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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 그 계약은 잊어주세요-99화 (99/100)

99화. 에필로그 2-1

카시스와 아일라가 혼인을 하고 4년 후, 카시스와 아일라에게는 이제 막 세 살이 된 카시스와 같은 은백의 머리색을 지닌 딸이 한 명 있었다.

세 식구는 지금 찬합까지 가지고 나들이를 나와 있었다. 나들이라기엔 멀지 않은 대공성 내에 있는 숲의 호숫가였지만.

“카시스 피곤하지 않아요? 요즘 잠을 제대로 못 잔 것 같은데요.”

“괜찮습니다.”

“쉬어야 하는데 괜히 나온 거 아니에요?”

“아닙니다. 다음엔 바다로 갑시다. 오랫동안 가지 못하지 않습니까? 아리엘도 외조부모도 만나 보아야지요. 이제 아리엘도 알아야 하지 않습니까.”

아일라는 자신이 아직 어린 딸에게 자신이 바다 종족이라고 불리는 마린족이라는 사실도, 부모님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았다.

“아직 어리잖아요.”

“어릴 때부터 그대와 그대의 가족에 대해 말해 주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 건 숨기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알았어요. 지금은 쉬어요. 피곤해 보여요.”

“그렇게 곤하지 않습니다.”

“아니요. 당신, 충분히 피곤해 보여요.”

“제가 피곤해 보이면 말입니다. 피곤하지 않게 해 주는 방법이 있습니다.”

카시스가 그렇게 말하고는 몸을 그녀에게로 기울여 귓가에 대고 무어라 속삭였다. 그러자 아일라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지금 낮에, 그것도 밖에서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왜 안 됩니까?”

“당연하죠! 이냥 이걸로 참아요!”

아일라는 붉게 물든 얼굴로 소리치며 그를 잡아당겨 제 무릎을 베고 눕게 했고, 카시스의 기분 좋은 낮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지금 나 놀린 거예요!”

“그럴 리가 있습니까. 진심이었습니다.”

“정말이지······.”

아일라는 붉어진 얼굴을 홱 돌렸다. 쿡쿡 낮게 웃던 카시스는 눈을 감았다. 카시스가 막 눈을 감았을 때 카시스는 몸에 느껴지는 충격을 느끼고는 다시 눈을 떴다. 아리엘이 짧은 다리로 달리다시피 와서 점프를 했지만 올라타지 못하고 그대로 들이받았다.

“파아-!”

“아리엘, 위험하게 무슨 짓이야.”

놀란 아일라가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도 다치고 아빠도 다치시잖아.”

“히잉-.”

아일라가 깜짝 놀라서 엄하게 말하자, 아리엘은 울상을 지었다.

“저는 괜찮으니 화내지 마시죠, 아직 어리지 않습니까. 부인.”

“어릴 때부터 위험한 짓은 못 하게 해야 한다고요.”

“아리엘, 괜찮은 것이냐.”

“헤헤!”

“당신은 괜찮아요?”

“이 정도쯤은 괜찮습니다.”

웃는 것을 보니 다치지는 않은 모양이다.

“아리엘 다시는 이러면 안 돼. 알겠니?”

“이 정도는 충분히 받아 줄 수 있습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그러다 다친다고요. 안 되는 건 안 된다고 해야죠. 카시스는 아리엘에게 너무 물러요.”

“제가 무릅니까?”

“아리엘에게는요. 위험한 행동을 하면 혼을 내야죠.”

아일라가 보기에는 카시스는 제 딸에게만은 너무 물렀다.

“아리엘, 다시는 위험한 행동을 하면 안 된다. 알겠지?”

카시스는 일어나 아리엘을 안아 들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하고는 이마에 입을 맞췄다. 그러자 아리엘은 ‘까르르’ 웃었다.

“지금 뭐 하는 거예요?”

“혼낸 겁니다.”

“그게요?”

아일라는 황당해하면서 되물었다.

아무래도 카시스는 혼낸다는 의미를 아리엘에게만 잘못 적용하는 것 같다.

“아리엘, 아빠 피곤하셔. 쉬셔야 하니까 이리 오렴.”

“시러-, 파아랑 이쓰꼬야.”

“아빠랑 엄마하고 같이 잘까?”

카시스는 아리엘을 안은 상태로 순식간에 아일라까지 끌어안고 누웠다.

“시로 안 자고야. 안 조려.”

아리엘은 카시스와 아일라 사이에서 빠져나오려고 버둥거렸지만 카시스는 아리엘을 놓아주지 않았다. 아직 어리기에 이러고 잠시만 있어도 금방 잠이 들 거다. 이렇게 빠져나가려고 움직이는 만큼 금방 지칠 테니.

“이러고 같이 잡시다. 바람도 좋지 않습니까.”

“정말이지. 아리엘도 낮잠을 자야 하니까 잠시만 이러고 있는 거예요. 아리엘과 당신이 잠들 때까지만요.”

아일라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그의 품에 얌전히 안겨 있었다. 카시스와 제 사이에서 빠져나가려고 열심히 움직이던 작은 몸부림이 사그라들자 아일라가 고개를 숙여 보았다. 아리엘은 어느새 고른 숨소리를 내면서 잠이 들어 있었다. 잠이 든 어린 딸을 본 카시스는 ‘피식’ 웃었다.

“자, 이제 시스 당신이 잠들 시간이에요. 아까 눈을 붙여야 했는데 아리엘이 방해했잖아요. 잠깐이라도 눈 좀 붙여요.”

아일라는 손으로 카시스의 눈을 가렸다. 그러나 미소 지은 그가 그 손을 잡아 입을 맞췄다.

“자라니까요.”

“알겠으니 잠시만 이러고 있으십시오.”

카시스는 아리엘을 사이에 두고 아일라를 끌어안고는 눈을 감았다. 아일라는 그가 잠이 들 때까지만 가만히 있기로 하고는 눈을 감고 있었다.

그 바람에 어느새 아일라까지 잠이 들었다. 그리고 조금 시간이 지나, 카시스가 잠이 든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리엘이 눈을 뜨고 꼼지락거리며 두 사람 사이에서 빠져나왔다.

카시스도 아일라도 이를 눈치채지 못했다.

* * *

“파아, 마아.”

제가 부르는데도 두 사람이 꼼짝도 하지 않자 아리엘은 일어나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호수 주변으로 다가갔다. 그러고는 호수에 비친 제 모습이 신기한 듯이 바라보다 손으로 호수를 찰싹찰싹 때렸다. 그러자 호수 물에 작은 파문이 일었다. 파문이 이는 호숫물에 제 모습이 비친 것도 모르고 몸을 호수 쪽으로 길게 뺐다가 고꾸라진 아리엘은 호수에 빠지고 말았다.

풍덩!

카시스는 뭔가 빠지는 소리에 눈을 뜨고 일어나 앉아 아리엘을 찾기 시작하더니 호수에 시선을 고정한 채 표정이 굳었다.

“잘 자고 있었더니만 어느새.”

카시스는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벌떡 일어나 호수로 달려가 뛰어들었다. 카시스가 호수에 뛰어드는 소리에 아일라도 눈을 떴다. 잠이 덜 깬 아일라는 몽롱한 표정으로 주위를 살피다, 카시스와 아리엘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사색이 되어 일어났다. 그리고 카시스가 뛰어들며 일었던 파문의 흔적이 남은 호수를 보고는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린 얼굴로 호수에 다가갔다.

카시스는 호수로 뛰어들어 아리엘을 찾았다. 아리엘을 구하기 위해 헤엄쳐 가까이 가던 그는 놀란 듯이 멈칫하면서 멈췄다.

아리엘?

그가 본 아리엘은 호수 속에서 저와 닮았던 은백의 머리색이 물빛으로 변해 있었다. 아이는 놀란 듯 울고 있었지만 물속에서 숨을 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우애앵-!!”

딸의 울음소리가 커지자 카시스는 잠시 멈췄던 것도 잠시 빠르게 헤엄쳐 아리엘을 품에 안고 위로 올라가려 했다. 아일라도 호수로 뛰어든 것인지 다가오고 있었다.

카시스는 아일라가 더 다가오기 전에 아리엘을 안고 헤엄쳐 아일라와 함께 위로 올라가 호수를 빠져나갔다.

“우리 아리엘, 괜찮아요?”

“괜찮으니까 진정하십시오.”

“정말 괜찮은 거죠?”

“흑! 흐윽! 우와앙- 마아-!”

카시스의 품에서 울음을 크게 터트린 아리엘이 엄마에게 가겠다며 팔을 뻗자 아일라가 얼른 아리엘을 받아 안아 꼭 끌어안았다.

“엄마가 미안해. 흑! 내가 잠이 드는 바람에······.”

카시스는 조용히 아일라와 아리엘을 바라보다 호수를 흘깃 보더니 다시 저와 같은 은백의 머리색으로 바뀐 아리엘을 바라봤다.

“아리엘은 다치지 않았습니다.”

“정말 괜찮은 거죠? 아리엘, 호수에 빠졌는데 정말 아무런 문제도 없는 거죠?”

“부인이 너무 놀라서 못 본 것 같습니다. 아리엘이 물속에서 숨을 쉬고 있었습니다.”

“네? 뭐라고요?”

“아리엘이 호수 속에서 숨을 쉬고 있었습니다. 머리색도 부인과 같은 마린족 특유의 물빛으로 변해서 말입니다.”

잠시 카시스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던 아일라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고는 눈물이 쏙 들어가 놀란 눈으로 제 품에서 아직 울고 있는 아리엘을 내려다봤다.

“그러니까······, 아리엘이 마린족처럼 물속에서 숨을 쉬었다고요?”

놀라서 창백하고 가시지 않은 얼굴로 그의 말에 놀라서 멍하니 그를 보며 물었다.

“그리고, 머리색이 물빛으로 변하고요?”

“예, 그래서 괜찮다고 말한 겁니다.”

아일라에게도 마린족의 피가 흐르고 있으니 당연한 건가.

아리엘이 만약 물속에서 숨을 쉬지 못했다면 그 잠시 사이에 물을 많이 먹었을 거고 위험했을 거다. 물을 아예 먹지 않은 것은 아닌 듯했지만 물속에서 숨을 쉬면서 물은 덜 먹은 듯했다.

“그래도 그만 돌아가 의원에게 보이는 것이 좋겠습니다.”

카시스는 그렇게 말하고는 아일라와 아리엘을 데리고 성으로 돌아와 의원을 불렀다.

“공녀 저하께서는 별다른 문제가 없는 듯합니다.”

“정말 괜찮은 것인가?”

“예, 전하.”

카시스는 의원이 진료를 끝내고 괜찮다는 말을 들었음에도 혹시 몰라 되물었다. 아일라의 앞에서는 괜찮다고 했지만 걱정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혹시라도 놀란 것 이외에 다른 이상이 있을까 서둘러 돌아와 의원을 불러 진찰한 것이었다.

“그런데 호수에 빠지셨다면 공녀님이 어리셔서 물을 조금만 마셔도 위험하셨을 텐데 놀라울 정도로 멀쩡하십니다.”

“입.”

“예?”

“입조심하는 것이 좋을 거다. 그 목숨을 부지하고 싶다면 말이다.”

의원의 말에 표정이 굳은 카시스가 경고 어린 말을 했다.

하필이면 대공성의 주치의가 수도에 가 있어서 마을 의원을 불렀더니만 괜한 호기심을 두고 있었다.

“여기서 나가서 입 함부로 놀리지 않는 것이 좋을 거다.”

“저, 그냥 놀라울 정도의 기적 같은 일이라.”

“그리고 내 아이는 호수에 빠진 적이 없다. 목욕하다 욕조에서 잠깐 빠진 거다.”

카시스는 아일라가 마린족인 것을 숨기고 싶어 하듯이 제 딸에게 마린족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밝히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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