하다.

    내가 사는 집은 밤에 침실에서조차도 빛이 너무 밝아서, 암막 커튼을 쳐야 간신히 잘 수 있는 도심에 있는데.

    불을 켜려고 자리에서 일어난 순간이었다.

    “어어!”

    마치 계단에서 발을 헛디딘 것처럼 허공을 밟는 아찔한 느낌과 함께, 난 정신을 잃었다.

    * * *

    “뭐야, 이거.”

    세상에는 컴퓨터 하다 기절하는 놈도 있다던데, 난 그게 환상의 동물인 줄 알았다.

    근데 내가 그 환상의 동물이 될 줄이야.

    눈을 뜨자마자 보인 벽에는 이상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하얀색의 커다란 민들레 씨 같은 생물에 앙증맞은 눈코입이 달려 있는 그 캐릭터는 유네리아의 마스코트 몬스터 ‘이비’였다.

    “이비가 왜 여기 붙어 있냐.”

    이건 좀 상황이 이상하다.

    일단 가장 중요한 건 난 내 집 벽에다가 이비 그림 같은 거 붙여 놓은 적 없다.

    뉴비 때 이비 잡느라 고생한 걸 생각하면 저딴 놈, 벽에 붙이기는커녕 보고 싶지도 않다.

    게다가 고개를 돌려 방 안쪽을 보니 처음 보는 공간이었다…….

    “……아니, 좀, 익숙한데?”

    난 눈을 한참 동안 깜빡이고 나서야 이걸 어디서 봤는지 알아차렸다.

    “초보 마을의 여관?”

    그중에서도 가장 허름한 방.

    근데 이 묘하게 낯선 느낌은 내가 화면 너머로 이 방의 모습을 보는 게 아니라 내 눈으로 보고 있기 때문일 거다.

    “?”

    ???????

    이게 무슨 상황이람?

    “안녕하세요, 유니 님!”

    그때 눈앞에 뭐가 번쩍 나타났다.

    그러니까 현실에선 절대 있어선 안 될 괴상한 푸른빛의 파우더를 뿌리며 무언가가 나타났다.

    파우더가 눈에 들어가니까 따가웠다. 아따따.

    “유네리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눈을 간신히 가늘게 뜨고 보니 눈앞에 있는 건 웬 거대한 나비 날개를 달고 있는 요정이었다.

    얘도 현실에 있기에는 좀 곤란한 비주얼인데?

    “뭐예요? 누구세요?”

    머릿속에 물음표가 범람해 입 밖으로 흘러 버렸다.

    요정이 빙그레 웃었다.

    “네리아GM이에요. 아까 공지사항 들으셨죠?”

    예? 요즘 운영자는 코스프레도 합니까?

    난 그렇게 믿고 싶어서, 나비처럼 날고 있는 네리아GM의 머리 위쪽을 손으로 쓱 쓸어 보았다.

    설마, 와이어에 매달린 거겠지, 했지만 네리아GM은 진짜 허공에 둥둥 떠 있었다.

    난 믿기지 않아 물었다.

    “그…… 혹시 지금 날고 계세요?”

    내 의혹 가득한 질문에 네리아GM은 파우더를 날리며 방을 한 바퀴 돌아 보이기까지 했다.

    “물론이죠! 다시 한번 유네리아에 오신 걸 환영해요! 주의사항은 들으셨죠?”

    주의사항? 뭔데? 날개의 파우더를 주의할 것?

    “정신 차리니까 여기였는데요?”

    “아, 그래요? 좀 오류가 있었나 보네요. 캐릭터 방어력 문제인가…….”

    방어력은 무슨 어이없는 소리야?

    난 내 장비창을 떠올렸다.

    내가 속옷탭에 끼고 있는 건 레벨 200 이하의 몬스터에게는 데미지가 1도 안 들어올 정도로 강력한 갑옷이었다.

    “내가 어디 가서 데미지 200 이상 받아본 적이 없는데 무슨 소리를 하는…….”

    장비창을 상상하자 장비창이 갑자기 눈앞에 불쑥 떠올랐다.

    그 상황에 흠칫했지만 장비창을 보고 나서는 아예 입이 고장나 버렸다.

    속옷 탭에는 웬 까만 제복이 불쑥 입혀져 있었다.

    국적을 메디카로 설정한 유저들이 캐릭터를 만들자마자 받게 되는 메디카 제복.

    “어?”

    내 국적은 메디카도 아니었을뿐더러 이런 뉴비들 옷은 몇 년도 전에 버리고 나서 아이템창에 넣어 놓은 적도 없었다.

    이게 왜 여기 있어?

    “주의사항을 다시 한번 말씀드릴게요. 일단 이곳은 유네리아 세계입니다.”

    네리아GM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녀가 손을 흩뿌리자 이펙트여야 할 파우더가 다시 눈가를 간지럽혔다.

    그걸 들이마시자 현실처럼 그대로 재채기가 나왔다.

    “쿨럭!”

    재채기를 세게 하는 바람에 골이 울렸다.

    근데 더 충격적인 건 그 이펙트에 재채기가 나온다는 사실 자체였다.

    대체 어떻게……?

    “유네리아에 아낌없이 투자해 주신 유니 유저님! 당신께만 이런 특별한 선물을 드립니다!”

    네리아GM이 눈을 찡긋했다.

    “유저님이 구해 주셨던 유네리아 대륙을 다시 한번 구해 주세요! 구하고 나오신 후에는 현실 세계에서 더 큰 선물이!”

    “선물 딴 놈 주시고 로그아웃 시켜 주십쇼.”

    고민 없이 말이 바로 튀어나왔다.

    내가 아무리 게임 좋아한다지만 이런 비현실적인 상황까지 좋아할 리가 없었다.

    게임 속 세계에 들어왔다고?

    여기가 그럼 게임 속 세계?

    물론 좋을지도 모른다. 이 세계에서의 내 능력치는 그야말로 톱 클래스였으니까.

    하지만 게임할 때는 클릭 한 번이면 그만이었던 노동이, 실제상황이 되면 내가 직접 해야 하는 일이 되잖아?

    난 그런 중노동, 막노동은 질색이었다.

    “아, 선물을 거절하시는 건가요?”

    난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 저녁 약속 있거든요.”

    “아…… 안타깝군요.”

    네리아GM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 세계 최초의 기회를 날려버리시다니 안타깝지만 별수 없죠. 그럼 다른 유저 분을 부르겠습니다. 안녕!”

    가벼운 손짓과는 다르게 미련이 뚝뚝 떨어지는 말을 한 네리아GM이 손짓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

    “?”

    이거 VR(가상현실) 같은 건가?

    그럼 나한테도 로그아웃 같은 게 있을 텐데?

    난 어딘가 웃는 거 말곤 할 줄 아는 게 없는 것 같은 GM에게서 눈을 떼고 로그아웃을 생각했다.

    아까 장비창 생각하니까 뜬 것 보면 이렇게 하면 될 것 같은데.

    하지만 로그아웃되는 일은 없었다.

    “아……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네요. 확인해 볼 동안 일단 즐기고 계실래요? 아니다, 저희도 사실 유니 님처럼 초보자 분이 오실 줄은 생각도 못 하고 바깥 상황을……”

    “제가 뉴비로 보이세요?”

    눈깔이 삐셨군요?

    어이가 없어서 쳐다보는데 눈이 마주친 네리아GM은 아주 발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정말 눈이 삐었군.

    난 네리아GM의 시신경 상태를 걱정하며 상태창을 열었다.

    그리고 이번엔 내 시신경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뭐야.”

    [유니 / Lv. 7]

    7? 7?????

    내가 내 캐릭터한테서 마지막으로 봤던 7은 만렙인 500을 찍기 전의 497이 전부였다.

    난 캐릭터 스펙에 환장한 사람이라 레벨 400부터 이미 스탯은 찍을 만큼 다 찍어서 최고치여서 막판에 올릴 숫자라곤 레벨밖에 없었거든.

    근데 레벨 7?

    “이게…….”

    내가 말을 잇지 못하자 네리아GM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혹시 문제가 있으세요?”

    “그럼 없어 보이세요?”

    아이템창, 캐릭터 상태창, 장비창, 스킬창을 한 번에 다 열어본 난 기함했다.

    “내 캐릭터 어디 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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