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을 구한 적 없다-32화 (32/118)

제32화

말투,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전부 그랬다.

의뭉스럽기 짝이 없고, 또 그만큼 놀라운 일을 만들어 내는 사람.

그런데도 저 파란 눈을 마주하면 어딘지 말문이 막히고 말아서.

“……마음에 안 듭니다.”

“그런 상대하고 계속 협업해야 한다니 당신도 꽤 난처하겠군요. 유감이에요.”

그러나 그런 알레이의 말에도 오필리아는 덤덤했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누군가가 자신을 못마땅해하는 것은 이미 오필리아에게 충분히 익숙한 일이었던 탓이다.

그러나 두 번째는, 오필리아가 본 알레이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는 점에 있었다.

알레이는 오필리아가 마음에 들지 않아 미치겠다는 사람치고는,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는 법을 잊어버린 사람처럼 굴고 있었다.

보통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냥 말을 아끼고 고개를 돌려 버리면 되는데 말이다.

오필리아는 그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만 같았다.

“알레이, 내가 자세한 걸 당신에게 말해 주지 않아서 화가 났나요?”

“그런 게 아닙니다.”

“당신에게 자세히 설명해 주지 않고 산테와 훌쩍 다녀와서?”

“아니라고 했습니다.”

“오늘은 우리 처음 보는 거잖아요, 알레이.”

“예. 어떤 분이 내내 밖에 계셨던 탓에 그렇게 됐군요.”

“그런데 당신 내가 돌아왔을 때 내 방에 있었던 건, 나한테 할 말이 있었던 거 아니에요?”

매무새 정돈이 끝난 오필리아가 미간 푸는 법을 배우지 못한 것처럼 굴고 있는 알레이에게로 다가갔다.

“그런데 내가 당신을 두고 산테와 나갔다 와서는 웬 남자까지 주워 왔으니.”

“…….”

“대체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혼란스러울 법도 하죠.”

그러니까, 이건 지난밤의 연장선인 셈이다.

오필리아는 산테가 대체 무엇을 했기에 자신이 그를 신뢰하는 거냐고 묻던 알레이의 낯을 기억했다.

그는 꼭 지금과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오필리아는 알레이의 불안을 이해했다.

그는 기억을 모조리 잃고 오로지 오필리아에게 의지하고 있었다.

아마 그가 지난 5년간 찾은 스스로에 대한 정보보다 근 며칠간 오필리아가 알려 준 것이 더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 자꾸만 오필리아가 자신을 등한시하니, 이용만 당하고 버려지는 것은 아닐지, 충분히 불안할 수 있을 터였다.

‘그렇다고 곧이곧대로 털어놓기에는 내가 그를 아직 충분히 신뢰하지 못하겠어.’

미묘한 신뢰와 불신의 양립.

그들의 관계는 그 위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었다.

줄을 느슨하게 하는 것도, 팽팽하게 당기는 것도 모두 오필리아의 손에 달렸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겠지만.

“……어차피 오래 말해 주지 않을 생각은 아니었어요. 당신에게 도움을 받았으니 그 대가로 해 줄 이야기가 필요하기도 했고.”

오필리아는 알레이를 가볍게 지나쳐 가, 책상 끄트머리에 달린 설렁줄을 당겼다.

딸랑, 경쾌한 종소리와 함께 말이 이어졌다.

“내가 일전 인어에 관한 책을 보던 걸 기억해요, 알레이?”

“물론 기억합니다.”

“저 남자는 그 인어를 만나기 위한 수단이었어요. 그는 막내 인어 공주가 사랑하는 남자거든요.”

“……인어 공주?”

알레이가 묘하게 구겨진 낯으로 반문했다.

“왜요, 세이렌이 있는데 인어는 없을 것 같나요?”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단지…….”

며칠 전 꿈에, 당신을 닮은 인어가 나왔다. 육지를 걸을 수 있는 거냐며 좋아하던 인어가.

오필리아와 그 인어가 연관이 없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게 간단히 지나쳤는데, 마탑을 속여야 한다는 생각에 잠시 잊었던 것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단지, 생소해서. 그 인어를 만나고 온 겁니까?”

“그렇죠. 그녀에게 물을 것이 있었거든요.”

“그건 당신이 마탑으로 가는 데 도움이 되는 일입니까?”

“아뇨. 개인적인 일에 가까워요. 자세한 건 장소를 옮겨서 얘기해야 할 것 같고.”

“그럼 후에 듣겠습니다. 마침 사람도 오고 있는 것 같으니.”

알레이의 날카로운 시선이 느슨하게 움직여 문 쪽을 향했다가, 다시 오필리아를 향했다.

“그보다 오필리아. 한 가지 당신이 잊고 있는 것 같아 말씀드리려 합니다.”

“무엇을요?”

“산테보다는 내가 이동 수단으로는 편리할 겁니다.”

오필리아는 잠깐 귀를 의심했다.

저 말을 하는 알레이의 표정이 여전히 깨진 바윗돌처럼 날카롭게 찌그러져 있었던 탓에.

“세이렌이 아무리 마법에 능하다 한들 나를 능가하긴 힘들 테니까.”

기억 없는 것 빼곤 못날 게 하나 없는 저 잘난 남자의 자존심 모서리가 죄 드러난 것 같았다.

단정한 소매 아래 비뚤게 쥔 주먹이 그를 대변하고 있었다.

“아하하!”

오필리아는 웃음을 터트렸다. 아주 간만에, 소리 내어 웃은 경험이었다.

* * *

그날 밤.

“아까 웃은 건 미안하다니까요, 알레이.”

“됐습니다.”

“사람이 참 속이 좁네요. 내가 좀 웃을 수도 있지.”

“이제 아셨다니 유감스럽습니다.”

그렇게 말해도 오필리아는 여전히 함빡 웃고 있었다. 알레이는 여전히 찡그리고 있었고.

즐거움을 감추지 못하는 오필리아를 또 뾰족한 눈초리로 보던 알레이가 불만 가득한 태도로 뜨거운 김이 올라오는 잔 두 개를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됐으니 이야기나 마저 합시다.”

“그래요. 어디까지 이야기했죠?”

“당신이 인어의 비늘을 삼킨다는 미친 짓을 했고, 그로 인해 몸에 인어의 마력이 도는 말도 안 되는 상태가 되었다고.”

“아, 이제 기억나네요. 그래서 인어 공주를 만나면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고 했죠.”

친절한 설명에 오필리아가 맞장구를 쳤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지금 세 번째 재개되는 중이었다.

첫 번째 이야기는 오필리아가 설렁줄을 당긴 탓에 라딘 성의 사용인이 들어오면서 끊겼고.

그렇게 장소를 옮겨 두 번째 이야기를 이어갈 때는 오필리아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는 바람에 끊겼다.

사실 거기서 이야기가 끊기지 않을 수도 있었다.

-음, 그러고 보니 오늘 먹은 게 없네요. 이야기나 마저 하죠.

-오늘 드신 게 없으시다고요?

-입맛이 좀 없어서.

오늘은 이안과 재회하는 날이었고, 아리엘을 만나야 하는 날이었다.

정말 아침까지만 해도 오필리아는 그 무엇도 먹고 싶지 않았다. 속이 너무 울렁거렸다.

그러나 막상 만나고 나니 속이 가벼워졌다.

특히 아리엘과의 만남이 성공적이었던 덕분이 컸다.

남의 편지로, 혹은 남의 기억으로만 마주하던 침대 밑 괴물은 평범하고 사랑스러운 한 사람일 뿐이었다.

자신조차도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질 만큼 사랑스러운, 소녀 태를 완전히 벗지 못한 한 여인.

그것은 그렇게까지 두렵지도, 공포스럽지도 않았다.

대신 마음이 홀가분해지자 굳어 있던 위장이 일을 하게 해 달라며 아우성이었다.

물론 오필리아는 그조차도 가볍게 무시하려 했지만.

-당신이 식사하시기 전까지는 당신과 한 마디도 나누지 않을 겁니다.

상대가 워낙 완고한 탓에 어쩔 수 없이 그들의 대화는 다시 한번 끊어져야 했다.

그렇게 다시 현재. 이야기는 세 번째 개막을 맞았다.

“일단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리엘은 이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다고 했어요. 그리고 자세한 이야기는 당신에게 묻는 것이 빠를 거라 산테가 말하더군요.”

“우연이군요. 그렇잖아도 오늘 당신에게 그 얘기를 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오필리아를 찾아갔었다며, 알레이가 말을 받았다.

“당신 몸에 흐르는 마력을 좀 살펴봤는데, 아무래도 일반적인 경우가 아닌 것 같아서. 그랬더니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있을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오늘은 알레이에게 놀라운 일만 가득한 하루였다,

그것도 어느 정도 나쁜 의미로 말이다.

-예전에 인어의 비늘을 삼켰어요. 인어를 만난 건 그걸 해결하기 위함이었고요.

그녀는 별것 아니라는 투로 말했지만, 마법에 해박한 알레이에게는 다가오는 무게가 달랐다.

인어의 비늘.

그 자체로 마력의 결정과도 같은 그것은 그 희귀성뿐만 아니라 위험성 때문에 더욱 유명한 물건이었다.

인어의 비늘은 단순한 마력의 결정이 아닌 사념의 결정이기도 했기에, 그것이 발동되었을 때의 위험도가 상당했던 탓이다.

그런데 그걸 먹다니.

알레이는 듣자마자 사색이 되어 반문했다.

-오필리아, 제정신입니까? 그걸 먹는다는 건 목숨을,

그리고 멈추었다.

놀란 알레이와 달리 어떤 파문조차 없는 오필리아의 낯과, 그들의 첫만남이 맞물린 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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