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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 그 계약은 잊어주세요-98화 (98/100)
  • 98화. 에필로그 1-2

    아일라는 거울 너머로 클로에를 힐끗 바라봤다. 클로에는 카시스가 라피스를 내 호위로 붙여 놓은 걸 알고 있는 건가? 말해도 되는 건가.

    “저도 알고 있으니 걱정 마세요. 라피스가 하녀로 있는 이유는 아가씨를, 아니 이제 대공비 전하를 가까이에서 호위하기 위해서예요.”

    “알고 있었어?”

    “본 게 있기도 하고, 러셀 후작 각하께서 말씀해 주셨어요.”

    그렇구나. 클로에도 라피스에 대해 알게 된 거구나.

    그때 노크가 들리더니 방문이 열렸다. 문밖에는 카시스가 서 있었다.

    “아일라.”

    “카시스.”

    “움직이지 마세요, 아가씨. 거의 다 되었으니 조금만 가만히 계세요.”

    고개를 돌리려던 아일라를 저지한 클로에는 머리를 마저 만져 주며 말했다.

    “이제 됐어요.”

    클로에가 뒤로 물러나자 카시스가 안으로 들어오고 아일라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슨 일이에요?”

    “그대를 볼 겸 데리러 왔습니다.”

    나를 데리러 왔다고? 그래도 되는 건가?

    카시스가 클로에와 라피스에게 나가라는 눈짓을 하자, 이내 두 사람은 방을 나가며 문을 닫았다.

    “아일라, 괜찮습니까?”

    “뭐가요?”

    카시스는 되묻는 아일라를 가만히 바라보다 손을 올려 얼굴에 가져다 댔다.

    “부모님······, 울지 마십시오.”

    “어? 이상하다.”

    부모님이라는 단어가 카시스의 입에서 나오자 아일라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아일라는 울고 있었나 보다.

    카시스의 울지 말라는 말에 아일라가 손을 들어 눈물을 닦으려고 눈을 비볐다 그러자 카시스가 그녀의 손을 잡아 내리더니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왜, 왜 웃어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혼례가 끝나면 바다로 갑시다.”

    “바다······.”

    “그대의 고향이니까. 보여 드리고 싶지 않습니까.”

    “카시스.”

    “저는 괜찮지만 그대는 아니지 않습니까.”

    그는 아틀란으로 갈 수 없었던 데다, 아일라만 바다로 보낼 수도 없었다. 하지만 바다에 가면 그녀의 부모님이 아일라를 보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카시스,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흑!”

    “울지 마시라니까 더 웁니까? 얼굴이 엉망입니다. 그만 우십시오.”

    카시스가 손으로 부드럽게 눈물을 닦아 주며 말했다.

    얼굴이 엉망이라고?

    “꺄아! 이, 이게 뭐야!”

    거울로 고개를 돌린 아일라는 거울에 비친 제 얼굴을 보고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비명을 질렀다. 그러자 카시스는 낮은 웃음소리를 냈다.

    “우, 웃지 마요! 그리고 얼굴이 엉망이 됐으면 진작 말을 해 줘야죠.”

    “괜찮습니다. 예쁩니다.”

    “예, 예쁘기는 뭐가 ‘예쁩니다.’예요. 화장이 번져서 얼굴이 엉망인데요. 흐윽, 너무해.”

    “정말 예쁩니다.”

    “웃지 말고 말해요. 웃지 말고.”

    카시스는 아일라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확 잡아당겨 품속에 가두었다.

    “그대가 어떤 모습이라도, 어떤 얼굴이라도 상관없이 예쁩니다.”

    “뭐예요, 그게.”

    카시스는 아일라의 입술에 입을 맞추고 떨어지며 말했다.

    “클로에에게 들어오라고 할 테니까 잠시 기다리십시오.”

    카시스가 나가자, 클로에가 다시 방 안으로 들어와 아일라의 화장을 고쳐 줬다.

    화장을 고치고 방을 나왔을 때 앞에서 카시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카시스는 미소를 지으며 아일라에게 손을 내밀었고 아일라는 제 앞에 내밀어진 손을 보며 잠시 고민했다.

    인간들은 혼인할 때 원래 직접 데리러 오나 싶어서 주위를 살폈지만 미카엘과 윌리엄은 고개를 돌리고 헛기침을 했다.

    “뭐 합니까? 잡지 않고. 저하고 이대로 식장으로 가서 입장까지 할 겁니다.”

    “네?”

    “싫은 겁니까?”

    “아니, 그게 아니라.”

    조금 당황스러워서요, 라는 말은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주위를 둘러보자 모두 시선을 피할 뿐, 아무도 이 상황에 대해 설명을 해 주지 않았다.

    “저기, 원래 이렇게 하나요?”

    “그대가 특별해서입니다.”

    “저 하나도 특별하지 않아요.”

    “제게는 특별합니다. 그러니 제 손을 잡아 주십시오.”

    잡지 않는 것도 무안을 주는 거겠지.

    아일라가 제 손을 잡자 카시스가 미소 짓고는 에스코트해 함께 식장으로 향했다. 시작에 도착했을 때 아일라는 카시스의 말대로 관객들은 얼마 없었다. 그리고 정원 입구에서 주례사가 있는 위치까지 행렬이 이어졌다.

    양옆으로 늘어선 기사들이 갑작스레 검을 빼 들더니 절도 있게 검 끝을 하늘로 향한 채 일자로 세워 자신들의 앞으로 가져갔다 사선으로 그어 내렸다. 그다음으로는 팔을 들어 올려 하늘로 향하게 치켜들고는 그 자세 그대로 굳은 듯이 서 있었다.

    아일라가 그를 올려다보자 그는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얼굴을 내려 귓가에 속삭였다.

    “제대로 된 혼례는 그대의 부모님을 모시고 하고 싶습니다.”

    “그럼 당신 가족들은요? 왜 초청 안 했어요?”

    “오면 귀찮아집니다.”

    “아니 무슨 말을 그렇.”

    “무슨 그렇게 하나 대공. 섭섭한데.”

    아일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들의 뒤에서 킬리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순간 카시스의 표정이 굳었다.

    “너무하잖아. 하나뿐인 형과 형수를 초청도 하지 않고 도둑 혼인을 하려고 하다니. 그뿐인가. 황태후 폐하와 로에나는 왜 초청하지 않은 거냐.”

    “별로 축하해 주실 생각이 없으신 듯해서 초청장을 보내지 않은 겁니다. 그나저나 이번에는 누굽니까?”

    카시스가 매서운 눈으로 주변을 훑었다. 킬리언이 제 혼인날을 알고 왔다는 것은 누군가 그에게 알려 줬다는 말이었다.

    “하, 벨로체 자작이로군요.”

    카시스와 시선이 마주친 아나스타샤가 빙긋 웃었다.

    “······.”

    킬리언은 대답을 하지 않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아나스타샤는 빙긋 웃고만 있었다.

    카시스가 킬리언의 뒤를 힐끗 보자 이사벨과 시엘라 그리고 로에나가 보였다. 눈이 마주친 로에나가 화가 난 표정으로 카시스의 앞까지 다가와 씩씩거렸다.

    “오라버니, 어떻게 우리한테 연락을 안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카시스의 시선은 로에나를 비켜 시엘라에게 고정되었다. 그렇게 제 어미를 잠시간 조용히 바라보고 있던 카시스가 시엘라에게 다가갔다.

    “황태후 폐하를 뵙습니다. 오실 줄 몰랐습니다.”

    “말을 참 서운하게 하십니다. 아무리 반대를 해도 아들 혼인에 어미가 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 겁니까?”

    “······.”

    “대답을 하지 않는 것을 보니 정말 그리 생각한 모양이군요. 어미가 돼서 어찌 하나뿐인 아들의 혼인식에 오지 않는단 말입니까.”

    “송구합니다.”

    “어여쁜 아이군요.”

    시엘라는 카시스를 지나쳐 아일라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우리 황궁에서 한 번 봤지요.”

    “황태후 폐하를 뵙습니다. 아일라 아틀란이라고 합니다.”

    시엘라에게 손이 잡힌 상태라 예의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어중간한 모습으로 인사를 했다. 하지만 시엘라는 그것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래요, 내 부탁이 있어 이리 왔습니다.”

    “황태후 폐하.”

    카시스가 아일라에게 안 좋은 소리를 할 것이 걱정되어 나서며 불렀다. 하지만 킬리언이 그런 그의 앞을 막으며 어깨를 잡고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가만히 있으라는 말이었지만 카시스는 그럴 수 없었다. 그래서 뿌리치고 가려는데 시엘라의 말이 더 빨랐다.

    “카시스를 그대에게 부탁하고 싶군요. 내 저 아이가 어릴 때부터 늘 ‘제 것이 아닌 것에 욕심내지 마라, 강해질 필요없다, 아무것도 하지 마라.’ 그리 말했습니다. 저 아이가 마검사가 되었을 때도 그리 강해져서 어쩌려고 그러려는 것이냐? 황좌는 네 것이 아니다. 축하는 못 해 줄망정 그리 말해 상처를 줬습니다. 그리고 그대와의 관계도 반대했지요.”

    시엘라의 말에 아일라가 카시스를 돌아봤다.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그리고 놀란 듯 눈동자가 흔들렸다.

    “강해지면 적들이 카시스를 더 경계하고 오히려 더 위협하게 될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런 탓에 말이 모질게 나가더군요. 그래서 마음의 상처를 많이 준 것 같아 제가 많이 미안하답니다.”

    “저기, 그 말은 제가 아니라······.”

    그건 아일라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카시스에게 어머니로서 사과하는 말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카시스가 아닌 저를 붙들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아직 제 아들의 얼굴을 마주 보고 사과할 용기가 없답니다. 얼굴을 마주 보면 또다시 모진 말을 꺼낼까 겁이 나기도 하고요. 그러니 그대가 대공을 옆에서 보듬어 주세요. 그래 줄 수 있겠습니까.”

    “네, 그럴게요.”

    “그걸로 됐습니다.”

    아일라의 대답에 부드럽고 인자한 미소를 지은 시엘라가 손을 놓고 돌아서 카시스 앞에 섰다.

    “초청도 하지 않았는데 이리 와서 미안하구나. 나는 이만 돌아가 보마.”

    시엘라가 뒤돌아 그를 지나치려 하자 카시스가 입을 열었다.

    “계셔도 됩니다. 제 혼인식에 참석하셔도 됩니다. 제 혼인이 끝나고 연회도 즐기시고 이곳에 머무르다 가셔도 됩니다. 황태후 폐하.”

    카시스의 말을 들은 킬리언의 굳었던 표정이 풀렸다. 순간 그런 킬리언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고, 시엘라가 놀라서 돌아보자 카시스는 아일라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제 곧 식의 시작이니 입장을 해야 했다.

    그런데 기사님들 계속 팔 들고 계셨던 건가? 팔 아프지 않나?

    “무슨 생각을 하는 겁니까? 입장해야 하지 않습니까.”

    “기사들이 아까부터 계속 저러고 서 있던 것 같아서요. 팔 아프지 않나 하는 생각이요.”

    “이 정도는 아무렇지 않습니다. 내일 아침까지 저러고 있어도 멀쩡할 겁니다.”

    팔이 아프다고 한마디라도 했다가는 내일 아침까지 그 자리에 그대로 세워 둘 것 같은 말투로 카시스가 말하자 기사들이 순간 움찔했다. 이를 본 윌리엄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아일라는 ‘정말요?’하고 묻는 표정으로 카시스를 보았다. 카시스는 그런 아일라에게 신경 쓰지 말라고 말하며 주례사가 있는 앞으로 걸어갔다.

    아일라는 이 자리에 부모님이 계시지 않는다는 것이 속상했지만 언젠가는 아버지도 카시스를 받아 줄 것이라는 것을 믿으면서 지금은 정말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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