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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구한 적 없다-79화 (79/118)

제79화

오필리아에게서, 그리고 또 오필리아의 방에서 그가 가장 싫어하는 냄새가 지독하리만치 풍겨 왔기 때문에.

‘이단의 냄새.’

마법사들이 사용하는 마력은 자연의 힘을 응용하는 신성력과는 다르게 자연에 반하는 것이라 그런지, 마력을 사용하는 자에게서는 그 특유의 비위를 상하게 하는 냄새가 나곤 했다.

일반인들에게는 느껴지지 않겠지만 신성력을 사용하는 이들에게는 또렷하게 느껴지는 이단의 냄새.

그러니 신전에서 마법사를 이단이라 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그 냄새가 인간을 인간이 아닌 것처럼 보이게 만들기 때문에.

마력을 다루는 데 능통할수록 냄새는 더욱 짙어졌다.

그러니 신성력을 사용하는 이들에게 마법사라는 존재가 어떻게 비칠지는 자명한 일이다.

힘을 탐해 신을 배반하고 인간이기를 저버린 자들.

‘대체 전하의 방에서 왜 그런 냄새가 그토록 심하게 나는 건지.’

방을 들어가는 순간 숨이 막혀 난처한 상황을 만들 뻔했는데, 심지어 오필리아에게서까지 그런 냄새가 났다.

마치 인간이 아닌 존재나, 인간의 범주를 넘어선 상식 밖의 괴물과 친밀히 교류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생각해 보니 전하에게서만 난 것도 아니었군.’

이 성 전반에 그런 냄새가 잔뜩 뿌려져 있었다.

임시 신전이 없었더라면 아마 지내는 데 상당한 고역을 겪었으리라.

그리고 그 사실은 곧 베일란에게 사명감을 불러일으켰다.

이 성에 만연한 이단의 냄새를 모조리 쫓아내 주겠다는, 그런 내용의 사명감.

베일란은 임시 신전으로 돌아와 제 방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직급이 낮은 사제 하나가 베일란을 보고 알은체를 했다.

“그러고 보니 주교님, 연통이 왔던데요.”

“갑작스럽군. 연통이라니? 발신자는?”

“글쎄요? 편지 겉면에는 적혀 있지 않던데요. 아까 물건을 좀 정리해 드리려 방에 들어갔더니 책상 위에 놓여 있기에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래?”

베일란의 날카로운 직감이 무언가 수상하다는 사실을 집어냈다.

그는 소식을 전한 사제에게 건성으로 인사해 주고는 방으로 서둘러 들어갔다.

휘이이, 바람이 스산한 소리를 내며 커튼을 흔드는 와중.

책상 위에 달라붙은 듯이 놓여 있는 편지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조금 전 사제의 말대로 발신자도 수신자도 적혀 있지 않은 편지.

베일란은 주저 없이 편지를 뜯었다.

다소 긴장했던 것이 무색하게도 내용물은 평범했다. 아무런 마법도, 신성력도 담겨 있지 않은 종이 한 장.

편지라기에는 궁색할 만큼 짧은 내용이 적힌 쪽지였다.

문제는, 그 종이에 쓰인 내용이 평범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마법사 알레이의 정체는 흑마법을 사용해 기억을 빼앗기고 추방당한 마탑의 주인.」

마법사 알레이.

베일란이 아는 이름이었다.

우연히 황궁에서 지나친 일이 있었는데, 수상할 정도로 짙은 냄새가 나는 주제에 말단이라기에 눈여겨보고 있었던 상대.

그리고 그는 베일란이 라딘 성에 만연한 지독한 냄새의 주범으로 고려하고 있던 상대이기도 했다.

‘그가 마탑의 주인이라고?’

모든 것이 베일에 싸여 있다는, 그 마탑 세이렌의 주인?

아무리 생각해도 믿기지 않아 베일란은 몇 번이고 쪽지를 다시 읽었다.

마탑의 주인씩이나 되는 사람이라면 분명 범접하기 힘든 아우라가 있을 텐데, 알레이라는 마법사는 말단이었으므로.

‘아니, 아니지.’

생각해 보면, 알레이는 신원이 불분명해서 능력이 준수함에도 불구하고 승진을 시켜 주지 않았다고 했다.

그리고 신원이 불분명한 원인은.

‘기억상실증.’

쪽지를 들고 있는 베일란의 손끝이 덜덜 떨렸다.

그러나 공포에 의한 떨림은 아니었다.

그것은 희열이었다.

쪽지의 내용과 알레이라는 인물이 가지고 있는 의문점들이 얼추 들어맞는 것에 대한 희열.

‘어쩐지 냄새가 지독하더라니.’

흑마법을 사용해서 마법사들에게까지 배척받았다면 그 역시 얼추 이해가 되는 내용이었다.

제아무리 마탑의 주인이었다고 한들 그 정도로 인간의 범주를 벗어난 것이 아니고서야 도저히 그런 인간이 아닌 것 같은 냄새를 낼 수 있을 리는 없으니까.

‘더러운 이단자 놈들.’

이 기회를 잘만 이용한다면 황궁에서 그 역겨운 마법사들을 모조리 쫓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알레이를 잡아가 흑마법을 사용한 마법사의 위험성을 알리며 이단자 근절을 호소한다면, 밀레세트 황실은 어쩔 수 없이 신전의 편을 들어줄 게 분명하므로.

하지만 당장 이 쪽지만 믿고 나서기에는, 걸리는 게 많았다.

가장 먼저 쪽지를 누가 보냈는가.

‘이 쪽지에 적힌 내용이 사실인지도 불분명하고.’

정보 제공자의 신원이라도 명확하다면 정보의 신뢰도를 높게 판단할 수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쪽지는 수상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니 무턱대고 이 쪽지가 사실인지도 확인할 방법이 없다.

‘덫을 놓아 봐야 하나.’

깎아지른 절벽 같은 베일란의 낯에서, 혐오감으로 가득 물든 눈동자가 흉흉히 빛을 낸 순간.

벌컥 소리와 함께 방문이 열렸다.

“베일란!”

“카델리아 전하?”

베일란의 낯이 다시 무해한 태를 띠었다. 그는 쪽지를 내려놓고 무례를 모르는 것처럼 달려오는 카델리아를 향해 몸을 틀었다.

“무슨 일로 이렇게 급하게 절 찾으시는 겁니까?”

“그, 그놈을 봤어! 내가 말했던 그!”

“그놈이라 하심은?”

“나를 날려 보냈다는 그 마법사 말이야!”

카델리아가 와락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평소처럼 화가 머리끝까지 난 것 같은 모양새라기보다는, 울상으로 소리를 치는 것 같은 모양새였다.

“내가 말했잖아! 정말 있다고! 헛것을 본 게 아니라니까!”

“외람되오나 저는 당시 크게 발언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알아! 그러니까 베일란을 찾아온 거 아냐!”

카델리아가 눈물을 훔치듯 눈가를 거칠게 문지르며 말했다.

아닌 게 아니라 그녀는 정말 운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무도 자신의 말을 믿어 주지 않았던 것이 적잖이 서러웠던지.

오죽하면 가장 가까운 친구여야 할 제 시녀들에게 알리는 게 아니라 베일란에게 뛰어왔을까.

물론 평소 베일란이 다정하고 상냥하기로 정평이 나 있었던 탓일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아무도 내 말을 안 믿어 줬단 말이야. 내가 분명 은발의 마법사가 나를 어디론가 보내 버렸다고 그렇게 말했는데!”

바로 카델리아의 말에 베일란의 머릿속에 불이 번쩍 켜졌다는 것.

그가 알기로 알레이는 은발이었다.

그리고 만약 그가 정말로 흑마법까지 써서 부도덕한 힘을 추구한 게 맞다면.

그래서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높은 힘을 가지고 있었지만 흑마법을 들키지 않기 위해 함구해 왔던 거라면…….

‘이동 마법은 말단 마법사가 쓸 만한 것이 아니라고 했지.’

그렇다면 쪽지의 내용이 얼추 들어맞는 셈이다.

“그 마법사 놈, 가만두지 않겠어. 반드시 그놈을 내 앞에 무릎 꿇릴 거야!”

카델리아가 씩씩대던 숨을 고르고 외쳤다. 본인이 당한 수모를 알레이에게 전부 씻어 내겠다는 듯.

그 모습을 보던 베일란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알레이를 포획할 덫. 그 재료로 카델리아가 적합할 거라는 생각이 든 탓이다.

“……전하 말씀이 옳습니다. 감히 밀레세트의 적녀를 능멸한 이를 제대로 치죄해야겠지요. 혹 계획이 있으십니까?”

“계획까지 필요한 일인가? 내 명령이면 단박에 붙들 수 있을 텐데.”

“아시겠지만 놈은 뛰어난 마법사입니다. 심지어 그 실력과 신분을 숨기고 있기까지 하죠. 사람이 여럿 달려든다 해도 놈이 마법을 쓰면 상대하기 까다로워질 겁니다.”

베일란의 말에 카델리아의 표정이 묘연해졌다. 미처 거기까지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듯.

카델리아의 둔함에 대해서는 베일란 역시 그녀에게 신학을 가르치며 여러 번 겪었으니 이미 익숙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 말은, 베일란이 카델리아를 다루는 데 제법 두각을 드러낸다는 뜻이기도 했다.

상냥하게 미소 지은 베일란이 카델리아에게 자리를 권하며 입을 뗐다.

“전하께서도 아시겠지만, 신전에는 마법사를 상대할 만한 도구들이 많이 있습니다. 개중에 마력을 억제할 만한 물건들도 있지요.”

마력을 봉인한다면 마법사는 그저 평범한 인간이나 다름없다.

“놈의 마력을 묶어 구금하는 겁니다. 그 뒤에는 황녀 전하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실 수 있으실 테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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